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17)
316화 – 미로 (1)
– 김아리
시야가 흐릿해졌다. 아주 오랜만에 흘리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알고 있었어. 짐작하고 있었지.
내가 가진 미로에 대한 비이성적인 집착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닐지도 몰라. 이런 생각은 수도 없이 했어.
난 관리국 요원이다.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불가해한 존재와 힘을 수없이 접하면서 그런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
하지만…. ‘그럴지도 모른다’와 ‘그렇다’는 꽤 달랐다.
— 우우웅!
기이한 음색과 함께 사방의 거울이 다시 다른 상을 띄우기 시작했다. 조금 전, 미로의 소원을 본 내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겠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아까 전에 가인이와 했던 대화를 다시금 떠올렸다.
사랑의 시작은 무엇인가? 유전자다.
가족 간에 돕고 아끼는 행동이나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정을 강조하는 사회 문화적 압력 등은 모두 이미 만들어진 사랑을 지속하는 힘에 불과하다.
그렇다. 사랑의 시작은 원래 프로그램이야. 그러므로 소원이 만들어낸 사랑과 유전자가 만들어낸 사랑은 크게 다르지 않아.
그렇게 믿었다. 믿기로 했다.
다행스러운 건 미로에 대한 내 기억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겠지. 그녀는 좋은 사람도 아니었고, 솔직히 좋은 어머니도 아니었지만 –
분명 날 사랑하는 존재였으니까.
미로는 최후의 순간에조차 탈출 수단을 내게 주며 대신 탈출시켰다.
다시금, 흔들리던 거울의 상이 사그라들며 단 하나의 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 알림이 떴다.
「소원을 비시겠습니까? ‘네’를 누르시면 당신의 소원은 이루어집니다.」
손이 허공의 알람을 터치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쉽게 말하자면 -”
“하아암!”
“하품하지 마!”
“야, 지금 새벽 4시야….”
할아버지가 ‘개인 알림’을 죽어라 띄워서 견디지 못하고 일어났다. 밖에 나왔더니 할아버지는 하품하면서 도로 들어갔고, 아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미로의 정신을 돌리는 소원을 비는 데 성공했다는 거지?”
“맞아.”
“잘됐네. 그런데 굳이 나만 깨운 이유가 뭐야?”
미로와 관련한 문제는 중요한 일이니까 깨운 것 자체는 그러려니 한다. 의아한 부분은 ‘나만’ 불러냈다는 점이다.
“그게…. 처음 생각과 좀 다르게 진행됐거든.”
“이번엔 집중해서 들어볼 테니 다시 말해줘.”
“그래. 문제의 시작은 미로가 빌었던 ‘두 번째 소원’에 있어.”
“두 번째 소원? 첫 번째 소원은 널 만들어낸 소원이라고 했지?”
“맞아. 문제는 내가 태어나던 날 거울의 방에서 미로가 빈 소원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는 거야.”
“흐으음…. 첫 발견자의 무료 소원과 티켓을 사용한 소원을 연달아 빈 건가? 그보다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거울의 방이 알려줬어?”
“알려줬어. 연달아 빈 게 맞아.”
“티켓은 어떻게? 참, 1층을 통과했으니 티켓이야 있었겠네. 그걸 미로가 얻었던 건가?”
“… 미로가 얻었을 수도 있고, 빼앗았을 수도 있지.”
잠시 침묵이 스쳐 간 후,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외부에선 그 사실을 몰랐나 보네. 하기야 넌 막 태어났으니 아무것도 몰랐을 테고, 소원을 빈 당사자는 유아 퇴행했으니 알 길이 없었겠지. 좋아, 그 두 번째 소원이 왜 문제라는 거야?”
“그 소원 때문에 미로가 지성을 잃었어.”
이건, 예전에 송이가 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호텔은 인간의 지성을 대가로 받지 않으므로 지성의 상실은 그 자체가 소원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이전에도 나왔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이상한데? 우리 한빙지옥에서 미로의 악몽을 끝낼 때 성인 미로를 만났었지?”
“그랬지.”
“그때 미로가 거울의 방에 관해 설명하면서 ‘나는 그곳에서 많은 목적을 이루고자 했지만,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었다.’라고 했거든.”
아리는 대답 대신 잠시 입을 반쯤 벌렸다.
“왜 그래?”
“아니, 그게 언제 일인데 문장까지 기억하는 거야?”
“… 워낙 임팩트있는 기억이었으니까. 하여튼 그 말을 곱씹어봐. 아무리 봐도 지성 상실이 본인의 의도라는 말투는 아니지 않아?”
