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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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화 – 203호, 저주의 방 – ‘새로운 시작’ (3)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683,61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3호 – 저주의 방 ‘새로운 시작’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형과 대화하기 위해 주변 사람을 물렸다.
“시작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린 거죠? 형 부족 주변에도 괴물 하나 있지 않아요?”
진철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죽였다.”
“네?”
“오는 길에 죽이고 왔어. 그놈 위치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부족민들도 아직 별일 없겠지.”
오면서 커피 한잔 마셨다는 듯한 말투다. 새삼스럽지만, 육신을 가진 괴물을 상대하는 데 진철 형보다 뛰어난 사람은 우리 중 없다.
“어찌 됐든 일찍 오시길 잘했네요. 희한한 일을 겪으면서 정보를 잔뜩 얻었거든요.”
“희한한 경험?”
원시시대에서 깨어나기 전, 우주선에서 겪은 일에 대해 진철 형에게 알렸다. 형은 한참 동안 입을 반쯤 벌린 채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정말이지 이놈의 호텔은 파도 파도 괴상한 이야기만 나오네.”
“그렇죠.”
“이, 일단! 우주선 이야기는 제쳐두고 다른 사람들 위치 이야기부터 하자. 다들 수백 km 떨어져 있다고?”
“다 그렇진 않네요. 의외로 시작 시점에서 은솔 누나와 송이는 겨우 60km 거리에 있어요. 가장 멀리 있는 묵성 할아버지는 지금은 871km라고 나오네요.”
“871km…. 가인이 넌 이게 어느 정도 거리인지 아냐?”
“면허가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길 따라 가면 390km인가 될 거다. 871km면 대한민국을 대각선으로 왔다 갔다 하고도 남는 거리야.”
“정말 머네요.”
“그냥 먼 게 아니야! 어떻게 만나라는 거야?”
“첫 시도 때는 산맥에서 만나긴 했잖아요?”
“그때는 상현 형님하고 묵성 할배가 부족민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움직였기 때문이지.”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만날 수 있어요.”
“…”
잠시 주변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바깥의 부족민에겐 미안하지만, 정상화된 상태창으로 동료들의 위치를 확인한 순간부터 떠올렸던 생각이다.
수백 km 떨어져 있으니까 만나기 힘들다?
평범한 인간인 부족민을 데리고 이동할 때는 맞는 말이지만, 저들을 무시하고 우리끼리 움직인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내가 이 세계에 넘쳐나는 괴물의 몸을 조종해 움직인다면? 송이가 친화의 축복으로 비슷한 일을 한다면?
아예 하늘을 날아가는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엘레나나 맨몸으로도 말보다 빠른 진철 형이면 말할 것도 없다.
의사 선생님과 할아버지에겐 조금 힘들 수 있다. 그들에게 하늘을 날거나 괴물을 다루는 재주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축복 성실의 힘과 관리국 요원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기본 신체 능력 자체가 인류 최상위권이다.
우리끼리 움직이면 871km도 얼마든지 단기간에 좁힐 수 있다. 내 말을 이해한 형이 한숨 쉬었다.
“그게 답일지도 모르겠네. 휴우….”
“…”
“우주선 이야기나 해보자. 네 말을 듣다가 진짜 충격적인 포인트를 찾았거든?”
“충격적인 정보가 엄청 많긴 했죠.”
“머나먼 미래의 인류가 우주 개척을 위해 우주선을 보낸다? 거기엔 전원 강화 인간으로 구성된 승무원이 탑승 중이고 사람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고도의 AI가 있다?”
“SF 영화 같네요.”
“인간 배양 키트는 또 뭔데? 그거 보긴 했냐?”
“본적은 없어요.”
“가장 놀라운 정보는 네가 보낸 시간 그 자체다.”
“시간이라면 상태창에 나오는 683,615일 이라는 날짜 말씀하시는 건가요?”
