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21)
320화 – 203호 재진입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8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이른 아침, 깨어나자마자 105호 바깥으로 나와 어젯밤의 일을 떠올렸다.
미로가 시계로 소환한 존재가 죽으면 우리 또한 죽는다. 어젯밤, 또 다른 나는 이 정보를 알아내서 내게 전달했다.
여기까진 알겠어.
기묘한 부분은 그다음이지. 멀쩡히 잘 대화하던 놈이 갑자기 「명심해라. 너는 나와 만나선 안 돼.」라며 더 이상 대화하지 않았다!
대체 뭔 일인데? 왜 사람 궁금하게만 만들고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을까? 애초에 우린 만난 것도 아니잖아?
여러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혹시, 소환체와 본체의 대화는 미로가 알아챌 수 있는 걸까? 시계에 그런 기능도 있나? 이미 미로가 기능 하나를 숨겼다고 생각하자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니면 만나는 순간 죽나? 도플갱어에 대한 도시 전설 중에선 그런 내용도 있다. 한데, 이런 위험이라면 왜 말해주지 않은 거지?
슬슬 머리 아프다 싶을 때쯤, 사람들이 모여들며 간단히 아침 식사를 끝낸 후 회의가 시작되었다.
「내일 아침, 이 사실을 미로가 말하지 않으면 그녀를 경계하라.」
어제 본 이 문구 때문에 미로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다행히 미로는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손을 들고 모두에게 알렸다.
“그러니 다들 조심해! 내가 소환했다 해서 갑자기 적에게 돌격해선 곤란해.”
진철 형의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이야기인데? 어제는 이 정보는 몰랐냐?”
“응…. 시계를 얻고 복잡한 설명이 아주 많이 들어와서 몰랐어. 혼자 방에 있다가 깨달았어.”
“하긴, 시간대여기가 매우 복잡한 유산이긴 하지.”
저건 거짓말인 것 같긴 한데,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의심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본인이 알리고 있고 시간대여기가 실제로 굉장히 복잡한 유산이라 사용자도 즉시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로의 행동이 때로는 중학생을 넘어서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겠지.
누나가 자연스럽게 회의 주제를 바꿨다.
“좋아! 시간대여기의 특성은 잘 알았지? 이제 다음 방 이야기나 하자.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모인 건 이따가 저주의 방에 가야 하기 때문이니까.”
“어느 방이 좋겠습니까?”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누나가 모두를 살짝 돌아보며 말했다.
“이젠 203호 아닐까? 예전엔 너무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패스하긴 했는데….”
그때와 지금의 우리는 꽤 다르지. 날짜로 치면 겨우 일주일이긴 한데, 호텔에서 일주일은 천지창조가 일곱 번은 일어날 시간이다.
진지하게 따지면 축복이 회복되었다는 점이 크다. 당시 가장 고생한 승엽이의 태초의 인간이 대충 어떤 능력인지 알았다. 내 시나리오 이해도 다시금 활약할 수 있겠지.
미로의 합류도 꽤 크다. 미로의 시간대여기는 ‘합류’ 자체가 극히 어려운 203호의 난관을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그리고….
모두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을 누나가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냥 솔직히 말해볼게. 미로가 시간대여기로 소환한 아리를 죽여보는 건 어때?”
아리가 하품하며 말했다.
“가능하며언~ 아프지 않게 죽여줘. 참고로 내가 팔다리가 잘려도 쉽게 죽지 않는 것 알지? 머리야 머리.”
저주의 방을 시작하기도 전에 서로를 어떻게 죽일지 연구하는 ‘동료’들과 자신을 어떻게 죽일지 말해주는 아리를 보니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이 정신 나간 분위기에 미로는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그러면 아리를 부르자마자 머리를 망치로 치면 돼? 이렇게?”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자그마한 손 망치로 아리의 머리를 툭툭 치는 미로의 모습에 아리조차도 잠시 말문을 잃었다.
“… 미로. 진지하게 말하자면, 그냥 내게 상황을 설명해. 어차피 이 상황은 내가 다 알고 있잖아. 설명해주면 내가 자살할 거야.”
