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29)
328화 – Re 203호, 저주의 방 – ‘새로운 시작’ (8)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683,62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3호 – 저주의 방 ‘새로운 시작’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인류는 오랜 세월 푸른 하늘을 동경해왔다.
많은 신화에서 위대한 신들은 언제나 구름 위의 천상에서 지상을 굽어보며, 신들의 사자는 언제나 하늘에서 날개를 휘두르며 내려온다.
부족한 재주로 하늘을 날아보려다 태양의 열기에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내리며 비극을 맞이한 이카로스의 전설은 또 어떠한가?
이 내용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인간이 고대부터 하늘을 동경해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천상에서 지상을 굽어보고 있다!
“히야…. 라이트 형제가 이런 풍경을 보면서 감동했을까?”
수백 미터 아래에서 바삐 달려가는 진철 형이 흡사 자그마한 개미처럼 보였다. 그로테스크 위에 탑승한 은솔 누나가 딱 이 타이밍에 고개를 들더니 날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 – 으익!”
갑자기 ‘자르는 자’의 몸이 꿈틀하더니 몸이 휘청였다. 괴물의 단단한 등딱지와 내 몸을 단단한 끈으로 묶은 상태였기에 쉽게 떨어지진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전신이 요동치며 토할 뻔했다.
“송이야! 운전 좀 잘해봐!”
“오빠! 진짜 좀 닥쳐봐요! 라이트 형제는 무슨 라이트 형제! 얘 지금 배고프다고 난리라니까요?”
“…”
송이의 짜증을 듣자 내 감상적인 기분이 즉시 날아갔다. 거대한 딱정벌레가 천천히 땅을 향해 내려갔다.
*
30분 만에 땅에 내려오자마자 송이는 다시 한번 내 감상적인 기분을 깨트렸다.
“우웨에엑! 으웨에엑!”
은솔 누나가 송이의 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진철 형을 돌아봤다.
“형, 괜찮아요?”
“…”
“형?”
“흐으억! 히, 힘들다. 가인아, 거리 얼마나 남았냐?”
“어…. 이 속도로는 내일 오전쯤에 미로의 위치에 도착할 것 같네요.”
“4, 4일 만에 온 건가? 빠르긴 빠르네.”
“조금 더 이 악물고 이동하면 오늘 밤에도 도착 가능 -”
“야! 제일 편하게 가면서 개소리할래? 난 이제 한 걸음도 못 움직인다!”
사람은 자동차처럼 기름만 채우며 하염없이 이동할 수는 없다. 며칠째 이어진 고된 행군은 진철 형은 물론이거니와 우릴 태우고 비행 중인 괴물조차도 지치게 만드는 중이다.
슬슬 해가 지고 있기도 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더 움직이긴 힘들겠네요.”
그 말을 끝으로 진철 형이 대자로 드러눕고, 송이가 하늘에서 봐둔 호수로 자르는 자를 데리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체력이 남아있는 나 혼자 요 며칠간의 행군을 돌이켜봤다.
203호에 세 번째로 들어오던 날 아침, 모두가 모여서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우리에겐 이동 수단이 필요하다. 마침, ‘몇몇 괴물’은 우리를 태운 채 이동하기에 적절하다는 판단이 섰다.
후보는 두 마리였는데, 하나는 은솔 누나 주변에 있는 초대형 황소고 또 하나는 송이 근처에 있다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벌레, ‘자르는 자’였다.
아무래도 하늘을 날 수 있는 존재를 부려야 정찰 등에서 이점이 있을 것 같아서 자르는 자를 길들이기로 했으나 불안감은 적지 않았다. 송이가 길들이는 데 실패하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셈이니까.
다행히 그런 일이 생기진 않았다. 나와 형이 2박 3일 동안 이동해 송이의 위치에 도착했을 때, 송이는 이미 자르는 자를 길들인데다가 근처에 있던 은솔 누나까지 데려온 상태였다.
“가인아, 너도 한 모금 마셔.”
“네. 형은 이제 괜찮아요?”