“68만 어쩌고 하는 시간 말이지. 대충 1800년인가 1900년인가 된다며?”
“네.”
“그 시간은 냉동 수면하면서 보낸 우리에겐 그냥 숫자일 뿐이야. 한데, 죄수에겐 어떤 의미겠냐?”
“죄수라면 아드라비타요?”
“그놈은 맨정신으로 깨어서 1800년을 보냈을 것 아니냐?”
… 그렇다.
냉동 수면에 빠졌던 우리와 달리 아드라비타는 우주선에서도 멀쩡히 깨어있었다. 당연히 이후의 1800년도 맨정신으로 보냈겠지.
“꽤 길긴 하네요. 하지만 그는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죠. 시간관념이 사람과 다르지 않을까요?”
“그야 그렇겠지만 다른 관점에서도 생각해봐. 놈에겐 1800년이 단 한 번 있는 일이 아니잖냐? 사실 1800년도 아니야. 우린 이미 두 번째 들어온 상태니까 ‘최소 3600년’이지.”
이해했다.
첫 번째 시도 때도 같은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우주선에서 깨어나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라면, 아드라비타는 딱 두 번의 시도만으로 3600년을 보낸 셈이다.
“심지어 그것도 최소다. 호텔은 과거에도 무수히 많은 참가자를 받아들였다고 하지 않냐. 아마도 우리 이전에 이 방을 도전하다가 실패한 사람들도 있었겠지. 그때도 매번 1800년이 흘렀다면….”
아드라비타는 대체 저주의 방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온 걸까?
잠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 이 부분은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보죠. 우선은 당장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게 더 급할 것 같네요.”
“그렇게 하자. 요번엔 산맥에 가는 것보단 하늘에 있다는 정체불명의 존재 – 생각해보니까 그놈 아드라비타 아니야?”
“틀림없어요. 직접 본 누나의 외형 묘사와 제가 본 모습이 비슷했으니까. 그는 ‘신앙을 퍼트릴 권리’를 인류에게 약속받았다고 했죠.”
“이런 원시시대에 하늘을 떠다니며 대륙 전체에 풍요로움을 퍼트리다 보면 없던 신앙도 생기겠네. 아드라비타의 그림자를 따라가 볼까?”
“이번엔 그렇게 -”
— 쿠궁!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진동이 세상 전체를 강타했다!
“이게 무슨 -”
진철 형은 입을 쩍 벌리며 허공을 가리켰다. 허공에는 너무나 익숙한 호텔 특유의 알림이 떠 있었다.
「당신은 탈출했습니다!」
갑자기 탈출? 게다가 나와 형에게 동시에 알림이 떴어? 설마 전원 탈출?
*
– 김아리
차가운 공기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깨어남과 동시에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난 203호에서 봉인 대상이다. 한데, 깨어났는데도 봉인이 해제되었다는 알림이 보이지 않았다. 이 의미는 명확하다.
고개를 돌리자 예상했던 존재가 있었다.
“미 -”
“쉿!”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미로가 내 입을 막더니 주변을 살피라는 듯 사방을 가리켰다.
— 위이잉! 부우웅!
말없이 주변을 돌아보며 상황을 살폈다.
사방엔 사람이 통째로 들어갈 만한 크기의 거대한 고치가 넘쳐났고 바닥은 불쾌하게 꿈틀거리는 검붉은 살덩이로 뒤덮여있었다.
몇몇 고치는 슬슬 꿈틀거리기 시작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거대한 말벌 같은 괴물이 날아오더니 꿈틀거리는 고치를 다른 장소로 옮기기 시작했다.
희한한 것은 괴물의 태도였다.
빤히 우리를 보면서도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다만, 마치 일을 방해하지 말라는 듯 우리를 툭툭 치곤 했다.
정황상 미로가 조용히 하라고 시킨 이유도 이것 때문인 듯하다. 소리를 냈더니 저 괴물들이 조용히 하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
참, 여러 가지 의미로 상상력을 자극할만한 장소네. 온 세상에 이형의 괴물과 꿈틀거리는 고치가 가득해.
