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15)
314화 – 완벽한 아이 (2)
– 박승엽
“열심히 해봐! 화이팅!”
송이 누나의 응원.
“… 고마워.”
어울리지 않게 내 손을 꼭 잡은 아리 누나의 감사.
“내가 말한 명령어 잊지 말고? 거울 깨는 거 무조건 넣어!”
마지막 순간까지도 날 믿지 못하는 듯한 가인 형의 목소리까지. 이렇게 호텔의 형과 누나들이 나만 믿는 경험은 처음이다!
덕분에 거칠게 뛰던 심장이 거울 앞에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송이 누나 말에 따르면, 거울의 방은 105호의 개인 욕실에 있는 거울 두 개를 서로 마주 보게 하고 그 가운데에 서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 말 외에도 거울의 방이 얼마나 위험한 장소인지 열심히 설명해줬는데, 솔직히 의미가 있나 싶다.
어차피 나는 즉시 태초의 인간을 쓸 텐데?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또 다른 나’가 알아서 잘해줘야겠지.
생각하면서도 참 웃기긴 한데, 이런 마인드가 바로 내 용기의 원천이다. 분명 내가 위험한 일을 하는 셈인데, 내가 하는 것 같지 않아.
내 몸을 빌려서 나타날 다른 누군가가 나 대신 힘든 일을 해주는 느낌?
어쩌면, 이런 마음의 편안함 자체가 태초의 인간이 주는 또 다른 효과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가 위험한 일을 겪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위험한 일을 앞둔 상태에서도 그리 두렵지 않았다.
[태초의 인간 : 사용 가능]“태초의 승엽아! 너만 믿을게? 잘 해줘야 해?”
물론 대답해줄 태초의 승엽이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거울 두 개를 마주 보게 한 후, 그사이에 섰다. 가운데에서 거울의 방과 소원에 관한 생각을 떠올렸다.
— 팅!
맑고 청아한 소리와 함께 마취라도 당한 것처럼 시야가 흐릿해졌다.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온 사방이 빛나는 거울로 가득한 장소에서 깨어났다.
「박승엽 참가자,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호텔의 숨겨진 비밀, ‘거울의 방’을 발견하셨습니다!」
이후로도 이런저런 알림이 잔뜩 떴다.
소원을 빌기 위해선 티켓이 필요하나 가장 먼저 찾아낸 사람은 대가 없이 한번 빌 수 있다. 이미 들은 이야기다.
송이 누나가 자신의 기회를 포기했기에 그 기회가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서서히 주변의 거울에서 흐릿한 이미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더 시간 끌면 위험하다!
[태초의 인간, 사용하시겠습니까?]…
…
…
또 다른 내가 깨어남을 느낀다.
*
– 박승엽(태초의 인간)
반짝이는 돌로 가득한 공간에서 정신을 차렸다. 너무나, 너무나 신기해서 팔을 뻗어서 사방의 돌을 매만졌다. 이건 대체 –
그 순간, 계시가 내려왔다.
「거울의 방에서 아리의 어머니인 미로의 정신을 회복해달라는 소원을 빌어라.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즉시 손에 상의를 감고 주먹으로 내리쳐서 거울을 깨트려라. 소원을 비는 데 성공하거나, 거울을 깨트리면 태초의 인간은 종료한다.」
… 길다.
긴 데다가 어려운 단어가 많다. 다행히 내가 모르는 단어의 뜻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거울의 방이란 지금 내가 있는 장소다. 사방에 가득한 반짝이는 돌이 곧 거울이다.
아리와 그 어머니라는 미로의 대략적인 외형 또한 떠올랐다.
태초의 인간이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힘을 말한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게 무얼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표현으로 미루어볼 때 계시를 내린 존재 또한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게 아닐까?
소원을 빌라는 말 또한 좀 헷갈렸다. ‘어떻게’ 빌라는 걸까?
‘빌다’라는 개념에 대해 고민하자 또 단어의 의미가 머리에 스며들어왔다. 보통, 비는 행위는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이루어달라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무릎을 꿇고 말하면 되는 건가? 에헴! 미로의 정신을 회복해주세요!”
거울이 서서히 일렁이기 시작했다.
한데, 거울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상은 아리와 미로가 아닌 것 같았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거울이 잘 이해하지 못한 걸까? 더 크게 외쳐야 하나?
“미로의! 정신을! 회복해! 주세요!”
거울은 내 목소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아무 상관 없는 것 같았다.
마침내 거울이 보여주는 상이 그 형상을 명확히 알 수 있을 만큼 또렷해졌다. 그것은 아리도 미로도 아니었다.