“글쎄…. 장소가 호숫가 근처라 물은 마셨는데, 허기가 문제지. 나무 열매 쪼가리나 며칠째 먹고 있으니까.”
“그건 참 문제네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한 모양이고.”
“스트레스요?”
“아직도 가끔 부족민을 다 버리고 출발한 게 맞는지 모르겠다던데.”
당연히 이 엄청난 행군을 원시인들 데리고 할 수는 없다.
“어차피 인간도 아니지 않나? 형도 참 섬세하네요.”
은솔 누나는 미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넌 이럴 때 보면 좀 아리 같다.”
“…”
황소 대신 자르는 자를 선택했기에 생긴 문제점도 있었다. 황소처럼 집채만 한 덩치도 아니고, 하늘을 나는 괴물이다 보니 우리 전부를 태운 채 장기간 이동할 힘은 없었다.
결국 진철 형은 그냥 달리기로 했고, 은솔 누나는 그로테스크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이제 진짜 힘드네. 따지고 보면 페로 위에 타고 있었을 뿐인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서 있기도 힘들어.”
“그러게요.”
“넌 비위도 좋다. 비행기도 아니고 출렁거리는 벌레 위를 몇 시간씩 타면서 괜찮니? 나는 한번 타보니까 도저히 못 타겠던데.”
“그럭저럭….”
내가 멀미에 강한 건가?
은솔 누나가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잘 있을까?”
그 말을 듣자 다시금 계획을 떠올렸다.
두 번째 시도에서 우리는 별 소득 없이 강제 탈출 당했지만, 다행히 그 전에 내가 상태창으로 나와 동료 사이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었다.
여기에 모두가 볼 수 있는 일종의 랜드마크인 붉은 산맥까지 고려하자 모두의 대략적인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상태창으로 미로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나와 강력한 시력으로 먼 흔적을 찾아낼 수 있는 은솔 누나, 맨몸으로 자동차처럼 달릴 수 있는 진철 형과 괴물을 길들일 수 있는 송이까지 이렇게 4명이 서로 합류한 후, 미로 쪽으로 이동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나머지 4명의 진행은 다소 까다로웠다.
할아버지와 의사 선생님은 위치상 미로와 멀어도 너무 멀고 차라리 산맥이 가까웠다. 그래서 그냥 미리 최종 목적지인 산맥 쪽으로 이동하며 탐색하기로 했다.
반면, 엘레나와 승엽이는 우리 쪽으로 합류할 필요 없이 즉시 미로 쪽으로 움직이는 게 훨씬 빠른 위치였다. 문제는….
“가인아, 승엽이가 미로의 위치를 정확히 추적할 수 있을까?”
은솔 누나는 같이 있을 엘레나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그녀에겐 그런 종류의 능력이 없으니까.
“동료 위치정보를 미루어볼 때, 잘 추적 중인 것 같네요. 승엽이와 엘레나도 하루 이틀 내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잠시 주변에 침묵이 지나간 후, 누나가 내게 물었다.
“뭐 알아낸 것 있어? 요즘은 올빼미와 거의 대화를 하는 것 같던데.”
온종일 출렁거리는 딱정벌레 위에 타서 날아가면서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당연히 남아도는 조언을 매일 썼다. 그렇다고는 해도, 요즈음의 내 질문은 언제나 비슷했지만.
“아드라비타의 의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어요.”
“‘의견을 나눈다’라는 말 자체가 뭔가 웃기네. 원래는 올빼미가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야?”
“이젠 확신이 섰는데, 후원자도 죄수의 계획을 다 읽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네요. 사실 104호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긴 했는데….”
104호, ‘주’에 의해 파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떠올렸던 생각이다. 올빼미가 주의 계획의 전모를 파악했다면, 사전에 더 명쾌하게 경고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의 모호한 답변들과 지금의 역시나 애매한 답변들.
인간을 초월한 후원자라 해도 역시나 인간을 초월한 죄수의 계략을 전부 파악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은솔 누나가 약간 희망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의외로 처음 했던 생각이 맞지 않을까?”
