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25)
324화 – Re 203호, 저주의 방 – ‘새로운 시작’ (4)
– 김아리
쪼개진 고치 내부엔 흉측한 존재가 보였다.
피부는 붉고 털이라고는 한 가닥도 없다. 몸통은 큰데 팔다리는 짧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입을 벌린 채 우는 것뿐이다.
사람의 아이였다.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태아다. 처음엔 이 세계에 가득하다는 원시인인가 했다.
한데, 동료들에게 들은 정보를 떠올리며 위화감을 느꼈다. 203호의 원시 부족들의 생식 과정은 인간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들끼리 맺어지고, 임신하고, 출산한다.
굳이 이런 ‘인간 생산 공장’ 같은 게 필요하지 않아.
… 그렇지 않은 존재들, ‘신인’이 떠올랐다.
첫 시도에서 진철이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신인은 원시인과의 관계에서 자신과 같은 신인 자손을 볼 수 없다.
설령 혼인해서 임신, 출산을 한다 해도 태어나는 아이는 그냥 원시인이지 신인이 아니다. 생식행위로 숫자를 늘릴 수 없다면, 별도의 ‘제작 수단’이 있다는 이야기다.
사방에 가득한 고치 내부에선 전부 신인이 만들어지는 중인가?
그때, 고치의 파괴를 인지한 말벌들이 날개를 비비며 날아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기묘할 정도로 나와 미로를 적대하지 않았으나 고치 파괴는 명백히 선을 넘은 것 같다. 말벌 집에 들어와서 애벌레를 해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거대한 덩치의 벌이 뾰족한 입을 가로로 벌리며 다가오는 순간, 재빨리 앞으로 움직여 다른 고치 뒤로 숨었다.
과연, 괴물들은 이 와중에도 고치를 보호할 셈인지 재빨리 공격 방향을 틀었다.
— 서걱!
냉기의 칼날을 말벌의 날개를 향해 휘둘렀다. 몸통은 제법 튼튼해 보였지만 날개는 얇고 투명해서 노렸는데, 내 판단이 맞았다.
순식간에 날개가 찢어지며 거대한 덩치의 괴물이 부화장에 추락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서너 마리 정도는 너끈히 상대할 수 있겠는데?
— 부우웅!
부화장의 천장이 벌어지며 10마리가 넘는 말벌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죽음을 직감했다.
*
– 미로
온몸을 웅크렸다. 꿈틀거리는 외벽과 고치 사이에 몸을 숨겼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주저앉았어.
학교 운동장이나 오래된 집 근처의 어둡고 습기 찬 장소의 커다란 돌을 들어 올려보면, 온몸을 돌돌 만 콩 벌레가 꿈틀거리곤 했지. 지금 내 자세가 딱 콩 벌레 같은 자세다.
어릴 때 학교에서 들었던 웃기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능이 낮은 동물들은 천적이 나타났을 때 천적으로부터 숨는 게 아니라 자기 머리만 흙 속에 파묻는다고 한다.
자기 눈에 천적이 보이지 않으면 안전해졌다고 착각한다는 이야기인데, 아무리 동물이라 해도 그 정도로 멍청할 리가 있겠어? 거짓말이겠지.
… 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현실적인 이야기였을지도 몰라.
지능 문제가 아니라 천적이 너무나 두려워서 견딜 수 없던 게 아닐까? 지금 내가 딱 그 꼴이다.
아리는 괴물들과 목숨 걸고 싸우는데 나는 이런 장소에서 혼자 웅크리고 있네.
무섭다. 너무 무서워.
왜 나만 이런 이상한 장소에 떨어진 거야?
승엽이처럼 부족민들에게 무시당해도 좋으니까 나도 원시 부족 사이에서 시작하게 해줄 수 있었잖아!
“왜…. 왜 나만 이런 장소에 -”
또다시 눈물이 쏟아질 때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팔이 내 머리를 감쌌다.
“나도 같이 있잖아.”
그때가 되어서야 주변이 조용해졌음을 알았다. 10마리가 넘는 말벌의 잔해가 바닥에 가득했고, 아리는….
“아, 아리야! 팔!”
“팔이 뭐 어때서?”
“팔이 없잖아!”
“싸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대체 -”
“시간이 없어. 내 말 잘 들어. 난 여기서 얻은 정보를 모두 잊을 테니 미로가 기억해야 해.”
소환이 끝나면, 아리는 모든 기억을 잃는다.
“듣고 있어!”
“이 장소는 신인을 만들어내는 장소야.”
“신인?”
