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12)
311화 – 204호, 미션의 방 – ‘호텔 시네마’ (33)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4호 – 미션의 방, ‘호텔 시네마’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언제부터였을까? 내 몸의 통제권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그 덕분에 도인호의 얼굴이 다가오자 긴장감으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도인호는 그런 내 모습이 재밌었는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긴장 푸세요. 당신의 이야기는 이미 끝났잖습니까?”
“예?”
생각해보니 그렇네.
‘무서운 이야기’의 진행 과정은 간단하다. 이야기꾼들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내용에 빙의한다.
이후, 그 내용을 우리가 해결하면 이야기꾼이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내용상 개연성을 확인해서 문제없다면 통과다.
그런 진행대로라면, 내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 지금은 내용상 특이한 부분을 작가가 확인하는 과정이니 내가 새삼 이야기로 들어갈 일은 없다.
…
그럼 지금 이 절차의 존재 이유는 뭘까?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도인호가 답했다.
“가인 군 말대로라면, 여러분은 호텔이라는 험악한 장소에서 하루하루 살아남기 바쁘지 않습니까? 호텔 자체에 대한 고민을 여유롭게 하지 못했겠죠. 그러니까…. 제가 여러분이 평소에 간과한 부분을 지적해보려는 겁니다.”
“우리가 간과한 부분이라…. 경청하겠습니다.”
“참, 여기부터는 카메라를 끄죠.”
“네?”
— 핏!
무언가 ‘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어도 내 시야에서는 아무것도 꺼지지 않았다.
… 꺼진 것은 ‘바깥의 스크린’이다.
지금부터의 대화는 동료들은 들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듣고 있으니 당신을 비롯한 호텔 동료들이 기억하는 현실의 모습이 꽤 다르군요?”
“그렇죠. 애초에 끌려온 시간대도 다르니까요. 처음엔 시간대만 다른가? 했는데, 두 요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생각하는 그 세상과 너무 달랐어요.”
“최소한 김아리 양과 김묵성 씨는 가인 군과 다른 세상을 살아왔군요.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가끔 이야기는 해 보셨잖아요?”
“… 조금 다르다고 느낄 때도 있고, 그냥 서로 기억이 틀렸나 싶을 때도 있죠.”
“조금 다르다라…. 정확히 어떤 부분입니까?”
“…”
“유명한 정치인 이름이 다르거나 세상에 대한 상식이 조금씩 달랐죠? 예컨대 송이 양은 집에 레이저 포탑 정도는 있을 만하다 여겼을 것 같네요.”
“… 제가 방금 그런 이야기도 했나요?”
“헛, 추측입니다. 여하튼 여러분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끌려온 것 같군요.”
추측은 무슨 추측!
아까 아리가 도인호 작가의 함정에 빠질뻔했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 도인호는 내가 커피숍에서 꺼낸 적도 없는 송이와의 대화 내용까지 알고 있다.
이 자는 호텔의 NPC들처럼 방 안팎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평행세계?”
“평행세계? 오호라! 그것도 한 가지 시나리오겠죠. 그런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도인호는 말했다.
“호텔 1층은 지구의 하늘에 있다면서요?”
“꼭 지구라는 보장은 없죠.”
“날아서 탈출할 수 있다면서요? 물리적인 이동을 통해 현실에 도착할 수 있다면 지구의 하늘이라 봐야죠.”
“…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호텔 외부에 있는 단 하나의 현실, 정문 바깥의 세상은 누구의 세상입니까?”
그는 내게 말하고 있다.
호텔 동료들 다수는 서로 다른 세상을 기억한다. 어쩌면, 모두가 서로 다른 평행세계에서 끌려왔을지도 모른다.
한데, 호텔 외부엔 ‘단 하나의 현실’이 있는 것 같다. 그 현실은 대체 누구의 현실인가?
말문을 잃은 내게 작가는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보아하니 아리 양이나 묵성 씨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으신 듯하군요. 이미 호텔의 탈출자를 ‘관리국’이라는 조직에서 받아들였다 하지 않았습니까?”
“… 그랬었죠.”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해보시길. 이제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네.”
“조금 전에 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인데, 관리국에서 오신 분들은 호텔에서 신비로운 물건을 얻어 현실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죠?”
“그렇다고 하더군요. 현실에…. 무언가 큰일이 생긴 모양이죠.”
“그 신비로운 물건이 뭔지 아십니까?”
“본인들도 모르더군요. 일종의 예언을 듣고 왔다네요.”
“무슨 물건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찾습니까? 호텔에 사기당하기 딱 좋은 상황 같은데요?”
“사기요?”
“뭔질 모르니 호텔에서 주지 않고 내보내도 모르겠군요. 혹은, 이미 줬어도 받은 물건이 그 물건인지 모를 수도 있고.”
