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14)
313화 – 완벽한 아이 (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본격적으로 미로의 부활, 거울의 방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탁자를 치며 주의를 끌었다.
“잠시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시네마의 보상 일부인 것 같은데, 공포영화가 끝날 때 특이한 정보를 들었거든요?”
공포영화가 끝나갈 때 도인호 작가와 이야기꾼들에게 들은 이야기 중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역시 동료들에게도 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두 번째 이야기, 관리국이 바라던 현실을 구할 수 있는 도구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역시나 할아버지와 아리가 민감히 반응했다.
“하나는 모래시계라고? 그게?”
“그렇다던데?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애초에 그놈의 ‘현실의 문제’가 뭘 말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리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모두에게 답했다.
“언젠가 대충은 말해줄 생각이었지만, 기회가 되었으니 살짝 이야기해줄게. 어차피 여기 사람들은 밖에 나가도 평범하게 살 확률은 없으니까.”
단호하게 ‘앞으로도 평범하게 살 확률은 없다’라는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특정 연도 12월 31일이 되면 갑자기 하늘에서 이상한 빛이 내려와.”
“이상한 빛?”
“그리고 세상이 위기에 빠지지.”
“… 왜?”
“몰라. 그걸 알아내는 것 자체도 하나의 목표야.”
순간 다들 황당해서 아리를 쳐다보았다.
그냥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더니 세상이 위기에 빠진다고? 너무 맥락이 없는데? 저주의 방보다 더 심하잖아?
누나가 말까지 더듬으며 지적했다.
“아, 아직은 세상 망한 것 아니지? 그러니까 너희가 호텔에 들어온 거잖아?”
“뭐…. 그렇지.”
“그렇다면 어떻게든 버텨냈다는 소리고, 버텼으면 무언가 알아낼 만하지 않아?”
아리는 한참 동안 무언가 말을 고르더니 조심스레 답변했다.
“버티는 과정에서 모두가 기억을 잃어. 이 정도로 말해둘게. 여하튼 우리가 아는 건 그게 다야. 그 문제에서 모래시계가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걸까?”
할아버지가 끼어들었다.
“가인이 말대로면 모래시계 말고도 하나 더 있다 하지 않느냐? 206호의 유산? 그게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이 주제는 더 말해봐야 진전이 없겠다 싶어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세 번째 이야기, 3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자 동료들은 더욱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진철 형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구미호가 네게 무슨 장난을 친 건 아니지?”
“그건 아닐걸요?”
“하아암! 거참 뜬구름 잡는 소리네.”
나름대로 구체적인 정보가 담겨있던 두 번째 이야기와 달리, 세 번째 이야기는 추상적인 이야기로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동료들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가인 군의 이야기들이 흥미롭긴 한데 바깥세상의 이야기와 3층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는 2층에서 고생 중이지 않습니까? 그리 급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내가 전한 이야기가 당장 급한 주제는 아니니 더 급한 이야기부터 논하길 바라는 듯하다.
그 태도는 나 또한 이해했다. 우리 중 누군가는 당장 2층에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 상황에서 바깥이 어쩌고 3층이 어쩌고 해봐야 머나먼 이야기다.
그때쯤, 호텔에서도 분위기를 환기할 생각인지 내일부터 2일간 파티 타임이라는 알림이 떴다.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느라 굳어졌던 동료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미션의 방인데도 파티타임을 줬네? 날짜가 미묘하게 짧긴 한데….”
진철 형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듯 대답했다.
“누님, 준 게 어딥니까? 저주의 방을 해결할 때만 주는 줄 알았는데, 이런 부분에선 묘하게 재량이 있군요.”
반면, 의사 선생님은 2일이라는 짧은 날짜를 보고 불안함을 느낀 듯하다.
“2일이라니요? 거울의 방은 필시 승엽 군의 태초의 인간을 써야 할 텐데요? 2일 내로 또 쓸 수 있습니까?”
그 말에 아리도 눈살을 찌푸리며 승엽이에게 물었다.
“승엽아, 태초의 인간은 언제 또 쓸 수 있어?”