“그래.”
“… 망치는 치워.”
“자, 잠깐!”
뭔가 스무스하게 아리를 죽이는 방향으로 확정하는 느낌이라 제지했다.
“다들 잊으신 것 같은데, ‘봉인’은 풀라고 만든 거지 소멸시키라고 만든 건 아니잖아요. 이상하게 203호에선 봉인 당한 아리가 마치 대적자처럼 우리랑 싸우고 있긴 한데….”
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분명 그 상황에서 아리의 정신을 되돌리면 방을 해결하기 위한 정보가 잔뜩 튀어나오겠지.”
이쯤에서 잠시 모두가 생각에 잠기며 조용해졌다. 그 틈에 잠시 203호의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태고의 원시시대, 산맥을 넘어가면 남아있는 멸망한 문명의 흔적과 미쳐 날뛰는 아리.
하늘에는 정체불명의 고래 같은 존재가 있고, 그 존재는 하늘을 떠다니는 것만으로 풍요로움을 만들어낸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래의 그림자를 쫓아가면 탈출이다.
… 잘 모르겠다. 203호에서 대체 무슨 일이 진행 중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203호에서 나온 후 올빼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실패한 선택을 고집하지 말고 성과를 거둔 선택에 주목해보라고 했었나?
“요번엔 다 같이 고래 그림자나 따라가 볼까요? 조언은 그렇게 해보라고 한 것 같은데.”
아리는 조금 다른 견해를 냈다.
“올빼미가 그렇게 조언하긴 했는데, 그게 꼭 전원이 따라가 보라는 의미였을까?”
“무슨 말이야?”
“절반은 고래 따라가서 탈출을 확보하고 나머진 내 봉인을 풀어보는 게 어때?”
“으음….”
다들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조언을 써서 한 번 더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오늘 저주의 방에 또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기도 전에 쓰는 건 불안한데다가 워낙 정보가 없으니 물어볼 것도 애매하다.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 지지직!
“갑자기 무슨 소리죠?”
“저거! 저거! 호텔 TV가 켜졌어요!”
“엥?”
모두의 시선이 벽에 걸려있던 디스플레이로 향했다.
화면에서 갑자기 소복을 입은 여자가 우물에서 기어 나오는 영상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천천히 스크린에 다가오며 손을 뻗더니 –
— 탕!
“아 시부럴 것들 진짜!”
할아버지가 짜증을 내며 총으로 스크린을 터트렸다. 형이 이마를 탁하고 쳤다.
“빨리 들어가라는 모양인데! 기가 막히네.”
결국 회의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현실적으로 더 말해봐야 나올 말이 없기도 했다.
원시시대에 각자 대륙 여기저기 떨어져서 원시인들 이끌고 활동해야 하는 판인데, 미리 작전을 세운다고 그것대로 할 수 있을까?
변수가 너무 많으니 결국 각자의 즉흥적인 판단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 마지마악! 시간 좀 빌릴게요. 호텔아~! 이건 기다려줘야 하는 것 알지?”
미로가 시간대여기로 나와 아리의 시간을 빌렸다.
1시간 후,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 꼬라지가 개판이었다. 호텔 첫날에 봤던 괴물 원숭이들 세 마리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한 나와 아리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 대체 이건 뭐죠?”
“잔말 말고 빨리 들어가자. 너희가 없을 때 저주의 방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기다렸더니 그새 원숭이 새끼들이 또 쳐 나왔다.”
— 철컥!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8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3호 – 저주의 방 ‘새로운 시작’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
…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시야가 흐릿하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뭐지? 전신마비에 감각 차단? 혹시 내가 봉인? 그럴 리가 없는데?
이게 대체 –
— 치이익!
가스 밸브가 열리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몸 전체에 뜨거운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촉각이 깨어나며 내 몸이 아주 좁은 장소에 갇혀있음을 알았고, 다음에는 시각과 청각이 정상적으로 회복했다.
