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48)
347화 – 아귀 지옥 (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5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X]
– 한가인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온 정신을 집중했다.
“미러전의 위험성, 교단의 신화와 교리, 적의 탄창을 비워라.”
뭐라는 거야?
앞의 두 키워드는 듣고도 떠오르는 내용이 전혀 없었다.
다행히 세 번째 문구, 적의 탄창을 비우라는 말은 듣자마자 느낌이 왔다.
탄창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 표현은 횟수 제한이 있는 적의 무기를 미리 비우라는 이야기다.
이 비유가 의미하는 ‘적의 탄창’은 분명 강림이다!
그때, 바로 옆 사람도 잘 보이지 않던 호텔이 갑자기 밝아지기 시작했다.
남아있던 동료들이 상황 변화를 인지하고 두리번거릴 때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다들 잘 있었니? 없어진 사람이 몇 명 있는 것 같은데….”
“누나!”
*
세 번째 질문을 끝으로 천기누설 이벤트는 종료되었고, 은솔 누나도 깨어났다.
누나가 정신 차리고 우리에게 상황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화이트보드에 우리가 얻은 답변을 적는 것이었다.
“내가 적은 내용 맞나 확인해!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으면 해.”
205호 : 절대 고수. 피할 수 없는 죽음. 요행수가 통하지 않으며, 탁월한 무력이 필요.
206호 : 3자 대결, 창작물의 단골 소재, 날짜를 수시로 확인할 것.
104호 : 미러전의 위험성, 교단의 신화와 교리, 적의 탄창을 비워라.
나름대로 기억에 자신이 있는 편인데, 내 기억과 일치했다. 아리가 2번까지 적었던 메모의 내용과도 같았다.
“정확해요.”
“다행이네.”
평소 같았으면 적혀있는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겠지만,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있었다.
“사라진 사람들의 위치는 ‘아귀 지옥’이라고?”
“네.”
“할아버님, 대화창은 써보셨어요?”
“개인 대화를 몇 번이고 걸었지만, 반응이 없다. 대화창이 통하는 거리가 아닌 모양인데.”
이후로도 남은 사람들끼리 어떻게 해야 아귀 지옥에 떨어진 동료들을 구해낼지 의견을 나누었으나 진전이 없었다.
“애초에 아귀 지옥이 뭐 하는 장소일까요?”
떠오르는 바가 있어 답했다.
“추측이긴 한데, ‘지옥’이라는 명칭이 이유 없이 붙은 것 같지 않습니다. 마침, 우리는 지옥이라는 단어가 붙은 또 다른 장소를 알고 있죠.”
“한빙지옥.”
“‘부활의 방’의 또 다른 이름이자 역할은 한빙지옥이죠. 탈락한 참가자가 갇혀 고통받는 장소입니다.”
할아버지가 내게 반문했다.
“아귀 지옥도 비슷한 장소일 것 같냐? 탈락한 참가자가 갇힌 장소?”
“그렇지 않을까요?”
은솔 누나가 끼어들었다.
“아귀 지옥의 정체는 그렇다 치고,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답하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내 생각에 아귀 지옥은 우리가 있는 장소에선 접근 방법이 아예 없는 것 같다.”
“어, 어째서요!”
거의 비명 지르는듯한 승엽이의 반문에 할아버지는 침착하게 답했다.
“아리의 축복, ‘비밀’에 대해선 이제 다들 알지? 호텔의 비밀을 알아내는 힘 아니냐?”
“그렇죠.”
“우리는 1층과 2층의 숨겨진 방을 전부 찾아냈다. 아리의 축복에 따르면, 1층의 숨겨진 방은 기념품 상점과 축복의 성소다. 2층의 숨겨진 방은 부활의 방과 거울의 방이지.”
“숨겨진 NPC는 한 명 남았다면서요?”
“이름이 ‘아귀 지옥’이잖냐? 이건 아무리 봐도 NPC의 명칭이라기보단 ‘공간’의 명칭이지.”
할아버지의 말뜻을 이해했다.
정황상 아귀 지옥은 어떤 공간인데,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장소라면 축복, ‘비밀’에 의해 그 존재는 알 수 있었어야 한다.
은솔 누나가 걱정스러운 투로 중얼거렸다.
“그렇네요. 아리의 축복이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건, 우리가 찾아낼 수 없는 장소라는 의미겠네요.”
음울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우리가 아귀 지옥에 떨어진 동료들을 도울 수 없다면, 답은 하나뿐이니까.
그들 스스로 탈출해야 한다.
할아버지가 약간의 희망을 담아 말했다.