“그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호텔이 보상과 관련한 문제로 우릴 속이진 않을 것 같습니다.”
“호텔이 속인다? 아니죠. 호텔이 관리국 분들에게 세상을 구할 물건을 주겠다고 약속이나 했나요? 그냥 자기들끼리 밖에서 예언인지 뭔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억지로 들어온 상태 아닙니까?”
무어라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사실, 작가 말대로 호텔은 관리국에 세상을 구할 물건을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으니까.
“이 문제는 가인 군도 잘 모르시는군요. 그러면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갑시다.”
“네.”
“듣자 하니, 여러분 모두가 2층이 끝날 때 탈출할 수 있다면서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가인 군은 그 상황에서 남으실 겁니까?”
“당연히…. 나가겠죠?”
“그게 정상이죠. 호텔을 돌파하며 대단한 보물을 얻을 수 있다고 한들, 목숨을 건 시련을 끝없이 마주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리스크입니다. 게다가 호텔에서 패배할 경우 지옥이나 다름없는 장소에 갇힌다면서요?”
“한빙지옥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반복되는 것 같더군요.”
“듣기만 해도 끔찍하군요. 심지어 가인 군은 이미 대단한 보물을 얻었습니다. 새삼스레 더 많은 욕심을 낼 필요가 없어요. 마도서? 보아하니 활용하기에 따라선 영생불사도 꿈이 아니군요.”
“…”
“꼭 다른 사람의 몸을 빼앗는 사악한 생각만 떠올릴 필요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이런 말은 한 적 없는데? 이젠 숨기지도 않는구나!
“관리국에 취업해서 본인의 능력을 알린다면, 관리국에서 당신을 위해 복제인간을 끝없이 만들어줄 것 같지 않습니까?”
무어라 할 말이 없어서 입을 꾹 닫았다.
“이미 영생불사에 부귀영화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는 가인 군은 당연히 나갈 것이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군요. 대단한 힘을 얻은 분은 이미 얻었으니까 나갈 것이고, 별다른 힘을 얻지 못했다면 더 진행할 자신이 없어서 나가겠네요.”
맞는 말이다. 강한 사람은 이미 많이 얻었으니 나갈 것이고, 약한 사람은 더 나아갈 자신이 없어서 나가겠지.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호텔에 남아야 할 윤리적 의무감의 붕괴죠.”
“윤리적 의무감의 붕괴?”
“지금 여러분은 이미 탈출 수단을 하나 얻으셨죠?”
“방호복이라면, 그렇습니다.”
“얻었는데도 몰래 탈출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이유는 윤리적 의무감 때문이겠죠? 나 혼자서 이런 중요한 도구를 가지고 도망가면, 다른 사람들은 다 죽으라는 말일 테니.”
“…”
“훌륭합니다! 그 선량한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한데, 이 모든 논리는 방호복이 1인용 탈출 수단이기에 성립하는 이야기입니다. 2층 종료 후엔 그런 문제 없이 여러분 전원이 나갈 수 있죠.”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상황이 달라지겠군요.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남는 사람들은 그냥 본인이 남고 싶어서 남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방호복의 문제에선, 예컨대 가인 씨가 방호복을 가지고 혼자 도망가서 남은 사람이 전부 죽으면 이 비극엔 가인 씨 책임이 있을 수 있죠.”
“…”
“2층 후의 탈출은 전혀 다릅니다. 호텔에 남은 것이 그들의 선택이라면, 설령 그들끼리 진행하다 죽는다 해도 나간 사람 책임이 아니죠.”
“그렇겠네요.”
“개인적으로 남을 이유도 없고, 동료를 위해 남을 이유도 없군요. 그럼 나갈 사람은 다 나가고 끽해야 두 명 혹은 세 명 남겠습니다.”
“아마 관리국 사람들은 남을 것 같네요.”
“그렇다 칩시다. 그렇게 나갈 사람 다 나가고 나면 3층은 대체 어떻게 진행합니까? 이런 문제가 과거에도 있었겠죠? 진행할 사람이 없을 텐데 호텔은 3층을 왜 만든 겁니까?”
잠시 커피숍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당장 다음 방을 생각하기도 바빴기에 2층 이후의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 그래서인지 이런 대화 자체가 제법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도인호가 던진 세 가지 질문,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호텔 동료들은 모두 다른 현실에서 왔다. 한데, 호텔 밖의 세상은 하나다. 탈출 후에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둘째, 아리와 할아버지는 세상을 구해낼 힘을 얻기 위해 호텔에 들어왔다. 한데, 그 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호텔에 있긴 할까?
