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08)
307화 – 204호, 미션의 방 – ‘호텔 시네마’ (29)
– 박승엽
등을 벽에 붙인 채 옆으로 이동하며 방을 빠져나와 복도로 움직였다. 그때, 멀리서 토마스의 경적이 들려왔다. 토마스에 대한 대응법이 뭐였지? 가구에 올라가는 거였나?
황급히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자 움직이려는 방향에 테이블 하나가 있었다. 문제는, 지금처럼 벽에 등을 대고 옆으로 걸어가는 느려터진 속도로 가기엔 너무 멀다!
「토마스가 출발합니다! 레일을 깔아야 하니 길을 비켜주세요!」
“으악! 버, 벌써?”
토마스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눈 딱 감고 벽에서 떨어진 채로 테이블을 향해 달렸다. 등 뒤에서 해피해피가 공격하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
“해피해-”
“멍!”
뒤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려와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착한 수지가 목숨 바쳐 벌어준 시간 덕분에 테이블 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 쉬이잉!
숨 한번 돌리기도 전에 토마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 앞을 지나갔다. 과연 내 몸 전체가 바닥에서 떨어지자 토마스는 날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지나쳤다.
“키에엑!”
오히려 뒤에서 날 쫓아오려던 해피해피를 거미 다리로 붙들어서 내던지는 모습을 보자 긴장이 살짝 풀렸다. 토마스의 공격으로 해피해피의 다리가 찢어졌는데, 혹시 저 공격으로 해피해피가 죽은 건 아닐까?
아닐 것 같아. 아리 누나가 들어갔을 때를 떠올려보자. 수지가 해피해피의 다리를 물어뜯은 후 스크린에 다시 나타난 해피해피는 멀쩡한 상태였다.
「돌리돌리! 티타임 시간이야!」
돌리펀트의 두 번째 외침! 시간이 많지 않다. 두 번째 외침은 밖으로 나와서 들었기 때문에 훨씬 크고 명확하게 들렸다. 돌리펀트의 위치를 대략 가늠할 수 있었다.
“이얍!”
테이블에서 도약해서 다음 테이블을 밟았다. 다음 가구까지 거리가 멀었기에 살짝 바닥을 디뎠다가 바로 위의 벽걸이 장으로 움직였고, 이어서 의자와 히터 상단을 연거푸 밟으며 달렸다.
이런 식으로 토마스는 회피할 수 있었으나 등이 외부에 드러난 상태다. 해피해피가 회복해서 날 추격하기 전에 돌리펀트를 찾아야 하는데!
복도를 달리며 방 두 개와 거실 같은 공간 하나를 지나쳤다. 슬슬 돌리펀트가 근처일 텐데 어디지? 분명히 이 근처 어딘가에서 –
— 팅!
흡사 유리잔끼리 부딪칠 때나 날듯한 맑고 청아한 소리를 들었다. 제발 이 장소이길 빌며 나무로 된 거대한 문을 열며 들어섰다.
“돌리돌리!”
“…”
“돌리돌리!”
따, 따라 해야 하나?
“도, 돌리돌리!”
“흠. 대답이 더 늦으면 밟아버릴까 했는데, 케빈은 원래 행동이 느려? 두 번이나 불러야 오는 것도 그렇고!”
거대한 분홍 코끼리의 흉포한 분위기에 온몸이 덜덜 떨린다.
차라리 진짜 코끼리라면 덜하지 않았을까? 진짜 코끼리와 코끼리 인형의 경계에 선 괴물을 보고 있으니 흔히 불쾌한 골짜기라고 하던 느낌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가 갔다
“… 미안해.”
“좋아! 여기 와서 앉아!”
돌리펀트가 머무르는 거대한 응접실 같은 공간은 티타임을 위한 준비가 끝나있었다.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색색으로 빛나는 엄청나게 거대한 찻잔이 테이블에 여럿 올라와 있었고, 돌리펀트는 내가 통째로 들어갈 만한 거대한 찻주전자를 코로 –
“쿡!”
“방금 그거 뭐야? 설마, 내가 코로 찻주전자를 잡고 있어서 비웃은 거야?”
“그럴 리가! 너무 멋있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 중이었어.”
“멋있고 아름다워?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에? 어?”
“찻주전자는 원래 손으로 잡는 거야! 케빈은 그것도 몰라?”
“… 알지. 찻주전자는 손으로 잡아야지.”
“그런데, 난 코끼리 발이니까 잡을 수 없어서 코로 잡았어. 그걸 보고 케빈은 웃었어! 나쁜 아이야!”
으악! 진짜 왜 이러는 거야? 한번 웃었다고 죽이려는 것 아니지?
“아니야! 나는 진짜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찻주전자를 꼭 손으로 잡으라는 법은 없잖아?”
