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07)
306화 – 204호, 미션의 방 – ‘호텔 시네마’ (28)
– 극장
분노에 가득 찬 돌리펀트의 포효와 함께 영화가 중단된 후, 스크린은 다시금 불투명하게 일렁거리며 다음 사람이 들어와야 함을 알렸다.
기회가 남아있는 두 사람, 박승엽과 한가인은 서로를 돌아보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내심 김아리가 크게 활약해서 자신들의 차례가 오지 않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조용한 극장에서 가인은 주변을 살짝 돌아보았다. 은솔과 아리가 모두 공포영화에 붙들렸기에 회의를 주도할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빌런부터 나눠보죠. 술래잡기한다면서 쫓아다니는 광대 인형, 해피해피. 레일을 깔아대며 저택을 돌아다니는 열차, 토마스. 티타임에 미친 코끼리, 돌리펀트. 이렇게 셋이네요.”
엘레나가 답했다.
“보다가 느꼈는데 괴물 셋은 서로 협력적이지 않아요. 토마스는 경로를 방해하면 해피해피도 가차 없이 쳐버리고 돌리펀트는 화가 났다는 이유로 토마스와 해피해피를 모두 부숴버렸죠.”
“내분을 유도하는 게 유용한 대응일 것 같네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세 괴물의 강함도 비교할 필요가 있죠. 돌리펀트가 제일 강하고 그다음이 토마스입니다. 해피해피는 가장 약한 것 같습니다.”
차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시작부터 돌리펀트 쪽으로 가는 게 어떨까? 티타임에 집착하는 것 같던데? 토마스나 해피해피가 끼어들면 ‘티타임을 방해한다’라며 다른 두 괴물을 막아줄지도 모른다.”
가인은 빈틈을 지적했다.
“문제는 우리가 돌리펀트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죠. 2층에 있다고는 하는데, 저택이 비틀리면서 거의 영화에나 나오는 황제의 궁궐 수준으로 거대해지잖아요? 2층도 엄청나게 넓을 겁니다.”
“해피해피랑 토마스가 쫓아올 테니 여유롭게 돌리펀트를 찾아다니는 일도 어렵긴 하지. 아리도 숨 한번 쉬지 못하고 도망만 다니다가 돌리펀트에게 당했으니까.”
곰곰이 생각하던 김상현이 의견을 냈다.
“시작부터 2층에 미리 가 있으면 조금 더 찾기 쉬울 겁니다. 한데…. 돌리펀트 근처가 안전하다는 건 고민해 봐야 합니다. 토마스와 해피해피를 돌리펀트가 견제해주긴 하겠지만, 돌리펀트 자체가 이상한 짓을 할 게 분명합니다.”
가인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토마스와 해피해피는 대략적인 특징이 드러났으나 돌리펀트는 아직 정보가 부족하다. 그놈의 ‘티타임’이 과연 정상적인 티타임일까?
“그렇죠. 돌리펀트도 분명 이상한 짓을 할 겁니다.”
엘레나가 은솔이 자주 쓰던 화이트보드를 가져와서 끄적이기 시작했다.
“우리 인형들 특성 좀 정리해봐요. 해피해피는 술래잡기하는 존재죠? 등 터치가 규칙이라 했으니까 들어가는 쪽에서 해피해피의 등을 치면 뭔가 풀릴 것 같네요.”
“…”
“…”
“토마스는 레일을 깔고 그 위를 달리는 열차죠. 진행을 방해하면 화를 내요. 특히 레일 위에 올라가면 엄청난 분노를 토해내며 – 다들, 말 안 하세요?”
가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엘레나, 제가 적을게요.”
송이가 솔직히 말했다.
“언니의 글씨체가…. 음, 매우 예술적인 것 같아요. 아랍어와 한국어의 절묘한 교류가 있었달까?”
“으엣? 저, 저에게 한글 가르쳐준 선생님은 잘 쓴다고 했었는데?”
차진철은 엘레나에게 한글을 가르쳐준 교사가 분명 남자이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놈은 엘레나가 한글 대신 키릴 문자를 써도 잘 썼다고 했겠지.
가인이 넘겨받은 펜으로 마저 적었다.
“토마스는 누군가 레일 위로 올라가면 매우 화를 내면서 즉시 달려들죠. 이미 지나간 경로라면 후진해서라도 달려오니까 상황에 따라 이 습성을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그 말을 적으려고 했어요.”
