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19)
318화 – 미로 (3)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멀리서 엘레나와 미로의 대화가 들려왔다. 위험한 실험 도중이라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있었다. 다행히 난 그 한정된 사람 중 하나다.
“미로, 이 아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어?”
“… 엘레나는 이런 괴물을 왜 ‘아이’라고 불러?”
“내 눈엔 좀 차가운 인상의 애처럼 보여. 미로 눈에는?”
엘레나가 과거 두어 번 만들어낸 애벌레 형상의 괴물이 느릿하게 테이블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 인간의 정신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존재다 보니, 이런 부분의 저항력이 부족한 진철 형 등은 2층으로 올라갔다.
“너무 무섭게 생겼어. 사람 머리가 달린 애벌레?”
“가인 씨랑 비슷한 답변이네.”
확실히 불변의 축복이 미로에게 강력한 저항력을 제공하고 있다. 엘레나가 괴물을 다시 지운 후, 이번엔 내 마도서를 살짝 보여주었다.
“으악!”
휘청거리면서 뒤로 넘어질 뻔한 미로를 재빨리 붙잡았다.
잠깐 사이에 코피와 상당한 두통을 느낀 것 같은데, 사실 저 정도로 끝났다는 건 저항력이 상당하다는 증거다. 보통의 인간은 마도서를 맨눈으로 보면 즉시 빈사가 되기 때문이다.
곧 은솔 누나가 다가와서 피리의 힘으로 미로를 진정시켰고,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실험 결과를 정리했다.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저항력이 상당하다. 한데, 신체 능력은 잘 모르겠구나. 이것도 확인해봐야 하나? 좀 시험하기 어려운데?”
그때, 아리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해야지. 본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 해. 다음에 우리가 들어갈 방은 203호일 확률이 높잖아. 미로 혼자서 초반을 버텨야 해.”
“에잇!”
또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말에 심통이 난 표정으로 미로가 귤을 던졌다. 아리는 뒤에서 날아오는 귤을 잡아채는 묘기를 부렸다.
“미로, 잘 먹을게.”
잠시 후, 할아버지는 다소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냥 저 나이 또래의 여자애와 신체적으로 다르지 않다. 힘이라곤 한 줌도 없고, 특별히 몸이 튼튼하지도 않다.”
아리는 다소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불변의 축복이 신체 능력에는 영향이 없는 걸까?”
“축복을 강화하면 신체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이미 2층 중반이야. 강화 기회가 많지 않을 텐데….”
“별 수 있냐?”
이런 문제 때문에 진행 도중에 합류한 사람은 축복은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다. 성장형 능력을 갖추고 시련 도중에 들어온 꼴이니까.
괜찮다. 미로는 축복보다도 유산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한 것 같으니까!
“시간대여기나 확인해보죠. 설명을 대충만 들어도 말도 안 되던데?”
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로를 데려왔다.
조금 전까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던 소녀는 시간대여기 이야기가 나오자 금방 흥미진진해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미로가 불필요하게 유산의 힘을 우리에게 숨기려 들까 걱정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의 미로는 그런 종류의 생각을 떠올릴 만큼 ‘관리국 요원 같은’ 성격은 아니었고, 시간대여기는 특성상 사용자는 물론이고 ‘상대’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제대로 쓸 수 있다.
“간단하게 다시 설명해줄게! 회중시계에 적힌 글자 보이지?”
시간대여기의 외형은 회중시계와 유사했지만, 세부적으로 전혀 달랐다. 바늘도 한 개였고 1부터 12의 숫자가 적혀있지 않았다.
그 대신 상단에 ‘자정’, 우측에 ‘아침’, 하단에 ‘정오’, 좌측에 ‘저녁’ 이렇게 4개의 단어만 적혀있었다.
“나는 이걸로 너희의 시간을 빌릴 수 있어. 각 칸당 한 명의 시간을 최대 1시간씩 저장할 수 있지.”
“미로가 원할 때 불러내고?”
“응.”
