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49)
348화 – 아귀 지옥 (2)
– 김아리
“또 야근! 또, 또 야근! 얘야, 난 이틀에 한 번꼴로 야근 중인데도 제대로 된 잔업 수당을 받은 적이 없단다! 이게 말이 된다고 -”
“바쁘니까 좀 비켜!”
미안한데 아저씨는 아니야.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해줄 자신이 없네.
호텔이 보낸 알림이 뜨고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해한 후, 나는 어떤 아귀의 사연을 해결해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탈출 미션은 과거 미로의 꿈에 들어갔던 상황과 유사하다.
생전의 끔찍한 경험 속에 사로잡힌 아귀의 기억에 들어가서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해결해줘야 한다.
한데, 당사자에게 얼마나 끔찍한 사연인가와 외부의 해결자에게 얼마나 쉬운 사연인가는 좀 다른 문제다.
예를 들어 불특정 다수의 진상 고객에게 혹독하게 갑질 당한 자영업자와 난데없이 잔혹한 강도에게 덮쳐져 일가족이 몰살당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통상 후자가 훨씬 끔찍한 사연이라 하겠으나, 해결하는 처지에선 좀 다르다.
전자는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두들겨 패줄까?
몇 놈을 처리해봐야 또 다른 진상 고객이 또 나올 텐데?
아니면 당사자보고 사업을 그만두라고 할까? 수입이 끊길 텐데?
내가 돈을 주면 되나? 사연에 들어간 내게 그런 돈이 없다면?
조금만 생각해도 명쾌하게 해결할 방법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후자는 그냥 사전에 경계하고 있다가 강도를 붙잡아서 경찰에 넘기면 그걸로 끝이지.
그래서 가능하면 좀 단순한 사연을 찾아다녔다.
“쪼, 쫓아오지 마!”
“…”
“꺄아악!”
“…”
“사, 살려주세요!”
“골목길에서 널 쫓아오는 살인범이라도 만났어?네 사연이 딱 좋겠네. 너, 이름 뭐야?”
그녀는 들끓는 분노에 휩싸여 달려들기 바쁜 다른 아귀들과 달랐다.
뒤에서 걸어오는 내 걸음을 듣는 것만으로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 바빴으니까.
“예, 예?”
“오늘, 내가 널 구해줄 테니 말해봐. 이름 뭐야?”
“… 유소연이요.”
*
— 삐비빅!
귀를 콕 찌르는 알림을 들으며 깨어났다.
주변은 새하얀 사무실 같은 장소였는데, 내 앞에는 소연의 일정이 빼곡히 적힌 종이가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설정인 걸까? 왠지 모르게 몽롱하다.
살짝 허공에 팔을 휘적거리다가 깨달았다.
유산이 봉인 당했던 미로의 꿈에서처럼 이번에도 오래된 피의 힘이 봉인 당했다.
초자연적인 힘을 쓰지 말고 해결하라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오히려 안심되었다.
그런 힘이 필요 없다는 의미 아닐까?
그때,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단단한 체격의 남성이 들어왔다.
“아리야, 일어났어?”
“…”
“소연 누님이 네가 어제 피곤했을 거라고 하시길래 그냥 뒀다. 그래도 이젠 출발 해야 하니까 챙겨서 나와.”
“… 네.”
*
시간이 흐르며 차차 상황을 깨달았다.
사연의 주인공인 유소연은 생전에 제법 유명한 연예인이었다.
어째 몰골이 비틀어진 아귀 상태로도 제법 예쁘다 싶었는데, 살아있을 당시의 유소연은 누가 봐도 연예인이다 싶은 외모였다.
나는 유소연의 매니저 겸 비서 겸 아는 동생 겸 연예인 지망생 겸 말동무 겸 마스코트 겸 귀요미 겸 –
쉽게 말해서 성공한 연예인 언니가 아끼는 동생을 말동무 삼아서 데리고 다니며 적당한 직책도 주고 용돈도 주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대낮에 사무실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었는데, 다른 직원들이 깨우지도 않은 시점에서 일반적인 매니저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쁘지 않았다.
피해자와 깊은 친분이 있으면서도 뚜렷하게 하는 일은 없고, 그러면서도 개입의 명분으로 삼을만한 직책은 있는 위치.
호텔에서 만들어준 ‘해결사 최적화’ 역할인 셈이다.
— 탈칵!
탑승 중이던 SUV의 문이 열리며 소연이 들어왔다.
“진짜 PD 이 새끼 또 지랄하는 거 봐!”
“…”
“내가 분명히 저녁 일정 있다고 저번 주부터 말했는데 은근히 꼽주는거 있지? 뭐? 요즘 여유 넘치시는 모양이다? 강혁아, 이거 무슨 의미 같아?”
“누님이 야간 촬영에 빠지는 게 짜증이 난 모양입니다.”