“처음 생각?”
“아드라비타는 이제 지친거야. 수천 년 수만 년 반복된 저주의 방에 질려버려서 그만 죽고 싶은 거지.”
“송이와 나눴다는 대화를 보면 딱히 죽고 싶어 하는 것 같진 않았어요.”
“후우…. 그렇긴 해. 그래서, 뭐 알아낸 건 없어?”
“올빼미는.”
“올빼미는?”
“아드라비타가 이 방에 아주 깊이 몰입한 것 같다고 했어요.”
“203호에 아주 깊이 몰입했다?”
그 말을 흥미롭게 듣던 누나가 곧 재미난 이야기를 꺼냈다.
“너, 장자의 호접지몽이라는 말 들어봤니?”
“꿈에서 나비가 되었다가 깨었더니 사람이더라. 내가 나비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잘 아네. 가끔 하는 생각인데, 아드라비타의 상황이 딱 이 느낌이긴 했거든. 어쩌면 그에게 이 장소, 203호는 또 하나의 진실한 세상일지도….”
저주의 방에 갇힌 죄수들에게 내부에서 겪는 일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무한히 반복되는 무의미한 인형극?
의외로 아닐지도 모른다. 저주의 방 내부의 존재들은 지능이든 행동이든 진짜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까.
게다가, 매번 ‘참가자’와 ‘죄수’라는 외부 세계를 인지하는 존재들이 내부에서 나비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저주의 방 내부의 존재들도 매 회차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다.
이러니까 진철 형이나 은솔 누나처럼 내부의 존재들을 그냥 사람처럼 여기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은솔 누나가 말을 이어갔다.
“103호의 선생님은 내부의 아타나시아들을 죽이며 즐거움을 느꼈지. 내부의 NPC에게 ‘증오심’이라는 진짜 감정을 느꼈다는 의미야. 202호의 해신은 자신의 권속들에게 구원이 있길 바랐어. 이것 또한 권속들을 진실로 아꼈다는 이야기고.”
“설득력 있네요. 그 말대로 아드라비타가 이 방에 너무 오래 있었기에 다른 몇몇 죄수들처럼 203호의 시나리오에 깊이 빠져들었다 쳐봐요. 그러면 목표가 뭘까요?”
“… 여기서 우리의 대화가 다시 멈췄네.”
“…”
“이런 정도 생각은 해볼 수 있겠지. 그놈의 우주선이 이 행성에 도착한 후,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인류의 긍지 호가 이 행성에 도착하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우주선은 동력원만 따로 뽑혀서 수백km 바깥으로 옮겨진 채 산맥에 방치되었고, AI는 승무원들을 반역자라 부르며 보는 즉시 잡아 죽이려 난리다.
인류의 개척을 돕기 위해 우주선에 함께 탔던 반신적 존재는 하릴없이 하늘만 떠돌며 대륙 관광 중이고, 인류의 후예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은 문명을 잃고 석기시대의 원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도 올빼미에게 물어봤다가 들은 이야기인데요.”
“말해봐.”
“승무원이 AI와 충돌한 건 명확하죠?”
“배신자니, 반역자니 하는 걸 보면 그렇겠지.”
“아마 그 충돌은 모두의 공멸이 아니었을까요? 우주선은 동력원을 잃고 반쯤 분해된 채 산맥을 나오지 못하고 있고, 승무원의 후예인지 뭔지 모를 세력은 문명을 잃었으니까.”
“그런 것 같네.”
“그 충돌에서 아드라비타가 어떤 역할을 맡았을까요?”
“글쎄…. 그놈의 동력원인지 뭔지를 찾아내면 알 수 있으려나. 난 그보다 다른 혐오스러운 가설이 하나 떠올랐어.”
“뭐죠?”
“이 세계, 괴물이 더럽게 많지 않아? 거의 매일 한 마리씩 보는 것 같은데.”
“그렇죠.”
“문명이 없는 인간이 버틸 수 없는 환경이야.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인의 힘이 필수적이지.”