“미로야, 아까 대충 듣긴 했는데, 한번 보여주는 게 좋겠구나.”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미로가 고개를 돌리더니 승엽이를 불렀다.
“너! 그…. 승엽이라고 했었지? 잠깐 와봐.”
“네.”
“이제부터 넌 나에게 10초를 빌려줘야 해. 알겠지?”
“어…. 네.”
그 순간, 시계가 번쩍하더니 승엽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까 대충 듣긴 했지만, 새삼스레 신기했다.
10초 후, 사라졌던 승엽이가 다시 나타났다.
“우와!”
할아버지가 물었다.
“무슨 느낌이냐?”
“그냥 몸이 쭉 당겨졌다가 줄어든 느낌? 사라진 동안의 기억은 전혀 없네요.”
“신기하구나.”
“이것 봐!”
미로가 쭉 내미는 회중시계를 바라보자 ‘아침’ 칸의 글자가 굵어져 있었다.
“지금 아침 칸에 승엽이가 저장된 거야?”
“맞아. 10초뿐이지만.”
은솔 누나가 질문했다.
“시간을 빌릴 때, 당사자의 허락을 반드시 맡아야 해?”
“으음….”
미로는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 부분은 한번 확인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몇 차례의 실험 결과는 간단했다. 구체적인 문구는 중요하지 않지만, 미로가 상대에게 ‘시간을 빌리고자 하는 의사’를 밝히고 상대가 이를 승낙해야만 시간대여기를 쓸 수 있다.
아리는 어딘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적을 상대로 갑자기 어디론가 날려 보내는 용도로 쓰긴 쉽지 않겠네. 애초에 그런 용도로 만든 도구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아침의 승엽’을 불러볼게!”
미로가 기쁘게 웃으며 시계를 다시 동작시키려는 순간, 아리가 즉시 팔을 잡았다.
“잠깐! 여기 ‘진짜 승엽이’가 있잖아.”
“응?”
미로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으나 나는 아리가 느낀 위험성을 직감했다.
시간대여기는 타인의 시간을 빌려서 저장한 후, 다음에 소환하는 유산이다. 3시에 승엽이의 1시간을 빌리면 그 시간 동안 승엽이가 사라진 후 4시에 나타난다.
이때, 미로가 4시에 시계를 다시 작동시켜서 ‘시계에 저장된 승엽이’를 소환하면 승엽이가 두 명이 된다.
같은 장소에 동일인이 2명?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도시전설스러운 괴담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아리가 내게 눈치를 주자 나는 즉시 조언을 썼다.
[조언 : 3 -> 2]‘원래 시간대의 사람과 시간대여기로 소환한 사람이 접촉하면 무슨 일이 생기지?’
[서로 마주치는 상황을 반드시 피해라.]“마주치지 못하게 하라는데?”
“반대로 말하면 마주치지만 않으면 된다는 이야기네. 승엽아, 잠깐 105호에 들어가 봐.”
“… 네. 아까부터 뭔가 무섭네요.”
승엽이가 105호로 들어간 후, 미로는 시계를 작동시켰다.
허공에서 또 한 명의 승엽이가 나타났다. 갑자기 모두의 중앙에서 나타난 소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죠? 뭔가 몸이 쭉 당겨지는 -”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엽이가 도로 사라졌다. 빌린 시간이 겨우 10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10초 동안 승엽이는 분명 두 명이었다.
이후로도 다양한 실험을 반복하며 시간대여기의 능력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파악한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봤다.
첫째, 미로가 상대에게 ‘시간을 빌리겠다’라는 의사를 밝히고 상대가 승낙한다. 빌릴 수 있는 시간은 1인당 최대 1시간이다. 시계에 총 4칸이 있으므로, 총 4명에게 각 1시간씩 빌릴 수 있다.
둘째, 승낙한 상대는 그 시간 동안 사라진다. 그렇다고 사망했다는 판정은 아니다. 상태창 동료 정보 등에 따르면 동료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나온다.