“나올 방법은 있을 게다. 진철이가 처음에 205호의 시나리오를 전부 알려달라고 했더니, 점술사 같은 놈이 감당할 수 없는 천벌이 내려질 테니 질문 수위를 낮추라고 했지? 이후에 진철이는 질문 수위를 낮췄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천벌은 떨어진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벌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료들을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
– 김아리
담배꽁초와 바스러지는 잎사귀들이 바람에 날리면서 거리에선 까만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분명 정상적으로 운행하는 지하철도, 자동차도 없는 것 같은데 요란한 소음만 사방에 가득했다.
거리의 나무는 죄다 시들어가고 있고, 잔디밭은 말라비틀어진 흔적만 남았다.
이렇듯, 도시의 살풍경한 모습은 황량하기 그지없었으나….
딱 두 가지 격렬한 감정, 증오와 굶주림만이 들끓었다.
“너! 이, 이년아!”
“…”
“방금 나 보면서 무슨 생각 했어?”
“…”
“모를 줄 알아? 내가 다 알아! 너 같은 년들이 무슨 생각 하는지!”
“그래?”
“들었어…. 들었어! ‘아무개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저 아저씨처럼 길바닥에서 쓰레기나 주우면서 사는 거야’. 이 썅 -”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거짓말하지 마! 요, 요즘 세상에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너, 넌 보나 마나 한 푼도 벌어본 적 없지? 흥! 남편 돈이나 빼먹는 기생충 같은 년이 -”
“나 결혼한 적 없고 아이도 없어. 그리고 내 연봉 엄청 많은데? 관리국에서 관리해주는 통장에 1,200억 넘는 돈이 있어.”
“…”
눈앞의 ‘아귀’가 1,200억이라는 숫자에 압도당했는지 순간 말문을 잃었다.
호텔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해왔기 때문일까?
그냥 알 것 같았다.
보나 마나 저 아귀는 본래 인간이었을 테다.
직업은 환경미화원이었던 것 같고, 나름대로 성실히 살았겠지.
세상엔 종종 그런 부모들이 있다.
제 딴에는 자식들에게 교훈을 내릴 셈인지, 열심히 잘 사는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말한다.
‘아이야, 열심히 공부하려무나. 명문대에 합격하지 못하면 저 하층민들처럼 버러지같이 살게 된단다.’
이런 한숨 나오는 소리가 정말 자식 교육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저 남자에게 평생의 상처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좋아. 당신 참 안됐고, 힘들게 살았네. 그런 말 지껄인 사람은 분명 쓰레기 같은 놈들이었을 거야.
그런데….
“이, 이년이! 어디서 거짓말을! 살점을 뜯어서 죄 삼켜주마! 네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셔서 -”
— 서걱!
왜 아까부터 나한테 지랄임?
난 살면서 단 한 번도 특정 직종에 속한 사람만 골라서 무시해본 적 없어.
관리국의 모토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이기 때문이지.
그 뒤에도 약간의 문구가 있지만, 이 역시 일반인을 재산이나 직업에 따라 차별하라는 내용은 아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니 머리와 몸을 분리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고객에게 뺨을 다섯 번이나 맞고도 항의 한번 하지 못한 영업사원의 머리를 쪼갰고, 상사의 자식을 매일 학교에 데려다주던 부하 직원을 맨홀에 처박았다.
그러하다.
이 도시는 실패한 참가자들이 일평생 겪은 가장 끔찍한 기억에 사로잡힌 채, 굶주림 속에서 떠도는 절망의 땅.
아귀 지옥이다.
*
– 차진철
“하~! 이 애미 없는 새끼가 – 크흠.”
참아야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원래 그리 점잖은 사람은 아니고 욕도 제법 하는 사람이다.
변명이긴 하지만 도장에서 거친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스파링도 뛰다 보니 자연스레 생긴 습관이라 해야 하나?
호텔에서 어린 애들과 아름다운 아가씨들 – 크흠!
동료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레 말이 순화되었는데, 혼자 떨어져서 등신 같은 놈들만 연달아 만나고 있노라니 저절로 욕이 나왔다.
“이, 이 씨발 새끼야! 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담뱃불로 -”
또 나왔다.
담뱃불 어쩌고 하는 거 보니까 학교에서 일진들에게 괴롭힘이라도 당했나?
그냥 무시하고 뛰어갔다.
“왜 저 새끼들이 아까부터 나한테 계속 지랄이여?”
내가 괴롭혔냐? 내가 담뱃불로 지졌냐? 난 담배도 끊은 지 오래다 이 새끼야!
“흐읍! 심호흡이나 하자.”
불쾌한 장소다.
방향성 잃은 증오와 굶주림으로 가득 찬 세상.
처음에 내 앞에 나타난 건 무거운 짐을 옮기던 노인이었다.
하도 간곡히 도와달라길래 불안하다 싶으면서도 짐을 같이 옮겨주었더니, 갑자기 젊은 놈이 어쩌고 하면서 뒤통수를 때리려 들었다.