이런 식으로 앞 좌석의 운전자, 이강혁과 소연은 한참 동안 뒷담화를 나누었다.
덕분에 야간 촬영에 빠진다고 꼽주는 PD와 슬슬 소연의 자리를 넘보는 건방진 후배, 딱 한 번 NG 냈다고 호통친 선배 배우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설마 겨우 이 정도가 아귀가 되어서까지 기억하는 끔찍한 기억은 아니겠지?
“누님, 아까부터 아리가 조용하지 않습니까?”
“어머! 아리야, 언니가 욕해서 놀랐지? 미안해. 하도 짜증이 나게 하는 사람들이랑 있다 보니까 말이지!”
“…”
늦은 시간까지도 소연의 일정은 빈틈이 없었다.
낮에는 드라마 촬영, 저녁엔 라디오 방송에 나가야 하고, 야간엔 CF 촬영까지 해야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성공한 연예인의 표본이었는데, 그렇다 보니 점차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이 구간이 소연에게 인생의 절정기가 아니라 가장 끔찍한 순간인 거야?
혹시 방송 끝나고 나오다가 난데없이 살인마에게 당한다 이런 건 아니겠지?
이런 돌발 사고가 문제면 그냥 온종일 저 여자 옆에 붙어있든지 해야 하는데!
결국 소연이 라디오 방송에 나가 있는 동안 앞 좌석의 운전기사 겸 경호원 이강혁에게 물어보았다.
“강혁 오빠.”
“음?”
“언니에게 요즘 힘든 일은 없나요?”
“… 누님이 너한테도 이야기했어?”
“그냥 느낌이에요.”
“…”
보아하니 뭔가 있다. 소연의 인생을 끔찍하게 만든 무언가가!
“하…. 누님이 너에겐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오빠, 계속 같이 다니는데 제가 계속 모를 리가 있겠어요?”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마라.”
*
경호원에게 들은 사연의 시작은 다름 아닌 스토커였다.
사건의 시작은 7개월 전, 소연이 주연을 맡은 인기 드라마가 종영한 시점부터였다고 한다.
경호원은 드라마로 인해 소연의 인지도가 전국구로 올라갔기 때문에 이상한 놈들이 들러붙었다고 하던데, 일리 있는 가설이다.
처음엔 문자였다.
‘지금 ABS 방송국에 가시는 길이시죠? 샌드위치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그쪽 어디 어디 가게가 맛있습니다.’
이런 부류의 문자가 꾸준히 오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별것 아닌 친절한 맛집 안내 문자라 착각할 수 있겠지만, 소연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는 번호로 온 문자였다.
또, 그녀가 현재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귀신같이 꿰뚫고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경찰에 신고는 해 봤어요?”
“당연히 해 봤지. 그냥 샌드위치 드시면 될 문제 아니냐고 하더라.”
“…”
“경찰 이놈들이 얼마나 웃긴 놈들인지 아냐? 스토커 새끼가 누님에게 칼이라도 휘두르기 전엔 꿈쩍도 하지 않을 기세라니까?”
“더 이야기해 보세요.”
결국 소연은 개인 번호도 바꾸고, 정보 유출을 우려해 경호원이나 매니저도 가장 신뢰하는 소수만 남기고 전부 바꿨다.
듣자 하니 난 소연의 먼 친척이면서 그녀가 친동생처럼 아끼는 관계라 남았다고 한다.
내게 이 설명을 하는 중인 이강혁도 유사한 이유가 있으리라 추측했다.
이런 수를 썼음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상대는 소연의 새로운 번호조차도 알아내서 또 이상한 문자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문자의 수위가 더 높아졌다고 하는데, 강혁이 분개하면서도 내게 내용을 말하지 않는 걸 보아하니 음담패설이 섞이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시간이 흐르며 소연은 점차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태 같은 문자는 유명인의 숙명이라며 내려놓은 것이다.
“문자가 끝이 아니었죠?”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어.”
약 2개월 전, 하필 매니저와 경호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우연이 아니라 그 타이밍을 노린 것 같네요.”
“그렇겠지. 모종의 수단으로 누님을 항상 관찰하는듯하니까….”
늦은 시각, 귀가하던 소연의 뒤로 시꺼먼 옷을 입은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 것이다.
“뭐라고 했는데요?”
“제대로 듣지 못하신 것 같더라. 놀라서 도망치느라 바빴다던데?”
“흐음….”
“대충 듣기로는, 뭐라더라? 분에 넘치는 탐욕을 가지지 말아라?”
조금 특이한 대사였다.
“분에 넘치는 탐욕? 무슨 의미일까요?”
“모르겠다. 누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시더라. 사실, 스토킹이나 하는 미친놈들이 하는 말에 대단한 의미가 있겠냐?”
