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20)
319화 – 미로 (4) Fin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미로의 방)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아주 무서운 이야기? 대체 뭘까?
미로는 바로 입을 열 것 같더니 정작 내가 다가가자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말인데?”
“무서운 이야기.”
“그래서 그게 뭔데?”
또 주춤거리며 점차 궁금증을 자극하던 미로가 갑자기 매우 빠르게 말했다.
“시간대여기로 불러낸 소환체가 죽으면 본체도 죽어!”
“바, 방금 뭐라고 -”
소환체가 죽으면 본체도 죽는다! 순간 숨이 턱 막히며 양손으로 미로의 어깨를 붙들었다.
“진짜야? 대체 왜 -”
말하다가 이유를 알았다.
편의상 ‘소환’이라는 단어를 쓰고는 있지만, 할아버지가 지적했듯이 시간대여기의 기능은 ‘소환’과는 전혀 다르다. 말 그대로 우리의 과거 시간을 빌려다가 미래 시점에 불러내는 것!
소환체와 본체 관계는 과거와 미래의 관계다. 과거의 내가 죽었는데 미래의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으아앗! 그, 그 중요한 걸 왜 이제 말한 거야? 혹시 조금 전에 깨달은 -”
그 순간, 나 또한 시간대여기의 또 다른 활용법을 깨달았다. 시간대여기의 주인은 한 번이라도 시간을 빌려준 상대를 소환해서 죽임으로서 본체 또한 죽일 수 있다!
물론, 미로가 소환체를 죽일 수 있어야겠지.
하지만 소환체는 자신이 나타날 시기와 장소를 선택할 수 없다. 미로가 본인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시기와 장소에 소환체를 불러내면 그만이다.
미로는 이 정보를 왜 숨기려 했을까….
“왜 아까 말하지 않은 거야?”
“…”
“말하면 동료들이 너에게 시간을 빌려주지 않을 것 같았어?”
“…”
“아니면, 우리가 널 위협한다 싶으면 즉시 -”
“아, 아니야!”
우리가 미로를 위협한다 싶으면 시간대여기로 몰래 해칠 생각도 있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중에선 역시나 미로의 지능이 상당하다는 판단 또한 있었다. 한빙지옥에서도 느꼈지만, 성격이 유치한 것과 별개로 이런 부분의 지능은 제법 매섭다.
조금은 배신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또한 이해했다. 작금의 상황은 미로에게도 무척 두렵고 혼란스러울 테니까.
나도 호텔에 들어온 초기엔 진철 형의 체격을 보고 상당한 위협을 느끼곤 했고, 형이 폭력을 행사할까 경계했는데 이 애라고 다르진 않겠지.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합리적으로 봐야 한다. 왜 끝까지 숨기지 않고 지금 내게 말했는가?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의 나는 미로가 소환을 해제하는 순간 이 대화와 관련한 기억을 잃기 때문이겠지만….
추가적인 이유가 있다면, 미로 본인도 이 정보를 공유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 중이기 때문이리라.
화를 내기보다 설득이 필요한 순간이다. 최대한 온화한 톤을 유지하려 애썼다.
“아까 호텔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때 좀 무서웠어?”
“… 약간.”
“그래도 이 정보는 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왜?”
최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골랐다.
“그 정보를 아냐 모르냐에 따라 소환당한 우리의 전술이 달라질 거야. 이 정보를 모르면, 소환체가 어차피 내가 죽어도 ‘미래의 나’는 안전하다고 착각해서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나설 수도 있어.”
“예를 들면 차진철이 별을 과도하게 쓰면서 돌격한다던가?”
“그런 식이지. 실제로는 소환체도 가능하면 살아야 하잖아?”
“맞아.”
“죽는 게 아니고 다치는 경우는 어떻게 처리돼?”
“그 부분은 잘 모르겠어….”
“확인해봐야겠네.”
잠시 방에 침묵이 흘렀다. 어딘가 불안하면서도 우울한 표정의 미로를 보자 안심시킬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미로, 네가 우리를 무서워하거나 경계할 수 있다는 점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잊지 마.”
“한 가지 사실?”
“미로 널 한빙지옥에서 구해낸 사람들이 누구야?”
미로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너!”
조, 조금 당황했다.
“나, 나 혼자서 한 게 아니라 다 같이 했지. 바깥에 있던 사람들도 추위에 시달리면서 기도했어.”
“아참, 그랬지?”
“그걸 기억해줘. 은혜를 베풀었으니 갚아라 이런 이야기가 아니야. 우리가 널 믿고 깨웠듯이 너도 우릴 믿어줘야 해.”
“알겠어. 내일, 내일 아침에 모두에게 말해줄게!”
거짓말이 좀 섞여 있다.
솔직히 미로를 믿은 사람은 우리 중에 없을 것 같아. 그냥 미로의 부활을 포기하는 순간 아리와 할아버지가 무슨 짓을 벌일지 상상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서 부활에 동의했을 뿐이지.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는 이제 묻어두기로 했다.
분위기가 누그러진다 싶더니 미로가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느낀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이 한순간에 터지려는 걸까?
