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03)
302화 – 204호, 미션의 방 – ‘호텔 시네마’ (24)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4호 – 미션의 방, ‘호텔 시네마’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스크린에서 은솔 누나가 들어간 구미호와 교황청에서 파견한 특수부대 사이의 전투가 벌어지던 중, 동료들은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송이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다.
“언니가 조금 급작스러운 결정을 내린 것 아니에요? 다른 방법을 더 고민해볼 만하지 않았나?”
엘레나는 이해하면서도 궁금해하는 태도를 보였다.
“우리가 보는 화면에서야 휙휙 지나갔지만 언니로선 반나절 이상 고민했을 것 같긴 한데…. 그보다 방금 저건 뭐죠? 무슨 마법 소녀도 아니고.”
아리는 스크린에 들어갈 정도로 달라붙어서 ‘구미호가 쓰는 주술’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의사 선생님과 토론 중이었다.
“손동작으로 제스쳐를 만들어서 요렇게 하는 건가? 다재다능하지만 주술 시전 직전에 지연시간이 있네. 그것 때문에 공략당하고 있어.”
“아리 양이 들어가신다면 저 지연시간을 오래된 피로 메꾸실 수 있겠습니까? 교황청의 특수부대를 제압할 수 있다면 진행이 꽤 편할 듯한데….”
“조금 더 봐야겠어. 은솔이가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이것저것 돌아가면서 쓰는 느낌인데?”
“방금 저 동작은? 충격파를 발생시킨 것 같죠?”
이렇듯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냥 소파에 느긋하게 기댄 채 생각했다.
구미호의 능력, 교황청 특수부대가 도착하기까지의 시간 등 디테일한 분석은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눈알 빠지게 하고 있으니까 나는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하자.
대체 어떻게 깨야 하는 거지?
영화 내적으로만 보면 적절한 시나리오는 명확해 보였다. 28명의 인간을 죽여서 사람으로 변하면 된다.
그 이후 망각의 비술을 걸어서 과거를 세탁한다거나, 가짜 신분을 만들어내어 인간 세상에 적응한다거나 하는 건 한유리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은솔 누나는 이 시나리오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거부하고 뒷사람이 다른 해결책을 찾아내길 부탁했는데, 일종의 윤리적인 고민을 한 것 같다.
나는….
글쎄, 그런 고민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영화 속 사람을 넘어서 영화 속 영화의 사람이다. 이런 존재들까지 온전한 사람처럼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다만, 윤리적인 고민을 떠나서 민간인 사냥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솔직히 누가 봐도 ‘해피엔딩’은 아니잖아? 안내인이 고개를 절레절레할 게 뻔하다.
구미호와 인간 두 집단이 동시에 웃는 시나리오가 있을 수가 있나? 이게 대체 어떻게 해피엔딩이 나올 수가 있지?
머리가 띵하니 아프다고 느낄 때쯤, 아리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아. 아리야. 영화 디테일 분석은 다 했어? 스크린 앞에서 의사 선생님하고 얍! 얍! 하고 춤추고 있던데.”
“춤을 춘 게 아니라 니가 뒤에서 자는 동안 주술 동작을 따라 해 본 것뿐이야.”
“잔 게 아니라 심오하고 철학적인 고민을 했을 뿐이야.”
“무슨 고민?”
“이거 해피엔딩 만들 수 있어?”
“흠….”
“희생 없는 해피엔딩, 그게 가능하다면 관리국 요원인 너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사라지셨으니까.”
“있긴 한데 실현이 어려워.”
“자세히 좀 말해줘.”
“건방지게 의자에 반쯤 드러누워서 말해보라고 하지 말고 공손한 자세로 좀 있어 봐.”
자세를 바로잡고 의자 위에 무릎 꿇었다.
“아리 선생님, 말씀 좀 해 보시죠. 저기 송이랑 엘레나도 귀를 쫑긋하고 있네요.”
송이도 움찔하더니 같이 무릎 꿇었다. 아리는 피식 웃더니 간단히 설명했다.
“자기들 입으로 말했잖아? 구미호 같은 요괴들은 설화에 구속당한다고. 사람이 되려면 간 100개를 먹어야 하는 이유? 그런 설화가 실제 있고 창작물로 재생산되었기 때문이지. 이 경우, 그리 유명하지 않은 설화라면 설화 자체를 없애버리거나 내용을 바꾸면 돼.”
송이가 질문했다.
“하지만 구미호 설화는 엄청 유명하잖아. 다 바꿀 수 있어?”
