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06)
305화 – 204호, 미션의 방 – ‘호텔 시네마’ (27)
– 김아리
— 철컥!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은 몰랐는데….”
세 번째 이야기에 들어오고 30분이 흐른 시점, 집이 잠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밖에서 들어오는 문은 물론이고 내부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문도 잠겨있었다.
초자연적인 힘이 개입했다기보다는 단순히 부모가 나가면서 잠가버린 듯했다. 아마 12살 먹은 아들이 혼자 심심하다는 이유로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겠지.
밖으로 나가는 걸 포기하고 집 내부를 돌아다니며 대체 무슨 일이 생길지 가늠해봤지만,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굉장한 부잣집인데 부모는 없고 아이만 남은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따져도 도둑이나 강도 등 범죄가 발생하기 쉬운 상황이고, 초자연적인 변수를 따지면 많아도 너무 많다. 무한한 가능성을 떠올리며 머리가 아파질 때쯤, ‘장난감’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커피숍의 차은표는 부모님이 신년맞이 파티를 취소하는 대신 평소보다 훨씬 많은 장난감을 선물해줬다고 했지. 또, 조금 전에 외출한 부부는 ‘케빈 방 거실’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부르주아틱한 공간에 케빈이 좋아할 만한 물건을 잔뜩 준비해뒀다고 했어.
케빈 방 거실로 이동하던 중, 바닥에 드러누운 고양이가 하품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따스한 표정의 골든 리트리버는 아까부터 꼬리를 살랑거리며 날 따라다니고 있다.
이 동물들에게도 무슨 역할이 있을까? 모를 일이다.
거실에 도착해 선물상자를 하나하나 뜯어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상자에서 튀어나온 것은 굉장히 귀엽게 생긴 분홍 코끼리 인형이었다.
“돌리펀트와 함께 쿠키를 만들어보세요?”
분홍 분홍한 인형엔 찻잔 세트가 딸려있었고, 상자 옆면엔 ‘돌리펀트와 즐거운 티타임을 즐기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게 무슨 12살 남자애를 위한 선물이야? 애 엄마가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걸 산 것 아니야?
두 번째 선물은 다행히 12살 소년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이었다. 상자 내부엔 사람 얼굴 같은 표정이 그려진 장난감 토마스 열차와 레고와 비슷한 장난감 레일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토마스와 친구들을 위해 레일을 깔아주세요!’ 라….”
마지막으로 세 번째 상자는, 열자마자 화가 나서 걷어찼다.
“야! 이게 무슨 애를 위한 선물이야! 진짜 부모 둘 다 혼날래?”
보기만 해도 ‘나 불길하다’를 외치는 광대 인형이다. 흉측한 외견과 어울리지 않게 이름은 ‘해피해피’였다.
이런 걸 왜 만드는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사 와서 12살 아이에게 선물해주는 심리는 또 뭘까? 아이를 울리려는 거야? 아니면 케빈의 취향이 매우 독특하다거나?
장난감들을 보고 있으니 왠지 불길해졌다. 특히 광대 인형은 보면 볼수록 불안했다. 딱 봐도 내가 돌아서 있을 때 꿈틀거리면서 칼 들고 오게 생기지 않았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만히 있기도 불안하지만, 그렇다고 인형을 파괴하는 것도 불안했다. 파괴하려 하면 파괴하려 했다는 이유로 화를 내며 공격할지 누가 알겠어?
결국 도로 상자에 담은 후, 멍하니 의자에 앉았다.
“이래서야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그냥 죽겠네.”
분명 무언가가 날 공격하긴 할 텐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바깥에서 범죄자들이 덮치나? 바닥을 뒹구는 고양이가 갑자기 식인 고양이로 변한다거나? 역시 수상쩍은 광대 인형이 문제인가?
… 내 고민의 답이 풀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케빈! 널 위한 신년맞이 파티를 시작할게!」
갑자기 집 전체를 울리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드는 순간, 집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복도가 넓어지고 길어졌다.
천장이 높아지며 여기저기 샹들리에가 나타났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둥이 여기저기 솟아났다.