“그건 그렇네요. 이게 끝인가요? 2개월 전에 실제로 나타난 스토커의 위협?”
“…”
“더 있군요. 말해주세요.”
“곧 누님 오시겠다. 이쯤 하고 -”
조용히 손을 뻗어 강혁의 목과 어깨를 쿡 쿡 찔렀다.
“아, 아리야. 갑자기 왜 이러냐? 소름 돋게 참.”
“말하라니까요.”
“… 이건 3일 전에 벌어진 일이야. 아리 너도 기억하겠지만, 누님이 오전 촬영 다 펑크내셨잖아?”
“네.”
“오전 내내 연락이고 뭐고 다 씹으시다가 점심 무렵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회사에 오셨더라고. 알다시피 누님이 얼마나 성실한 분이냐? 그러니 다들 무슨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겼다 싶었지.”
“…”
“밤새도록 집에 본인 말고 다른 ‘존재’가 있었다는 거야. 분명 누님이 혼자 사는 집인데, 침실 밖에서 누군가 걷고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더라.”
“누군가에게 연락할 수는 없었나요?”
“그게 참 이상하지. 아무리 전화기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더라.”
“어떻게 나오신 거죠?”
“아침이 되니까 소리가 사라졌다고 하네.”
“소리는 아침에 사라졌지만, 무서워서 나오지 못하다가 점심 무렵에 간신히 나왔다?”
“맞아.”
“CCTV 같은 건 다 확인했죠?”
“당연하지. 내가 누님 집에 직원들이랑 가서 직접 확인했는데, 희한하게도 CCTV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냥 누님 혼자 방에서 덜덜 떠는 모습만 나오더라.”
“으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민하던 중, 이강혁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아리야, 혹시나 해서 물어보마. 지금 내가 하는 말이 헛소리 같냐?”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
“누님이 이 이야기를 했더니 회사 사람들이 대부분 믿지 않았거든. 대표님이, 평소엔 누님이 무슨 말을 해도 껌뻑 죽는 분이었는데 이건 믿지 않으시더라. 누님이 술을 많이 드신 게 아니냐 하더라.”
“…”
“그 반응 때문에 누님이 상처를 많이 받았어. 그래서 아리 너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더라.”
“오빠는 믿어요?”
“나는 누님이 무슨 말을 해도 믿는다. 그냥 믿는 거야.”
이 시점에서 나는 유소연이 스토킹에 시달리며 주변 사람을 교체하면서도 이강혁은 남긴 이유를 깨달았다.
저런 괴담스러운 이야기를 진짜로 믿어주는 시점에서 보통 신뢰가 아니다.
그건 그렇고….
“조금 이상하네요.”
“아리 너, 믿지 않을 셈이면 그냥 아는 체도 하지 마라. 괜히 누님 힘들게 하지 말고 -”
“오빠, 저도 믿어요.”
“그, 그래?”
“분명 소연이에게, 아니 소연 언니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믿어요. 다만.”
“다만?”
“언니가 겪은 일, 정리하면 크게 3가지죠? 첫째, 소연의 번호와 일정을 파악해서 스토킹 문자를 보낸 행위. 둘째, 2개월 전에 귀가하던 언니 근처에 나타나서 위협한 행위. 셋째, 3일 전에 겪은 이해할 수 없는 주거침입.”
“너, 원래 이렇게 말을 잘했냐? 맞다.”
“이걸 전부 한 존재가 한 게 맞을까요?”
“뭐?”
“유형이 너무 달라요. 처음 겪은 문자 스토킹은 언니 말마따나 유명한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번호를 어떻게 알았냐? 그거야 뭐…. 언니 번호를 언니 혼자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새어나갈 구석이야 항상 있죠.”
“…”
“유명 연예인의 일정이야 극성팬들이면 연예인 본인보다도 잘 아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그건 그래.”
“두 번째부터는 좀 괴이하네요. 늦은 밤, 경호원과 매니저가 자리를 비운 틈을 노려 나타나서 이상한 말을 하고 간다. 의도를 알긴 어렵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겠네요.”
“뭘 알겠다는 거야?”
“그 말을 한 존재는 최소한 형체가 있는 존재잖아요. 시꺼먼 옷을 입은 사람인 모양인데.”
“누님도 사람인 것 같다고 하긴 했지.”
“세 번째는 아예 도시 전설, 괴담 그 자체죠. CCTV에도 잡히지 않은 무언가가 괴이한 소음을 끝없이 낸다.”
“… 네 말을 듣다 보니 희한하긴 하다. 나와 누님은 전부 다 7개월 전부터 속 썩이는 스토커 놈의 수작이라 생각했는데.”
그때, 강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누님이 라디오 끝났단다. 모셔 오마.”
“다녀오세요.”
포르쉐 카이엔의 푹신한 시트에 기대어 앞으로의 계획을 떠올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