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28)
327화 – Re 203호, 저주의 방 – ‘새로운 시작’ (7)
– 유송이
단단하면서도 다소 날카로운 무언가가 뺨을 툭 툭 건드리는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었다. 동시에 역한 동물 가죽 냄새가 코를 훅 찌르고 들어왔다.
— 삐익!
“좋은 아침!”
날 깨운 페로의 부리를 어루만질 때쯤, 내 목소리를 들은 원시인들이 동굴 입구의 가죽을 밀치며 들어왔다.
“오오! 깨어나셨습니까? 송이 님!”
“그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세 번째 겪는 일이 다시 반복되었다.
원시인들은 멀쩡히 깨어난 날 보며 크게 감동하며 울었고, 곧 다채로운 선물 보따리가 동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직 피곤하다고 전하며 모두를 내보내서 분위기를 진정시켜야 했다.
그 후, 동굴 내부의 흙바닥 위에 놓인 각종 ‘선물’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페로야.”
— 삐이익!
“이것 봐. 애벌레 엄청나게 크지? 이렇게 큰 애벌레 처음 봐.”
…
“먹으라고 줬나 봐. 아마 근처에서 찾은 제일 큰 애벌레를 귀한 신인에게 바치기 위해 가져온 것 아닐까?”
부족민들 나름대로 나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기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해. 처음엔 날 놀리는 줄 알긴 했지만.
굳이 이걸 내가 먹을 필요는 없겠지.
마침, 옆에는 애벌레를 좋아할 만한 동물이 있었다.
옆에서 앵무새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흐릿한 기억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중간에 한번 우주선에서 깨어났기 때문인지, 회의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별수 없이 혼자 천막을 서성거리며 기억을 뒤적여야 했다.
계획의 큰 틀은 승엽이가 떠올린 내용 그대로였던 것 같아.
우주선의 동력원으로 밝혀진 ‘코어’라는 물건을 찾아낸 후, 그걸 들고 산맥으로 향하자고 했었지?
아드라비타가 준 정보에 따르면 코어 탐색이 우주선 AI의 지상과제이므로 코어를 가져가면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계획에서 내 역할이 왜 중요할까? 순서대로 차근차근 떠올려보자.
코어를 찾아내려면 일단 코어의 위치를 알아내야 한다.
코어의 위치에 대해 우리가 아는 정보는 미로 근처에 있다는 사실과 아드라비타가 해당 위치로 우리를 인도 중이라는 점뿐이다.
그러므로 아드라비타의 흔적을 쫓거나 미로를 찾아가야 한다. 이 광대한 원시 대륙에서 아드라비타나 미로를 어떻게 찾지?
아드라비타는 은솔 언니가 하늘을 꿰뚫고 볼 수 있다. 미로는 상태창으로 동료 위치정보를 볼 수 있는 가인 오빠가 찾아낼 수 있다.
동남쪽으로 284km 이런 식의 골치 아픈 정보가 나온다고는 하나 이런 정보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니까.
위치만 알아내면 끝일까?
아니다. 가인 오빠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미로의 위치 또한 무려 284km 떨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에겐 거기까지 쉽게 갈 수 있는 이동 수단이 없다. 284km라는 거리는 잘 정비된 도로에서 차를 타면 서너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이나 맨발로 걸어서는 답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원시시대 특성상 중간중간 물을 찾고 식량을 구한답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미로를 만나기까지 한 달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다.
여기까지 떠올렸을 때, 비로소 내 역할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내가 미로의 위치까지 우리를 옮겨줄 수 있는 이동 수단을 구해야 한다.
“페로! 이제 떠올랐어. 우리는 이제부터 널 타고 284km를 이동할 생각이니까 미리미리 애벌레를 잘 먹어둬.”
— 삐이익?
“배가 터지도록 먹어. 내일부터 밥도 굶고 물도 마시지 못한 채 284km를 이동해야 하니까. 지쳐 죽기 싫으면 미리미리 운동해야지.”
페로의 조그마한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찰 때쯤, 동굴 밖의 원시인들을 불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페로가 우릴 태우고 수백km를 이동할 수는 없어. 그로테스크로 변이한 페로가 강인한 생물이긴 하나 그런 짓은 무리다.
*
“저, 정말이십니까? 지금 ‘자르는 자’를 단죄하시겠다는 말입니까?”
“그래.”
“신인이시여! 부디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몸이 충분히 회복하지 않으셨고 -”
“나 완전 건강한데?”
체조하듯이 팔을 벌리고 폴짝폴짝 뛰자 눈앞의 노인이 당황하며 고개 숙였다.