“… 화장실에 가는 게 어때?”
마침, 나도 혼자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자, 잠깐만 다녀올게!”
…
잠깐의 대화로 새삼 느꼈다.
이 여자애는 아리랑 닮았지만, 전혀 다르다. 아리처럼 칼로 찔러도 코웃음 칠 것 같은 ‘관리국 요원’이 아니다.
중학생답게 성격은 유치하면서도 감정적이다. 순간순간의 머리 회전은 제법 빠르긴 한데, 결국 경험이 부족해서 생각도 그리 깊지 않다.
그러니 지금은 내 앞에서 설득당한 것 같다가도 이후 혼자 있다가 생각을 바꿀지 몰라.
이런 중요한 정보 전달의 문제를 중학생의 변덕에 맡겨둘 수는 없지.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미로의 방)
현자의 조언 : 0]
내 상의 안쪽엔 항상 특별한 펜이 있고 그 펜은 세상의 모든 것을 종이처럼 쓸 수 있다.
「시간대여기로 불러낸 소환체가 죽을 경우, 현 시간대의 본체 또한 죽는다.」
고민하다가 한 문장을 추가했다.
「내일 아침, 이 사실을 미로가 말하지 않으면 그녀를 경계하라.」
… 이 정도면 됐겠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 마음이 놓였다. 이제부터의 문제는 내일의 가인이가 알아서 하겠 –
– 「지금」
?
– 「지금, 미로가 시간대여기로 날 소환했어?」
상태창에 내가 적지 않은 문장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이 시간대의 본체가 아직 잠들지 않고 깨어있었구나.
…
「그래.」
– 「미로가 그 정보를 숨긴 거야? 내일 아침에 말하라고 설득했어?」
「맞아.」
– 「크~ 한가인! 믿고 있었다고~! 잘했네. 그나저나 과거의 나와 대화라니 참 신기한 경험이네.」
「이걸 원격 소통 수단처럼 쓸 수도 있겠지.」
– 「그러게? 203호처럼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쓸 수 있겠다.」
이 장소가 아닌 다른 105호에 있는 또 다른 나와의 대화는….
아주.
매우.
불쾌하다.
저 새끼는 뭐가 재밌다고 웃고 지랄이지? 내가 있는 줄도 몰랐으면서 뭐? 믿고 있었다고?
애초에 난 여기 있는데 왜 ‘내’가 또 있지? 왜 다른 누군가가 내 상태창을 보는 건데?
나는 여기서 정보도 얻고 미로를 설득하며 향후 분란의 가능성도 줄였어. 그런데 침대에서 노닥거리던 새끼가 왜 이 모든 공을 받아먹는 –
“후우욱!”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나와 그의 관계는 무슨 진짜와 가짜가 아니니까. 가짜가 죽는다고 진짜가 죽을 리가 있겠어?
과거와 미래의 관계야. 시간대여기가 만들어낸 일종의 시간여행일 뿐이라고!
극도로 흥분한 정신을 가다듬는 사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나’가 질문했다.
– 「미로는 어때? 잘 있어?」
어째서 저 녀석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내게 메시지를 보내는 걸까?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그’는 느끼지 못하는 건가?
「명심해라. 너는 나와 만나선 안 돼.」
그 말을 끝으로 펜을 바닥에 집어 던지고 상태창을 구석에 밀었다. ‘또 다른 나’는 내 말에 당황해서 무언가 묻는 듯했으나 도저히 대답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때쯤, 화장실에 있던 미로가 다시 깔끔해진 채로 나타났다.
“미안! 이제 결정했어. 내일 모두에게 알릴게!”
“잘 생각했어.”
“… 가인아?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
“아닌가?”
그 후의 일은 별것 없었다. 서로가 다닌 학교에 관한 이야기나 바깥에 나가면 뭘 할지에 관한 이야기 등이었다.
미로는 본인 자신은 알지 못하는 ‘먼 미래’ 혹은 ‘사라진 과거’, 즉 성인 미로에 대해서 무척 궁금해했다. 안타깝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슬슬 이별이네. 뭐, 내일 보겠지만.”
“…”
아직 할 말이 남았나? 얘 표정이 딱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분위기인데….
“내, 내일 봐!”
“그래. 내일 보자.”
“오늘 재밌었어! 내일의 가인이는 오늘 나랑 논거 하나도 모를 테니까 그게 아쉬워.”
그 말을 들었을 때,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내 마음을 채웠다. 지금 미로와 보낸 시간을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또 다른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
이상하게도 기뻤다. 이것이 내 의식의 끝이었다.
*
– 김아리
퍼뜩, 정신이 들었다. 뭐지? 조금 전에 미로에게 시간을 빌려주고 –
“… 날 불러냈구나.”
“응!”
눈앞에는 나와 너무나 닮은 소녀가 있었다. 뭐, 이제 이런 일에도 익숙해져야겠지. 앞으로 자주 있을 일이다.
“할 말이라도 있어? 아까 내가 먹은 베이컨 때문에 아직도 화가 났다거나?”
