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40)
339화 – Re 203호, 저주의 방 – ‘새로운 시작’ (19) Fin
– 이은솔
한 줄기 섬광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시야가 빛으로 물들었다.
망막을 태워버릴 듯한 엄청난 열파가 온 세상을 갈아엎는 광경을 바라보며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설마 다 깼는데 이 폭발에 휩쓸려 다 죽어서 실패 이런 거 아니지?
에이~! 그건 아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어도 네 결말은 그리 허무하지 않으리라.」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나를 비춤을 느꼈을 때, 몸과 마음 혹은 영혼을 포함한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한없이 높은 하늘로 향했다.
높아서, 너무나 높아서, 이 장소가 하늘인지 우주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내 앞에는 아드라비타가 있었다.
“아, 아, 아, 아, 아….”
불경한 존재가 내 시선을 가득 채운다.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존재감이 삽시간에 내 영혼을 짓누르며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차오르던 때.
갑자기 알림이 떴다.
[‘정점에서 만물을 관조하는 자의 안구’를 획득하셨습니다!]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차라리 그냥 돌아버리는 게 좋았겠네. 이제 난 맨정신으로 눈알을 뽑아야 하는구나….”
손으로 눈 쪽을 푹 찔렀다.
“으아아앗!”
다, 다시!
“으아아앗!”
다시!
“에잇!”
「대체 뭘 하는 것이냐?」
“… 눈알 뽑기.”
「대체 왜?」
“해야 하니까.”
다음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촉수가 내 눈을 푹 찔렀다.
그러자 마치 유리병에서 달걀이 튀어나오듯 눈알이 통하고 튀어나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 획득한 ‘정점에서 만물을 관조하는 자의 안구’의 습득 조건은 뭐였을까?
본격적으로 시나리오가 시작한 후에 내가 우주공간 혹은 아주 높은 하늘로 나오는 것 아닐까?
한데, 지금 난 자력으로 우주공간에 온 게 아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드라비타가 갑자기 날 데려왔을 따름이다.
정말 죄수가 이런 돌발 행동을 하리라는 것까지 호텔이 예상하고 저런 조건을 만들어둔 걸까? 그게 아니라면….
「그대, 무슨 생각에 그리 골똘히 빠졌는고?」
“어쩌면…. 호텔의 의도는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이 별을 탈출하는 것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진행했다면 눈알도 자연스레 뽑았을 텐데.”
「대체 그대의 눈을 굳이 뽑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주선을 타고 별을 탈출하는 것.
죄수의 함정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그 또한 정말 해결책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이래서 저주의 방이 항상 어렵다. 답이 하나가 아니니까.
“아까부터 당신의 말이 멀쩡히 들립니다. 아마도 203호가 해결되며 모든 것이 끝나가기 때문이겠지요. 이 마당에 굳이 절 부르신 이유는요?”
「…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피리에 공격적인 힘은 없으니까요. 아마도 뒤틀린 마음을 되돌리는 힘이 아닐까요?”
확신은 없었다. 다른 유산 소유자들이 그러하듯, 나는 유산의 원리를 이해하고 쓰는 것이 아니므로.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
「아주…. 오래된 기억이었지.」
“…”
「그대, 모래성을 쌓아본 적이 있는가? 온종일 공들여 성을 쌓았는데, 파도가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자 그날의 노고가 물거품으로 돌아가 본 적 있는가?」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죠. 몇 달 동안 공들인 프로젝트가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빚덩어리로 변하는 일은 흔한 일이니까요.”
「1800년 동안 공들인 성이 사라져본 경험은?」
“그건 없네요.”
「허무했다. 분노도, 슬픔도 아니었다. 그저 허무했다. 분명 최선을 다해 그럴듯한 성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
「어떻게 해야 성을 지킬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여러 수를 쓰기 시작했다.」
“…”
「허나 잘 통하지 않았지. 모래성 속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해변의 아이들이 신처럼 보일지 모르나, 몰아치는 파도 앞에서 아이는 무력할 따름이니.」
“그래서 이번엔 수를 아주 독하게 쓰셨다?”
