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43)
342화 – 파티 타임 – 오랜만의 회의 (1)
– 한가인
그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꿈을 꾸었다.
꿈속의 나는 새가 되었는데, 날개를 펄럭이며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일이 무척이나 즐거웠기에 내가 새인지 아닌지 고민하지 않았다.
갑작스레 깨어나며 생각하니 놀랍게도 나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꿈을 꾸며 새가 된 것인지, 새가 꿈을 꾸며 사람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사람과 새는 명백히 다른 생물이며 구분이 있다.
그러나 생각하는 주체는 어느 쪽이든 내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 몸의 형태에 구태여 집착할 필요는 없으며 이것이 곧 위대한 이치다.
손에 잡힐 것 같았다.
감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위대한 무언가가 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한 걸음.
딱 한 걸음만 내디디면 분명 지고한 위치로 비상(飛上)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쯤 하라.」
…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는 법.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
어렴풋이 거대한 새의 형상을 보았다.
가라앉는다.
끝없이 비상하던 의식이 다시금 자그마한 몸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683,628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아.”
침대 위에서 깨어났다.
각성과 동시에 견디기 힘들 정도의 두통이 머리를 강타했기에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간신히 두통이 가라앉을 때쯤, 내가 고통스러웠던 203호에서 나왔음을 알았다.
203호에서 내가 어떻게 됐더라?
부족에서 시작해서 괴물을 때려잡고 동료들과 합류했다.
미로가 있는 장소로 이동한 후, 신비로운 연구소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어냈다.
마침내 우주선을 타고 탈출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코어를 가지고 산맥의 우주선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주선에서….
이 뒤의 기억이 흐릿하다. 우주선에 도착하자마자 죽은 걸까?
죽었다면 어떻게 죽었는지라도 기억이 나야 하는데, 정작 어떻게 죽었는지에 관한 기억은 없었다.
뭐, 아무래도 좋다. 어떻게든 나왔으니까.
그런데 왜 방 밖이 아니라 침대에서 깨어난 걸까?
일단 밖으로 나가서 동료들에게 상황을 물어봐야 할 것 같다.
*
“앗! 가인아아아! 나왔어, 나왔어!”
나오자마자 105호 입구에서 서성거리던 미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팔을 잡아당겼다.
새삼스럽지만, 얘는 생긴 건 아리랑 판박이인데 믿기 힘들 정도로 행동이 달랐다.
“가인아! 고생했어.”
“응?”
“너무 힘들었지?”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나 따라와.”
미로에게 끌려가면서 들어보니 좀 황당했다.
203호는 해결된 상태인데, 방에서 나오자마자 내가 휘청거리더니 기절했다고 한다.
다과 테이블 쪽으로 이동하자 동료들이 있었다.
“오! 가인이 일어났니?”
“너 괜찮냐? 갑자기 기절해서 놀랐다 인마!”
“좀 머리가 띵 하지만 괜찮아요. 엘레나랑 송이는요? 할아버지도 안 보이네?”
“지하에서 놀고 있어.”
나머지 사람들은 테이블에서 과자와 음료를 먹고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평화로운 장소에서 모두와 재회하자 기쁘면서도 살짝 아쉬웠다.
동료들이 이미 잔잔한 분위기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저주의 방에서 막 나오면 단체로 날뛰며 환호하곤 한다.
그때 나도 거기 껴서 같이 고함지르곤 했는데, 보아하니 이미 환희의 순간은 지나간 상태였다.
갑자기 아리가 날 툭 건드리더니 본인 옆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이라 왜 이러나 싶었으나 굳이 다른 자리에 갈 필요는 없었기에 아리 옆에 앉았다.
“왜 그래?”
“물어볼 게 있어. 203호에서의 일, 얼마나 기억나?”
기억나는 내용을 간단히 전해줬다.
“흐음…. 마취 가스에 당하기 전까지의 기억만 남았나 보네. 그 후에 페로의 몸에 들어간 기억은?”
“내가 페로 몸을 빌렸어?”
아리는 대답 대신 무언가 미묘한 표정으로 갑자기 앞의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나도 아리 따라서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았는데, 그 와중에 선생님의 행동이 제법 웃겼다.
마치 세상에 둘도 없을 귀한 음료를 대하듯이 커피의 향을 깊이 음미하며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현아.”
“후우우….”
“상현아.”
“이 향이란 대체? 후으읍! 이것이야말로 문명의 기적이 – 으악! 갑자기 뭐야?”
선생님은 아리에게 걷어차이자마자 인상을 확 찌푸리는가 싶더니 그 옆의 날 발견하자 다시 표정이 풀렸다.
“오호! 가인 군, 깨어나셨군요?”
“네.”
“상현아, 얘 우주선에서 나온 후의 기억은 아예 없는 것 같아.”
“그래?”
선생님의 표정에 갑자기 풍부한 감정이 실렸다.