셋째, 미로는 시간을 빌려준 존재를 본인이 원할 때 소환할 수 있다. 한 번에 불러낼 수 있는 존재는 1명이며, 하루 소환 시간은 최대 1시간이다.
하루 소환할 수 있는 1시간을 쪼개 쓰는 것은 가능하다. 예컨대, 아리를 20분 소환해서 도움을 받고 돌려보낸 후, 나를 소환하면 나는 총 40분 동안 미로를 도와줄 수 있는 식이다.
“복잡한 유산이긴 한데, 간단히 생각하면 또 간단하네. 미로가 원할 때 하루에 총 1시간 동안 우리를 소환할 수 있는 물건이야.”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203호 같은 장소에서 유용하겠다. 미로가 원할 때 우릴 소환해서 도움받을 수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주의시켰다.
“다들 편의상 ‘소환’이라고 부르는 듯한데, 명심해라. 실제론 소환이 아니야. 진짜 우리는 다른 장소에 있고 시계에 ‘저장된’ 존재가 나오는 거지.”
“소환하는 순간엔 진짜 우리와 시계가 불러낸 우리가 동시에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이 둘은 절대 마주쳐선 안 된다고 올빼미가 경고해줬네요.”
미로가 한 마디 덧붙였다.
“자꾸 우리, 우리 하는데, 꼭 호텔 동료에게 쓰는 힘은 아니야. 아무에게나 써도 돼!”
아리가 긍정하면서도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렇긴 한데, 웬만하면 우리에게만 써. 저주의 방에서 만날 대부분 존재는 시계의 힘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어.”
“응.”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었다.
첫째, 확인했듯이 그 시간대의 진짜 우리와 시계로 불러낸 우리가 마주치는 일은 피해야 한다.
둘째, 소환한 존재를 미로가 강제로 통제할 수 없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아리는 미로에게 가능하면 시간대여기를 우리에게만 쓰라고 충고했다.
궁금한 점을 확인하기 위해 미로에게 부탁했다.
“내 시간 10분만 빌려봐.”
“응. 가인아, 날 위해 10분을 써줄래?”
“그래.”
…
잠시, 의식이 사라졌다가 깨어났다. 승엽이 때도 그랬지만 동료들이 신기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방금, 진짜 10분 흘렀어요?”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별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203호 이야기나 잠깐 했고.”
다시 미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105호로 들어갈 테니까, 저장된 나를 소환해봐.”
“응. 근데 뭘 하려고?”
“확인해보고 말해줄게.”
그 대화를 끝으로 105호로 돌아가서 상태창을 쳐다보았다.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2]
…
[현자의 조언 : 2 -> 1]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상태창만 보고 있었는데, 조언 횟수가 줄었다. 안전하게 30분 정도 흐른 후에 바깥으로 나갔다.
밖에 나가자 동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그마한 종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땠습니까?”
아리가 재밌다는 듯 말했다.
“방금 미로가 불러낸 정오의 가인이가 -”
“정오의 가인?”
“시계로 불러낸 존재는 그렇게 칭하기로 했어. 아침의 아리, 정오의 가인. 이런 식으로.”
“좋아.”
“정오의 가인이 조언을 쓰더니 질문과 답변을 즉시 종이에 적었어. 그리고 105호에 있는 너와 마주치는 걸 피해야 한다면서 즉시 소환을 해제하라고 했어.”
종이에 펼치자 생각한 그대로의 질문이 보였다.
‘시계로 불러낸 존재가 횟수 제한이 있는 힘을 사용하면, 원본의 횟수도 차감되는가?’
간단한 궁금증이다. 이제는 답을 얻기도 했다.
[힘의 유형에 따라 다르나, 축복은 그렇다.]라는 매우 간략한 답변이 적혀있었고, 실제로도 상태창에 적힌 횟수가 줄었다.아리가 피식 웃었다.
“그새 이런 꼼수를 생각한 거야? 시계로 소환당한 상태로 조언을 쓰고, 원래 너는 별도로 조언을 쓸 수 있나 시험했어?”