여긴 대체 어디래? 괴물의 부화장?
미로는 대체 왜 이딴 곳에 있어? 다른 사람들은 원시인들 사이에서 깨어났다며?
— 부우웅!
근처의 말벌이 사라질 때쯤, 미로가 덜덜 떨며 내게 물었다.
“나, 난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 넌 왜 이런 곳에 있는 건데?”
“…”
“…”
잠시 허탈한 감정을 공유한 우리는 곧 이동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끔찍한 장소에 계속 있을 필요는 없겠지.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미로가 내 팔을 거의 부러트릴 기세로 붙잡고 있어.
“좀 약하게 잡아.”
“…”
“팔이 떨어져 나갈 -”
고개를 돌려서 미로를 보는 순간, 말문을 잃었다. 그녀가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럽다는 듯 울먹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주변 상황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질척한 점막으로 뒤덮여 발이 닿을 때마다 끈적한 질감을 느끼게 하는 땅.
무언가를 긁어내는 듯한 끔찍한 소음을 발생시키는 꿈틀거리는 고치들.
온 사방을 날아다니며 바삐 일하는 말벌을 닮은 괴물들.
영화, 에일리언의 한 장면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네.
나나 가인이 같은 사람은 이런 장소에서도 태연하게 말벌이 무슨 일 중인지 관찰하지 않을까?
물론, 우리가 이상한 사람이고 미로처럼 공포에 짓눌리는 게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이다.
시간의 문제야.
미로도 언젠가 호텔의 기괴함에 적응하겠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 물론, 그러한 변화가 꼭 긍정적일지는 모르겠다.
나도 미로의 손을 꽉 붙잡은 채 이형의 존재로 가득한 ‘부화장’을 돌아다녔다.
20분쯤 후,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 장소는 걸어서 나갈 수 없다. 말벌들이 드나드는 천장을 제외하면 외부와 통하는 길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같은 깨달음을 얻은 미로가 두려움에 질린 채 내게 물었다.
“어, 어떻게 해야 나갈 수 있어?”
“…”
“저 고치들은 뭐야?”
“모르겠네.”
“아리는 관리국 요원이면서 그런 것도 몰라?”
옆을 바라보자 미로가 슬며시 웃고 있었다.
농담을 던질 정도로 정신을 회복한 모양인데, 이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정신을 차렸다면 정말이지 타고난 요원이 아닌가 싶은 자질이다.
내 엄마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아마도.
“알아낼 방법이 있긴 해.”
“그, 그러면 빨리해봐!”
“조금 위험해. 저 괴물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일 것 같거든.”
“…”
덜덜 떨던 미로는 곧 표정을 굳혔다.
“이, 이대로면 죽을 때까지 이상한 장소에 갇혀있을 게 분명해! 나가는 길은 천장뿐이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이 상황에서 아리만 사라지면 어떡해!”
맞는 말이야. 시간대여기로 날 불러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이고 이미 30분 가까이 썼다.
이런 장소에서 미로 혼자서 버틸 수 있을까? 그럴 리 없으니 내가 있는 동안 뭐라도 해봐야겠지.
미로에게 지시했다.
“저쪽에 가 있어.”
“나, 나 혼자?”
“이제부턴 내 옆에 있는 게 더 위험할 거야.”
미로가 충분히 멀어졌음을 확인하고 오른손에 오래된 피의 힘을 끌어올렸다.
손끝이 찌릿하게 느껴질 정도의 힘이 모인 순간, 허공을 가르는 강맹한 기세가 단숨에 고치를 쪼갰다.
— 키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부화장이 난리가 났다.
귀가 아플 정도의 요란한 소음을 무시하고 쪼개진 고치로 다가가 내부에 대체 뭐가 있는지 살폈을 때, 나는 이 장소의 정체를 깨닫고 말았다.
“으아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