저것은 ‘나’다.
사방에서 빛나는 수많은 거울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박승엽의 가능성이 나타났다.
어딘가의 나는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지도자가 되어있었다.
어딘가의 나는 가인 형에게 생각 좀 하면서 행동하라고 훈계 중이었다.
어딘가의 나는 진철 형에게 겨우 이런 괴물도 이기지 못하냐고 놀렸다.
어딘가의 나는 정체를 숨긴 신비한 고수가 되어 ‘리링가’라는 소녀에게 고백받고 있었다.
어딘가의 나는 전 세계에서 흥행 중인 최고의 게임에서 살아있는 전설, GOAT가 되어 –
“대체 이게 뭐야?”
이게 다 뭐야? 진짜 모르겠는데?
혼란에 빠져서 거울을 만지자 거울이 보여준 가능성의 대략적인 의미는 자연스레 알았다. 아마 거울이 알려준 것 같긴 한데, 그 대략적인 의미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가인 형이 누구야? 진철 형은 또 누군데? 리링가라는 소녀는 누구길래 내게 고백 중이지?
전 세계에서 흥행 중인 게임의 살아있는 전설은 또 무슨 개소리고 그걸 잘하면 왜 사람이 염소가 되는 건데?
머리가 띵해질 때쯤, 계시가 내 앞에 다시금 나타났다.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즉시 손에 상의를 감고 주먹으로 내리쳐서 거울을 깨트려라.」
“…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건 바로 지금을 말하는 것 맞겠지?”
상의를 벗어서 주먹에 돌돌 감은 후 거울을 연거푸 내리쳤다.
— 쨍그랑!
*
– 박승엽
정신 차렸을 때, 나는 욕실로 돌아와 있었다. 동시에 태초의 인간으로서의 경험이 머리에 주입되었다.
“으악!”
대체 뭐야? 거, 거울의 방 같은 신비로운 장소에 들어가서 기껏 떠올린다는 ‘진실한 소망’이 겨우 저런 거야? 실화 맞음?
게, 게다가 리링가노르가 고백하는 망상은 또 뭔데!
그걸 이루어달라고 했으면 어떻게 이루어주는 거지? 혹시 202호에서처럼 초능력을 가진 리링가노르가 나만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 나타난다던가?
…
헛! 크, 큰일 날뻔했다.
나만 사랑해주는 예쁜 초능력 미소녀라는 개념을 떠올리자마자 내 손이 저절로 거울을 움직여서 다시 거울의 방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어. 정신 차리자. 이, 이건 진짜 좀 아닌 것 같아.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이렇게 된 거죠.”
안타깝게도 승엽이는 실패했다. 밖으로 나온 승엽이의 말에 따르면, 거울은 승엽이가 입으로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위대한 박승엽’의 모습을 비추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송이가 어딘가 알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 생각해보면, 거울의 방은 원래 소원의 내용을 말할 필요가 없어요. 마음속의 진실한 소망을 찾아내는 장소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실패한 원인은 명확하네요.”
나도 깨달았다.
“태초의 인간을 일종의 ‘외장 인격’이라 치면, 거울의 방은 그걸 아예 무시하고 진짜 승엽이의 욕망을 보는 모양인데?”
승엽이가 실패한 원인을 깨닫자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단순히 시도를 여러 번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자 우울함을 걷어내고 싶었는지 진철 형이 승엽이에게 농을 걸었다.
“그나저나 승엽아!”
“네?”
“‘위대한 박승엽’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땠는데?”
“… 도, 돈을 엄청 많이 벌었어요.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됐더라고요.”
“돈? 야 인마, 중학생이 벌써 돈이야?”
“아하하….”
의사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그게 뭐 이상합니까? 저도 어릴 때부터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한데 승엽 군, 돈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우리라면 탈출만 한다면 적어도 돈 걱정은 안 하고 살 겁니다.”
할아버지도 웃으며 끼어들었다.
“너희가 관리국에 들어온다면, 돈 걱정은 평생 할 일 없다고 내가 보장해주마. 다만 이 경우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긴 어렵겠지.”
“며, 명심할게요.”
분위기가 조금 풀어질 때쯤, 은솔 누나가 가볍게 불평했다.
“태초의 인간으로도 원하는 소원을 비는 건 불가능한 모양인데? 능력을 무시하고 ‘박승엽’의 진짜 소원을 비추잖아!”
“그렇네요.”
“가인이 네 조언도 좀 아쉽네. 실패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면, 100% 실패인데 그냥 들여보내지 말라고 할 것이지.”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울의 방의 원리를 알고 있을 올빼미는 태초의 인간이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겠지.