「그런데도 실패로 돌아갔구나.」
203호의 결말이 다가오는 지금, 마신 아드라비타가 느끼는 감정은 우리에 대한 분노나 멸망하는 세계를 관조하며 느끼는 슬픔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금 허무함을 느꼈다. 거침없이 몰아친 파도가 모래성을 허물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한 가지 우스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허무함 속에서도 그는 무언가 깨달은 걸까?
「내 최초의 목적은 모래성을 멋들어지게 쌓는 것이었지.」
“이 별의 인류가 새롭게 잘 시작하도록 돕는 거였나요?”
「정신 차려보니 모래성을 유지하는 것에만 매달리고 말았구나.」
흔한 일이다.
왜, 드라마에서도 종종 나오는 각본이잖아?
사랑하는 이를 위해 돈을 벌고자 했고, 돈을 벌기 위해 일에 충실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사랑하는 이를 돌아보지 않아 사랑을 잃었다.
어쩌면 신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말을 끝으로 아드라비타는 머나먼 상공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때쯤, 서서히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성공했습니다!
문명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태고의 세계, 야만과 무지로 가득 찬 원시의 땅!
가장 원시적인 세상이야말로 사실 가장 발전한 문명이 뿌린 씨앗이었음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참가자분들께 항상 알려드리고자 하는 부분이지요.
미지의 땅에서 정보를 모으고,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결론에 도달한다.
한데 바로 그 정보부터가 조작되었다면 어떨까요?
결론이 산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라고 말하면, 조금 양심이 없다 느끼시겠지요?
이번 방에선 약간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방에 머무르던 ‘손님’분의 행동이 다소 과했던 면은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이 정도는 선을 조금 넘긴 했지요.
보상과 별개로 약속드립니다.
다음에 들어가실 방에선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또한, 새롭게 태어난 어린 문명이 악신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축하합니다!
해피엔딩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 또한 약속드립니다.
.
.
.
동료 중 최종 해결 발생! 축하합니다. 최종 해결자 발생하여 구성원 전원이 무사 귀환합니다.
곧 선택의 시간이 시작합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내용이다.
‘이번 방에선 약간의 사고가 있었다.’ ‘방에 머무르던 손님의 행동이 과했다.’ 등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또, ‘다음에 들어가실 방에선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도 눈에 띄었다.
여러모로 동료들과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
– 김아리
— 철컹! 철컹! 부우우!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열차에 있었다.
“아리 양, 이리 오시지요.”
김상현은 이미 자리 하나를 잡고 앉아있었다. 그의 손엔 자그마한 책자가 들려 있었다.
“우리 지금 무슨 상황? 선택의 시간인가?”
“그렇습니다.”
“내가 최후의 섬광으로 코어를 저격했어.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오염된 땅이 순식간에 날아갔지. 그리고.”
“충격파에 휩쓸려 함께 멀리 날아갔습니다. 아마 그 과정에서 아리 양은 정신을 잃었나 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둘만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은솔 양이나 승엽 군은 폭발에 휩쓸려 죽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네.”
“정신을 잃으셨다면, 해결과 관련한 알림도 보지 못하셨겠군요?”
“그래.”
“나가서 이야기해봅시다. 의미심장한 내용이 적지 않았으니까요.”
의미심장한 내용이라.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대로 나가서 이야기해볼 일이다.
“빨리 골라. 그리고 나가자.”
“…”
“나도 염치는 있어. 아무리 그래도 이 방의 유산을 내가 먹기는 좀 그렇네.”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설마 유산을 내게 양보하려고? 주면 고맙게 받겠지만 -”
“이것부터 읽어보시지요.”
“제목이 특이하네. 두 개의 선택이라….”
김상현이 읽고 있던 작은 카탈로그 책자를 내게 넘겼다. 나보다 일찍 깨어나서 이미 뭔가 알아낸 걸까?
책자의 내용에 따르면, 우리는 이번 선택의 시간에 두 종류의 선택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선택은 언제나 그랬듯이 유산을 고르는 것이다.
“최후의 섬광, 이건 예상했는데 두 번째가 예상 밖이네. 미지의 세포?”
“그래도 이젠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아드라비타가 네게 내렸던 힘이야?”
“제게 내린 힘이자 대륙의 짐승들을 괴물로 바꾼 힘입니다.”
상현이 휘둘렀던 힘을 떠올려봤다.