“거짓말! 여기 ‘영국 신사를 위한 티타임 예절’ 책이 있어! 여기 어디에도 코로 주전자를 잡으라는 이야기는 없어! 그래서 난 아주 슬퍼…. 책을 쓴 작가를 전부 주전자에 넣고 끓이고 싶어.”
그따위 책은 또 어디서 난 거야? 티타임 예절을 정리하는 사람들도 코끼리 인형이 티타임에 참여할 줄은 몰랐겠지! 그것 때문에 화가 났어?
“그, 그건 책을 쓴 사람들이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이야. 인간만 티타임에 참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코끼리는 코를 써도 돼.”
“아까 케빈도 찻주전자는 손으로 잡아야 한다며?”
“내가 아까 잘 몰라서 실수했어. 주전자를 잡는 신체 부위는 정해진 게 아니고 자기 몸에서 가장 편한 부위로 잡으면 돼. 코끼리는 코로 잡고, 사람은 손으로 잡는 거야. 그러니까 코끼리는 코로 잡을 때가 아름답고, 사람은 손으로 잡을 때가 아름답지!”
“하지만 티타임 예절은 책에 적힌 대로 따라야 하는걸?”
“책 이리 줘봐!”
나도 모르게 일어서며 외치자 돌리펀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 덩치로 대체 어떻게 읽었나 싶은 자그마한 책자를 코로 집어 주었다.
나는 책을 받자마자 바닥에 굴러다니던 펜을 집어서 한 문장을 추가했다.
‘티타임에 참여한 코끼리는 코로 손을 대신할 수 있다.’
“됐지?”
“됐다! 됐어! 이제 난 코를 써도 돼. 케빈도 코를 쓰지 않을래?”
“… 나는 사람이니까 손을 쓸게.”
저놈의 책은 내가 내용 추가해도 되는 거였어? 모르겠다. 대충 문제없는 셈 치자.
돌리펀트는 코로 찻주전자를 들어 올리더니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코끼리 인형이 정상적인 차를 만들 리가 없다 싶어 불안했는데, 찻잎은 있었는지 평범한 향의 차가 흘러나왔다.
문제는 찻잔의 크기가 작은 욕조만 했고, 차가 그 내부를 가득 채웠다는 점이다. 코끼리 기준으론 좀 부족하다 싶은 양이었지만, 내 기준으론 배가 터지고도 남았다.
“케빈! 이제 차를 마셔.”
그 말과 함께 돌리펀트를 코를 찻잔에 넣고 쭉 들이키더니 입으로 옮겼다. 그 동작을 딱 세 번 반복하자 작은 욕조만 한 크기의 찻잔이 비었다.
물론 나도 최대한 열심히 마셨다. 찻잔이 하도 커서 마시기 위해선 테이블 위로 올라가야 했지만.
“차가 전혀 줄지 않았어. 케빈, 설마 홍차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
“마, 마시고 있어!”
“전혀 줄지 않았는데?”
내가 봐도 찻잔의 차는 여전히 가득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자, 입구 근처에서 해피해피가 날 노려보고 있었다.
확실히 돌리펀트가 있으니 해피해피가 들어오지 못한다. 토마스는 어느샌가 1층으로 내려갔는지 경적이 꽤 먼 장소에서 들렸다.
“마, 마실게!”
한 번 더 이 악물고 마시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개지랄이야. 지금 나는 12세 꼬마라고! 무슨 수를 써도 이 차를 다 마실 수 없어.
어떻게 해야 하지? 못 마시겠다고 버티면 티타임을 망쳤다고 할 텐데? 찻잔이 너무 크다고 할까?
“돌리펀트, 내 찻잔이 -”
“케빈, 나는 이 차를 무척 정성스럽게 끓였어. 케빈이 남긴다면, 매우 화가 날 것 같아.”
이 병신 분홍 코끼리 새끼가 진짜!
… 별수 없다. 지금이 바로 축복의 힘이 필요한 순간이겠지.
천운 사용!
[우주의 기운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덜컹!
다음 순간, 무언가 큰 충돌음과 함께 방이 흔들거렸다. 내 몸 전체가 춤을 췄고, 응접실 전체가 흔들리며 여기저기서 책이나 장식물이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으윽! 이게 무슨 -”
“토오오오마스!”
돌리펀트의 분노가 응접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운전 똑바로 안 해? 또 기둥에 부딪혀서 주변을 시끄럽게 하면 -”
— 콰아앙! 끼이이익! 덜컹!
다시 한번,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큰 충돌음이 울렸다. 테이블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마침내 내 앞에 있던 저주스러운 흉물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아앗! 내 찻잔이! 찻잔이!”
찻잔이 흔들거리며 홍차가 살짝 흐르자 돌리펀트는 즉시 흥분해서 고함질렀다. 흔들리는 찻잔 옆에 있던 나 또한 균형을 잃고 쓰러지며 테이블 밑으로 떨어질 뻔했는데,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몸을 들어 올렸다.