승엽이는 갑자기 집중하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본인에게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내일 저녁? 모레 아침? 애매하네요. 이게 몇 시간 후에 사용 가능 이런 식이 아니라 게이지가 다 차면 쓸 수 있는 식이라.”
그 말에 좀 놀라서 다시 물어봤다.
“아니, 겨우 하루면 다시 쓸 수 있는 거야? 엄청 강력한데?”
진철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천운은 한번 쓰고 나면 최소 일주일 아니냐? 태초의 인간도 비슷한 느낌일 줄 알았는데.”
이번엔 승엽이가 피식 웃더니 설명했다.
“처음 써보고 알게 된 사실인데, 얼마나 썼느냐에 따라서 이후의 쿨타임이 정해져요.”
“얼마나 썼냐?”
“에…. 얼마나 많은 행운을 썼냐? 정확한 기준은 잘 모르겠네요. 그냥 오래 쓸수록 다음 재사용까지의 쿨타임이 길어진다?”
듣고 있던 은솔 누나가 물었다.
“후불제 같은 개념인가? 요번엔 20분 정도 썼지? 그 정도 쓰면 하루 반나절 정도가 쿨타임이야?”
“사용 시간에 정비례하는 그런 개념은 아니고….”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얼마나 황당한 일을 많이 일으켰냐에 비례하는 모양이네요. 말 그대로 얼마나 ‘비정상적인 행운’을 끌어 썼냐.”
“그 느낌이죠.”
그때, 듣고 있던 의사 선생님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승엽 군, 앞으로 태초의 인간을 쓸 때는 ‘종료 조건’을 명확히 만드세요.”
“예?”
“대가가 후불이라는 이야기는 반대로 말하면 쓰는 동안은 시간제한이 없다는 말이죠?”
“네.”
“종료 조건을 애매하게 만든 채 203호같이 시간상 오래 걸리는 방에서 함부로 쓰면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 한 달 동안 태초의 인간 상태로 있는 다던가?”
“그렇게 오래 쓰면, 다음번 사용까지 필요한 시간이 얼마나 길어지겠습니까?”
“호텔을 탈출할 때까지 다시 쓸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확실히 그 부분은 위험하다. 능력의 특성상 발동 후에 자의로 중단시키기 어렵다는 점이 변수다.
승엽이가 태초의 인간에 대해 혼자 골똘히 고민하는 사이,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새롭게 얻은 티켓과 미로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누나가 한 가지 의문을 던졌다.
“미로의 정신을 회복할 수 있는 장소가 거울의 방인 것까진 알겠는데, 순서가 어떻게 되는 거지? 부활부터 시킨 후에 정신을 회복하는 건 불안하지 않아?”
“그렇죠. 일단 부활은 시켰는데 정신 회복에 실패하면….”
그 경우, 우린 자기 마음대로 날뛰는 정신병자와 같이 호텔의 시련을 진행해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데, 부활 전에 정신을 고치는 건 순서상 좀 이상하지 않을까? 죽은 사람의 병을 고친다?”
누나의 질문에 답한 사람은 송이였다.
“별 상관 없을걸요? 부활과 별개로 몸 자체는 이미 한빙지옥에 있는 상태고, 애초에 거울의 방은 정상적으로 소원을 빌기만 하면 사람을 둘로 쪼개서라도 들어줄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으니까요.”
“그런가?”
“언니, 그런 문제보단 소원을 어떻게 해야 잘 빌 수 있나가 더 중요해요. 기억하시겠지만 거울의 방은 굉장히 까다로운 장소니까요.”
거울의 방은 사람이 내면에 품은 간절한 소원을 들어준다. 이 단순한 조건은 생각보다 매우 까다롭고 위험했다.
대비 없이 들어가면, 인간의 내면이 품고 있는 다채롭고 모순적인 충동들이 아무렇게나 실현되며 대형 사고가 터진다. 미로가 이성을 상실한 것 또한 이 사고의 일종이라는 게 우리의 추측이다.
대비하기도 무척 까다롭다.
한번 들어가 본 송이의 추측에 따르면, 내면의 욕망을 읽어낸다는 점 때문에 아리의 암시처럼 표층 심리를 건드리는 수법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또한 욕망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지 무슨 정신병이 아니므로 누나의 피리나 엘레나의 명경지수는 물론이고 내 상태창도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런 조건들을 다시금 따져본 동료들은 모두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승엽이를 바라보았다.