“당연하지. 원래 여긴 꼼수가 전략인 장소인데. 그보다 힘의 유형에 따라 다르다? 그 말은 내가 떠올린 꼼수가 통하는 때도 있는 모양인데?”
“쓰다 보면 알겠지. 다만, 왜 축복이 안 되는지는 알 것 같아.”
“왜?”
“미로가 시간을 빌린 상대는 ‘우리’지 후원자가 아니야. 축복의 근원은 후원자고.”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축복은 후원자가 내린 힘이며 그 뿌리는 후원자에게 있다.
예컨대 조언을 내리는 올빼미 관점에선 내가 조언을 쓰나, 미로의 시계로 소환한 또 다른 내가 조언을 쓰나 똑같이 올빼미의 힘을 소모한 셈이다. 그러니 횟수 또한 공유하는 것이겠지.
저녁 11시 무렵, 마침내 모두가 시간대여기의 기능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시간도 늦었고, 더 이상 남은 조언 횟수도 없다. 무엇보다 다소 괴로운 실험에 열심히 협조한 미로가 상당한 피로를 호소했다.
내일 저주의 방에 들어가야 함을 생각하면 적절한 수면도 필요하겠지. 결국 오늘은 이쯤 하고 자러 가자는 결정을 내렸다.
“다음 방 이야기는 내일 아침 일찍 하자! 알았지?”
피곤했던 하루가 끝났다.
…
“가인아!”
“음?”
“날 위해 1시간을 빌려줄래?”
“저주의 방에서 써야 하니 미리 빌리는 거야?”
“… 응.”
“그래.”
“아리도!”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미로의 방)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이건 대체….”
“오! 됐다 됐어!”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105호의 ‘미로의 방’에서 깨어났다.
“…”
105호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모두가 별개의 공간을 사용한다.
“네가 시계를 써서 우릴 불러내는 경우는 예외인가….”
“신기해!”
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미로는 한빙지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떠들기도 하고, 호텔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기도 했다. 아리에 관한 이야기도 꽤 나눴다.
“그 애는 뭔가 무서워! 자꾸 나보고 엄마 엄마 하면서 놀리고.”
“놀린다기보다 실제로 -”
— 쿵!
실제로 엄마 맞지 않냐고 말하려 했는데, 갑자기 미로가 내게 박치기해서 소파 밖으로 떨어트렸다.
“가인이도 나쁜 말 하지 마! 난 아직 남자친구도 사귄 적 없어!”
“… 그래. 그 상황에서 갑자기 딸이라고 하면 웃기긴 하겠네.”
“어떻게 말해야 해?”
“뭐, 자매인 셈 치자고 하든가.”
아리와 미로의 관계를 뭐라고 정의해야 하는가!
나도 몰라. 그냥 아리가 엄마라고 할 때는 모녀인가보다 했고, 미로는 절대 아니라고 하니 역시 그런가 보다 할 뿐.
“애초에 아리도 말로만 엄마라고 하면서 날 막 대하잖아!”
“특별히 너만 막 대하는 건 아니야. 아리는 모두를 막 대해.”
“…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어. 그리고 아까 아리가 내 베이컨 다 뺏어 먹었어.”
“너도 한빙지옥에서 아리 햄 다 뺏어 먹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그건 햄이고, 이건 베이컨이라는 차이밖에 없는데?”
— 쿵!
또 박치기로 날 떨어트렸다. 이 애는 사람이 아니라 박치기 공룡 아닐까?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미로의 합류로 꽤 피곤한 하루를 보낸 것처럼 미로로서도 오늘은 대단히 두렵고 혼란스러운 하루였겠구나. 늦은 시간에 날 불러낸 건 그냥 마음 편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쯤, 미로가 시계를 들고 다가왔다.
“하나…. 물어볼 게 있어.”
“뭔데?”
“아주 무서운 이야기야.”
뭔가 할 말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