서, 설마 아니지? 티타임을 망쳤다고 돌리펀트가 날 –
“케빈! 괜찮아?”
돌리펀트는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모습보다도 온화한 반응을 보였다. 티타임을 망친 게 내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
“… 괜찮아. 구해줘서 고마워.”
“멍청이 토마스가 티타임을 망치려고 해! 내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홍차를 끓였는데! 케빈, 코 하나로 홍차를 끓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어려울 것 같긴 해.”
사람으로 치면 팔 하나만 쓰는 것과 비슷한가?
“기다리고 있어! 곧 멍청이 토마스를 부숴버리고 올 테니까.”
그 말과 함께 돌리펀트는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응접실 바깥으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이제 뭐 된 거야?”
근데 이제 뭘 해야 하지? 이런 식으로 저택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이 전부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버텨야 하나?
“케빈…. 오래 기다렸어.”
뒤쪽에서 들려오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즉시 돌아서며 찻잔에 등을 바싹 들이댔다.
“너 아직 안 갔냐!”
“케빈이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딜 가? 케빈, 돌리펀트랑 홍차나 마시는 것 보다는 나랑 술래잡기하는 쪽이 재밌지 않겠어?”
“제발 가라고!”
둥그런 찻잔에 찰싹 붙어서 옆으로 움직였다. 해피해피에겐 그 모습이 꽤 우습게 보였는지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케빈은 또 그런 식이네? 등을 숨기고 킹크랩처럼 옆으로 걷기! 그게 재밌어?”
“…”
“아까 말했지? 자꾸 그렇게 굴면, 다음엔 ‘거칠게’ 대해줄 거라고?”
“소, 손을 뻗어도 소용없어!”
“이건 어때?”
쭉 뻗은 해피해피의 손이 단숨에 찻잔을 넘어트렸다. 엄청난 양의 홍차가 흐르며 테이블과 응접실 바닥 전체를 미끈거리게 했고, 나는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미끄러졌다.
“이번엔 바닥에 누운 채 가만히 있을 거야? 그래봐야 -”
정말이지 숨이 탁 막혔다. 내 앞에서 날카로운 손톱을 번뜩이는 해피해피 때문이 아니다.
그 뒤에 돌아온 돌리펀트가 있었기 때문이지. 조금 전, 해피해피는 돌리펀트 보는 앞에서 찻잔을 엎었어.
멍하니 중얼거렸다.
“돌리돌리….”
“뭐?”
*
– 극장
광기 어린 돌리펀트가 포효하며 해피해피를 ㅎ ㅐ ㅍ ㅣ ㅎ ㅐ ㅍ ㅣ 로 만들어서 사방에 장식하는 사이, 호텔 동료들은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천운은 저걸로 끝난 것 같습니다.”
김상현의 말에 한가인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요. 천운의 결과로 해피해피와 토마스가 무력화됐고, 더럽게 많은 홍차도 전부 바닥에 흘렀군요. 단숨에 위험의 절반 이상을 없앤 느낌이죠.”
차진철은 다소 불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봐야 저 분홍 코끼리는 멀쩡한데? 게다가 저놈, 또 홍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가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스크린을 노려보았다.
“대체 이놈의 티타임이 언제 끝나죠? 선생님, 혹시 아십니까?”
잠시 기억을 뒤적이던 김상현이 답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저 코끼리가 가지고 있는 책자 기준대로면 최소 1시간일 겁니다.”
“최소?”
“길게 잡으면 2시간 이상이죠. 애초에 저런 각 잡고 준비한 티타임은 시간 넘치는 부유한 영국 귀족들이나 즐기던 유희 문화입니다.”
“어이쿠! 이제 겨우 20분이나 지난 것 같은데.”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가인 군, 조금 전에 승엽 군이 아주 중요한 것을 발견했군요.”
“‘영국 신사를 위한 티타임 예절’ 말이죠?”
“돌리펀트가 성경처럼 따르는 책의 내용을 우리가 수정할 수 있습니다. 승엽 군이 그 사실을 다시 떠올려야 할 텐데 말입니다.”
*
– 박승엽
“쿨럭!”
토할 것 같아.
“돌리돌리! 뭐야 뭐야? 방금, 내 차를 뱉으려고 한 것 아니지?”
“… 아니야. 내가 원래 기침이 많아.”
“기침? 어머 어머! 케빈, 건강관리를 잘하지 못했구나? 기침엔 이 레몬그라스 차가 또 좋아!”
분홍 코끼리가 대파 비슷하게 생긴 거대한 풀을 거대한 찻주전자에 밀어 넣는 광경을 보는 순간, 결정을 내렸다. 이제는 더 못 버티겠어. 배 터져 죽는 것보다야 뭐라도 하는 게 낫겠지.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에 누르라는 듯 불투명한 창이 떴다.
[태초의 인간, 사용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