“… 이젠 화 풀렸어.”
조금 전까지 진짜 그걸로 화나 있었다는 말이네.
손을 뻗어서 미로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자 미로가 이리저리 피했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옆으로 움직 –
“…”
“아리야?”
“…”
“왜 그래? 왜 갑자기 무섭게 쳐다봐?”
“…”
지그시 노려본다.
미로의 침대에 분명 미로보다 훨씬 큰 덩치의 사람이 있었던 흔적이 남았어. 나는 관리국 요원이니까 이런 건 그냥 척 보면 알아.
내 시선을 느낀 미로가 뒤늦게 당황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
“무슨 생각? 그런 말을 하니까 이상한 생각이 막 드는데?”
“으아아앗! 잊어라. 이상한 생각을 비워라.”
“아직도 그게 나한테 통할 줄 알아? 미로, 초능력이라는 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겁도 줄 겸 해서 오래된 피의 힘으로 근처의 의자를 둘로 쪼갰다. 그걸 본 미로가 놀라며 움츠러들었다.
“또! 아리가 또 나를 겁주려고 해!”
“캬오옹!”
괴물 소리를 내며 미로를 들어서 이불에 넣고 굴렸다. 한참 동안 서로 낄낄대던 중, 이불 틈에서 머리만 쏙 뺀 미로가 입을 열었다.
“아하하하! 근데, 이제 진짜 시간 없어. 하루 소환 시간 1시간 제한이라고 했잖아.”
“나랑은 한 10분 있던 거 같은데 벌써 시간이 빡빡해? 낮에 실험하면서 쓴 시간은 짧았을 텐데…. ‘누군가’와 30분은 있었구나?”
“으악!”
“가인이랑 재밌게 놀았어?”
“가, 가인이 아니야!”
“… 방금은 중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인 줄 알았네.”
“… 가인이 맞아.”
“그래, 할 말이 뭔데? 진짜 재미로만 부른 건 아닐 테고.”
잠깐 놀면서 헝클어진 미로의 머리를 다시 가다듬는 사이, 미로가 시계로 불러낸 소환체가 죽으면 본체 또한 죽는다는 정보를 알려왔다.
“이건 가인이에게도 말했어.”
“뭐래?”
미로는 가인이와 나눈 대화에 대해 말했다. 미로는 이미 가인이에게 설득당한 상태였는데, 역시 그 녀석의 요령이 나쁘지 않다.
나는 여기에 약간만 추가하기로 했다.
“미로.”
“응?”
“넌 나와 닮았어.”
“…”
“물론 순서를 따지면 반대겠지. 내가 너와 닮은 거니까. 여하튼, 방금 네 행동에서 나와 닮은 점을 발견했어.”
“뭔데?”
“비밀주의적 성향. 애매하다 싶으면 일단 숨기면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지.”
“고칠게.”
“아니야. 숨길 필요가 있는 건 숨겨야지. 언젠가 호텔을 나가서 관리국 요원으로 돌아가면 지금보다 더 많은 비밀을 품게 될 거야.”
“그런가?”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정보는 숨기지 마.”
“숨길 수 없는 정보?”
“소환당한 우리가 죽으면 멀리 있는 본체도 죽는다. 이건 저주의 방에서 미로가 시간대여기를 한두 번만 써도 높은 확률로 우리가 알게 될 정보잖아?”
“…”
“위기에 처한 미로가 날 소환했다 쳐. 내가 널 지키다 죽으면 그 순간 멀리 있는 진짜 내가 죽지. 이걸 숨길 수 있겠어?”
“그렇네.”
“그러니까 이런 정보는 숨기는 의미가 없어. 괜히 갈등만 만들어낼 뿐이지. 그건 그렇고 방금 전술을 203호에서 써볼 수 있겠는데?”
“203호?”
“네가 날 불러내서 죽이면 203호의 산맥에서 날뛰는 난 어떻게 될까?”
“글쎄….”
“애매하네. 죽을 것 같긴 한데, 이런 식의 죽음은 내 봉인을 푸는 게 아니라 날 소멸시키는 일이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알아서 해봐.”
“응.”
“할 말은 이것뿐?”
아니겠지. 그냥 알았어. 미로는 아직 할 말이 더 남아있다.
“이건 가인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나한테만 말하는 거야? 그건 좀 기쁘네. 뭔데?”
미로가 뒤로 돌아서 회중시계를 내 얼굴로 가까이 들이댔다.
“칸 세 개가 차 있네. 아침은 나야? 정오는 가인이고?”
“응. 가인이에게 빌린 시간은 거의 써서 내일 또 채울 거야.”
“자정은?”
미로는, 어딘가 혼란스러우면서도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
“누군데? 진철이? 묵성이?”
“자정에 저장된 사람은 나야.”
?
“그게 무슨 -”
“시계를 처음 얻었을 때부터 자정은 이미 채워져 있었어. 자정에 저장된 건 나야. 오래전의 나야.”
아주, 오랜만에….
소름이 돋았다. 어디에도 없는 누군가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