“그렇지만 -”
“이미 결정 내렸으니까 전사들을 모아. 30분 내로 출발할 생각이니까. 다른 사람이 오지 않으면 나 혼자서라도 출발할게.”
“제발 한 번만 더 -”
“참, 그물 준비해. 생포해야 하니까.”
“새, 생포요?”
“흐으윽!”
더 이상 입씨름할 생각도 없고 어딘가에서 우는 소리까지 들려와서 동굴로 돌아왔다. 이 부족민들의 반응은 다른 부족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생각하면, 신인이 충분히 회복하지 않은 상태로 괴물과 충돌하다가 패배하는 걸 두려워하는 건 합리적인 판단이다.
이형의 괴물로 가득한 혹독한 세계에서 원시 부족이 버틸 수 있는 건 괴물 이상으로 강인한 신인의 힘 때문이니까. 내 죽음은 이들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판단보다는 태도다. 내가 깨어나자마자 선물을 동굴에 나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싸운다고 하자 다 큰 어른 수십 명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까지 하는 모습들.
이 감정적인 반응은 대체 뭘까?
내 축복의 영향을 받아서 나에게 과도한 친근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랬기에 더더욱 확신했다. 친화에 반응하는 시점에서 저들은 분명 통상적인 인간은 아니다.
*
부족민이 머무르던 동굴을 떠나 푸르름이 가득한 초원을 향해 움직였다.
보통 습기 차고 어두운 동굴에 있다가 이렇게 보드라운 풀과 달콤한 향을 풍기는 열매가 있는 초원에 도착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아마 평생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을 느끼며 심신이 이완되겠지.
한데, 나와 함께 이동 중인 전사들은 나름대로 건장한 체격에 걸맞지 않게 나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겁에 질린 상태였다.
“큰 바위 얼굴. 그렇게 무서워?”
“소, 송이 님! 조용히 하셔야 합니다.”
“왜?”
“그야 -”
“너 바보야? 평소에 조용히 다니는 건 자르는 자에게 들킬까 두려워서 그랬던 거고, 지금은 그 괴물을 잡으러 왔으니 오히려 요란하게 다녀야지. 우리가 온 걸 알아야 나타날 것 아니야.”
“… 그렇군요.”
뭐, 이 남자가 원래 이렇게 멍청한 사람은 아니다. 나름대로 전사들 사이에서 인망이 있으니까. 두려움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다들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 알지? 놈이 나타나면 즉시 산개하면서 그물 투척!”
“예!”
— 끼이익!
허공에서 거친 금속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페로가 그로테스크로 변이했다.
“그물 준비!”
이윽고 거대한 딱정벌레와 사마귀에 집게까지 뒤섞은 듯한 괴이한 생물이 우리를 덮쳤다.
*
자르는 자를 지상에 추락시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 번째 시도에서 이미 한번 했던 충돌의 반복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르는 자’가 내 팔찌에 저항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허공에서 덮치던 괴물은 시각이 차단당하자 그대로 지면에 충돌했다. 직후에 사방에서 던져진 그물에 몸이 얽히자 괴물은 괴로워하며 비명을 지르고 발광하기 시작했다.
물론, 자르는 자가 발광하며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집게발조차도 나약한 인간에겐 매우 두려운 공격이었다.
예전엔 어떻게 처치했더라?
자르는 자가 허우적거리느라 지칠 때까지 모두가 최대한 멀리 도망갔다.
이후 괴물이 지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때쯤, 페로가 그로테스크로 변한 채 접근해서 부리로 일격에 머리를 으스러트렸지.
이번엔 저놈을 생포해야 하니 작전이 좀 달라졌다.
“당겨!”
“끄으윽! 모두 힘을 줘라!”
“노, 놈이 그물을 잘랐습니다!”
분명 나무뿌리와 껍질을 섞어 만들었다는 저 그물은, 보잘것없는 외형과 달리 의외로 매우 질기고 단단한 물건이었다. 칼로 자르려 해도 결코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르는 자는 그 이름값을 하려는지 그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집게를 아무렇게나 휘저을 뿐인데도 그물이 마구 찢겨나갔다.
다행히 몸통을 옭아맨 그물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기에 괴물이 달려들어 모두를 베어 죽이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뭔가 해봐! 팔찌에도 사용 시간제한이 있단 말이야!”
즉시 페로의 뒤통수를 치자 페로가 어이없다는 듯 날 돌아보았다.
“빨리! 그물 뚫고 나오면 어떡해?”
— 고오오오!
자르는 자의 거대한 외침이 초원을 울린다.
