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30)
329화 – Re 203호, 저주의 방 – ‘새로운 시작’ (9)
– 미로
정신이 몽롱하다. 전신에 힘이 한올도 남지 않아 손가락 한 가닥도 까딱할 수 없다.
며칠째 굶주렸기 때문이다. 며칠 전의 과거, 방에 처음 들어오던 시기의 일을 떠올렸다.
꿈틀거리는 살점으로 가득한 혐오스러운 이형의 둥지, 신인이 태어나는 부화장이 203호에서의 내 시작 지점이다.
왜 나만 이런 끔찍한 장소에서 시작하는 걸까? 모를 일이다.
여하튼, 시작 지점이 워낙 답이 없으니 시간대여기로 시간을 빌릴 동료 또한 ‘날 바깥으로 내보내 줄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선정해야 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유송이였다. 부화장의 말벌을 부려서 날 내보내 줄 수 있을 테니까. 회의 중 모두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다.
두 번째는 차진철이었는데, 그냥 힘으로 부화장 벽을 뜯어낼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말벌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면 때려죽일 수 있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사실 난 가인이의 시간을 빌리고 싶었어.
그런데 가인이의 말에 따르면, 본인이 말벌에 빙의한다 해도 하늘을 날긴커녕 4장이나 되는 날개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다고 해서 포기했다.
세 번째는 선택의 여지 없이 아리다. 현재 확인된 가장 빠르고 쉬운 탈출 방법이 아리의 죽음이니까.
203호에 진입한 후, 시작하자마자 송이부터 불러냈다.
*
“이것 봐! 이 애 의외로 귀엽지 않아?”
“신기하네. 정말 이런 괴물을 부릴 수 있다니.”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귀엽다고 믿어봐. 왜, 꿀벌이 사실 은근히 귀여운 것 아니? 복슬복슬하고 둥글둥글하잖아. 이 애도 가만 보면 꿀벌하고 비슷해.”
“꿀벌도 100만 배 정도 커지면 전혀 귀엽지 않을 거야. 아무래도 좋으니까 날 데리고 나가!”
“… 대체 이 버르장머리 없는 성격은 누가 가르친 거야? 태생인가?”
“빨리!”
*
송이는 불평하면서도 말벌을 부려서 날 데리고 부화장 바깥으로 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이 잘 풀리는 줄 알았지.
부화장 바깥에 머리를 빼꼼 내미는 순간, 나와 송이가 동시에 넋이 나갔다.
*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끼에에에엑!”
“아니, 콩이 넌 왜 소리 질러?”
“코, 콩이?”
“얘 이름 -”
“헛소리하지 말고 살려줘! 이 괴물들 다 뭐야?”
“미, 미로 너 좀 가만히 있어! 바둥거리니까 콩이 다리가 떨어지려고 하잖아!”
“꺄아아악!”
“가만히 있지 못해? 이 멍청한 중학생! 아리랑 생긴 것만 닮지 말고 행동도 좀 닮아!”
*
예전의 기억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다시 생각해도 웃기네. 아니, 우릴 나르던 말벌은 왜 같이 소리 지른 거야? 군중심리?
부화장 밖에는 최소 5마리에 달하는 거대한 괴물이 있었다. 덕분에 나가는 순간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며 넋이 나가서 비명 질렀어.
한데, 괴물들은 의외로 우리를 데면데면한 눈으로 바라볼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송이의 친화가 이렇게 엄청난가 해서 감동했었는데….
*
“소, 송이는 정말 대단하구나!”
“응?”
“이 많은 괴물을 홀린 거야? 나도 송이처럼 강력한 축복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송이는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 축복이 뭐? 강력? 그럴 리가 없잖니.”
“뭐?”
“보면 모르겠어? 쟤네는 이 부화장의 수호자 같은 거야. 말벌이 일꾼이면 쟤네는 경비원이라고.”
“아….”
“콩이랑 같이 있으니까 공격하지 않는 거야. 내 친화는 저 많은 괴물을 한꺼번에 홀리지 못해.”
“그, 그렇구나.”
“미로 넌 눈치를 조금 더 길러야겠다.”
처음엔 나랑 같이 비명 질렀으면서 잘난 체하기는!
… 그래도 지금은 날 도와주는 중이니까 내가 참아야해.
“저, 저쪽 봐!”
“음?”
송이가 곧 괴물 말벌, ‘콩이’에게 지시를 내려서 방향을 바꿨다.
내가 발견한 건물은 무척 깔끔했고, 그 덕분에 형상을 알아볼 수 없는 흉측한 괴물과 꿈틀거리는 살점들로 가득한 부화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깔끔한 연구소 같은 장소였기에 보자마자 알았다. 두 번째 시도가 끝날 때 ‘고래’가 보여준 장소가 바로 저곳이다!