“맞아. 미로의 의도는 아니었지. 이건 관점의 문제야.”
“관점의 문제?”
“미로의 관점에선 대형 사고가 터진 거고, 거울의 방의 관점에선 소원을 이뤄준 거야. 두 번째 소원은….”
거기까지 말하던 아리는 잠시 표현을 고르는 듯했다.
“내 약점을 해결하고 싶다?”
“미로의 약점?”
“더 강한 힘을 얻고 싶다?”
“야! 소원이 대체 뭔데?”
“나도 딱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고 싶은데 어렵네. 알다시피 거울의 방은 입 밖으로 꺼낸 말을 들어주는 장소가 아니라서. 미로 본인 입으로는 ‘나 자신의 약점을 해결해달라’고 했어.”
“하지만 실제로 바란 것은 달랐다?”
“달랐다기보다 다양한 것을 동시에 바랬다가 맞겠네. 상황을 다시 봐. 미로가 거울의 방에 들어갈 당시의 파티는 관계가 파탄 상태였잖아?”
“그랬지.”
“미로는 그 관계 파탄에 본인의 문제도 조금 있다고 생각했어.”
“… ‘조금’?”
“그 시점의 미로는 이미 더 진행하긴 어려우니 어떻게든 1인용 탈출 수단을 확보해서 호텔을 나간 후에 다시 들어가자고 생각한 것 같아.”
“탈출하고도 다시 들어가겠다니….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네.”
“문제는 이거지. 파티를 터트리는 원인에 미로 본인의 문제도 있다면, 다시 들어가도 또 본인 문제로 파티가 터질 수 있어.”
“그래서 본인의 문제 자체를 고치려 했다? 소원을 빈 이유는 이해 가는데, 그게 지성 상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모르겠는데.”
갑자기 아리가 헛웃음을 지었다.
“가인이 넌 심해의 호텔파티가 박살이 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 네 어머니의…. 독선적인 면이 크게 작용했지. 사람을 세뇌해서 통제하려 들었으니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합리적인 대화로 소통하고, 서로 간 관계 자체를 개선한다? 이런 게 정석이겠지?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지금 우리처럼.”
“다른 방법도 있지.”
“뭐?”
“손가락 한번 튕겨서 다른 동료를 전부 제압할 수 있다면, 그 상황에서 미로에게 목숨 걸고 반항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
“미로는 본인의 가장 큰 문제는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축복’이라고 생각했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리더십이라는게 꼭 소통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인류 역사 속의 유명한 군주들이나 현대의 독재자들이 선호하는 방식은 압도적인 힘을 통한 통제다.
슬슬 그날 생긴 일의 전모가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거울의 방은 참가자의 마음에 깃든 수많은 충동을 동시에 인식하는 장소다. 심해의 호텔에서 파탄이 난 자신의 파티를 돌아보며 미로는 생각했겠지.
원인은 자신에게도 있으므로 탈출 후 다시 돌아오더라도 의미가 없다. 내 문제는 무엇일까?
내 축복, ‘정의’는 그 위력은 실로 막강하나 조건이 많고 까다로워. 축복에 약점이 많으니 복수의 유산을 얻었는데도 내 힘에 빈틈이 있다.
축복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축복의 조건을 무시하고 정의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내 의지대로 휘두를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내게 대항할 수 없으리라.
“이런 흐름이었을까?”
“… 아마도.”
“결국, 우린 아리 네 엄마에 대해 반대로 알고 있었던 셈이네. 지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정의를 마음대로 휘두른 게 아니었어. 정의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어서 지성을 상실한 거지.”
“결과적으로 지성을 잃을 줄은 몰랐을 거야. 어렴풋이 축복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위해선 유아 퇴행이 필요했던 셈이지.”
미로에 관한 가장 큰 의문, 왜 지성을 상실했는가의 답을 얻었다. 미로는 자신의 약점이 사라지길 바랬고, 그 약점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축복에 있다 여겼지.
거울의 방은 미로를 마음대로 축복을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줬다.
“이제 미로의 지성 상실이 왜 본인이 빈 소원의 결과물인지 알았을 거야.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겼어. 나도 소원을 빌기 전엔 몰랐는데, 거울의 방에는 한 가지 제약이 있었거든.”
“제약?”
“소원으로 다른 사람의 소원을 바꿀 수는 없어.”
“아!”