이런 식의 원인 모를 악의에 끝없이 노출당하다 보니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선 보이는 사람을 죄다 공격하고 싶었는데, 내 체력이 아까워서 가능하면 피해 다녔다.
— 딩동!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수 없이 겪은 일이 반복되었다.
“미성년자에게 담배 안 판다고 이 씨발놈아!”
“…”
“아, 미성년자는 아니고 아재네? 어이! 내가 알바라고 만만하냐? 이 -”
— 우당탕!
이번 놈은 담배 달라고 떼쓰는 일진들과 술에 취한 아저씨에게 갑질 당한 아르바이트생인가?
생각하는 것도 피곤해서 그냥 가게 밖으로 집어 던진 후, 가게 내 물품을 살폈다.
역시 없다. 분명히 편의점같이 생긴 장소인데, 음식은 물론 음료수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음식점이나 마트에도 들어가 보았으나 다 똑같았다.
어디에도 먹을 것, 마실 것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그저 원인 모를 증오와 굶주림에 휩싸인 ‘아귀’들 뿐.
“후우우….”
아직은 괜찮다.
고작 반나절 지났을 뿐이니까, 살짝 목이 탈 뿐이다.
“…”
계속 견딜 수 있을까?
굶주림은 견디더라도 목마름을 견딜 수 있을까?
“분명 나갈 방법이 있긴 있을 텐데….”
*
– 김상현
진득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내 몸에선 피가 흐른 적이 없고, 딱히 누굴 해치지도 않았으니 냄새의 정체는 명확하다.
아귀들끼리 근처에서 죽이고 잡아먹는 모양이다.
— 쿵!
슬슬 기대를 버리고 있긴 하나, 무언가 먹고 마실만 한 게 있다면 거대한 장소에 있겠다 싶어 근처의 대학교에 들어왔다.
한창때 나이의 젊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이기 때문일까?
주변에선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영이 너! 오, 오빠가 모를 줄 알아? 다 들었어! 진호 선배랑 대체 무슨 -”
“응~! 병신아, 너만 빼고 다 아는데 이제 알았냐? 이 병신같은 한남 새끼야, 니 좆 크기가 -”
귀를 기울이고 다음 문장을 듣고 싶은 욕구를 참아냈다.
정말이지 흥미로운 전개였는데, 남자 쪽에서 날카로운 물건을 뽑아 드는 걸 보니 이후 장면은 더 이상 재미있을 것 같진 않았다.
“어디 생수 한 병이라도 없나….”
꽤 그럴듯해 보이는 연구실 문을 살짝 열자 바쁘게 작업 중인 아귀가 보였다.
“뭐야?”
“…”
“너, 너 이 새끼 뭐냐고!”
“아닙니다.”
“뭐가 아닌데? 야! 내가, 내가 뭐 크게 잘못한 줄 알아? 이 자식은 경영대 교수인데 -”
“대학원생이십니까? 바닥에 사지가 분해되신 분은 교수님 역할이고? 당신을 노예처럼 부려 먹었습니까?”
“어, 어, 어….”
“이런 이야기를 여태 20번 정도 들었습니다. 하던 일 마저 하세요. 참, 보아하니 교수님도 아귀라서 쉽게 죽지 않으실 겁니다. 어차피 죽어도 곧 부활하는 것 같긴 합니다만.”
“부, 활?”
“‘부활’이라는 단어에 반응하시는군요. 아무래도 좋습니다만, 근처에 생수 한 병이라도 있습니까?”
“부활부활부활부활부활부활부-”
“꽝이군.”
— 드르륵!
지쳐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귀들의 전투력 따위는 별문제 아니었다.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존재들답게 사지를 찢어놔도 시간만 흐르면 재생하는 불사신들이긴 하나, 신체 능력은 인간과 별 차이 없었다.
솔직히 100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들어도 지금의 나라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으리라.
문제는 음식과 물이다. 천하제일 고수도 물이 없으면 일주일도 버티기 힘든 게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다른 동료분들은 어떻게 버티고 계실지…. 만날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요.”
문득, 견디기 힘들 정도의 증오심이 영혼을 사로잡았다.
아귀들이 겪는 끝없는 고통을 보고 있노라니 ‘내 경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이런 지옥을 왜 만들어낸 겁니까!”
호텔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며, 이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순간, 마치 날 놀리는 것처럼 알림이 떴다.
「미션 : 아귀 지옥에서 탈출하라!
호텔의 비밀을 탐한 대가로 아귀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 어떻습니까?
즐겁지는 않으실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시사항을 따르신다면, 길어야 2, 3일 내로 사랑하는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답니다.
여러분, 지옥의 아귀들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평생의 가장 한스러운 기억에 사로잡힌 채,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련한 존재들이 불쌍하지 않으신가요?
여러분이 이들의 한을 일부나마 풀어줄 수 있다면….
그 선업이 곧 구원의 밧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