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23)
322화 – 203호, 저주의 방 – ‘새로운 시작’ (2)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683,61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3호 – 저주의 방 ‘새로운 시작’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시나리오가 바뀌지 않았다는 가정을 세운 채 다양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첫 번째 시도 후 왜 우주선과 관련한 기억이 아무에게도 없었을까?
다른 사람이야 애초에 냉동 수면에서 깨어난 적이 없으니 기억이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왜 나에게도 기억이 없지?
처음 떠올린 가능성은 기억상실이다. 당시엔 상태창이 약해졌기에 아드라비타를 보자마자 의식을 잃었을 수도 있고, AI가 여러 차례 언급한 냉동 수면의 부작용에 따른 기억상실이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상태창을 유심히 바라보자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날짜 : 683,615일 차]대충 계산해보니 우주선에서 깨어난 시점으로부터 1870년이 흘렀다. 이런 헛웃음 나오는 변화를 왜 예전엔 몰랐지?
상태창이 고장이 났기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당시, 문자는 이상한 외계어가 뜨며 뭉개졌지만 ‘날짜’는 의외로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입 당시엔 118이라는 숫자가 선명했고, 나갈 때쯤엔 131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탈출 후엔 실제로 131일 차기도 했다.
즉, 당시에도 상태창의 날짜 계산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저 혼란스러운 숫자는 다른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103호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진행 도중 다른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은 후에도 송이는 혼자 오랜 시간을 보냈으나 상태창은 송이 혼자 보낸 시간은 계산하지 않았다.
비슷한 일은 104호에서도 일어났다. 내가 죽은 후에 아리가 판사를 패며 탈출하기까지 한 달 가까이 흘렀으나 상태창은 내가 사망한 후의 날짜는 계산하지 않았다.
어쩌면 첫 시도 때의 난 우주선에서 아예 깨지 않았을지도 몰라. 상태창은 그 시기의 내가 정상적인 참여 자체를 하지 않은 상황으로 쳐서 날짜를 세지 않은 게 아닐까?
이후의 냉동 수면은? 어찌 됐든 시나리오에 참여한 후에 다시 잠들었으니 센 건가?
이렇게 생각하자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왜 첫 시도 때는 깨지 못했고 이번 시도에서만 깨어났을까?
날 깨운 존재가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이 부분은 답이 나온다.
우주선에서 AI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냉동 수면 도중에 승무원이 깨어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드라비타가 이상한 짓을 벌이자 우주선의 AI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날 깨운 것인데, 뒤집어서 보면 아드라비타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우린 깨어날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즉, 두 번째 시도 때 우릴 깨운 존재는 아드라비타다. 저주의 방의 다른 평범한 NPC와 달리 회차를 인지하는 죄수이기에 회차가 바뀌자 행동을 바꾼 것이다.
왜 바꾸었지?
첫 시도 당시의 우리를 보며 무언가 심경 변화를 일으켰나? 지금의 우리에게 무언가 바라는 게 있는 걸까?
「□억□라.」
이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기억하라’였던 것 같다.
뭘 기억하라는 거야? 우주선에서 있었던 일을 잊지 말라는 건가? 내게 203호의 배경을 알려주고 싶었나?
일찍 깨어난 덕택에 본래는 얻기 힘들었던 정보를 잔뜩 얻긴 했지.
203호의 배경은 외행성 개척 우주선에서 시작되었다. 아리의 몸에 깃든 건 우주선의 AI고 아드라비타는 인류의 행성 개척을 돕기 위해 합류한 신적 존재다.
이 정보들 자체는 무척 귀중한 정보 같긴 한데, 죄수가 이 정보를 내게 전하려 한 이유를 모르겠어.
또, 저 정보들은 현시점에선 엄청난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1870년 동안 이 세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870년 전만 해도 나에게 깍듯하게 대하던 AI는 이젠 우릴 ‘반역자’라 부르며 잡아 죽이려 난리다. 아드라비타는 허공을 느긋하게 떠다니며 여행하면서 대륙에 농사나 짓는 중이고.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동료들이 떠올랐다. 다들 잘 있겠지?
