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44)
343화 – 파티 타임 – 축복의 성소 (2)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683,62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이른 아침, 복도에서 다른 동료들을 기다리던 중 엘레나가 다가왔다.
“아까부터 허공을 노려보는데 뭔가 있어요?”
“아, 상태창 날짜가 너무 가독성이 떨어져서요.”
“어떻게 적혀있는데요?”
“68만 3,629일 이라네요.”
“… 어, 엄청나게 큰 숫자네요. 전 조언이라도 쓴 줄 알았는데.”
“조언은 마도서 연구에 썼어요.”
“마도서라….”
엘레나가 어딘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 하고 싶은 말이 생겼는데 아끼는 듯했다.
“하실 말 있으세요?”
“… 아니에요.”
슬슬 사람들이 모여들자 자연스레 다 같이 축복의 성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강화’를 얻을 것임이 예정된 진철 형은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고, 몇몇 사람들은 부럽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번 강화 순서는 누구일까?
무언가 헤아리던 은솔 누나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강화한 지 오래된 사람이 슬슬 때가 됐을 것 같네. 승엽이나 아리는 202호 끝나고 강화했으니까 아닐 것 같아.”
같은 이유로 201호 해결 후 강화한 엘레나도 아닐 것 같다.
그때, 송이의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이번엔 제 차례 아닌가요? 전 103호 이후로 강화한 적이 없는데.”
“나도 만만치 않게 오래됐다.”
할아버지 또한 툴툴거리는 반응을 보일 때쯤, 우리는 성소로 이동할 수 있는 1층 정문에 도착했다.
*
김상현, 유송이, 차진철, 한가인의 강화가 가능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성소에서 리스트가 나오는 순간, 모두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의사 선생님이나 진철 형은 사실상 반 확정이고 송이도 워낙 오래됐으니 슬슬 강화할 때가 됐다.
한데 내 이름이 있을 수 있다는 건 나 자신부터가 예상하지 못했다!
“헛! 제 이름이 있네요?”
“오랜만이네! 축하해!”
곧, 동료들이 가볍게 축하의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마치 자기 일처럼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사실, 203호에서 누구보다도 고생한 사람이 가인 군인데 보답이 없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아니…. 이상한데요.”
“무엇이 말입니까?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니까요? 그게 문제는 아닐 겁니다.”
이상하다고 여긴 이유는 기억의 유무 때문이 아니다.
기억을 멋대로 지워대는 호텔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해결 과정에 대한 기억의 유무와 기여도 평가는 무관할 것 같다.
하지만, 참가자의 자격을 잃은 후의 기여도도 합산하는 건가?
“강화할 수 있으면 좋은 일인데 뭘 고민하냐? 눌러야지!”
진철 형의 터치와 함께 시야가 암전되었다.
*
– 김상현
— 퉁!
…
— 퉁!
…
“거기 가만 서 있지 말고 이리 오라!”
처음으로 만난 후원자는 전신이 근육과 흉터로 가득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모습이 아무 의미 없음은 알고 있다.
“알겠습니다.”
후끈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뜨거운 모루 옆에 서자 후원자가 망치를 내밀었다.
“망치?”
“쓰는 법 알지?”
“…”
“203호에서의 일, 재미나게 보았다. 원시적이긴 하나 나름대로 강철 무기까지 제련해내지 않았느냐?”
이해할 수 없는 고된 시간이 지나갔다.
이미 동료들에게 들어 후원자들이 어디 하나 평범한 구석이 없는 신비로운 존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난데없이 대장간에서 망치질만 하염없이 시킬 줄은 몰랐다.
…
흐르는 땀방울이 상반신 전체를 적실 때쯤, 노인이 팔을 뻗어 내가 두드리던 쇳덩어리를 움켜쥐었다.
그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쇳덩어리를 맨손으로 쥐었음에도 피부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기분이 어떻냐?”
“힘들군요.”
“즐겁거나 재미있진 않고?”