무언가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바깥에서 사람 비슷한 형상이 보였다. 마침내 몸이 느릿하게 움직일 때쯤, ‘아리’가 다가왔다.
뭐야? 아리는 봉인 당한 것 아니었어? 이게 뭔가 싶어서 물어보려는 –
[조언 : 3 -> 2] [입 다물고 상황을 지켜보아라.]“한가인 님, 정신 차리셨습니까?”
“…”
“한가인 님?”
“…”
“으음…. 아무래도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우신 듯하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오랜 냉동 수면에서 깨어나면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답니다.”
눈앞의 존재는 아리가 아니다. 아리의 몸을 빌린 ‘무언가’다!
상대는 내 기억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 여기는 듯하다. 그걸 이용해 조심스레 물었다.
“넌…. 누구지?”
아리의 몸을 빌린 존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호! 그것까지 잊으셨군요? 전 ‘인류의 긍지’호의 메인 AI랍니다. ‘긍지’라고 불러주셔요.”
긍지?
“한가인 님, 일단 움직입시다. 우주선을 걷다 보면 기억이 돌아오실 거랍니다. 그리고 제가 한가인 님을 깨운 이유가 있거든요.”
203호의 배경은 원시시대 아니었나? 근데 갑자기 ‘인류의 긍지’호는 또 뭔데? 우주선에 메인 AI? 갑자기 SF라고?
혼미한 정신을 붙들고 ‘긍지’를 따라가며 물었다.
“… 날 깨운 이유가 뭐야?”
“아드라비타에게 문제가 생겼어요. 이 부분은 기억나셨는지 모르겠는데, 한가인 님과 유송이 님이 아드라비타와의 소통을 담당하셨거든요.”
아드라비타는 또 뭔데?
… 새하얀 복도를 걸어가며 생각했다.
첫째, 시나리오가 변했다. 102호, 공포의 저택에서 한번 겪은 일이다. 돌이켜보면 상황도 유사하다. 102호에선 첫 시도 후 아리와 할아버지가 합류하자 시나리오가 변했지.
이번엔 미로가 합류했기 때문인가? 하지만 왜? 미로가 딱히 시나리오 내부 인물인 것도 아닌데?
둘째, 아리의 몸을 ‘긍지’라는 존재가 차지하고 있다. 정황상 첫 시도에서 우리와 싸웠던 대적자인 듯한데, 지금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은 첫 시도의 시점에서 먼 과거? 승엽이가 봤던 ‘방호복’과 닮은 물건들은 혹시 이 우주선에 있던 우주복이야?
셋째, 다른 동료들은 어디 있지? 다들 냉동 수면 중인가? 어떻게 깨워야 해? AI에게 부탁하면 깨워주려나?
혼란에 빠진 채 시나리오 이해를 펼쳐서 –
갑자기 뒤로 돌아선 ‘긍지’가 물었다.
“아까부터 허공을 보시는 듯 한데, 뭔가 이상한 것이 보이시나요?”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니지. 단순한 감이 아니야. 아까전에 멋 모르고 상대를 ‘아리’처럼 대하며 말하려 하자 조언이 즉시 작동했잖아?
위기 알림은 언제나 내 생명이 위험한 순간에만 동작한다. 그러므로 ‘긍지’는 위험한 존재다.
“무슨 말이야? 그냥 생각중이었는데?”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사실 아드라비타가 며칠 전부터 우주선을 오염시키려 들었거든요.”
“… 오염?”
“혹시 한가인 님도 ‘오염’되었을까 걱정했답니다.”
“…”
– 철컥!
‘긍지’가 거대한 방의 문고리를 잡은 채 다시 뒤로 돌았다.
“한가인 님, 부탁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이 녀석은 저와 소통을 거부하거든요. 그리고 정신 보호를 최대한도로 활성화하세요.”
“내가 뭘 하면 될까?”
“같이 들어갈 테니 제가 하는 말을 전해주시면 됩니다.”
황급히 상태창 필터를 시야 전체에 두르자 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서 – 나는 ‘거대한 눈’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