“신인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존재라 했지. 아마도 여기서 신인을 만든 후에 저 말벌들이 대륙의 부족들에게 옮겨주는 것 같아.”
“대, 대체 왜?”
“그건 나도 모르겠네. 그보다 빨리 내가 찢은 고치로 들어가.”
“고치로 들어가라고?”
“여태까지 괴물들이 우릴 해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이제 알았어. 우리도 이 방에선 신인 판정이기 때문이야.”
이해했다. 203호 내부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신분은 ‘신인’이고, 이 장소는 신인을 만들어내는 부화장이다. 말벌, 부화장의 일꾼들이 아리가 고치를 파괴하기 전까지 우릴 적대하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여기까지 깨달았을 때, 고치로 들어가라는 아리의 말을 이해했다.
아까부터 부화장에서 벌어지던 일을 떠올려보자.
고치 내의 신인이 몸을 가눌 수 있을 만큼 성숙한 후, 꿈틀거리며 신호를 내면 말벌은 고치째 들어서 바깥으로 옮긴다.
탈출하려면 그 프로세스를 이용하면 된다. 내가 고치에 들어가서 꿈틀거리면, 말벌은 완성된 신인 고치라 판단하고 바깥세상으로 내보내 주지 않을까?
“고치 안에 숨어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라는 말이지? 괴물들이 날 바깥으로 보내도록?”
아리가 입가가 살며시 휘어지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똑똑하네. 미로, 그런 식으로 하면 돼. 아마 다른 말벌이 와서 미로를 내보내 줄 거야. 이제…. 나 없어도 되겠다.”
아리의 머리가 힘을 잃고 내 어깨 위로 툭 떨어졌다. 입가에서 흐르는 선홍색 피가 내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아, 아리야!”
“… 괜찮아. 밖에 나가면 또 볼 수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아프지? 당장 소환 해제해-”
“아니, 그냥 둬. 어차피 한번 확인해야 하니까.”
“확인?”
“내가 죽으면 봉인 당한 본체엔 무슨 일이 생길까….”
아리는 본인의 죽음이 산맥에 있는 봉인 당한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확인해야 하니 소환을 해제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힘이 빠졌는지 내게 전신을 기댄 아리의 몸이 빠르게 식어감을 느꼈다.
… 괴로웠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고치로… 들어가…”
“…”
“두번째… 미로는… 내가… 잘… 키워야지…”
“누, 누가 누굴 키운다는 거야!”
억지로 몸을 일으킨 후, 사방에 널린 말벌 사체를 피해가며 아리가 찢어낸 고치를 향해 이동했다.
“흐으읍!”
고치 내부를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잠깐 사이에 시뻘건 고깃덩이가 된 아이의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치는 ‘신인’을 만들어내는 장소고 아리는 그 고치를 찢어버렸어. 내부의 미성숙한 아기가 여태 살아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이제 괜찮아. 더 이상 벌레처럼 웅크리고 싶지 않다. 아리가 내게 고치로 들어가라고 했으니까!
“아가야 미안! 하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겠지? 언니는 오늘은 살아야겠단다!”
아기의 시체를 끄집어낸 후, 찢어진 고치 내부로 들어가 몸을 다시 웅크렸다. 불쾌한 냄새와 질척이는 촉감이 느껴지는 꿈틀거리는 살덩이가 내 몸을 감쌌다.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것들 천지였지만…. 이제는 버틸 만 해.
— 부우웅!
멀리서 괴물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이 빌어먹을 장소에서 탈출할 수 있겠지!
— 쿠궁!
“어?”
조금 전, 천지가 진동했다. 이 느낌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자신이 없으나 그냥 알았다.
이 진동은 여태까지 있었던 부화장 내부의 진동과 전혀 다른 무언가다. 세상 전체의 진동이다!
갑자기 알 수 없는 힘이 고치 상단을 열어젖혔다.
당황해서 고개를 들자 이번엔 부화장 천장의 말벌이 드나들던 입구가 쭉 찢어졌고, 맑은 하늘이 드러나는가 싶더니 –
하늘의 신이 나를 내려보았다.
나는 작고 나약하다.
인간이 어찌 저 위대한 자와 비길 수 있을까?
보는 순간 알았다.
나와 저 존재의 격차는 병아리와 인간의 격차보다도 클지 모른다.
나는 태양 앞의 촛불이 되었다.
[너는 분명 촛불이로다. 허나 너는 또한 대양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니라.]이상한 목소리를 들었다. 공포와 환희, 기괴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신비로운 장소에서 가면을 쓴 존재가 손을 뻗어 내게 가호를 내림을 느꼈다.