어딘가 아쉬워 하는 것 같기도 했고,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가인 군, 수고하셨습니다.”
“네….”
솔직히 이 시점까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다면 바보고, 난 내가 바보는 아니라 생각한다.
보아하니 내가 203호 후반에 페로의 몸을 빌려 나름대로 크게 활약한 것 같다.
그런데 왜 기억을 잃었지?
“우리끼리는 이미 끝냈습니다만, 가인 군에게 다시 설명해 드릴 필요가 있겠군요. 승엽 군, 좀 도와주세요.”
“…”
“상현아, 얘 이름은 박승엽이 아니라 차진철이야.”
“아, 그랬나?”
“하핫! 아직 우리 이름이 헷갈리시는 모양입니다. 상현 형님이 예전 일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신 모양이니….”
“하루 이틀이면 더 이상 실수하진 않을 겁니다.”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하기 전, 잠깐의 문답을 통해 느꼈다.
의사 선생님은 이제 몇몇 동료, 특히 아리에게 말을 편히 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애초부터 선생님의 나이가 아리와 할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사람보단 꽤 많다 보니 어색하진 않았다.
진철 형 같은 사람은 오히려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하는 태도를 어색하게 여기곤 했으니까.
또, 왠지 모르게 우리 이름을 헷갈리곤 했다.
“선생님, 이제 제게도 말 편하게 하시죠.”
“아닙니다.”
“예?”
“제가 가인 군을 편히 대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군요. 이제 잠시 제 말을 경청하세요.”
…
긴 이야기였다.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이기도 했다.
203호가 해결된 방식이나 선생님이 겪은 기나긴 고통도 물론 충격적이었지만, 결국 내게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내가 겪은 일이다.
“… 제가, 페로의 몸으로 수백 년을 살았어요?”
“그렇습니다. 사실 이 정보는 가인 군에게 숨기자는 견해도 나왔습니다.”
“너무 충격받을까 봐?”
“비슷하죠. 하지만 아리 양이 별 의미 없다고 하더군요.”
옆에 있던 아리가 간단히 답했다.
“이제는 서로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아리 넌 지금도 거짓말 많이 하잖아.”
“맞아 맞아!”
미로가 내 말에 맞장구치자 아리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숨길 수 없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숨길 수 있는 거짓말은 해도 된다는 이야기였는데, 왠지 모르게 미로가 움찔거렸다.
“그렇네. 내가 페로에게 깃들었다는걸 본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니까 숨길 수 없었겠네.”
또, 동료들이 이런 정보를 숨겼다 해도 올빼미가 어떤 식으로든 내게 알렸을 것 같다.
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동료들이 다들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타난 엘레나는 말없이 내 손을 꽉 잡았고 미로나 승엽이는 훌쩍거렸다.
아리나 선생님은 날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지하에서 올라온 할아버지는 혹시 정신적인 상담이 필요하다면 꼭 말해달라 했다.
진철 형은 마치 소년만화 주인공을 본 표정으로 내 흔들림 없는 의지에 크게 감동하였다는 소릴 꺼내기도 했다.
솔직히 엄청 어색했다.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집 밖에 기자들이 쫙 깔려있었다 치자.
알고 보니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악마와 맞서 싸워 지구를 구했는데, 악마를 퇴치한 후유증으로 그 영웅적인 투쟁의 기억을 전부 잊었다.
이 상황에서 무슨 기분이 들까? 그게 바로 지금의 내 기분이다.
그때, 날 관찰하던 의사 선생님이 간단히 정리했다.
“가인 군. 혼란스럽다면 그냥 놓아버리셔도 됩니다.”
“…”
“어차피 지나간 방입니다. 지나간 일을 굳이 떠올리려 애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오늘 하루의 즐거움, 알고 보니 내가 영웅이었다 정도의 느낌이면 충분합니다.”
그때, 엘레나가 한 가지 의문을 던졌다.
“지나놓고 보니 궁금한데요, 그래서 203호의 탈출 조건과 해결 조건은 정확히 뭐였을까요?”
선생님이 그 질문에 답했다.
“미로 – 참, 엘레나. 저주의 방이 으레 그렇듯 복잡하게 생각하면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순한 문제다. 죄수를 떼어내고 생각할 필요가 있지.”
“죄수를 떼어내고요? 104호 이후로 죄수가 가장 열심히 존재감을 드러낸 방이었는데.”
“해결 후 알림의 내용을 은솔이가 말했잖아? 아드라비타의 폭주에 가까운 개입은 호텔의 상정 외였다고 봐야 한다.”
이 부분 역시 흥미로웠다.
방이 해결되며 나타난 해결 알림에 따르면 호텔은 ‘손님’의 행동이 지나쳤다며 우리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또, 다음 방에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며 약속해줬다.
“다음에 들어가실 방에선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이 문장 재밌지 않습니까? 해석의 여지가 많아 보이는데.”
