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18)
317화 – 미로 (2)
– 미로
테이블 위의 조각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은 아주 중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엔 왕관 모양 조각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듯 ‘지배’라는 단어를 들려주었다. 멋있긴 한데, 나는 이런 힘이 필요하진 않을 것 같아.
다음엔 망원경 모양 조각이 괜찮아 보였다. 조금 전처럼 ‘천리안’이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어렴풋이 느꼈다. 이 힘은 나 자신보다 동료를 위한 힘이다.
그런 힘을 굳이 내가 가질 필요가 있을까? 동료를 위한 일은 동료들이 하겠지.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별 모양 조각이 보였다. 이건 ‘예지’다. 아주 강력하지만, 인간이 감당하기 어렵고 정신이 이상해지기 딱 좋은 힘임을 즉시 알았다.
… 그보다, 아까부터 내게 이런 지식을 알려주는 존재는 누구지?
“누구야!”
…
“좋아. 누군지는 묻지 않을 테니까 좋은 게 뭔지 알려줘. 쓰기 쉬우면서도 날 안전하게 지켜주는 힘이면 좋겠는데.”
문득, 대단히 아름다운 조각이 보였다. 시뻘건 배경 속에 놓은 푸른 보석. 다가가자 ‘이건 모르겠다’라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몰라? 다 아는 줄 알았는데. 그럼 이걸로 선택!”
이렇게 굴면 정체불명의 존재가 내게 짜증 내며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귓가를 간지럽히던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방금의 목소리를 언젠가 다시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름다운 보석을 들어 올리는 순간, 온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
정신이 들자마자 넋이 나갔다. 내 몸은 무지무지하게 차갑고 거대한 얼음벽에 갇혀있었다!
“읍! 읍! 살려 -”
— 쩌어억!
비명을 미처 지르기도 전에 얼음이 쪼개지며 몸이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추위가 날 덮쳤다.
“대, 대체 어디야? 사, 살려주세요! 살려 -”
“조용히 해.”
옆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믿을 수 없는 외모의 소녀가 있었다.
“… 거, 거울?”
“우리가 좀 닮긴 했지. 일단 이걸 걸쳐.”
나와 너무나 닮은 흑발의 소녀가 두꺼운 담요로 내 몸을 감싸주었다. 그때쯤, 눈앞 소녀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리잖아? 아리야, 여긴 어디야? 그리고 넌 왜 이렇게 날 닮았-”
“질문 그만. 호텔에서 대답해줄게. 혹시 알림 같은 거 뜨지 않았어?”
그 말을 들었을 때, 아까부터 내 앞에서 정체불명의 반투명한 창이 깜빡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두 번째 모험의 시작을 축하합니다!
당신은 불변의 축복을 얻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용암 속에서도 녹지 않는 얼음이요, 대양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은 존재입니다.
외부의 힘은 당신을 꺾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모험을 진행할수록, 불변의 축복 또한 새로운 가능성이 발생합니다.
축복이 활성화됩니다.」
“불변의 축복? 두 번째 모험?”
“불변? 뭐야 그건?”
“나도 몰라.”
“네가 골랐 – 하긴, 뭔지 알고 고른 건 아니겠지. 이건 좀 아쉽네. 관리국의 정보가 전혀 없는 축복을 골랐구나.”
“관리국?”
“다른 알림은? 의사 선생님은 축하 인사가 떴다던데.”
“의사 선생님? 축하 인사?”
아리의 말대로 내 앞에선 곧 다음 창이 깜빡였다.
「참가자 김미로, 두 번째 여정의 시작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첫 번째 모험에서 많은 보물을 얻었습니다!
그 중, 한 가지 보물은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선택해주세요.
1. 시간대여기
2. 오래된 피(선택 불가)
3. 필멸의 창」
멍하니 바라보자 옆에서 아리가 채근했다.
“뭐라고 떴어?”
“보물 중 하나를 고르래. 오래된 피 말고는 다시 쓸 수 있대.”
“시계를 골라. 그렇게 들었어.”
“시계? 그런 이름은 없는데?”
아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름을 물어봤다. 시간대여기, 오래된 피, 필멸의 창. 세 가지 보물의 이름과 오래된 피에만 선택 불가라고 적혀 있다고 말했다.
“시간대여기? 느낌이 이거네. 필멸의 창은 ‘창’이니까.”
“시간대여기를 골라?”
“응.”
1번을 꾹 누르자 갑자기 허공에서 ‘회중시계’를 닮은 물건이 툭 떨어졌다.
“회중시계?”
