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32)
331화 – Re 203호, 저주의 방 – ‘새로운 시작’ (1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683,624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3호 – 저주의 방 ‘새로운 시작’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203호에 다시 들어오기 전, 우리는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우주선의 동력원인 ‘코어’를 산맥에 가져가야 한다.
한데, 저 단순한 계획에서 ‘가져간다’라는 단어는 알고 보니 실행할 수 없는 단어였다.
전 회차에서 코어를 실제로 보았던 미로는 코어의 형상만 어렴풋이 인지했는데, 실제 코어는 미로의 기억보다 훨씬 거대하고 끝없이 열을 방출하는 기계였기 때문이다.
이런 물건을 우리가 옮기라고?
다행히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코어는 목적지만 지정하면 알아서 움직일 수 있는 이동할 수 있는 기계였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애초에 과거의 문명인들도 이 기계를 손으로 들어서 옮기진 않았을 테니까.
그러므로 문제는 코어가 아니라 ‘우리’였다.
“이제 걸어서 산맥까지 가야 하는 거야? 그냥 맨다리로?”
“이동하는 코어에 탑승하는 건 무리겠죠?”
“가까이만 가도 타죽을걸?”
1800년 전 코어를 옮긴 집단에겐 아마 별도의 이동 수단이 있었으리라. 그게 지금 우리에게 없을 뿐이다.
잠시 주변에 침묵이 번졌다.
우릴 위해 비행 괴물을 길들여줬던 송이는 원시의 평원에 묻혔고, 엘레나와 승엽이가 건물에 도착할 때까지 봉사하며 식량과 물을 조달해줬다는 원시인들은 왠지 모르게 생존자가 없다.
“그럴 수는 없겠죠.”
엘레나의 담담한 대답과 함께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앞으로 벌어질 불길한 일을 모두가 직감했기 때문이다.
우리 중 모두를 빠르게 이동시킬만한 초자연적인 존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
건물 내부에는 어둠이 깔려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깔끔했던 가구들은 난데없이 사방에서 솟아난 거미줄과 먼지로 뒤덮였다.
깔끔했던 벽은 벗겨지며 내부의 정체 모를 철골을 흉물스럽게 드러내었고, 천장에서는 계속해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흐으윽!
어디선가 흐릿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와 함께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바람 소리가 공명하며 견디기 힘들 정도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SF적 기술력에 도달했던 찬란한 문명의 주인들이 남긴 신비로운 건물이 한편의 공포영화 촬영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진철 형의 음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대체 언제까지 이 지랄을 견뎌야 하는 거냐?”
“엘레나가 다 끝났다고 할 때까지?”
“어이쿠! 물이나 마셔야지.”
누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물 상태는 확인해.”
“초록색이네.”
진철 형이 물을 바닥에 붓자 독한 냄새와 함께 테이블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형이 말문을 잃을 때쯤, 누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 왜 이 지랄이 난거지….”
왜 건물이 이 꼴이 되었는가?
엘레나가 괴물을 허공에 손짓 한 번으로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마도서의 원리를 설명하지 못하듯이, 엘레나 또한 불길한 상상의 원리를 알지 못했다. 다만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고 있을 따름이다.
엘레나의 설명에 따르면, 천사가 천국에서 태어나듯 악마는 지옥에서 태어난다.
“대륙을 가로질러 우리를 옮겨줄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악마는 그에 걸맞은 지옥에서만 태어날 수 있다고 하네요.”
“그 설명은 나도 들었어. 그래서 이 건물을 이렇게 지옥으로 바꿨겠지. 내가 궁금한 건, 이런 복잡한 ‘사전 작업’을 생략할 수 없냐는 거야.”
소파 아래에서 창백한 손이 삐져나와서 누나의 발목을 잡았다. 누나의 표정이 굳기 전에 진철 형이 재빨리 손을 뜯어냈다.
불길한 상상은 우리가 호텔에서 얻은 힘 중 고점이 가장 높지 않나 싶을 정도로 강력하다.
건물의 붕괴, 독살, 급작스러운 사고나 전염병까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불길한 일’을 전부 일으킬 수 있으며, 꿈에서나 나타날 강대한 괴물을 빚어낼 수도 있다.
