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41)
340화 – 선택의 시간 (1)
– 김아리
그는 한참 동안 자기 손과 발을 신기하다는 듯 만져보고 움직여봤다.
수백 년 만에 인간의 몸을 되찾은 감상은 대체 어떨까?
곧 그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기이하게도 그가 다가올수록 주변의 온도가 내려가고 조명이 어두워졌다.
“뒤늦게 생긴 의문이 있어.”
“말씀하시죠.”
“가인이는 왜 새의 몸에 갇혀있던 거야? 마도서를 쓸 수 있으니 다른 원시인의 몸으로 갈아탈 수 있었을 텐데….”
“딱히 300년 내내 갇혀있던 건 아닙니다. 초기엔 사람의 몸도 종종 빌렸습니다.”
“그래?”
“마지막으로 사람의 몸을 빌렸을 때 말했습니다. 원시인의 몸에 ‘실’이 있다. 그게 두려워서 원시인의 몸에 들어가지 않겠다.”
“…”
이해했다.
203호 후반부, 마신은 모종의 수단으로 군단을 죄다 괴물로 바꾸었다.
즉, 마신에겐 군단을 통제할 수 있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가인은 언젠가부터 그 연결고리를 마도서의 힘으로 눈치챈 것 같다.
확실히 그런 상황에서 원시인의 몸에 들어가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
그때, 가인이 말없이 내 옆에 앉았다. 혹시나 해서 말을 걸었다.
“너, 뭐 기억나는 것 있어?”
그는 대답 대신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서 내 얼굴과 목을 만졌다.
“…”
마치 ‘목소리’를 어떻게 내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몸만 큰 어린아이의 행동 같네….”
“실제로 그 비슷한 상황이긴 하죠.”
“너랑 있을 때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행동했어?”
“지금 이 정도면 꽤 회복한 상황입니다. 피리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이게 회복한 상태라고?”
“… 말기에는, 그냥 새였습니다. 아주 잠깐씩 신비롭게 행동하곤 하는 그냥 새.”
김상현의 표정이 너무나 어두워서 도무지 더 물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수백 년을 함께한 동료가 그냥 짐승처럼 행동하는 것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으리라.
침묵 속에서 가인을 관찰한 끝에 지금 가인의 상태가 상현보다 훨씬 심각함을 깨달았다.
상현은 사람의 몸을 유지한 채 부족의 리더이자 누군가의 남편 혹은 부모로서 살았다. 인간의 삶이다.
그랬기에 상현은 300년을 견뎌낸 지금도 과거와 달라졌을지언정 명백한 인간이었다.
반면 가인은 대부분 시간을 새의 몸에 갇힌 채, 오로지 마도서의 힘에 의존해 수백 년을 버텼다.
또한, 마도서는 그를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힘인 동시에 그의 지성을 무너트리는 마성의 힘이기도 했다.
지금의 가인은 인간이라기보다 인간의 몸을 얻은 혼돈체에 가까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상현이 말하는 ‘말기’의 모습처럼 아예 지성을 잃은 동물 같지는 않았다.
피리의 힘으로 지성 자체는 회복했으나 인간의 지성이 아닐 뿐이다.
그때, 무언가 금속음이 들린다 싶더니 세 개의 접시가 담긴 금속 카트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건….”
“식사군요. 밥은 먹으면서 이야기하라는 것 같습니다.”
접시를 가져와 뚜껑을 열자 거짓말처럼 각자 원하는 음식이 담겨있었는데, 이런 점이 너무나 익숙한 호텔 느낌이라 정겨운 느낌마저 들었다.
— 사사삭!
상현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의 접시엔 정체불명의 잎사귀 같은 것이 있었는데, 상현은 그 잎사귀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일부는 잘게 부수고 일부는 돌돌 말아서 –
“담배 피워? 원래 피웠나?”
“원래 어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피웁니다. 이게 또 향이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한 상현은 담배를 입에 물더니 손가락을 튕겨서 불을 붙였다.
“후우우! 이게 얼마만입니까? 정말이지 -”
“…”
“에취! 쿨룩!”
다행히 내가 어떻게 지적하기 전에 옆에 있던 가인이 즉시 기침했다.
그 소리를 들은 상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담배를 카트 하단의 쓰레기통에 버렸다.
“실수했군요. 죄송합니다.”
“괜찮아.”
식사 도중에 옆의 사람에게 말 한마디 없이 당연하다는 듯 담배를 피우는 행위.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우리 눈치를 보던 과거의 상현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다.
새삼스럽게 과거의 상현과 지금의 상현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타박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난 300년, 김상현은 무슨 노예나 하인으로 산 게 아니라 도시의 왕이자 지배자로 살았기 때문이다.
남 눈치를 볼 일이 얼마나 있었겠어?