원래도 거대했던 저택이 잠깐 사이에 무슨 궁궐 수준으로 거대해졌다. 한평생 일해서 30평 집 하나 서울에 마련하기 힘든 한국인이라면, 이 광경을 보며 조물주의 기적이라 여겼겠지.
기적을 직접 보는 사람으로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기려고 이 지랄인데?
옆의 벽장을 붙든 채 진동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고 고개를 들었을 때, 장난감들이 전부 사라졌음을 알았다.
“대체 또 무슨 -”
「해피해피! 케빈, 이제부터 술래잡기야!」
「토마스가 출발합니다! 레일을 깔아야 하니 길을 비켜주세요!」
「돌리돌리! 티타임 시간이야! 착한 아이는 2층으로 오렴.」
정신이 없다! 대체 뭘 하라는 거야?
— 쿵!
뒤쪽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발소리, 놀라서 돌아서자 흉측하기 짝이 없는 광대 인형이 케빈보다 훨씬 거대해진 채 나타났다.
“이제부터 술래잡기야! 규칙은 등 터치!”
“… 등 터치?”
“이제~ 시작! 케빈, 빨리 도망가는 게 좋지 않겠어? 당장 뛰어!”
‘당장 뛰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돌아서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양탄자를 건너뛰며, 짜증이 날 정도로 미끄러운 대리석 위를 달려서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거실로 향하는 문을 닫고 –
— 쾅!
“해피해피!”
해피해피의 오른손, 광대 인형의 새하얀 장갑이 문을 강제로 비틀어 열기 시작했다. 전신의 체중을 실어 문을 억지로 닫은 후, 창가 쪽으로 달렸다.
차라리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게 낫지 않을까? 이 괴물들로 가득한 저택보다는 –
“창문이 왜 이렇게 단단해?”
창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그때, 나무 문짝이 터져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피!”
심장이 멎을 듯한 웃음소리에 온몸이 굳으려는 순간, 의외의 조력자가 나타났다.
“월! 월!”
갑자기 기괴하게 변한 저택을 보며 혼란에 빠져있던 골든 리트리버, 수지가 위기에 빠진 어린 주인을 보고 용기를 내어 해피해피에게 달려든 것이다. 수지가 전력을 다해 물어뜯자 순식간에 해피해피의 무릎이 터지며 솜털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다? 원래 ‘인형’이었으니 당연한가? 그 광경을 본 나도 벽에 걸려 있던 골프채를 들고 해피해피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
— 찌이이익!
귀엽고 용감했던 수지가 골든 리트리버‘였던’ 살덩어리로 변하고 말았다. 그 무지막지한 괴력을 보자 달려들려던 생각이 싹 사라졌다.
“수지, 미안해!”
이번엔 방향을 바꿔서 저택 1층의 홀을 향해 달렸다.
「돌리돌리! 티타임 시간이야!」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식으로 하염없이 도망 다니기? 그건 아니야. 어린아이의 걸음 속도로 저런 괴물 상대로 도망 다닐 수 있을 리 없어. 애초에 방금도 수지가 아니라면 죽었다고!
애초에 규칙이 뭐라고 했었지? 등 터치?
홀을 향해 달려가던 중, 혹시나 해서 뒤로 돌아섰다. 사방의 물건을 힘으로 부수며 달려오던 해피해피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나와 해피해피는 서로를 응시하며 대치했다. 해피해피는 빠른 속도로 옆으로 이동하며 내 등을 노리기 시작했다!
이거구나! 처음에 ‘당장 뛰어!’라는 말은 함정이었어.
등 터치가 규칙이니까 내가 등을 보인 채 도망가면 해피해피 입장에선 그냥 날 향해 달려들면 그만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정면으로 마주 대하면 내 등이 보이지 않으니까 해피해피가 바로 달려들지 못했다.
천천히,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이리저리 횡으로 움직이며 내 등이 보이는 위치로 이동하려던 해피해피는 곧 인상을 찌푸렸다.
“케빈! 치사해~! 그런 식으로 굴 거야?”
“…”
“이러면 나도 ‘거칠게’ 굴 수밖에 없어?”
거칠게 군다? 다음 단계라도 있나?