건물 앞에는 일종의 보안 장치가 있었고 그 장소에 손을 넣자 손가락이 따끔하다 싶더니 기계음이 들려왔다.
「신분이 확인되었습니다. 김아리 선장님, 남부 개척지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3일이, 5일이, 7일이 흘렀다.
*
“…”
이곳은 안전해.
바깥에 넘쳐나는 끔찍한 괴물들이 투명한 문 너머의 날 보며 이빨을 갈아대지만, 그뿐이야. 저들이 건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음은 잘 알고 있다.
이 장소는 괴물의 공격도 없고, 춥거나 덥지도 않다. 게다가 누워있기 좋은 침대 같은 물건은 물론이고 원시시대에 걸맞지 않게 현대적인 화장실까지 있다.
딱 한 가지 문제점만 빼면 완벽한 장소였다.
“배가…. 고파.”
이 건물엔 음식이 없었다. 물은 화장실에서 마실 수 있었지만, 음식은 과자 한 조각도 구할 방법이 없었다.
매일 밤, 굶주림에 지쳐 잠들며 수 없이 생각했다. 그냥 아리를 불러내서 자살을 부탁하는 게 어떨까?
이대로 탈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 나는 너무나 많은 정보를 알아냈으니까!
이 장소는 1800년 전 이 별에 도착한 인류가 개척을 위해 설립한 시설이다.
몰락한 후손들과 달리 그야말로 위대했던 우주인들이 우주선의 메인 동력원, ‘코어’를 이 장소로 옮긴 이유가 바로 행성 개척이었다.
또한, 왜 그들이 파멸했는지에 관한 비참한 기록들 또한 잠들어있었다. 밖에 어떻게든 나가면 전해줄 말이 아주 많아.
그러니 이쯤에서 바로 끝내도 괜찮지 않을까?
… 버티고 버텼다.
이미 3회차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4회차라 사실상 마지막 회차다. 5회차 이후?
솔직히 5회차가 되면 그냥 203호를 모두가 포기할 것 같아. 방이 이것 하나만 있는것도 아니니까.
“내 상황, 이제 알겠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엄청 힘들어….”
“이해했어.”
아리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내 옆에 앉아서 보온병을 내밀었다.
“… 이거 아리 피 아니야?”
“맞아. 의외로 피에도 나름의 칼로리는 있지. 또, 내 피는 여러 가지 효능이 있는 신비의 명약이니까.”
명약인지까진 모르겠지만, 아리의 피를 들이키자 활력이 돌긴 했다.
“고마워.”
“임시방편이야. 이걸로는 한계가 있지.”
아리는 내 상황을 전해 들은 후, 건물 문 바깥에서 대기 중인 괴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대여기로 누구누구 시간 빌렸다고 했지?”
“유송이, 차진철 그리고 너.”
“한가인은?”
“이번엔 없어. 알다시피 -”
“아, 기억나. 부화장에선 큰 쓸모가 없을 것 같아서 패스했었지…. 아쉽네. 지금 상황에선 제일 유용했을 텐데.”
“가인이가?”
“차진철을 소환해서 뚫고 나가야 하나? 아니지. 숫자가 너무 많아서 이건 무리네.”
“…”
“송이는 이미 부화장에서 한번 불러냈지?”
“응.”
“송이에게 빌린 시간 얼마나 남았어?”
“40분 정도. 건물이 부화장 근처라 송이 시간은 그리 오래 쓰지 않았어.”
“친화를 믿고 나가보는 게 나으려나?”
조금 전에 아리의 피를 마셨기 때문일까? 조금은 기운이 나서 끼어들었다.
“차진철부터 소환해서 한두 마리만 어떻게 쓰러트린 후에 송이를 불러내면 안 돼?”
아리가 고개를 저으며 친화의 특성에 관해 설명했다.
“친화는 혼돈체가 송이에게 상당히 친밀한 감정을 느끼게 할 뿐이지 무슨 정신 지배나 세뇌가 아니야. 더 강력한 존재의 명령이나 아주 강렬한 적대감이 생겨난 상태에선 친화도 한계가 있어.”
“충돌 후엔 괴물들이 화가 나서 송이의 친화를 무시할 것이다?”
“높은 확률로 그래. 어차피 차진철이 저 괴물을 다 죽일 수 없을 테니 소환하지 않는 게 나을 거야.”
결국 송이를 소환해서 친화의 힘이 저 괴물들의 공격을 막아내어 나갈 수 있길 기도해야 할 것 같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아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 과거 미로를 불러내는 건 어때?”
아리의 표정이 지극히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최후의 수단을 쓸 타이밍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내 위기’일 뿐이지 동료들은 대부분 멀쩡히 있을 테니까.
멀쩡한 것 맞지?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683,623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3호 – 저주의 방 ‘새로운 시작’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이제 출발하자.”