“그렇겠네요.”
“즉, 지능이 있는 원시인들로서는 신인을 내리는 ‘어떤 존재’를 간절히 숭배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지.”
“…”
“…”
“내일 아침이면 미로를 만날 수 있다고 했지? 아, 승엽이랑 엘레나도 근처라고 했나?”
“네. 거리상 40km도 남지 않았어요. 날아서는 금방이죠. 승엽이 쪽도 근처까지 왔어요.”
“폭풍 전야 같은 느낌이네.”
다음 날 아침, 송이가 죽었다.
*
– 엘레나
“도련님! 제발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이제는 익숙한 호소를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노인 몇몇이 몰려와 승엽이 앞에 엎드린 채 간절히 호소 중이었다.
저들로서는 지금의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리라.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지옥 같은 강행군이 끝없이 이어진다. 목적지도, 움직이는 이유도 모른다. 그저 신인이 명하기에 하염없이 벌판을 걷고 또 걸을 뿐이다.
식량도 부족하고 물도 부족하다. 부족한 음식과 물은 신인을 비롯한 소수의 강인한 전사들이 먹기에도 부족하니, 나약한 이들은 벌판에서 스러져갈 뿐이다.
그렇다고 폭군처럼 군림하는 신인을 피해 도망치기에 이 세계는 괴물로 가득하다. 신인이 죽으면 몇 달 내로 다음 신인이 내려온다지만, 그 사이에 부족이 쓸려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저들이 생각하기에 탈출구는 하나뿐이다. 폭군을 설득하는 것.
“도련님!”
“…”
“제발, 어제도 30명이 넘는 인원이 낙오했습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넌 오늘을 넘기지 못 하리라.”
“예?”
불길한 일언(一言)이 나직이 울려 퍼진다.
주변의 원시인들이 흠칫 떨며 뒤로 물러섰다. 운명을 점지받은 노인은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파르르 떨었다.
저자는 오늘, 늦어도 내일 아침이면 죽는다.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일이다.
섬뜩한 기분을 느끼며 승엽이에게, 아니, ‘태초의 인간’에게 다가갔다.
“… 매번 궁금한데, 대체 어떻게 하는 거니?”
“무엇을?”
“어떻게 죽이는 거야? 말 한마디로?”
“난 사람을 죽인 적 없어.”
“주, 죽였잖니? 네가 불안한 소리를 하니까 사람이 연달아 죽는 걸 몇 번이나 봤는데?”
“이상한 소리를 하네.”
세상의 어둠 전체를 끌어모은 듯한 소년은 도리어 날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주변을 가리켰다. 광활한 평원 어디를 둘러보아도 굶주림과 목마름을 이기지 못한 원시인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봐. 쟤네가 걷다가 픽픽 쓰러지는 것 봤지?”
“…”
“원래 사람은 죽어. 저 사람도 죽는다고 말해줬을 뿐이야.”
불길하다. 이 소년은 불길하다.
…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었다.
원시인들은 태초의 인간, 승엽이를 보는 것만으로 두려움에 질려 벌벌 떨었다. 그러면서도 견디기 힘들 때 찾아가는 사람 또한 승엽이지, 내가 아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승엽이는 사람을 괴물로 만들진 않으니까.
— 끼이잉!
귀엽게, 적어도 내 귀에는 귀엽게 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요정’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날아다니는 신비로운 풍경이 보였다.
이제는 나도 알아. 저 존재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존재는 이 평원에 나 뿐임을 안다.
“엘레나.”
“응?”
“이제 거의 다 왔어.”
“또 그, 거북이 등껍질로 점쳤니?”
“응. 이것 봐.”
며칠 전, 승엽이가 고통받고 있을까 걱정하며 황급히 찾아갔을 때를 떠올렸다. 이미 내가 아는 소년은 없었다.
남아있는 것은 태고의 세계를 걷는 불경한 주술사였다.
“대체…. 무슨 명령어를 넣었나 모르겠네.”
“응?”
“아니야.”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