“그래서 미로의 정신을 ‘성인 상태로’ 돌리는 건 무리였지.”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설마 어린애 상태로 살릴 생각은 아니지? 물론 지금의 미로는 되살려도 정의를 휘두를 수는 없겠지만 -”
“좀 들어봐. ‘성인 상태로’ 돌리는 건 무리라고. 호텔이 아는 미로의 형태는 총 세 가지잖아.”
하나는 재앙 덩어리나 다름없는 유아 퇴행 미로다. 다른 하나는 만만치 않게 위험천만한 성인 미로다.
마지막 하나는….
“설마? 한빙지옥에 있던 중학생 미로?”
“그거지. 그 자아를 되살리는 건 문제 없었어. 아마도 거울의 방은 개별 자아를 별개의 존재처럼 인식할지도…. 소원을 빈 미로와 별개의 존재를 미로의 몸에 깃들게 한다는 판정일지도 모르지.”
내 입이 반쯤 벌어질 때쯤, 아리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미로가 깨어나면, 나 말고도 널 알아볼 거야.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줘.”
새벽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
다음 날 아침, 아리는 모두를 모아놓고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미로의 정신이 무너진 이유와 소원으로 타인의 소원을 무를 수 없는 거울의 방의 한계, 이를 우회하기 위해 대신 중학생 미로의 정신을 깨워야 했던 사정까지.
동료들은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당황하며 아리에게 연거푸 질문했다. 모두가 상황을 이해했을 때쯤, 몇몇 사람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다행이네.”
은솔 누나의 말이었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의외로 의사 선생님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진철 형이 당황하며 물었다.
“다행이라뇨?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 아닙니까?”
“당황스럽긴 한데, 무척 다행이지 않아? 상황을 봐.”
누나는 그 말과 함께 언제나 그랬듯 화이트보드에 세 개의 단어를 적었다.
‘정신 이상 미로’
‘어른 미로’
‘중학생 미로’
“자~ 이거 셋 중 하나 골라봐. 누가 제일 무섭니?”
“…”
“…”
“정신 이상 미로는 아리조차 ‘이건 좀….’ 했으니까 언급 할 가치도 없네. 성인 미로는 어때? 그 사람은 좀 다른 의미로 무섭지 않아?”
동시에 여러 사람이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난 솔직히 엄청 무서웠는데? 아리의 어머니라 하니 어쩔 수 없었을 뿐이지. 무슨 미친 수작을 부릴지 모르잖아! 꿍꿍이가 많은 사람인 게 뻔해.”
“쿨럭!”
“아리야 미안해! 하지만, 어차피 세 번째 미로를 이미 회복시켰다며?”
“응….”
“중학생 미로가 제일 낫네. 가인이 말로는 나름 귀엽고 착한 성격이었다며?”
“뭐…. 초능력을 숨 쉬듯이 사용한다는 점만 빼면요. 사악하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건 지금의 우리에게 큰 위협은 아닐 거야.”
누나의 손에서 피리가 나타났다. 자신감 있는 표정을 보아하니 나도 마음이 놓였다.
“자! 그럼 당장 가!”
빛나는 종이가 테이블을 가로질러 아리의 손에 날아갔다. 아리가 움찔거리는 사이, 누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걸 더 시간 끌어서 뭐 하게? 어차피 언젠가 깨울 셈이었잖아? 지성도 회복했으니 더 미룰 필요 없어.”
티켓을 든 아리는 평소답지 않게 어색한 태도로 일어서더니 모두에게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테이블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모두가 깨달았다.
이제 10번째 동료, 아마도 호텔에서 맞이할 마지막 동료가 깨어난다.
*
– 미로
…
…
…
이상한 꿈을 꿨다.
긴, 아주 긴 꿈이었다. 학교에 다니며 친구들과 매일 즐겁게 놀았다.
그 끝에는….
언제나 산타가 있었다. 피처럼 붉은 옷을 두른 채 시체의 산을 쌓는 존재.
그 존재는 나의 종말이요, 영원한 악몽의 시작이었다.
매일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다 같이 죽으며 모든 것을 잊었다. 죽음과 삶의 사이에 있는 찰나의 순간에만 어렴풋이 정신을 차렸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이게 내 운명이구나. 나는 어찌하여 이 불가해한 지옥에 떨어졌는가.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꿈의 내용이 바뀌었다.
기묘할 정도로 나와 닮은,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친구와 신비로운 비밀을 감춘 남자아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리고….
지금, 난 희뿌연 안개 속에서 깨어났다.
“… 이건 뭐야?”
「당신의 두 번째 운명을 선택하세요.」
내 앞에는 다양한 조각이 놓인 탁자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