“어렵지. 아주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해. 사실, 교황청에서 그렇게 해줄 이유도 없어. 그냥 구미호 두 마리 죽이면 끝인데 왜 그런 일을 해줘?”
너무 맞는 말이라 말문을 잃었다. 내가 교황청이나 관리국 높으신 분이어도 그런 뻘짓을 하느니 그냥 구미호 두 마리 죽이고 끝낸다.
“다른 방법은 없어?”
“유사하면서도 세부적인 내용이 다른 설화의 존재로 바꾸는 방법도 있어. 그런데 이것도 엄청 어려워.”
“으음….”
“내가 볼 때 저 시나리오의 정석은 사람 잡아먹기가 맞아. 다른 시나리오는 죄다 억지스럽거나 무지하기 어려워.”
“하지만 그게 어떻게 해피엔딩일 수가 있어?”
송이의 지적과 함께 극장이 조용해졌다. 이 부분만큼은 아리도 답을 모르는 듯했다.
시간이 흐르자 영화는 자연스레 누나의 죽음으로 끝이 났고, 다음 사람이 들어오라는 신호가 떴다. 그때쯤, 나에게도 나름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냥 단순한 문제 같기도 하고….”
아리가 날 바라보았다.
“단순한 문제?”
“애초에 3명을 다 만족시킬 필요는 없잖아.”
아리는 바로 이해했다.
“안내인은 포기하고 상인하고 기념품 소녀의 표만 얻는다?”
“개연성 있으면서 기괴하고 끔찍하게 가야 하지 않을까? 해피엔딩은 때려치우고.”
“개연성 있으면서 기괴하고 끔찍한 줄거리라니 그게 대체 -”
여기까지 말하던 아리가 순간적으로 눈썹을 살짝 치켜떴다.
“하나 떠오르긴 했어. 들어봐.”
아리의 설명을 들은 내 표정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후, 진철 형이 간신히 의견을 냈다.
“사, 상인이 좋아할 것 같긴 하다. 그러면 이번엔 아리 네가 들어갈 셈이냐?”
“그게 좋겠네. 어차피 다른 사람은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극장에서 일어선 아리가 스크린을 향해 다가가며 소리쳤다.
“안내인! 난 축복을 챙겨갈게!”
“엥? 축복?”
평소 축복 의존도가 매우 낮은 아리였기에 송이가 당황하는 티를 냈다. 그러나 아리와 함께 스크린 앞에서 ‘구미호’의 능력을 분석했던 의사 선생님이 송이의 어깨를 짚었다.
“아까 아리 님과 토론하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야….”
*
– 김아리
눈을 감았다가 뜨자 묵성이와 은솔이가 시작했던 번화가와 같은 장소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설마? 하면서 블랙 카페 25시로 들어서자 예상대로였다.
— 띵동!
“아하! 오셨군요? 늦으시길래 무슨 일 생겼나 했습니다.”
“… 제가 늦었나 보네요.”
“괜찮습니다. 쉽지 않은 고백이니만큼 마지막까지 고민하셨겠지요. 참, 박수미 님은 이미 이야기를 ‘확정’하셨습니다. 지금은 유리 양 차례인데,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도인호가 갑자기 극장 쪽을 보면서 ‘확정’한다길래 설마 했는데, 첫 번째 시나리오는 은솔이가 완성한 내용으로 끝난 모양이다. 이제부터는 두 번째 시나리오부터 진행하면 되겠지.
“으흠! 그럼, 이제 – ”
“잠깐만요!”
한유리에게 훅 다가가서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신기할 정도의 미모를 가진 소녀가 크게 당황하는 사이, 그녀의 눈동자와 머리카락 등을 세밀하게 살폈다.
“…”
“저, 저기요?”
“아리 양?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아는 분과 너무 닮아서…. 실례했습니다.”
두어 번 고개를 숙이자 다들 어색하게 웃었다. 다들 속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할 사람을 불렀더니 정신 나간 여자애가 왔다고 생각 중이겠지.
한유리가 지금 확실히 인간인지 체크하고 싶었다. 결론은 아주 높은 확률로 인간이다. 역시 바깥에서 세운 시나리오대로 진행해야 할 모양이네.
곧, 한유리가 과거를 회상하며 극중극으로 진입했다.
*
– 21세기 구미호전
— 딩 동 댕 동!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즉시, 옆에서 재잘대는 새롬이의 팔을 강하게 잡고 귀에 속삭였다.
“유리야! 내일 시간 – 어?”
“날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
“어? 어?”
“망각의 비술에 문제가 생겼어.”