구덩이에 송이의 시체를 묻은 진철 형의 표정은 어두웠다.
물론, 저주의 방의 죽음이니 나가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죽음은 죽음이다. 결코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은솔 누나가 촉촉해진 눈가를 닦아내며 다소 아쉬워했다.
“자르는 자가 그냥 날아가 버렸어. 어떻게 할래?”
“그냥 날아가 줬으니 다행이죠. 본인을 길들인 송이가 죽었으니 괴물 놈이 우릴 죽이려 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새 우리에게도 나름의 정이 든 게 아닐까?”
“위에 타서 독하게 부려 먹기만 했는데요? 뭐 아무래도 좋죠. 어차피 거의 다 왔어요.”
진철 형이 내게 다가와서 물었다.
“미로 위치까지 정확히 몇 km 남았냐?”
“이젠 보이지 않아요.”
“아….”
이젠 모른다. 동료 위치정보 표기에 미로의 위치가 이렇게 뜨기 때문이다.
[김미로 : 사망]덕분에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송이가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말없이 죽어있던 이유 또한 깨달았다. 모종의 이유로 미로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송이를 소환했으나 실패한 모양이다.
“문제없어. 아마 저걸 따라가면 뭔가 나올 거야.”
그로테스크 위에 탑승한 누나가 간단히 말했다. 누나의 시선은 전방을 향해 있었다.
“무언가 보이세요?”
“… 거대한 형체 같은 게 보여. 그리고 뭔가 꼬물거리는 것들이 있는데?”
“꼬물거려요?”
“가면서 생각하자.”
이후 1시간 정도 이동한 후, 누나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로테스크 위에서 내려서 모두를 멈췄다.
“아까 말한 거대한 형체. 건물이야.”
진철 형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건물이요? 석기시대니까 돌 쌓아둔 건가?”
“아니야. 명백히 현대적인 건물이야.”
“그 말은?”
“아마 산맥의 문명을 세웠던 우주선 세력이 세웠겠지.”
“갑시다.”
“기다려봐. 근처에 괴물이 엄청 많아.”
“자르는 자 같은 놈입니까?”
“아마도. 하나, 둘, 셋. 어어….”
“…”
“다섯? 여섯? 일곱?”
“끔찍하군요.”
1-1로 붙어도 위협적인 괴물이 일곱 마리나 있다?
쉽지 않다. 이쪽에 사람이 셋이지만 은솔 누나가 전투 병력이 아니니 사실상 나랑 형 둘이서 일곱을 상대해야 한다.
“어려운데요?”
잠시 셋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미로가 죽기 직전까지 있던 위치에 괴물이 저렇게 많은 것을 보니 왜 죽었는지도 짐작이 갔다.
[조언 : 3 -> 2]‘괴물을 뚫고 건물에 도착할 방법이 있는가?’
[기다려라. 곧 길이 열리리라.]“엥?”
“뭐냐? 뭐 알려줬냐?”
“기다리라는데요?”
올빼미가 말한 ‘곧’은 정말로 곧이었다. 누나의 시선이 휙 돌아가더니 심각한 표정을 짓기까지 겨우 10분도 걸리지 않았으니까.
“가자.”
“누님?”
“길이 열린다는 말의 의미를 알겠어.”
“예?”
“그냥 가자.”
은솔 누나는 이상하게도 ‘왜’ 길이 열렸다는 것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단지, 누나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있었기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괴물이 있었다는 말이 민망하게도 건물에 도착해서 보안 장치를 통과할 때까지 우릴 막아서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그 대신, 건물 내부엔 우리보다도 먼저 도착한 선객이 있었다.
“가인 씨! 오셨네요! 저쪽에 세면대가 있으니 가볍게 씻으시는 게 좋겠어요. 참, 건물 입구 기계에 손 넣었다 빼시면 들어갈 수 있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엘레나는 평소보다도 더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역시나 밝게 웃으며 엘레나를 가볍게 껴안던 누나가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너…. 괜찮니?”
“네?”
“피리 불러줄까?”
“…”
“그냥 불러줄게.”
“위층에 승엽이도 데려올게요.”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견디지 못한 진철 형이 내게 물었다.
“아까부터 누님이 왜 저러는 거냐? 갑자기 피리는 왜 부른다는 건데?”
나도 매우 궁금했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정황상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엘레나와 승엽이가 시설 인근의 괴물을 끌어낸 것 같다.
대체 무슨 수를 썼고 누나는 뭘 본 걸까?
저녁 무렵, 우리는 마침내 203호에서 벌어진 1800년 전의 비극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건물, ‘남부 개척지부’에 아주 많은 자료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 이거, AI 놈이 승무원을 죽이려던 게 다 이유가 있었는데?”
진철 형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