아리는 흥미롭다는 듯, 물건을 살펴보더니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이래서 시계라고 했구나. 어쨌든 이제 호텔로 가자. 무지하게 춥네.”
그 후로도 아리는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건넸으나 전혀 들리지 않았다. 시계를 붙잡자마자 이해할 수 없는 대량의 정보가 머리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호텔’이라는 장소에 도착할 때쯤, 비로소 이 정보들이 ‘시간대여기’의 기능에 대한 설명임을 깨달았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아리가 미로를 부활시키기 위해 밖으로 나간 사이 남은 사람들끼리 의논했다. 대화 주제는 미로에게 현 상황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전하는 게 어떨까 하는 의견도 있었다.
“미로로선 정신 차려보니 갑자기 터무니없이 위험한 장소에서 깨어난 것 아닌가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은데…. 조금 차근차근 말해보는 게 어때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가혹하다.
“송이 말뜻은 알겠는데, 우리 내일 저주의 방에 들어가야 해.”
“…”
“긴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말해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사실, 그것 때문에 아리보고 바로 데려오라고 한 거야. 그나마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다행히도 오늘은 저주의 방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호텔 시네마 후, 이틀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으니까.
그때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며 장내가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너무나 아리와 닮은 소녀가 나타났다.
“…”
“…”
“미로, 인사해. 호텔 사람들이야.”
“아,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가 있고 난 뒤, 우리는 정말이지 오랜 시간 동안 대화했다.
우리가 ‘호텔 파이오니어’라는 장소에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미로가 바깥에서 ‘관리국’이라는 조직에 있었으며, 호텔도 두 번째 들어온 상태라는 점까지 알렸다.
물론, 아무리 잘 전하려 해도 상당수 내용은 요약된 상태다. 자세한 이야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레 전달되리라.
의외로 미로는 그리 충격받지 않아서 그 점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 상황이 놀랍지 않으세요?”
“… 가인이 네가 나에게 존댓말 하는 게 더 놀라워. 그냥 편하게 말해주면 안 돼?”
“쿨럭! 그, 그렇게 할게.”
“이상해. 조금 전엔 가인이 키는 나보다 엄지손가락 길이만큼 컸는데, 지금은 갑자기 손 두 개만큼 커졌어.”
미묘하게 구체적인 기준이다.
“그, 그것 말고 호텔의 이야기나 본인의 과거 이야기는 놀랍지 않아?”
“… 뭔가.”
“뭔가?”
“익숙해. 그…. 여기 분들에게 처음 듣는 느낌이 아니야.”
옆에 있던 아리가 나직이 말했다.
“처음 듣는 느낌이 아니면? 잘 알고 있던 사실을 잠시 잊었는데, 다시 떠올린 느낌?”
“딱 그거!”
“재미있네. 지금의 너도 ‘진짜’ 중학생이던 시절의 너와는 좀 다른가 보네.”
한빙지옥에서 끔찍한 꿈을 꾸면서도 자신이 호텔에 있다는 진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걸까?
미로의 태도 못지않게 기이한 것은 아리의 태도였다. 미로를 살리고 싶다고 그리 난리였잖아? 부활한 후에는 껴안고 울고불고 해야 하지 않나?
전혀 아니다. 오히려 어딘가 거리를 두는 것 같았고, 조금은 차갑다는 느낌도 들었다.
조금씩 조용해질 때쯤, 미로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나 하나 질문하고 싶어!”
“물어보시죠.”
“처음 깨어났을 때부터 궁금했는데, 아리는 누구야? 나랑 너무 닮았잖아! 학교, 그러니까 ‘꿈’에선 왜 몰랐을까? 나도 모르는 숨겨진 자매?”
미로가 정말 궁금한 표정으로 아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여태껏 미로에게 전달한 정보 중, 미로가 거울의 방에서 아리를 만들어냈다는 내용은 없었다. 솔직히 이 내용은 아리가 직접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어딘가 허무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리가 오랜만에 픽 웃었다.
“엄마, 사랑해요!”
“… 장난하지 말고. 혹시 아버지가 바람 피셨어? 아닌가?”
아리가 손가락으로 눈을 살짝 찌르더니 눈물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절 알아보지 못하실 수 있어요? 당신이 내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 진짜! 얘 원래 이런 성격이야? 완전 짜증 나!”
이래서야 이야기가 진도가 나가질 않네. 한숨을 쉬며 미로의 어깨를 건드렸다. 말도 그냥 편하게 했다.
“가인이가 말해줄 거야?”