그런데도 굳이 대처법을 알려주며 승엽이를 한번 넣어보라고 조언한 까닭은? 알 것 같다.
“승엽이의 실패와 별개로 우리는 거울의 방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죠. 태초의 인간에 대해서도 의외의 특징을 하나 깨우쳤고.”
“의외의 특징?”
“송이 말로는 거울의 방의 유혹은 엄청나다면서요?”
송이가 긍정했다.
“저도 팔찌의 힘이 아니면 정신 차리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태초의 인간은 코털 하나 까딱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거울을 깨트린 것 같은데?”
승엽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거울의 방의 유혹을 ‘이해하기 힘든 개소리’로 생각했어요.”
“모든 유혹을 무시하고 명령어, 본인은 ‘계시’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지령을 절대적으로 따른다. 이 자체를 여러 가지로 응용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가인 군의 통찰은 언제나 뛰어나군요. 일리 있습니다. 한데, 현시점의 문제는 결국 미로 양의 회복 아니겠습니까? 태초의 인간조차 무용지물이라면 대체 무슨 수로 소원을 빈단 말입니까?”
“…”
“…”
좌중이 침묵했다. 그 누구도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때, 어딘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아리가 중얼거렸다.
“알 것 같아.”
모두의 시선이 아리에게 쏠리자 그녀는 평소와 달리 생각의 흐름대로 아무렇게나 말하는 느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거울의 방을 만들어낸 호텔의 관점에서 생각해봤어.”
“호텔의…. 관점?”
“인간 내면의 진실한 욕망을 읽어낸다. 이 원리로 표층 심리를 조작하는 내 암시 등을 무력화하지. ‘욕망’은 정신병이 아니니 각종 정신 공격을 방어하는 능력도 통하지 않고, 태초의 인간 같이 인격을 새로 만드는 수준의 능력조차 무시하고 진짜 인격의 욕망을 읽어.”
“참, 어지간히 까다롭네.”
“지나치게 까다롭지. 이건, 말하자면 ‘치팅 방지’ 조치야.”
“치팅 방지?”
“호텔이 거울의 방을 설계하면서 했던 생각이 뭘까? 복잡한 조건을 만든 후, 이 조건을 어떻게든 우회할 수단을 연구하라는 의도일까?”
서서히, 아리가 하려는 말을 알 것 같았다.
“우린 그렇게 생각했지. 그렇게 믿고 어떻게든 거울의 방의 위험성을 우회할 다채로운 정신 조작 수단을 연구했어. 그런데, 태초의 인간까지 실패하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드네.”
“정신 조작으로 거울의 방의 위험을 피하려는 접근 자체가 틀렸다? 그냥 정공법이 답이다?”
“맞아. 거울의 방은 초자연적인 수단으로 위험을 피해 보라고 만든 장소가 아니야. 그냥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간절한 사람이 들어가라고 만든 장소지.”
거기까지 말한 후, 아리가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승엽이를 바라보았다.
“승엽아, 태초의 인간이 실패한 원인이 뭔지 알지?”
“누, 누나?”
“거울의 방은 태초의 인간을 무시하고 그 내부의 ‘진짜 박승엽’의 욕망을 꿰뚫어 볼 수 있어. 그러니까…. 승엽이 네가, 진심으로 미로의 회복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지.”
“… 죄송해요.”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넌 미로를 본 적도 없잖아? 본 적도 없는 사람의 회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야. 너에게만 불가능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가능해.”
이 자리에서 단 한 명을 제외한 그 누구도 거울의 방에서 미로의 회복을 소망할 수 없다. 미로의 회복은 아리를 제외한 사람에게는 진실한 소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일을 네게 시켰으니 내가 사과해야겠지. 미안해.”
이 일은, 처음부터 단 한 명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네. 소원은 본디 바라는 사람이 직접 빌어야겠지. 이걸 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려 했을까? 마치 저주의 방을 공략하듯 거울의 방 또한 공략하려 한 것 자체가 실수였어. 다음번엔 내가 들어갈게.”
그 말과 함께 아리는 모두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2층으로 향했다. 설원에서 마음이라도 정리할 생각인 듯했다.
침묵 속에서 송이가 중얼거렸다.
“그니까…. 거울의 방은 아주! 엄청! 매우! 간절한 소원이 있는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 건가요? 그 간절함 자체가 마음속의 잡념을 전부 지울 수 있을 만큼?”
할아버지가 한숨 쉬었다.
“송이 네가 모르면 누가 알겠냐. 이것 또한 새로운 해석인 셈이지. 이 해석은 맞았으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