“… 그렇게 말하면 거짓말일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이런 일이 어찌 재미있을 수 있을꼬.”
노인이 가볍게 손뼉을 치자 대장간의 풍경이 한순간에 사라지더니, 이번엔 시원한 초원이 나타났다.
내 몸 또한 샤워라도 한 것처럼 깔끔해졌다.
“그대, 이런 말 들어보았는가?”
“말이라 하심은….”
“노력하는 자가 재능있는 자를 이길 수 없으며, 재능있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유명한 말이지요. 들어봤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고?”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부정확한 말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해보라.”
“사람이 어떤 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선 선천적인 자질과 후천적인 노력이 모두 필요합니다. 여기에 그 일 자체를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면 더 쉽게 나아갈 수 있겠지요.”
“부정확하다고 여기는 까닭은?”
“어떤 일을 즐기는 것과 잘하는 것은 차이가 꽤 큽니다.”
“그렇지. 네 동료가 그 산 증거이지 않으냐?”
“제 동료 말입니까?”
“그 꼬마 말이다. 듣자 하니 컴퓨터 게임 하나를 무척 좋아해서 대단히 오랜 시간 해왔다고 하더구나.”
“…”
“오랜 시간 했으니 노력도 한 셈이고, 무척 좋아하니 즐기는 자이기도 한데 그 일로 밥벌이할 수준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결국 재능이 부족하니 아무리 즐기고 노력해도 한계가 있는 셈이지.”
“그, 그런 자세한 사정은 모릅니다.”
“나는 이 격언에 꽤 중요한 함의가 담겨있다고 여긴다.”
“경청하겠습니다.”
“인간이 어떤 일을 즐겁게 여길 수 있다면, 이는 분명 성과를 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지.”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노력이란 본디 심신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마련인데, 즐거운 일을 할 때는 그 고통이 줄어드니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겠지요.”
“그 당연함을 내가 너에게 내리고자 한다.”
“예?”
“즐겨라. 고통은 곧 성장이요, 인내는 곧 발판임을 알라. 내 너에게 나아갈 힘을 내렸노라….”
“아니, 정확히 무슨 힘을 내리신 겁니까?”
노인은 대답 대신 박수 한 번으로 날 내려보냈다.
*
[김상현(성실) -> ‘즐기는 자’를 얻었습니다.]*
– 차진철
풍경이 또 달라졌다.
후원자를 처음 만났던 장소는 창칼이 가득 꽂힌 벌판이었고, 두 번째로 만난 장소는 철판이 떠다니는 용암 바다였다.
이번에는 마치 전통적인 동양풍의 오래된 저택이었는데, 주변엔 갑옷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내가 왔습니다!”
떠다니는 갑옷 중 하나가 내 쪽으로 돌아섰다.
비어있는 갑옷만 있을 뿐, 사람의 형상 따위는 없었음에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아쉬운 점도 있고, 괜찮은 점도 있었다.”
“이번이 어떤 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203호 ‘새로운 시작’? 아니면 204호 ‘호텔 시네마’?”
“강대한 적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달려드는 모습은 분명 가치 있었지. 다만, 네 싸움의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다른 것보다 후원자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 자체에 놀랐다.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와 어떤 대화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용기의 후원자는 매번 자신이 할 말만 끝낸 후, 날 보냈다.
“싸움의 방식이라 하시면….”
“대체로 단조롭다 여기지 않나? 투로는 항상 직선 일변도고, 단순한 힘 싸움 중심으로 끌고 갈 때가 많지.”
“한 수 배우겠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어.”
“예?”
“지구 최고의 무예가를 데려와도 지금의 네 몸으론 너와 큰 차이 없이 싸우겠지. 첫째, 힘 싸움만 해도 어지간해선 밀릴 일이 드문데 복잡한 투로를 연구하는 것이 시간 낭비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둘째, 애초에 네 몸의 움직임을 네 머리가 정교하게 통제할 수 없다. 움직임이 두 배 세 배 빨라지고 강해졌는데, 그렇다고 네 판단력이 두 배 세 배 빨라진 건 아니니까.”