잠시 후, 상현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기나긴 세월을 살아가며 종종 아쉬울 때가 있더군요.”
“어떤 점?”
“제 입으로 -”
“상현아, 이제 그냥 말 편하게 해.”
“…”
“아니면 내가 오빠라고 불러줄까? 상현 오빠.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음 순간, 상현은 참기 힘들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아닙니다.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하지. 그렇다고 오빠라고 부르진 말고. 그런 건 원래 한번 들으면 웃기지만 두 번부터는 재미없으니까.”
“그래. 뭐가 아쉬웠는데?”
“그리 오래 살면서도 진득하게 무예나 전투 기술을 단련할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
“전사가 아니라 지도자로 살았으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위기에 맞서기보단 피할 때가 많았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전사로서 탁월한 성취를 바란다면, 괴물이 다가올 때 피하는 게 아니라 맞서야 한다.
목숨을 건 투쟁은 다른 방법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니까.
그런데, 이건 자기 목숨 하나만 책임지면 그만인 전사의 태도다.
원시 부족의 추장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남아나는 사람이 없다.
“가인 군은 나와 달랐지.”
그 말과 함께 상현은 접시 위의 고기를 잘게, 아주 잘게 썰었다.
그 와중에 나이프가 어찌나 빨리 움직였는지, 흡사 숙련된 기사가 검술을 스테이크를 써는 데 쓰는 듯했다.
“냉병기를 다루는 법을 익혔나 보네.”
“이젠 전문가라 자부하지.”
상현이 마치 어린아이가 집어먹기 좋게 고기를 써는 모습을 보며 뒤늦게 옆에 있던 가인을 살폈다.
“… 에비 지지. 가인아, 그거 맨손으로 만지는 것 아니야.”
가인은 나이프나 포크는 건드리지도 않고 통 고깃덩이를 손으로 건드리며 이걸 어떻게 삼킬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상현이 잘게 썬 고기를 가인의 접시로 옮겼다.
그제야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가인이 뒤늦은 식사를 시작한 후, 나와 상현의 대화 주제가 ‘선택’으로 옮겨갔다.
“어떤 유산을 고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까?”
“오빠, 당연히 미지의 세포 고르는 것 아니었어요?”
“고민 중입니다.”
나는 상현이 이걸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랐다.
“고민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네. 설마 너무 오래 살아서 불로불사에 관한 관심이 사라진 거야?”
“그럴 리가. 젊음이 없는 장생이라면 지긋지긋하지만, 미지의 세포는 내게 젊음 또한 보장해줄 테니 전혀 원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뭘 고민해?”
“호텔에서 오랜 세월 견뎌내며 깨달았는데, 불로불사니, 뭐니 하는 게 호텔 내부에선 별 의미가 없어. 나가지 못한다면 의미 없지.”
이해했다.
만약 최후의 섬광이 미지의 세포보다 강력한 유산이라면 불로불사를 탐해 미지의 세포를 고르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힘이 부족해 죽으면 한빙지옥에 갇힐 텐데, 불로불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김상현에게 있어서 유산 선택의 최우선 기준은 불로불사가 아니라 호텔 탈출에 도움이 되는가이다.
그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미지의 세포는 강력한 유산이다. 적어도 ‘개인의 신체 강화’라는 면에선 지금까지 우리가 확인한 다른 유산을 능가한다고 본다. 루다흐를 통한 신체 강화는 확실히 능가하며, 직접 너와 겨루어본 경험에 따르면….”
“오래된 피도 능가하지.”
붙어본 결과 내린 결론이다.
“한데, 그 한계 또한 명확하다. 결국 뭘 어떻게 강화하고 변이시켜도 인간의 몸은 단백질로 만들어진 살덩어리이다.”
“전신을 티타늄으로 바꾼다거나 할 수는 없어?”
“불가능합니다.”
“으음….”
“너와 겨루며 수도 없이 느꼈다. 미지의 세포가 오래된 피를 능가했는데도, 거기에 내가 연마해온 무예가 더해졌는데도…. 이길 수 없더군요. 어째서였을까?”
“최후의 섬광. 그리고 평대면 평대, 존대면 존대로 통일 좀 해. 엄청 거슬려.”
“본인도 예전엔 말투가 마구 섞였다면서? 나한테 갑자기 완벽히 바꾸라고 합니까?”
“그건 그렇네.”
“여하튼, 미지의 세포가 가진 힘의 한계를 느꼈다. 미지의 세포에 담긴 잠재력을 바닥까지 긁어낸다 해도, 그 힘으로 내 몸을 한계까지 강화한다 해도….”
“레이저에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
“그래.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두 유산의 고하는 분명했다.”