“마지막은 돌리펀트인데…. 티타임이라는 외침을 3번 할 때까지 돌리펀트에게 가지 않으면 돌리펀트가 케빈을 죽이러 온다는 것 말고는 모르겠네요.”
모두가 적절한 대응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진철이 김상현 쪽으로 움직여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앞으로 들어가야 하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 형. 누가 먼저 들어갈까요?”
잠시 고민한 가인이 솔직히 입을 열었다.
“네가 먼저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승엽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죠? 아직은 모르는 게 꽤 많은데, 이런 상황에선 행운이 더 나을 것 같아요. 그리고….”
“…”
“솔직히 제가 마지막에 들어가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아서….”
그 심리는 가인도 이해했다. 호텔에서 가장 두려운 상황은 내가 마지막 생존자이기에 내 죽음이 곧 모든 것의 끝인 순간이기 때문이다.
“승엽 군, 지금부터 내 이야기 잘 들으세요.”
“네.”
김상현이 다가와서 다른 동료들과 회의 끝에 찾아낸 대처법을 승엽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가인은 반사적으로 김상현을 제지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이런 복잡한 지식을 승엽이에게 전하는 게 맞나?’
그러나 전달하지 않는 것도 그것대로 이상하다. 그러면 승엽이는 인형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무작정 들어가야 한다는 건가?
아리가 이미 목숨을 바쳐서 얻어낸 상당량의 정보가 있는데?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아예 영화를 보지 말았어야 하는 거야?
… 가인은, 새삼스레 ‘행운’이 얼마나 피곤한 능력인지 깨달았다.
박승엽이 스크린으로 들어가기 직전, 가인이 승엽을 잡았다.
“형?”
“너, 천운하고 태초의 인간 둘 다 있지?”
“네. 아마 둘 다 쓰겠죠?”
“그래야지. 그런데 태초의 인간은 아직도 무슨 능력인지 잘 몰라?”
“쓴 적이 없어서….”
“그래…. 잘 풀리길 빌어.”
가인은 정말로 간절히 빌었다. 승엽 다음은 자신이니까.
— 삐이익!
영화관에 들어선 이래, 대부분 시간을 잠만 자던 페로가 오랜만에 소리를 냈다. 승엽은 그 소리조차 불길하다 느끼며 스크린으로 들어갔다.
*
– 박승엽
“후욱! 후욱!”
진정하자! 진정하자 박승엽!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중학생, Let it go!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조금 늦었다는 말과 함께 박수미, 한유리의 사연은 이미 확정되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잠시 후, 차은표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건 제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
– 나 홀로 집에
“케빈!”
초반 구간은 아리 누나가 진행했던 것과 똑같다. 케빈의 부모는 내게 이래라저래라 한참 떠든 후 출발했는데, 그 전에 나는 한 가지를 물었다.
“엄마!”
“음? 물어볼 것 있니?”
“혹시 집을 잠그실 건가요?”
따지고 보면 이 집 자체가 이상하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잖아? 그냥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될까? 아리 누나도 집을 나가려고 했었는데, 실패했지.
케빈의 엄마는 대답 대신 살짝 웃으며 날 끌어안고 – 아니 이 아줌마야, 대답하라고!
“잠그실 건가요?”
“엄마는~ 케빈이 혹시 실수로 나갈까 봐 그래.”
“절대 나가지 않을 테니까 열어두시면 안 돼요?”
“나가지 않을 건데 왜 열어둬야 해?”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케빈의 엄마는 내가 귀엽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케빈, 항상 하는 말이지만 혼자 밖에 나가는 건 무척 위험하단다. 얼마 전에 TV에서 나왔는데, 육식성 사슴과 감염성 포자 나비가 -”
“여보, 케빈에게 그런 무서운 말 하지 말고 이만 출발합시다.”
그 말과 함께 두 부부는 집을 잠그고 나갔다.
이놈의 세계는 사슴이 사람을 잡아먹고 나비가 이상한 포자를 뿌리고 다니는구나. 이러니 부모가 어디 나갈 때는 집을 안팎으로 잠글 수밖에 없겠지.
이제부턴 바쁘다. 의사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을 순서대로 떠올리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돌리펀트에게 갑시다. 만나기만 하면 돌리펀트가 토마스나 해피해피를 막아줄 겁니다. 문제는 그 분홍 코끼리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점인데 2층에 있는 건 확실하죠. 시작하자마자 2층으로 갑시다.’