심지어 아직 엘레나는 어려워하지만, 능력의 원주인은 자기 자신의 강화도 할 수 있었다.
“생략이라….”
“생각해봐. 예전엔 엘레나가 만드는 괴물은 죄다 시한부였지?”
“그랬죠.”
“언젠가부터는 괴물들이 존재하는 시간 자체가 훨씬 길어졌어. 약점을 극복 중이란 이야기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송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팔찌의 사용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얼어붙은 설원에서 마도서의 새로운 권능, 화신의 힘 일부를 깨우쳤다.
아리는 오래된 피에 숨겨진 다채로운 힘을 장기간에 걸쳐 일깨웠다.
이런 성장이 유산 자체의 성장인지, 사용자인 우리의 성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찌 됐든 이 힘은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엘레나 또한 초기와 달리 괴물을 존속시킬 수 있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그, 그렇겠지?”
“하지만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아요.”
“그래?”
능력의 원래 주인이었던 201호의 베아트릭스를 떠올렸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괴물은 영구히 존속할 수 있었고, 심지어 자기 자신의 정신만 깃들어낸 강대한 육신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지금의 엘레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숙련도가 높았다는 의미인데, 그런 그녀조차도 괴물을 허공에서 마구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랬기에 수석 연구원은 내부에 들어온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는 시설을 만들어내야 했다.
“악마는 지옥에서만 태어날 수 있다…. 이 문제는 베아트릭스도 극복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랬지.”
“그러니까 -”
그 순간, 위층에서 엘레나의 짜증이 터져 나왔다.
“다들 아가리 닥치지 못해? 비명 지르고 울부짖어도 모자랄 판인데!”
“…”
“…”
“꺄 아 아 아 악.”
“으 아 아 아 악.”
“둘 다 되지도 않는 연기 그만하시죠. 엘레나, 미안해요!”
“가인이 네가 사과하면 나중에 엘레나가 정신 차리고 부끄러워할걸….”
“누님, 그런 이야기 자체가 방해인 모양입니다.”
“그렇네. 그러면 우리, 엘레나도 도울 겸 지옥에 걸맞은 이야기나 해볼까?”
“지옥에 걸맞은 이야기?”
듣기만 해도 벌써 불안했다.
“엘레나는 불길한 상상을 발현시키기 위해 승엽이를 데려갔어.”
“…”
그렇다. 지금 1층에 나와 누나, 진철 형 이렇게 세 사람만 있는 이유는 엘레나가 승엽이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지옥을 떠올리는 데 승엽이가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유가 뭘까?”
“누님, 그냥 시원하게 말씀하시죠.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잠시 어딘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위층을 바라보던 누나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승엽이가 원시인들을 죄다 괴물 아가리에 던져넣었대.”
“예?”
“음?”
“건물 근처에 괴물 대여섯 마리가 있던 것 기억나지?”
“…”
“갑자기 그 괴물이 전부 사라지면서 안전해졌잖아?”
“우리가 그런 광경을 본 적은 없죠. 누나가 혼자 보고 말해줬을 뿐이지.”
“그래. 내가 봤는데, 갑자기 괴물들이 어딘가로 이동하더니 정신없이 ‘식사’를 시작하더라고.”
“…”
“수백 명에 달하던 원시인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마도 엘레나가 만들어냈을 ‘요정’들이 사방으로 도망가니까 괴물들도 그들을 잡아먹으려고 추격하면서 사라졌어. 그게 전부야.”
“대, 대체 그런 짓을 어떻게 한 겁니까?”
“엘레나 말로는 태초의 인간은 흡사 미래를 보는 주술사처럼 행동했다고 해. 괴물들을 보더니 저들에게 용감히 맞서 이겨내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네.”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런 말에 속아요?”
“너, 지구에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지금도 종교를 믿는 것 모르니? 나도 불교 믿어.”
“헛!”
“심지어 태초의 인간을 쓴 승엽이는 이 세계의 원시인들이 보기엔 정말 신이 내린 천사요, 사도였을 텐데.”
