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46)
345화 – 파티 타임 – 성소에서 얻은 보상, 탄탈로스의 저주 (4)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5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X]
– 한가인
침대에서 깨어나자마자 상태창을 확인하자 두 가지 변화가 눈에 띄었다.
첫째, 현자의 조언 횟수가 X로 변했다.
둘째, 날짜가 150일 차로 변했다.
남은 파티타임 동안 현자의 조언을 쓸 수 없게 된 것은 징계 내용에서 언급되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변화는 날짜였다.
명백히 실제 날짜 변화와 아무 상관 없는 숫자가 적혀있어서 당황했는데, 축복을 내린 올빼미가 바꿔준 것 같았다.
어렴풋이 이유가 짐작이 갔다.
어차피 호텔이라는 장소에서 우리가 실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계산하기란 어렵고 큰 의미도 없다.
그런데 68만이니, 69만이니 하는 긴 숫자가 적혀있으면 날짜 변화를 인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일종의 ‘편의성 패치’를 해준 게 아닌가 싶었다.
방 밖으로 나가자 이미 나와 있던 진철 형이 반겨주었다.
“나왔구나! 그렇지 않아도 다들 이야기 중이었다.”
곧 호텔에 흩어져서 쉬고 있던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
테이블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의사 선생님이었다.
“새로이 얻은 힘은 잘 모르겠습니다.”
진철 형이 이런저런 추측을 던졌다.
“형님, ‘즐기는 자’라는 이름을 보아하니 수련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이 아닐까요?”
수련을 즐겁게 해준다?
그럴듯하긴 한데, 겨우 그런 힘이면 좀 실망스럽다. 선생님은 담백한 반응을 보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승엽이가 궁금해하며 질문했다.
“액티브 스킬인가요? 원할 때 쓸 수 있어요? 아니면 패시브?”
“일단 내가 능동적으로 쓰는 힘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상시 작동 중인 힘도 아닌 것 같고.”
액티브 스킬도 아니고 패시브 스킬도 아니다?
대화가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싶을 때, 엘레나가 무언가 알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 명경지수와 비슷한 유형 아닐까요?”
“엘레나의 명경지수와 비슷하다 함은, 조건이 맞춰질 때 저절로 작동하는 힘이라는 의미지?”
“맞아요.”
의사 선생님의 ‘즐기는 자’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되었다.
본인부터가 전혀 모르겠다 하는 상황이니 피차 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선이 자연스레 진철 형 쪽으로 쏠렸다.
아까부터 진철 형이 당장이라도 자랑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느낀 할아버지가 픽 웃었다.
“너, 이미 써봤지?”
“그럼요.”
“인마! 함부로 썼다가 스킬이 비는 타이밍에 위기가 생기면 어쩌려고?”
“파티 타임인데 잔소리는! 그리고 아직 쓸 수 있습니다.”
아리가 가볍게 하품했다.
“그래서 뭐야? 전에 듣기로는 뭐? 찰나를 쪼개고 어쩌고 했잖아.”
진철 형은 자랑스레 웃으며 한번 보여주겠다며 갑자기 호텔 벽에 걸려있는 단검 세 자루를 가져왔다.
아리가 피식 웃었다.
“뭐 하려는지 알겠네.”
“너만 알지 말고 알려줘.”
“어차피 본인이 지금 보여주려고 하잖아.”
“봐라!”
— 팅!
다음 순간, 모두의 앞에서 진철 형이 단검으로 저글링을 시작했다!
호텔 벽에 걸려있는 단검은 내가 예전에 자주 써본 물건인데,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칼날이 무척 예리해서 어지간한 옷도 종잇장처럼 찢어버릴 수 있다.
이런 위험한 물건을 저글링 하는 모습을 보니 흡사 고도로 숙련된 서커스 단원 같았다.
잠시 후, 진철 형이 송골송골 솟아난 땀을 닦아내며 단검을 테이블에 올렸다.
“생각보다 집중력 소모가 상당하네.”
마술 쇼를 본 아이처럼 손뼉 치던 승엽이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와아아! 멋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무슨 능력이에요?”
이런 초인적인 능력을 많이 접해본 아리나 할아버지는 이미 눈치챈 것 같았다.
“생각의 속도가 빨라지는 힘이야?”
“하하! 맞다. 처음엔 움직임이 빨라지는 힘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생각이 빨라지더라고.”
“둘 다 빨라지는 게 제일 좋겠지만, 하나만 고른다면 네게는 생각이 빨라지는 게 훨씬 유용하긴 하지. 몸은 이미 엄청나게 빠르니까.”
상황을 이해한 의사 선생님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좋은데? 몸을 훨씬 정교하게 다룰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이제 진철 형에게 날아오는 칼날을 잡거나 하늘의 새를 밟고 뛰는 일이 가능해진 것 아닐까? 후자는 무리인가?
여하튼 무언가 본격적인 무협지 주인공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아서 신기했다.
격투기를 익힌 만큼 이런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진철 형은 쉼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진철 형의 새로운 힘, ‘찰나’의 시연이 끝나자 시선이 자연스레 나와 송이에게 쏠렸다.