오래된 피의 힘으로 강해진 내 움직임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수준의 신체 능력 강화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또, 몸 여기저기서 뼈 칼을 뽑아낸다거나 했던 것으로 미뤄볼 때 몸 자체를 변이하는 능력도 있는 것 같다.
내가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고민 없이 최후의 섬광이다.
오래된 피와 미지의 세포로 신체를 이중 강화하면 얼마나 강해질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래봐야 빠르고 강한 신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백질로 만들어진 몸을 뭘 어떻게 강화해도 한계는 있다. 그 증거로, 내가 최후의 섬광을 장전할 때마다 미지의 세포를 쓰던 김상현은 바닥을 구르느라 바빴다.
그러나 김상현은 미지의 세포를 택할 것 같았다.
203호에서 원시인 추장으로 수백 년을 살면서 높은 수준의 무예를 단련한 것 같던데, 그 격투술과 미지의 세포는 시너지가 난다.
또, ‘의사’로서의 전문지식이 신체를 변이하는 데 도움을 주겠지.
사실 이런 시너지를 떠나서 제일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상현아, 불로불사를 얻은 것 축하해!”
“…”
미지의 세포는 주인에게 불멸의 삶을 제공한다.
대다수 인간에겐 이것 하나만으로 다른 유산을 제치고 택할 가치가 있으리라.
김상현은 대답 대신 카탈로그의 페이지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두 번째 선택을 보시지요.”
두 번째 선택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기억과 망각,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이 부분이야말로 내가 이러쿵저러쿵할 문제는 아니네.”
“…”
— 철컹! 철컹!
침묵 속에서 기차는 하염없이 벌판을 달렸다.
바깥의 풍광은 흡사 아프리카 초원 같았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203호는 아닌 것 같다.
“왜 이런 선택지를 줬을까요? 호텔은 본래 정신적인 트라우마 또한 치료해주지 않습니까.”
“…”
“가만 생각해보니 알 것 같습니다. 정신적 피해가 도를 넘는 경우,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는 망각뿐입니다.”
“관리국에서도 그래. 일정 이상의 참혹한 기억은 망각이 최고의 치료야. 201호에서 정신이 나갔던 엘레나는 하룻밤 후 모든 기억을 잃었지.”
“한데, 지금의 전 지워야 할 기억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김상현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가볍게 비볐다. 그 순간, 그의 손끝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 뭐야 그건?”
“원시시대에 불을 피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손가락만 튕겨도 불이 붙더군요.”
헛웃음이 나왔다. 뭔가 기묘하면서도 독특한 재주였는데, 사실 라이터가 있으면 굳이 필요한 재주인가 싶긴 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어. 수백 년간 203호에 있으면서 다양한 재주가 생겼는데, 기억을 잃으면 그 재주를 잃을까 두려워?”
“완전히 잃진 않을 겁니다. 설명하긴 어려운데, 그냥 압니다. 축복, 성실의 힘으로 얻은 능력은 기억을 잃어도 쓸 수 있습니다. 다만….”
“다만?”
“그 능력을 얻는 과정을 잊고, 얻은 후에 사용한 기억을 잊겠지요.”
슬슬 상황을 이해했다.
상현이 망각을 택한다 해도 203호에서 얻은 신비로운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능력을 사용해온 기억을 잃으므로 숙련도가 사라진다.
“강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기억을 가지고 나가야겠지.”
이후의 말은 아꼈다. 서로 다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300년 동안 가족을 만들고 자손을 남긴 끝에 작은 왕국을 세운 인간이, 그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나가서 호텔을 다시 오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오롯이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다.
— 끼이익!
그때, 열차가 잠시 정차했다.
…
또 한 명의 사람이 열차에 탑승했다.
그에게는 ‘첫 번째 선택’에 끼어들 권리는 없었다.
해결의 순간에 이미 참가자의 자격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선택’에 끼어들 권리는 있었다.
“…”
그는 인간이었다. 아니, 새였다. 혹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아 사람의 말을 잊은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인간의 몸을 이리저리 매만지는 청년을 보며 생각한다.
마도서를 쓸 수 있었다면, 왜 새의 몸에 갇혀있었을까? 원시인의 몸을 빌릴 수 없었을까?
갇혀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정말로 300년을 새의 몸으로 살았다면, 그는 지금 대체 어떤 상태일까.
열차가 조금,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