“…”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멀리 갈 것 없이 나부터가 1회차에서 산맥의 로봇들을 끌어내기 위해 원시인들을 근처에 돌아다니게 했으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기적을 부리는 신인은 그야말로 악마적인 카리스마로 이 별의 원시인들 위에 군림할 수 있으니까.
축복이 약해지며 원시인들에게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졌던 1회차의 승엽이와 태초의 인간을 사용한 지금의 승엽이는 아예 다른 존재다.
“다음엔 어떻게 했어요?”
“이 지점에서 내가 물어볼게. 태초의 인간의 명령어는 가인이 너랑 의사 선생님이 고민해서 만들었지?”
그건 아니다.
“아니죠. 기본적으로 승엽이가 짜요. 애초에 저나 선생님은 태초의 인간을 써본 적이 없으니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는지 등을 알기 어려우니까요.”
“그러면 너나 의사 선생님이 승엽이에게 조언하는 식?”
“네.”
“뭐라고 조언했어?”
“목표는 미로를 찾아내서 합류하는 것. 여기에 ‘우리’를 절대 해치지 말라는 말도 넣었어요.”
“명령어는 그냥 평이하네….”
“승엽이가 원시인들을 희생시킨 다음엔 어떻게 했어요?”
“아비규환 속을 아무렇지 않게 뚫고 걸어가더니, 연구소 근처에서 갑자기 멈췄대.”
“멈춰서?”
“엘레나가 가까이 가보니까…. 미로의 ‘잔해’가 있었대.”
“… 그게 더 끔찍하네요. 송이는요? 송이랑 같이 움직이다가 사고가 난 것 아닌가?”
“송이 흔적은 없었대.”
“흔적도 없이 먹힌 걸까요?”
“아마도. 아니면 시간대여기로 소환된 상태에서 죽으면 시신이 사라질지도 모르지. 그 부분은 나가서 미로에게 물어보자.”
듣고 있던 형이 한숨을 쉬었다.
“대화 주제가 딱 지옥에 걸맞긴 하네. 그래서 승엽이가 미로의 시신을 발견하고 태초의 인간이 풀렸다?”
“그런가 봐.”
“그러면 그 이전까지 계속 태초의 인간 상태였던 겁니까?”
“아마도.”
“아니, 제 말은 -”
태초의 인간을 지나치게 장기간 사용하면 사용 후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이 하염없이 불어난다.
정황상 승엽이는 일주일 이상을 태초의 인간 상태로 있었다.
“이렇게 길게 쓰면 다음 태초의 인간은 대체 언제 씁니까?”
“진철아. 이 방에서 그런 문제는 신경 쓸 필요 없어.”
무슨 말인가 하던 형이 잠시 고민하더니 답을 찾아냈다.
“… 방이 시작할 때마다 1800년이 흐르니까?”
“그렇죠. 능력의 대기시간은 승엽이가 자는 동안 다 지나갈 겁니다.”
승엽이의 후원자는 태초의 인간을 내리며 이 힘이 203호에서 매우 유용할 것이라 말했다. 그 의미를 이제 모두가 이해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은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회차면? 그러면 어떻게 되죠?”
“그건 나가서 생각하자.”
잠시 후, 형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슬슬 끝나가는 느낌이라 말하는 건데, 의외로 203호는 쉽지 않냐?”
“… 왜 그런 소리를.”
“아니 내 말은, 음식이 맛없고 걷느라 힘들고 이런 괴로움은 있지만 생명이 위험할 일은 별로 없었다는 거지.”
“…”
“지금 죽은 사람이 미로랑 송이인가? 송이는 미로랑 딸려가서 죽은 거니까 사실상 위험을 겪은 사람은 미로뿐 -”
“에잇!”
여기까지 들은 누나가 목에 둘렀던 수건으로 진철 형을 후려쳤다.
나는 여태껏 이 건물에서 엘레나가 일으킨 불길한 현상을 전부 합친 것보다 지금 형 입에서 튀어나온 저 말이 불길했다.
— 고오오오오!
불경한 울음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마침내 엘레나가 우리를 산맥으로 옮겨줄 괴물을 빚어낸 것이다.
3일 후, 우리는 산맥에서 할아버지와 의사 선생님과 재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