[동료 위치정보(*)김묵성 : 북서쪽 872km]
역시 이런 식으로 나오는구나.
203호의 무대는 더럽게 넓은 원시의 대륙이다. 문명은 무너진 지 오래이며 교통수단은 당연히 없고 지명도 없다. 그러니 위치를 이런 식으로 알려줄 수밖에 없겠지.
아무 의미 없다. 저걸 알아서 뭘 어쩌라고? 북서쪽 872km를 걸어가게? 그래도 다들 살아있긴 하다.
— 퉁!
“신인이시여!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잠깐만.”
[날짜 : 683,615일 차(139일 차)]펜으로 냉동 수면 시간을 제외한 날짜를 알아보기 쉽게 추가했다. 나중에 올빼미를 만나면 냉동 수면 시간은 좀 빼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잠시 후, 천막이 열리며 늙은 늑대 발톱이 들어섰다.
“신인이시여! 간곡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보나 마나 꿈틀거리는 이빨인지 발톱인지에 관한 이야기겠지. 고민은 이쯤 하고 현재의 문제를 처리할 때다.
천막 밖으로 나가자마자 전사들에게 꿈틀거리는 이빨을 처치하겠다고 했다. 저번처럼 전사들이 눈을 빛내며 일어섰다.
— 끄르륵!
서쪽 하늘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렸다는 듯, 시나리오 이해가 꿈틀거리는 이빨을 처단하라며 알려왔다.
두려움에 떠는 부족민들을 안심시키며 전사들과 함께 천막을 나섰다.
“출발! 남은 사람들은 불이나 피워.”
*
예전과 비슷하다.
꿈틀거리는 이빨을 만나고 살아남은 자들이 내게 어설프게 정보를 전달하려 노력했고, 늙은 늑대 발톱은 전사들을 부리며 날 보호하는 방진을 짠 채 움직였다.
예전에는 이런 모습을 보며 마음이 놓였던 것 같긴 한데…. 이젠 방해다. 어차피 상대의 특성에 대해 알 만큼 알고 있는 데다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
이제 축복이 멀쩡하기 때문에 축복으로 내 정신을 보호하며 마도서의 고등한 권능, ‘화신의 힘’을 쓸 수 있다.
“시야 가리지 말고 비켜.”
“위, 위험 -”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 그리고 너희끼리는 모여 있고 늙은 늑대 발톱만 날 따라와.”
“알겠습니다.”
“혹시 내가 쓰러지면 내 몸을 잡아라.”
“네.”
꿈틀거리는 이빨과의 첫 전투를 떠올렸다.
괴물은 뭉쳐 있는 인간을 노리기보다 대열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한 존재를 덮치는 쪽을 선호했었지? 그 습성을 노리고 나 혼자 대열 밖으로 나가자 전사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 쉬잇!
나뭇가지가 비틀거리고 잎사귀 틈으로 묵직한 살덩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즉시 마도서를 소환하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노려보았다.
섬뜩한 움직임을 보이는 촉수를 인지함과 동시에 – 의식이 몸을 벗어났다.
의식이, 영혼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정신이 답답한 육신을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 그리하자 사람의 시점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둑한 숲에서 불쾌하게 꿈틀거리는 세 가닥의 촉수가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우리를 노리고 있었다.
첫 시도 때 얻어낸 정보에 따르면, 저 촉수들은 일종의 기생 생물이며 본체와 별개의 생물이다. 그러므로 화신의 힘을 통해 저것들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으리라.
내 의지가 명확히 서자 마도서로부터 칠흑같이 검은 실이 뻗으며 세 가닥의 촉수를 옭아매었다.
‘돌아가라! 네 본체를 탐해라!’
— 꿈틀!