‘돌리펀트가 절 죽이진 않을까요?’
‘그럴 수 있죠. 그것까지 승엽 군이 알아냅시다.’
‘…’
바로 달려서 2층으로 이동했다.
돌아다니며 2층의 구조를 외우기 위해 노력했는데, 솔직히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저택이 무지하게 거대해지며 지금은 없던 방이나 장식이 마구 생길 테니까.
‘토마스는 열차입니다. 점프하거나 하늘을 날지 않아요. 또, 레일은 허공에 까는 것이 아닙니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으면, 토마스는 승엽 군이 레일 공사를 방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물론, 날아다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테이블이나 벽걸이 장식장 등의 위치를 확인했다. 방 중앙에 있는 테이블 등을 옮겨서 최대한 ‘가구 위를’ 달려서 이동할 수 있게끔 했다.
나보다도 어린 12살 꼬마의 몸으로 이런 일을 하려니 벌써 지치는 기분이다.
‘수지랑 같이 있으세요. 귀여운 개에겐 미안하지만 승엽군이 살아야죠. 제법 충성스럽더군요. 해피해피를 한번은 저지해줄 수 있습니다.’
“… 수지, 미안한데 내 옆에 있어.”
“멍!”
“날 위해 싸워줄 거지?”
“멍?”
“아니야.”
「케빈! 널 위한 신년맞이 파티를 시작할게!」
그때쯤, 파티 시작을 알리는 외침과 함께 집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이 나를 덮쳤다. 나도 모르게 골든 리트리버를 꼭 끌어안은 채 가구 틈에 몸을 끼워 넣고 버텼다.
*
“이제부터 술래잡기야! 규칙은 등 터치!”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내 뒤에 해피해피가 나타났다.
“이제~ 시작! 케빈, 빨리 도망가는 게 좋지 않겠어? 당장 뛰어!”
“월! 월!”
요란하게 짖는 수지를 제지하며 해피해피에 대해 선생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해피해피는 어떻게든 등을 터치하려고 하죠? 아리 양처럼 마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만, 사실 더 좋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아리 양은 정신이 없어서 떠올리지 못했겠죠.’
뛰는 대신, 벽 쪽으로 움직여 등을 벽 쪽으로 붙인 채 옆으로 걸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해피해피가 눈살을 찌푸렸다.
“… 너, 좀 비겁하게 구는구나?”
“잘한다는 이야기지?”
삽시간에 표정이 일그러진 해피해피의 양손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리 누나는 이렇게 쭉 늘어난 해피해피의 팔 때문에 위치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지. 하지만 등을 벽에 아예 붙여버리면 해피해피의 팔이 늘어나든 말든 상관없다!
‘해피해피가 절 강제로 벽에서 떼어내면 어떡해요?’
‘그게 가능했다면, 아리 양이 정면에서 응시할 때 해피해피가 멈출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달려들어서 힘으로 돌리면 그만인데. 강제로 등을 노출하는 건 술래잡기의 규칙 위반이 아닐까요?’
딱 한 가지 두려운 가능성이 있다면, 해피해피가 내 몸을 붙잡아서 강제로 돌리는 경우였다. 다행히 해피해피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의사 선생님의 예측대로였다.
「돌리돌리! 티타임 시간이야!」
멀리서 돌리펀트의 외침을 들었다. 지금 있는 방 밖으로 나가서 오른쪽인가? 방향은 알았지만, 거리는 제법 먼 것 같다.
벽에 달라붙은 채 옆으로 걸어서 방 밖으로 움직였다. 해피해피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공격을 하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경적이 들려왔다.
「토마스가 출발합니다! 레일을 깔아야 하니 길을 비켜주세요!」
*
– 극장
“오호! 여기까지는 잘 되고 있군요? 해피해피는 이것으로 확실한 대응법이 나왔습니다.”
기뻐하는 상현의 목소리에 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승엽이에게 복잡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싶어서 불안했지만, 알려준 보람이 있다.
이렇게 적절히 대응하며 돌리펀트에게 갈 수만 있다면 적어도 해피해피와 토마스의 위협에선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다음은 대응법을 전혀 세우지 못한 돌리펀트가 문제겠지만….
‘천운과 태초의 인간 둘 다 쓸 수 있는 상태니 어떻게든 되겠지!’
가인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