해줄 말이 많았기에 잠시 말을 고르던 차, 송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전 저축이에요. 다음 기회에….”
이미 여러 사람이 겪어본 일이다.
“다음번에 강력한 강화?”
“네.”
“어떤 능력인데? 대략적인 설명은 해주지 않았어?”
진철 형의 질문에 송이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잘 모르겠어요.”
“음?”
“제 후원자는 거대 코끼리라서 사람의 말을 할 수 없거든요.”
“아하!”
전에도 들었지만, 송이의 후원자는 형태도 인간형이 아닌 데다가 언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에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어찌 됐든 후원자가 기여도를 떼먹진 않을 테니 다음번엔 송이도 강한 힘을 얻겠지.
“자! 이제 제 말 좀 들어보세요.”
크게 두 가지 사항을 전했다.
첫째, 후원자는 축복의 강화보다는 비행 훈련을 위해 날 불렀다.
덕택에 페로의 몸으로 비행하는 법을 다시 깨우치긴 했는데, 성소의 취지에서 어긋난 행동이라 벌을 받게 되었다.
둘째, 올빼미는 저주의 방에 모래시계를 챙겨가라고 주문했다.
비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마자 송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페로에게 큰일이네요….”
“그러고 보니까 페로는 어디 있어? 어제부터 보이지 않는데.”
“지하의 식물원에 있어요.”
“아직도?”
“오빠, 물론 앵무새로 변해서 원시시대에서 버틴 가인 오빠가 제일 고생했지만!”
“…”
“몸을 빼앗긴 귀여운 페로의 생각도 해주세요. 이제 페로는 가인 오빠의 ‘가’라는 단어만 들어도 숨어서 나오지 않아요. 마음을 치유할 시간이 필요해요.”
아리가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없이 웃었다.
“진짜 가인이 동물 학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이 정도면 동물 보호 단체에서 널 죽이려고 할지도 몰라.”
“…”
의사 선생님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가인 군과 비행 훈련을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노력이 가치 있게 변했으니 기쁘군요.”
비행 훈련을 의사 선생님과 했었구나.
내게는 이미 사라진 기억을 의사 선생님이 그립다는 듯 떠올릴 때마다 다소 어색함이 느껴졌다.
웃음을 멈춘 아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모래시계를 저주의 방에 가져가라고 했어?”
“응. 어떻게 사용할지 힌트를 달라고 했더니 ‘네가 그 물건을 보관하게 된 것.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라고 했어.”
“보아하니 모래시계를 사용하는데 가인이 네 능력이 필요한 모양인데.”
아리는 무언가 떠올린 것 같았는데, 나 또한 어렴풋이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추측이긴 한데, 내가 페로의 몸에 빙의한 채로 모래시계를 돌려볼까?”
아리가 대답하기 전에 송이가 더 놀랐다.
“또요?”
“…”
아리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의미 없을 거야. 가인이 네가 ‘우리’에게 빙의한 상태라면 이전과 차이 없어.”
나와 아리는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
모래시계는 호텔이 아니라 ‘우리’에게, 더 정확히는 우리에게‘만’ 작동하는 물건이다.
페로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었으나 아리는 페로도 ‘우리’에 포함된다고 여기는 듯했다.
예전에 모래시계를 섣불리 돌려서 사고가 터졌던 상황을 돌이켜보니 아리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그렇네. 페로에게 빙의해도 소용없겠다.”
“아예 타인의 몸에 빙의한 채로 써야 해. 저주의 방에서 실험해봐야 할 것 같네.”
그때, 진철 형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너희는 종종 너희끼리만 아는 이야기 하는데, 우리에게도 좀 말해봐.”
아리는 모래시계의 정체에 대한 추측을 모두에게 알렸다.
다들 그럴듯하다며 끄덕였지만, 정확한 실체는 저주의 방에서 써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비행 훈련과 모래시계에 관한 이야기가 끝난 후, 엘레나가 다소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가인 씨, 징계는 어떻게 됐어요?”
“일단 조언은 X라고 떴네요. 예전에 104호에 두 번째로 들어갔을 때랑 비슷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별문제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차피 이 시기엔 조언으로 특별히 알아낼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아마 마도서 탐구에 썼을 겁니다.”
아리가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조언이 사라진 게 다행 같기도 하네….”
“…”
그때, 미로가 물었다.
“그런데 ‘탄탈로스의 저주’가 뭐야?”
“나도 모르겠어.”
엘레나가 알듯 말듯 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탄탈로스라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인물이거든요? 무슨 죄를 지어서 지옥에 떨어졌었나?”
할아버지가 한숨 쉬며 중얼거렸다.
“제 아들을 죽여서 요리로 만들어 신들에게 바쳤다고 하지. 당연히 분노한 제우스가 지옥에 처박았다.”
“그래서 무슨 벌을 받았는데요?”
“너, 아까부터 말만 하느라 느끼지 못한 것 같은데 테이블의 음료수 아무거나 한 모금 마셔봐라.”