그 기세가 실로 대단했기에 그물을 당기던 전사들의 표정에 불길함과 절망이 깃들었다. 그 순간, 그로테스크가 위엄찬 목소리를 내며 자르는 자에게 돌격 –
하진 않았고, 자르는 자의 몸통을 옭아매고 있던 그물을 붙잡고 있던 전사에게 다가가 그를 밀쳐내고 대신 그물을 당겼다.
사람 10명은 합친 것 같은 엄청난 힘이 그물에 실리자 괴물의 몸이 순식간에 뒤로 넘어지며 길었던 줄다리기가 마침내 끝났다.
*
페로의 등 위에 올라탄 채로 버둥거리는 자르는 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미리 이야기했음에도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탄식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두려움을 담은 채 내게 쏠렸다.
… 사실 나도 무서워. 이거 되는 것 맞아?
그때, 가인 오빠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송이가 만난 자르는 자라는 괴물은 하늘을 날 수 있다면서? 내가 널 찾아갈 때까지 그 괴물을 길들여보는 게 어때?’
‘… 뭘 길들여요? 걔가 어떻게 생겼는지 오빠가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완전 공포영화에 나올 것 같은 괴물이라고요.’
‘그러니까 더더욱 네 능력이 통하겠지.’
‘아니 -’
‘야, 이럴 때 아니면 네 축복은 대체 언제 써먹냐? 그냥 해봐. 실패하면 후원자 책임임.’
솔직히 그 말은 사실이긴 해. 이럴 때 아니면 내 축복은 언제 쓰겠어?
문제는 실패할 때의 상황이다. 친화의 힘으로 저 괴물을 길들이지 못하는 게 누구 책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죽는 건 나야.
“제발…. 제발 좀 착하게 굴어줘.”
— 그르르륵!
“날 봐봐! 뭔가 이쁘지 않아? 천하제일, 아니, 괴물 제일 미소녀 유송이를 본 감상이 어때? 엄청 아름답고 고귀하지?”
엉뚱하게도 페로가 견디기 힘들다는 듯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앞이나 봐!”
이제 바로 앞까지 왔다. 자르는 자가 아무리 지쳤다 해도 여고생 하나 찢어 죽이는 건 어렵지 않겠지.
이 위치까지 온 이상 성공 또는 죽음뿐이야.
팔찌의 힘이 풀리며 다시 앞을 보기 시작한 괴물의 겹눈에 내 형상이 담겼다. 지그시 괴물과 눈을 마주치며 생각했다.
실패하면, 나가서 가인 오빠를 눈에 파묻어버려야지!
*
– 유송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미리 듣긴 했지만, 견디기 힘들 정도로 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 진짜 끔찍한 장소네.”
“쉿!”
묵직하고 단단한 손이 날 잡고 끌어당겼다. 우리는 가장 위험한 장소에서 시작하는 미로에게 방호복을 입혔다.
— 부우웅!
꿈틀거리는 살덩이로 뒤덮인 땅, 영화에서나 봤던 거대한 고치로 뒤덮인 장소. 미로의 출발점이다.
“미로 너만 왜 이런 데서 시작하는 걸까?”
“소, 송이야! 조용히 하라니까!”
“왜?”
“어?”
“설마 여기 말벌들이 너랑 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 같아?”
“그, 그래두!”
“그래두는 무슨 그래두. 아무리 호텔이 개념 없어도 시작하자마자 죽는 장소에 던져두진 않을 – 아니네. 이건 취소. 호텔은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주변을 돌아보며 분위기를 살피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풋!”
“뭐, 뭐야?”
“웃겨서.”
“이 장소에서 웃음이 어떻게 나와?”
“아니…. 미로 너는 모르겠네.”
“응?”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원래 내 축복은 꽤 쓸모가 없었거든. 솔직히 103호에서 나온 이후로 제대로 쓴 적이 있었나?”
“그래?”
“그런데 이젠 천하의 유송이가 한 명으로도 모자라서 두 명이 필요하단 말이지!”
“…”
“하! 어쩔 수 없네. 내가 한번 말벌을 길들여볼게.”
“그, 그래. 송이 넌 진짜 특이한 성격이구나.”
이런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미로에게 듣는다고? 미묘하게 불쾌한데?
“… 잘 안되면 방호복 힘으로 어떻게 잘 해봐.”
“응.”
말벌을 향해 다가가며 속으로 기도했다.
후원자님, 이젠 얼굴도 가물가물한 코끼리님.
솔직히 그동안 큰 도움은 주지 못하셨잖아요? 뭐? 혼돈체가 나에게 친근함을 느끼는 힘?
바로 지금 그 혼돈체가 제 눈앞에 있네요. 부디 절 한 번만 크게 도와주세요! 그러면 제사상에 곶감이라도 꼭 올려드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