“…”
“단순히 두 유산이 맞붙을 때의 승패를 말하는 게 아니야. 말하자면 이런 이야기지. 미지의 세포의 힘으로 목숨 걸고 싸워서 쓰러트릴 수 있는 괴물을, 최후의 섬광은 손가락 한번 까딱해서 파괴할 수 있다.”
들으면서 이해했다.
나는 최후의 섬광을 사용했고 김상현은 미지의 세포를 사용했으니까 김상현은 미지의 세포를 선호할 줄 알았으나 전혀 아니었다.
내가 최후의 섬광으로 그를 위협할 때마다 상현은 속수무책으로 바닥을 굴렀는데, 이게 그에겐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던 것 같다.
상현이 하려는 말은 충분히 이해했다.
이건 미지의 세포의 한계라기보다 ‘인간의 몸’의 한계다.
미지의 세포로 인간의 몸을 아무리 강화해도 전투력이라는 면에서 최후의 섬광과 비교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반론이 떠올랐다.
일격에 모든 위력을 쏟아내고 긴 휴지기가 찾아오는 필살기 유형의 유산과 지속적인 신체 강화를 제공하는 유산을 단기 결전으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전자에 유리하다.
호텔에서 겪는 문제는 전투만 있는 게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말을 아끼기로 했다.
이 정도 생각을 김상현이 떠올리지 못했을 리 없으니까.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라면 존중할 필요가 있겠지.
“이미 결정한 것 같네. 카탈로그에 적어서 두면 되겠지?”
“그럴 겁니다. 한데 아리 양, 손을 닦는 게 좋겠습니다.”
“어?”
일어서다가 무슨 말인가 싶어 내 손을 살폈다. 손 전체가 번들거리는 고기 기름으로 가득했다.
“뭐, 뭐야?”
상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태 몰랐나? 새삼스럽지만 가인 군의 힘은 대단하군요.”
“…”
“이번엔 본인 손을 유심히 보시죠.”
잠시 후, 내 손이 저절로 움직여 가인의 고기 접시 위로 올라갔다.
곧 내 손은 접시 위의 고기를 강하게 움켜쥐어서 뜯어냈고, 그렇게 뜯어낸 고기를 가인은 행복한 표정으로 집어먹었다.
“…”
“네 손을 나이프 대용으로 쓰고 있는 거야. 나이프를 쓰는 게 불편해서.”
“…”
“페로의 몸에 깃들고 오랜 시간이 흐르자 저런 재주를 부리기 시작하더군요. 주로 신도들의 몸을 자기 몸처럼 편히 조종하는 용도로 썼어.”
“전혀 느끼지 못했어. 내 손이 멋대로 움직이는데도. 심지어 지금도 감각이 없어. 이게 대체 뭐야? 화신의 힘의 일종인가?”
물론, 상현도 대답해줄 수 없었다.
능력 자체는 화신의 힘의 연장선인 것 같다.
본인의 몸을 통제하는 동시에 타인의 신체 일부의 통제권을 빼앗는 것이니까.
과거에 보인 힘이 몸 전체의 통제권 강탈이라면, 지금은 신체 일부만 조종하는 것이니 규모 면에선 도리어 작아졌다.
하지만 훨씬 편하게 쓰고 있는 게 보였다.
화신의 힘은 상태창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채 10분 쓰기도 힘겨워했는데, 지금처럼 손 하나만 조종하는 건 거의 숨을 쉬듯 편안히 쓰는 것 같았다.
다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종종 했던 생각이지만….
지금의 그는, 명백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들어선 것 같았다.
이런 내 불안감을 읽어낸 상현이 조심스럽게 변호했다.
“가인 군에게 딱히 나쁜 의도는 없을 거야. 그냥 어, 본인의 몸과 타인의 몸을 구태여 구분하지 않는 마인드일 뿐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마인드인데?”
“자, 자유로운 미국의 영혼일지도….”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한 거야?”
상현은 다시 어색하게 이런저런 이유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가인은 아드라비타가 조종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원시인의 몸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상황에 따라 원시인의 손을 빌리려다 보니 이런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건 상현이 가인에게 상당한 심적 부채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정도였다.
“이제 슬슬 알만한 건 다 알았으니 나갈 준비나 하자. 유산은 최후의 섬광이지?”
“맞아.”
“기억과 망각은?”
“…”
“혼자 조금 더 생각해봐.”
상현에게 혼자 고민할 시간을 주기 위해 가인의 팔을 끌고 열차를 걷기 시작했다.
사실, 상현이 무슨 결정을 내릴지는 짐작이 갔다.
그는 모든 기억이 있는 지금도 아무 문제 없이 인간다웠으니까.
“문제는 너네.”
가인은 어느새 창가에 바짝 붙어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 사이, 아까부터 주인이 누구인지 헷갈리는 내 오른팔이 저절로 움직여 가인이 편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의자를 밀어주었다.
“…”
그때, 가인이 갑자기 내 쪽으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