셋째, 2층이 종료하면 모두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 분명, 우리 중 대다수는 탈출을 택하겠지. 그러면 3층은 어떻게 진행할 것이며 호텔은 3층을 왜 만들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있나 궁금해서 고개를 들어보았다. 다들 도인호 작가가 던진 의문에 대해 고심 중인 것 같았다.
“…”
“…”
“…”
“그…. 가인 군! 제 생각을 말해봐도 될까요?”
박수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청하겠습니다.”
“뒤쪽 이야기는 잘 모르겠고, 첫 번째 질문의 답은 왠지 알 것 같아서요.”
“첫 번째 질문이라면, 호텔을 탈출했을 때 어떤 현실로 가나 문제인가요?”
“현실이 어떻다 하는 복잡한 이야기는 잘 모르겠네요. 전 평행세계니, 뭐니 하는 건 잘 모른답니다. 그보다, 가인 군에게 중요한 문제는 명확하지 않을까요?”
“제게 중요한 문제?”
“탈출 후에 도착할 세상에 가인 군의 가족이 있을까? 이게 제일 중요하죠.”
숨이 턱 멎었다.
만약 온갖 고생을 하며 현실로 돌아갔는데, 도착한 장소가 내가 아는 현실과 전혀 다르다면? 무서운 괴물이 들끓는 정도를 넘어서 내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다면?
그런 내 표정을 안쓰럽게 보던 박수미는 안심시키듯 말했다.
“그런 일은 없으리라 확신해요.”
“… 무슨 말씀이신가요?”
“분명, 그런 비극적인 결말은 아니리라 믿어요. 가인 군이 시련을 이겨내기만 한다면, 당신이 원하는 결말을 볼 수 있을 겁니다.”
“…”
“그렇게 믿어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보아하니 박수미도 논리적 근거로 하는 말 같지 않았다.
다음으로 차은표가 입을 열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장난감을 좋아해서 그런가? 말해놓고 보니 별 상관은 없네요. 두 번째 질문의 답, 왠지 알 것 같아요.”
“두 번째라면…. 관리국이 찾는 세상을 구할 보물 말씀이시군요.”
“그냥 막연한 생각인데요, 그 보물? 힘? 그게 꼭 하나일 필요는 없겠죠?”
“그야…. 애초에 관리국에서도 제대로 아는 게 없었으니까요.”
“두 개 아닐까요?”
“두 개?”
“하나는 이미 주어졌을지도 모르죠.”
이쯤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작가가 던진 의문과 이에 대한 이야기꾼들의 답변이 지나치게 구체적이다!
설마? 아까부터 진행된 질문과 답변, 그 자체가 보상 일부라고? 호텔의 비밀을 알려주는 이야기였어?
“조금, 조금 더 정확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모래시계, 너무 맥락 없는 물건 아닌가요? 숨겨진 장소도 너무 황당하고…. 어쩌면, 호텔에서 ‘여러분을 위해’ 갑자기 끼워 넣은 물건일지도 모르죠.”
“하나는 모래시계다? 또 하나는요?”
“세상을 구할 힘이 담긴 엄청난 보물이라면 역시! 가장 어려운 저주의 방에서 주어지지 않을까요?”
“206호의 유산?”
“전부 제 생각입니다.”
— 쿠궁!
진동을 느꼈다. 물리적인 흔들림이 아니라 공간 자체의 뒤틀림. 이미 호텔에서 여러 번 경험한 ‘방이 소멸할 때’ 나타나는 현상!
황급히 고개를 돌려서 한유리를 바라보았다.
이제 마지막 질문, 2층이 끝나고 대부분이 나가고 나면 3층은 어떻게 진행할 것이며, 3층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의 문제가 남았다!
“마지막! 마지막이요!”
한유리는 어딘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왜 이리 급하셔요? 마치 모든 게 곧 끝날 것처럼….”
“빨리 좀요!”
“몇 년 전부터 가끔 꿈을 꿨어요. 과거의 저 자신에 대한 꿈인데, 그때의 전 너무나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끝없이 추구해왔죠.”
구미호의 인간화를 말하는 건가? 아니, 이 맥락에선 일종의 비유겠지?
“정말이지…. 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어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 해도. 정작 지금은 그 꿈이 뭔지도 모르겠지만요.”
“자세히! 자세히 좀 말해주세요!”
“그러니까 -”
— 쿠구궁!
공간이 또다시 흔들리는 순간, 옆에서 킥킥거리던 도인호가 탁자를 탁하고 쳤다.
“하하하! 좋습니다. 마지막이 특히 재밌었습니다. 그럼, 오늘의 만남은 이쯤 합시다.”
“야! 아직 마지막 답변 제대로 안 해줬잖아!”
무너지는 공간 속에서 – 도인호는 씩 웃었다.
“제가 보기엔 다 드렸습니다. 질문과 답변을 충분히 곱씹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