벌써 불안하다.
모두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내 앞에 놓인 콜라 잔을 집어 들었다.
“…”
“아 씨 -”
본능적으로 욕을 내뱉으려다가 미로 눈치가 보여서 참았다. 그러자 나 대신 미로가 외쳤다.
“호텔 너무해!”
조금 전, 내 손이 닿자마자 컵에 담겨있던 콜라가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졌다!
정말 설마 하는 생각이 들어 이번엔 테이블 위의 과자에 손을 내밀자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조금 전까지 달콤한 향을 풍기던 과자와 케이크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
진지한 상황인데, 분명 심각한 상황인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어지간한 일엔 웃느라 바쁜 아리도 표정이 딱 굳었다.
“이거 큰일인데? 파티타임 내내 탄탈로스의 저주가 남아있나?”
“… 알림에 따르면 그래.”
의사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오늘은 파티 타임 1일 차 아닙니까?”
진철 형이 옆에서 정정했다.
“형님, 2일 차입니다. 우리는 하루 기절했다가 일어났으니까요.”
“참, 축복의 성소를 처음 경험해서 실수했네. 파티타임이 총 5일인데 지금이 2일 차면….”
승엽이가 입을 반쯤 벌렸다.
“가인 형은 앞으로 그냥 굶는 건가요? 3박 4일 동안?”
“문제는 음식이 아니라 물입니다. 사람이 3일 정도 굶는다고 큰일이 생기진 않습니다만, 3일 동안 아무것도 마시지 못하면 탈수 증세가 심각해집니다.”
극도의 우울함이 몰려와서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중얼거렸다.
“자고 일어나면 치료…. 해주진 않겠죠?”
“몸이 굶어서 약해지는 것도 105호의 치료 대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설령 치료 대상이라 해도 이 경우엔 규칙 위반을 벌하기 위한 저주의 결과입니다. 당연히 치료해주지 않을 겁니다.”
모두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몰려들 때쯤, 아리가 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가인이 넌 당장 105호로 돌아가!”
“어?”
“앞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테니 쓸데없는 체력 손실이라도 줄여야지! 그냥 침대에서 나올 생각 하지 마!”
생각해보니 너무 맞는 말이라 즉시 일어서서 105호로 돌아갔다.
*
호텔의 파티 시간, 혼자 파티에서 추방당한 청년이 체력이라도 아끼기 위해 105호로 돌아갔다.
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묵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거, 가인이 녀석이 진짜 생으로 굶어야 하는 거냐? 뭐 어떻게 수가 없나?”
아리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 안될 것 같은데. 어설픈 꼼수를 부려봐야 호텔에서 다 막을걸?”
“가, 가인이가 죽으면 어떡해!”
미로가 끔찍한 소리를 꺼내자 상현이 황급히 제지했다.
“일주일이라면 모를까, 3일이면 탈수 증세가 힘겨운 정도지 죽진 않습니다. 미로 양, 진정하세요.”
그때, 은솔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별일 없을 것 같은데.”
미로가 즉시 밝은 표정으로 외쳤다.
“티켓! 그러고 보니까 요번에 203호 끝나고도 또 티켓 나오지 않았어? 설령 가인이가 죽는다 해도 -”
아리가 미로의 머리를 툭 툭 치며 제지했다.
“미로, 미로. 티켓은 0.5장이니까 당장 쓸 수도 없고, 가인이도 죽을 일 없으니까 호들갑 좀 떨지 마. 자꾸 이러면 미로도 같이 굶길 거야. 은솔아, 하려던 말 마저 해.”
“그냥 내 짐작이야. 고작 3일 밥 안 먹고 물 마시지 않는다고 지금의 가인이에게 별일 생길 것 같지 않아서.”
“…”
잠시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최근, 은솔이 가인이 있는 자리에선 어딘가 기묘한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을 모두가 눈치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가인 본인도 느끼고 있으리라. 굳이 지적하지 않을 뿐이다.
아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상현이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며 다른 주제를 꺼냈다.
“어험! 아무래도 이번 파티타임 동안 가인 군은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래서 한 가지 걱정스럽군요. 은솔 양이 요번에 탐욕의 손을 쓴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진철이 반응했다.
“그렇네요? 누님, 이거 어떡합니까? 고생할 일이 생기면 가인이 녀석은 뭘 하기 힘들 텐데?”
은솔이 답하기 전에 아리가 답했다.
“그래도 탐욕의 손은 써야지. 안 쓴 지 너무 오래됐어. 어떻게 쓸 셈이야?”
“생각해둔 게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은솔은 벽에 기대어 생각했다.
나에게 탐욕이 부족해 탐욕의 손의 포텐셜에 제한이 생겼다면, 무조건 도구를 탐하는 건 효율적이지 못하다.
보나 마나 나름대로 유용한 듯하면서 어딘가 약점이 빤한 물건들만 나올 테니까.
다른 용도로 쓸 수 없을까?
그러니까….
“21세기에 정보란 곧 재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