새롬이의 표정이 순간 얼음처럼 굳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구미호의 정신을 억누르는 망각의 비술이 실시간으로 내 머릿속 지우개처럼 기억을 건드리고 있으니 비술 자체를 깨트릴 필요가 있다.
빠르게 이동하던 중, 신발장 앞에서 새롬이의 팔을 다시 한번 강하게 잡았다.
“유리야?”
“거기, 너!”
신발장 뒤의 멍청이는 말이 없었다.
“오늘 저녁 8시, 옥상에서 보자.”
그 말을 끝으로 운동장으로 움직였다. 새롬이는 의아해했다.
“누구에게 말한 거야?”
“고백 살인마.”
“엑?”
운동장에 도착하자마자 머리가 맑아지고 구미호의 지혜와 힘이 머리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가장 위험한 타이밍은 넘긴 셈이다. 나는 바로 이 구미호의 힘을 믿고 오래된 피 대신 축복을 선택했다.
또, 이후에 첫 번째 이야기처럼 초자연적인 힘을 함부로 쓸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명백한 초능력인 오래된 피 보다는 ‘존재감 없는 소녀’나 ‘나침반’을 쓰기가 더 편할 것 같았다.
“…”
주변을 돌아보던 새롬이가 슬쩍 다가왔다.
“언니, 괜찮아요? 여기서 비술을 풀어버리면 배 많이 고프실 텐데.”
“그렇네.”
은솔이가 반쯤 미쳐버릴 뻔했던 이유를 알았다. 조금 과장하면, 학교에 걸어 다니는 모든 학생에게 잘 구운 스테이크와 햄버거 냄새가 났다고 하면 이해 가려나?
“점심시간 곧 끝나겠네요. 이제 들어가실래요?”
“먼저 들어가.”
“언니?”
“곧 들어갈게.”
내가 평소의 한유리와 달랐기 때문인지 새롬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자 교실로 돌아갔다. 학교에 들어가는 대신 정문을 통해 학교 밖으로 나갔다. 내가 세운 계획을 진행하려면 준비물이 제법 많아.
“유, 유리야!”
이 시간의 운동장엔 야구부 소년이 있구나.
“… 지호 선배.”
“내, 내, 내, 내가 -”
“저녁 8시.”
“뭐?”
“그때 학교 옥상에서 뵈어요.”
야구부 소년은 빠르게 정문으로 걸어가는 날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동 시간’은 큰 의미 없는 장면이다. 동료들이 보는 편집한 후의 영화에 들어갈 리 없다. 보나 마나 다음 장소로 순간 이동한 컷을 보여주겠지. 그리 생각하니 여러 가지 상념이 들기 시작했다.
…
…
…
언제였을까. 30년 전? 50년 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심해의 호텔에서 나온 후, 처음으로 만났던 사람. 관리국 한국 지부의 부장이었지. 너무나 오래전에 죽어서 이젠 그 얼굴조차 흐릿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
‘요원 김아리,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나?’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어요.’
‘틀린 말은 아니야. 인간의 목숨은 평등하네. 대부분 상황에서 우리 또한 그리 믿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차별 없이 구하려 노력하지.’
‘그렇군요.’
‘그런데 예외가 있어. 평등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말이지. 그게 누구라고 생각하나?’
‘예외요? 어…. 악령 들린 사람? 신경 기생충에 감염 당한 사람?’
‘그런 건 사람이 아니라 그냥 퇴치 대상이고.’
‘고위 정치인? 재벌?’
‘우린 민간 세상의 신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네.’
‘… 모르겠네요.’
‘답은 쉬워. 바로 자네야.’
‘예?’
‘괴물과 유령, 광신도와 사악한 신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 자네가, 요원이, 관리국 사람이 죽으면 대체 누가 세상을 지킨단 말인가? 그러니 우리는 평등하지 않은 존재지. 따라 하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우리만 빼고!’
‘…’
‘따라 하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우리만 빼고!”
갑자기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에 스스로 놀랐다. 오래전에 배운 이 우습고 선민의식 가득한 문장이 내 입 밖으로 또 튀어나올 날이 올 줄이야….
…
하지만 이 말은 95%는 진실이지. 100%로 바꾸기 위해선 약간의 개념 확장으로 충분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관리국 요원과 요원이 될 사람만 빼고!
그랬기에 나는 은솔이와 달리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았다.
설령 이곳의 사람들이 영화 속 NPC가 아니라 현실의 인간이라 해도 고민하지 않았으리라. 나는 이미 수도 없이 경험한 비슷한 상황에서, 고민하지 않았으니까.
“라이터 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