다음 순간, 해피해피의 입이 찢어지며 그의 양 팔이 주욱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체 뭘 하려는 –
「토마스가 출발합니다! 레일을 깔아야 하니 길을 비켜주세요!」
— 끼익!
“꺄흥!”
대저택의 화려한 홀로 난입한 열차가 길쭉한 다리를 뻗어 해피해피를 집어던졌다. 바닥에 나뒹구는 해피해피가 기이한 비명을 지르는 사이, 열차 하단의 거미 몸체가 날 주시했다.
… 저건 또 뭐야?
아까 장난감 사이에 있었던 토마스 열차? 아니, 사람 얼굴은 어디 가고 거미 몸통만 남았어?
게다가 조금 전 행동은 뭐지? 해피해피를 밀쳤다? 레일을 깔아야 하니 길을 비켜야 하는데 해피해피가 길을 막았기 때문인가? 자기들끼리도 봐주지 않는 거야?
수없이 많은 의문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때, 토마스가 길쭉한 거미 다리를 등 뒤로 뻗더니 ‘레일’을 꺼내서 정면에 깔았다. 쭉 펴진 레일이 갑자기 내 쪽으로 –
“아이씨 또!”
— 핑! 피이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차가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혐오스럽게 뻗은 거미 다리를 보고 있자니, 열차가 날 따라잡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다.
「돌리돌리! 티타임 시간이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토마스는 ‘열차’답게 레일이 깔리지 않은 장소로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내게 다가오기 위해선 반드시 레일을 깔아야 했고, 덕분에 레일이 깔리는 위치를 보고 움직이는 식으로 도망 다닐 수 있었다.
거미 다리 열차가 레일을 깔며 날 추격하는 기괴한 대저택, 숨 한번 돌리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자 토마스가 내 앞을 지나쳤다. 그때, 등 뒤에서 섬뜩한 소리를 들었다.
“해피 해피!”
“아 씨발 진짜!”
섬뜩한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쭉 뻗은 해피해피의 손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솟아나며 내 등을 향해 날아왔다.
다시 뒤돌아선 채 해피해피를 정면에서 응시했다. 이번에도 해피해피는 내 등이 보이지 않자 잠시 멈췄지만, 그의 표정엔 장난스러운 미소가 깃들었다.
“케빈! 이제 나랑 같이 놀자!”
고무줄처럼 쭉 뻗은 해피해피의 손이 내 등 뒤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또 뛰어야 해? 뛴다고 해서 이 괴물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어? 대체 –
— 끼익!
멀리서 들려오는 ‘토마스’의 경적을 듣는 순간, 내가 해피해피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남아있음을 알았다. 토마스는 나‘만’ 공격하는 열차가 아니지.
길을 비키지 않는다면 해피해피 또한 주저없이 공격하는 존재! 돌아서서 조금 전, 날 지나쳤던 토마스가 설치한 ‘레일’위로 올라섰다.
「감히 내 레일 위로 올라타다니!」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토마스가 ‘후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게 다가오던 해피해피가 토마스에게 치이는 걸 피하려고 표정을 구기며 뒤로 물러섰다.
… 그런데, 이제 뭘 어떻게 해?
레일에 있으면 토마스에 치여 죽고, 레일 밖에 나가면 해피해피에게 찔려죽네. 이대로 열차에 치이거나 광대 인형에의 손톱에 찔려 죽거나 둘 중 하나야?
이 무슨 –
— 쾅!
둘 다 아니었다. 한순간에 벽을 터트리며 나타난 세 번째 존재가 저택 전체를 울릴 정도의 고함을 내질렀기 때문이다.
「돌리돌리! 세 번이나! 세 번이나 불렀는데 오지 않았어! 케빈은 나쁜 아이야?」
“…”
「돌리돌리! 나쁜 아이는 혼나야 해! 에잇!」
의식을 잃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분노한 코끼리 인형의 거대한 앞발이었다.
*
– 극장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분노한 코끼리 인형, 돌리펀트가 파티를 망쳤다는 이유로 케빈에 이어서 토마스와 해피해피를 짓밟는 광경이 재생 중이었다. 그때, 한 가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가인이 입을 열었다.
“대체…. 저 개지랄 속에서 12살 소년이 어떻게 살아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