선생님의 말씀에 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어떤 방 들어갈지 정할 때 다시 이야기해보자. 그리고 호텔이 준비한 시나리오 말인데, 사실 AI 중심 아니었을까?”
엘레나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AI 중심? 죄수가 중심이 아니고?”
“멸망한 문명, 모종의 이유로 생존자를 적대하는 AI. 어떤 식으로든 AI를 처치하거나 큰 타격을 주면 탈출이고, AI를 설득하거나 제압해서 별을 탈출하면 해결이었을 것 같아.”
선생님이 한 마디 덧붙였다.
“결국 큰 의미 없어진 셈이지. 아드라비타가 멋대로 뒤엎었으니.”
이것을 끝으로 203호의 이야기는 슬슬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의사 선생님의 ‘마술 쇼’였다.
— 틱!
“우와! 이거 완전 초능력 같아요.”
“형님, 그거 담뱃불 피우는 데 아주 좋겠습니다.”
“실제 그 용도로 많이 썼지.”
선생님은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불꽃을 일으킨다거나, 케이크를 써는 나이프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여서 테이블을 썰어내는 묘기를 부렸다.
불꽃을 일으키는 건 생각만큼 대단한 능력은 아니었다.
거대한 화염을 일으키는 능력이 아니라 딱 담뱃불 정도 붙일만한 화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냉병기를 다루는 능력이나 탁월한 무술 실력 등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가장 도움이 될 힘은 바로 ‘최후의 섬광’이겠지.
… 나도 레이저 한번 쏴보고 싶었는데.
“참, 내일부터 파티 타임이죠?”
내 질문에 할아버지가 답했다.
“그렇지. 아까 알림 보니까 요번엔 5일이나 준다더라.”
“꽤 기네요. 일정은 정했나요?”
“우선 내일 아침에 축복의 성소부터 가야지. 그게 최우선이다. 요번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재미를 볼 것 같은데….”
옆에서 하품하던 아리도 거들었다.
“탐색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요번엔 그냥 쉬자. 203호에서 너무 힘들었잖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아리가 해준 말에 따르면, 2층에 도착하며 발생한 숨겨진 요소는 두 개의 숨겨진 방과 두 명의 숨겨진 NPC이다.
부활의 방과 거울의 방, 신비의 장인까지 찾았으니 방은 모두 찾았고, NPC는 한 명 남은 셈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다들 탐색에 대한 열의는 많이 사라진 듯했다.
아리 말마따나 203호에서 너무 힘들었기에 휴식이 필요하기도 하고.
“은솔 누나! 탐욕의 손, 이번엔 써야 하지 않아요?”
문득, 꽤 긴 대화 도중에 누나가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평소엔 우리 중 가장 말이 많은 사람 아니었나?
“… 아. 그래야지. 그렇지 않아도 아까 말해놨어. 성소에 다녀오는 대로 쓸 생각이야.”
누나는 무언가 깊이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송이는 어디 있어요?”
아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식물원에서 페로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을 거야.”
“마음의 치유?”
“…”
다과 테이블에서의 대화가 끝날 무렵, 다시 상당한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쉬겠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가인이 떠나간 후, 아리는 의아하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은솔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갑자기 혼자 딱 굳어서 한마디도 안 하네?”
“…”
“누님? 괜찮으십니까?”
“조명.”
“예?”
“조명이 좀 어두워지지 않았니?”
은솔의 말에 동료들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특별한 변화를 찾아낸 사람은 없었으나, 아리가 미묘한 표정으로 답했다.
“열차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긴 했는데.”
“열차?”
“이번 선택의 시간은 열차 비슷한 장소에서 진행했어.”
“거기서도 가인이가 나타날 때 조명이 흐려졌어?”
“그런 느낌을 받았어.”
그 말과 함께 은솔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그때, 커피를 마시던 상현이 은솔에게 물었다.
“은솔 양. 가인 군이 당신 눈에 어떻게 비칩니까?”
“… 별것 없어요. 그냥 가인이에요.”
잠깐의 침묵과 어색한 태도를 느끼며 상현은 은솔이 거짓을 말했음을 알았다.
동시에, 은솔이 자신이 본 무언가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현은 은솔의 태도를 이해했다.
돌이킬 수 없는 변화라면, 구태여 시시콜콜 떠들어 모두의 위화감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행위는 갈등 유발일 뿐이다.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차진철이 가벼운 톤으로 말했다.
“요번엔 누가 성소에서 강화할 수 있겠습니까?”
기다렸다는 듯 상현이 답했다.
“진철 군은 저번에 강력한 강화를 위해 기여도를 모았으니, 이번엔 확실히 가능하겠군요.”
“하하! 저 말고는요?”
“내 이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리 또한 동의했다. 기여도를 모은 차진철과 203호의 가장 큰 공로자인 김상현의 이름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외에도 더 있을 것 같았다.
특히, 강화한 지 오래된 사람이라면 순서가 돌아올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