무술이라는 주제를 다뤄서인지 후원자는 평소와 달리 설명이 길고 친절해졌다.
“제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네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 말씀은?”
“내가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라는 이야기지. 약속했던 강력한 힘, 이제 내리겠다.”
서서히 공간이 흔들릴 때쯤, 갑옷이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쓰는 법을 충분히 익히는 게 좋을 것이다. 다음 방의 ‘초인’은 네가 힘만으로 당해낼 수 없으리.”
“네? 다음 방의 초인? 아니, 조금만 더 자세히 -”
*
[차진철(용기) -> ‘찰나’를 얻었습니다.]*
– 유송이
인도의 신전 같은 장소였다.
사방에 동물의 형상을 닮은 동상이 가득했고, 신전 중앙의 거대한 코끼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
예전에도 그랬지만, 내 후원자는 ‘인간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원자의 의사가 내 마음에 저절로 스며들었다.
내가 얻었던 첫 번째 강화, ‘이심전심’이 동작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저도 반가워요!”
기묘한 대화 혹은 ‘이심전심’의 시간이 흘러갔다.
후원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나는 후원자의 뜻을 이해했고 후원자는 내 뜻을 이해했다.
“저도 강력한 강화를 얻을 때가 되었다? 기쁘면서도 솔직히 불안하네요. 제가 얼마나 오랜만에 왔는지 아시죠? 다음에 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후원자는 그렇다면 약한 힘이라도 즉시 얻을 수 있다 알려왔다.
“혹시 즉시 얻을 수 있는 약한 힘과 더 기여도를 모아서 얻을 수 있는 강한 힘이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어렴풋한 이미지 혹은 문자열이 뇌리를 스쳤다.
약한 힘의 정체는 단순했는데, 근본적으로 지금의 친화에서 크게 벗어나는 힘은 아니었다.
혼돈체와 친해지고 소통하는 정도를 넘어서 조금 더 강력한 조작을 가능케 하는 힘이었다.
한데, 강력한 힘이 너무나 예상 밖이었다.
“예? 이거 진짜인가요?”
후원자는 속일 이유가 있겠냐는 의사를 전했다.
“… 이, 이건 좀 부끄러운 힘인데!”
강력한 힘은 흡사 초등학생의 망상을 구현한 것 같은 힘이었다.
“…”
문득, 호텔 시네마에서 얻었던 교훈을 떠올렸다.
사람은 원래 어른이 되어서도 유치하고 나 또한 사람이다.
그래서 난 어린아이의 망상을 구현한 힘을 기꺼이 얻겠다고 알렸다.
허물어지는 공간 속에서 생각했다.
동료들에게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해? 말하는 것 자체가 쪽팔리잖아!
*
– 한가인
“이야…. 이거, 제가 올 줄은 몰랐는데요?”
최근에 만났을 때는 나에게 무리한 조언을 해준 처벌 때문인지, 새장에 갇혀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의 후원자는 큰 문제 없어 보였다. 이미 대가를 치른 걸까?
“…”
“요전에 시나리오 이해를 주실 때는 영영 만나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랬었지.”
문득,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꼈다.
후원자가 주는 불가해한 위압감? 유무형의 압력? 이런 것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올빼미가 새장에 갇힌 후유증으로 힘을 잃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네가 느끼는 변화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네게 있다.”
“… 제 마음을 읽으셨군요. 좋습니다. 어떤 강화를 얻을 차례인가요?”
“미안하지만 그 부분은 널 실망하게 하겠군. 아직 때가 이르다. 그리 멀지 않았으나, 오늘은 아니다.”
이번에 축복의 강화를 얻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보니 다음 방 해결 후일까?
“그렇다면 절 부르신 이유가 있습니까?”
“날 따라오라.”
그 말을 끝으로 올빼미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
어떻게 따라가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