“역시, 승엽이 네 능력을 써야 할 것 같네.”
“그런가요? 그렇죠?”
이 와중에 승엽이는 꽤 즐거워 보였다. 모두가 본인을 필요로 하는 상황 자체가 기쁜가 보다. 한데, 유일한 거울의 방 경험자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으음….”
“송이 생각은 어때?”
아리가 초조한 표정으로 묻자 송이는 잠시 고민한 후에 답했다.
“잘 모르겠어. 거울의 방에서 한번 탈출했다고 그 방에 대해 다 깨우친 것도 아니고, 태초의 인간에 대해선 더더욱 아는 게 부족하니까. 가인 오빠.”
“음?”
“어차피 이틀 쉬니까, 내일 한번 물어보죠? 어차피 태초의 인간도 내일 밤은 되어야 다시 쓸 수 있다고 하니까.”
현자의 조언이 거울의 방에 관한 질문에 대답해줄까?
과거의 기억에 따르면, 거울의 방을 찾기 전에 그 위치를 물었을 때 조언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치 이런 질문은 아예 받아줄 수 없다는 듯했지.
하지만, 지금은 거울의 방을 찾아낸 상태다. 그러니까 그에 관한 질문 또한 해금되지 않았을까? 내일 해봐야 알 문제다.
“내일 한번 해볼게. 이 질문은 보나 마나 횟수 3개를 전부 소모할 것 같긴 한데…. 하긴 해야지. 아무래도 거울의 방은 여러 번 쓸 것 같으니까.”
이 정도로 오늘의 회의는 끝났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다음 날, 일어서서 105호를 나오자마자 즉시 조언을 썼다. 아니나 다를까, 거울의 방에 관한 질문은 횟수를 전부 소모했다.
[조언 : 3 -> 0]‘미로의 정신 회복, 승엽이가 거울의 방에 들어가서 태초의 인간을 쓰고 소원을 비는 게 좋을까?’
[실패할 경우, 즉시 거울을 깨트리라는 명령어를 반드시 넣어라.]…
뭔가 좀 알아듣기 어려운 충고가 나왔다.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쯤, 아리가 졸린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조언 썼어?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쓰겠다더니.”
내가 받은 답변을 전하자 아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답변이 좀 이상한데? 거울을 깨트린다, 이건 송이가 발견한 거울의 방 탈출법 맞지?”
“맞아.”
“승엽이를 보내라는 것도 아니고, 보내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명령어를 넣어라? 그래서 보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보내지 말라고 할 셈이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라는 건 실패한다는 소리 아니야? 그러면 보내지 말아야지!”
어느새 방에서 나와 아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누나가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성공할 확률도 있고, 실패할 확률도 있는 것 아닐까? 성공할 확률도 있으니까 일단 승엽이를 거울의 방에 보내는 건 OK, 하지만 실패할 확률도 있으니까 그 경우를 위한 대비도 해라.”
“그럴듯한 말이긴 하네요.”
“근데 결국 내 생각이야. 이거 송이랑 승엽이에게 물어보자. 방에 들어가 본 사람과 능력을 써본 사람이 알겠지.”
잠시 후, 승엽이가 부스스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오자마자 아리가 다가가서 물어봤다. 집중해서 듣던 승엽이는 잘 모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제가 태초의 인간을 쓰고 거울의 방에서 소원을 빌어도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요? 거울의 방을 잘 몰라서 이유를 모르겠네요!”
잠시 후, 같은 질문을 들은 송이는 95% 같은 답변을 했다.
“승엽이가 태초의 인간을 쓰고 거울의 방에서 소원을 빌어도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요? 태초의 인간을 잘 몰라서 이유를 모르겠네요!”
아리는 머리를 치고 말았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서서 고민만 하는 건 질색이라 그냥 승엽이를 붙잡았다.
“일단 네가 한번 들어가 보기로 하자. 능력 언제쯤 찰 것 같냐?”
“에…. 오늘 저녁?”
“그래. 형이랑 명령어나 같이 짜자.”
그날 저녁, 승엽이는 모두의 응원 속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