더 이상 하늘의 존재가 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인간보다 좀 강한 고래를 닮은 괴물일 뿐이다.
“당신은 누구죠?”
「긍□의 □이 파□되□□. 무□ 짓을 했□가?」
“예?”
뭐라는 거야? 이상한 잡음이 너무 많잖아?
내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하늘의 고래는 더 이상 말 걸지 않았다.
그 대신, 알 수 없는 힘이 날 고치째로 들어 올려서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빠르다! 너무 빨라!
“으아아악!”
간신히 정신을 차리자마자 몸이 고치에서 튕겨 나왔다.
내 앞에는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기계가 있었는데, 기계의 앞면에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글씨가 적혀있었다.
“… 인류의 긍지?”
그 순간, 내 앞에 알림이 떴다.
「당신은 탈출했습니다!」
이것이 내게 남은 마지막 기억이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683,61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
“…”
복도는 침묵으로 가득했다. 저주의 방에서 탈출했으니 다들 의례적인 축하의 말이라도 건넬 법 한데, 기뻐하기엔 상황이 좀 이상했다.
솔직히 너무 급작스럽고 황당하게 탈출 ‘당했’어.
“분위기 왜 이래? 뭐 많이 알아낸 것 아니야?”
유일하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아리만 혼자 의아해했다. 아리가 말하자마자 요란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으아앙!”
미로가 갑자기 울면서 아리에게 몸통 박치기했다. 정확히는 격하게 껴안으려고 한 것 같은데, 너무 격한 껴안음은 몸통 박치기와 큰 차이가 없어.
“미로, 뭐 엄청난 일 있었어?”
“아, 아리가! 파, 팔이 잘려서!”
“… 내 팔은 여기 잘 있네.”
“나, 날 고치에 넣고!”
“고치는 또 뭔데?”
“나처럼 똑똑한 아이는 세상에 없다고 했어!”
“…”
아리는 실로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황상 미로가 시간대여기로 불러낸 아리와 뭔가 엄청난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정작 아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묘한 상황이네.
“이, 일단 테이블로 가자!”
*
순식간에 나온 것 치곤 꽤 오랜 대화가 이어졌다.
입을 여는 사람은 나와 미로뿐이었다. 나머지 사람은 깨어나서 반나절이 채 지나기 전에 갑자기 ‘탈출 당한’ 상황이라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주선과 관련한 정보, 대충 이해하셨나요?”
“…”
“가설이긴 한데, 203호의 상황은 SF 수준의 문명에 도달한 인류가 외행성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네요. 아리의 몸을 빌린 존재는 우주선의 AI고요.”
누나가 머리 아프다는 듯 중얼거렸다.
“산맥에 있는 고대 문명의 흔적은 203호의 무대가 되는 행성에 도착한 우주선이 개척하는 과정에서 남은 흔적이야?”
“아마도?”
“미로가 마지막에 본 기계는 뭐야?”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주선의 잔해 아니냐?”
누나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우주선은 산맥에 있는 것 아닌가요? 산맥에 아리 몸에 깃든 AI가 있었잖아요.”
나도 헷갈렸다.
AI가 산맥에 있으니 우주선도 분명 산맥에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 미로가 마지막에 본 기계는 또 뭘까?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우주선의 핵심 부품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우주선은 산맥에 있지만 미로가 본 장소에 우주선의 핵심 부품만 따로 있다?”
“어쩌면 우리가 그 부품을 산맥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우주선을 수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핵심 부품만 빠져나왔다면 지금 산맥의 우주선은 고장이 난 상태라 봐야겠죠.”
우주선 수리라. 그럴듯하다 싶으면서도 잘 모르겠다.
조언을 써서 알아내 봐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여태 조용히 있던 진철 형이 입을 열었다.
“다 좋아. 다 알겠는데, 나는 아드라비타라는 놈에 대해 좀 말해보고 싶다.”
죄수로 추정되는 아드라비타의 행동은 분명 대단히 기이하다.
“초반에 가인이 널 깨운 이유가 뭘까?”
“아마 절 노리고 깨운 건 아닐 것 같네요. 본인은 그냥 우주선에서 난동을 부렸고, AI가 절 골라서 깨웠죠.”
“그럼 우리 중 누구든 깨울 셈이었다 치자. 또, 그 후에 미로에게 기계장치를 보여준 것도 특이하지. 이건 마치….”
형이 하려던 말을 아리가 대신 말했다.
“우리를 돕지 못해 안달이 난 태도네. 제발 203호를 해결해달라는 것 같아. 방이 해결되면 본인도 소멸하는 것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