천천히 말해줬다. 네가 첫 번째 모험 당시 신비로운 장소에서 믿을만한 동료를 얻기 위해 아리를 ‘만들어냈다’라고.
여태 호텔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리 놀라지 않았던 미로의 입이 쩍 벌어지더니 –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거, 거짓말! 다들 나에게 장난치는 게 틀림없어. 그러므로 모두 진실을 말해라.”
?
… 방금,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경계심이 치밀어올랐다. 동시에 조금 전까지 장난치던 아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미로.”
“흥! 이제 내 말 알아듣 -”
“미로, 아무래도 이젠 내가 널 가르쳐야겠네.”
“뭐?”
— 따악!
다음 순간, 아리는 주저 없이 미로의 머리에 강렬한 딱밤을 먹였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미로의 머리 전체가 휘청거렸다. 곧 미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명심해. ‘그 힘’. 동료에게 함부로 쓰지 마.”
그리고 또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나갈 거야!”
갑자기 미로가 비명 지르며 도망간 것이다!
말 그대로 어린애처럼 – 실제로 지금의 미로는 어리긴 하지 – 울먹거리며 도망가는 소녀의 모습을 본 아리가 한숨을 쉬며 따라갔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끼리 잠시 말문을 잃었다.
“… 아까는 얌전히 말 듣길래 좀 얌전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누나의 말은 나도 이해가 갔다. 아까 전엔 정말 신기할 정도였으니까.
“누나, 한빙지옥에서 만난 미로가 원래 저랬어요.”
“방금은 뭐야? 그 말로 하는 초능력을 쓴 건가? 우리가 진실을 말하게 하려고?”
“네. 방금 파밧! 하고 느낌이 왔죠.”
“파밧? 나는 전혀 모르겠던데. 그보다 딱히 진실을 말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방금은 미로가 몰랐을 뿐, 우리는 이미 진실을 전하고 있었으니 별다른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 게다. 만약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면 기이한 압박감을 느끼며 진실을 토해냈겠지.”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아리 말고도 가인이 네가 바로 느껴서 다행이군. 앞으로 또 저런다 싶으면 아리가 없을 때는 가인이 너라도 바로 혼내거라.”
“예?”
혼내라고? 내가? 당황하던 차, 의사 선생님이 강렬한 눈빛을 보내왔다.
“가인 군, 과거의 호텔파티가 왜 무너졌는지 잊지 마십시오. 저는 방금 소름이 돋을 뻔했습니다.”
“…”
“이건 우리를 위한 것인 동시에 미로 양을 위함입니다. 미로 양이 저런 힘을 숨 쉬듯 쓰며 우릴 조종하려 들면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은솔 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피리나 송이의 팔찌 등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은 있지만…. 너나 아리처럼 ‘즉시’ 깨닫지 못하면 미로를 제지하기 어려워. 직접 보니까 생각보다 까다롭네. 다음엔 가인이 네가 딱밤 때려.”
“… 알겠습니다.”
미로의 부활은, 앞으로의 여정에 여러 가지 변화를 만들어낼 것 같다. 그때쯤, 미로와 나눴던 대화 중 흥미로운 내용이 떠올랐다.
“새로 얻은 축복은 ‘불변’의 축복이라네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암 속에서 녹지 않는 얼음이요, 바다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 외부의 사악한 힘에 대한 강력한 저항력인가? 대충 알듯 말듯 한데?”
“이따가 제 마도서를 잠시 보여주면서 시험해볼까요?”
“그건 강도가 너무 세다. 좀 약한 종류로 시험해보자. 엘레나?”
“네. 한번 준비해볼게요. 가능하면…. 약하게.”
“축복 못지않게 시간대여기, 그 회중시계 같은 물건의 설명이 흥미롭더구나. 아주…. 강력한 보물 같은데 말이지.”
할아버지가 씩 웃었다.
회중시계는 미로의 설명대로라면 정말이지 믿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유산이다. 과거의 미로가 복수의 유산 중 주저 없이 시간대여기를 택한 이유가 있었다.
“나 밥 안 먹을 거야!”
“먹지 마~! 먹지 마~! 내가 미로 것까지 다 먹어야지~”
“아리 진짜 싫어!”
멀리서 들려오는 대화를 듣던 진철 형이 한숨 쉬었다.
“쟤네 나이 합계가 몇이냐?”
“두 사람 나이 합치면 할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 나이 전체 합보다 많을걸요.”
“근데 저 대화 수준이 믿어지냐?”
“…”
남은 하루, 할 일이 많다. 미로가 새롭게 얻은 축복 ‘불변’과 유산 ‘시간대여기’의 기능을 알아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