찰나의 순간, 마도서의 힘에 저항하기라도 할 것처럼 촉수들이 위아래로 요동쳤으나 반항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마도서의 힘에 저항하기에 저것들은 지능도, 격도 너무나 부족하다.
결국 촉수들이 꿈틀거리는 이빨의 본체를 향해 회군하기 시작했다.
…
의식이 몸을 벗어났는데도 상당한 통증이 엄습했다. 이미 명령을 내렸으니까 힘을 거둬들여도 괜찮겠지?
부유하던 영혼이 빠르게 내 몸으로 돌아간다. 다시금 육신의 족쇄가 내 혼을 붙들었다.
“크으읏!”
내 몸에 돌아왔을 때, 이미 눈에는 핏발이 섰고 코에선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내 신체를 붙들고 있던 노인이 불안해했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서쪽을 바라보았다.
— 캬아아앗!
한없이 불길한, 그러나 고통으로 가득한 울음이 들려왔다.
“처치했나?”
“예?”
“몇 명만 가봐. 죽었을지도 몰라.”
전사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보기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냥 나 혼자서 가만히 서서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 상황이려나?
잠시 후, 용감하게 달려갔던 전사 한 명이 아예 넋이 나간 채 돌아와 꿈틀거리는 칼날로 여겨지는 산더미 같은 고깃덩이가 발견되었다고 알려왔다.
그 말을 들은 전사들이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아득한 표정을 지으며 내 앞에 무릎 꿇기 시작했다.
“당신은…. 정말이지 하늘이 내리신 분입니다! 신인께서는 정말로 -”
“그만, 그만하고 돌아가자. 좀 피곤하다.”
화신의 힘은 빙의와 차원이 다르게 힘들다. 실제 힘을 쓴 시간은 몇 분 안 될 것 같은데도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그때, 시나리오 이해가 갱신되며 부족의 노래를 주목하라는 안내가 나왔다.
… 여기까진 예전과 비슷하구나. 이제부턴 어떻게 진행하는 게 좋을까?
*
하늘의 자손에게 무궁한 영광이 함께하던 때가 있었지.
익숙한 노래를 들으며 천막 한편에 기대었다.
원시의 부족사회에서 깨어나 부족을 덮치는 괴물을 쓰러트린다. 여기까진 첫 번째 시도와 큰 차이 없는 진행이다.
이제부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예전처럼 산맥에 한 번 더? 아니면 올빼미의 충고대로 하늘에 있다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흔적을 쫓아볼까?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있으려나? 그 사이에 누가 죽은 건 아니겠지?
[차진철 : 동쪽 282m] [차진철 : 동쪽 218m] [차진철 : 동쪽 174m]“어?”
[차진철 : 동쪽 42m]“혀, 형?”
— 쿠당탕!
“신인이시여! 평원에서 괴물이 다가오고 있습 -”
“비! 켜! 라!”
그야말로 천지를 뒤흔드는 고함과 함께 바깥이 엄청나게 시끄러워졌다.
— 펄럭!
천막이 열리며 장대한 체구의 차진철이 들어왔다. 동시에 부족의 전사들이 창을 들고 차진철을 포위한 채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여!”
“… 여, 여기까지 뛰어왔어요?”
“그래 임마. 생각해보니 네 부족과 내 부족은 붙어있었잖아?”
“그렇네요.”
“다시 들어와 보니까 대충 위치도 기억나더라. 강가 쪽을 지나쳐서 쭉 가면 너네잖아?”
회차가 변하면 행동이 변하는 존재는 죄수뿐만이 아니다. 우리야말로 매번 다른 전략을 짜지 않았던가.
두 번째 시도, 차진철은 용기의 축복에 힘입어 시나리오가 시작하자마자 달려서 날 찾아왔다.
생각해보니까 이 비슷한 짓이 가능한 동료들이 더 있겠는데?
나는 아드라비타가 그러했듯, 동료들 또한 과거와 다르게 행동할 것임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