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52)
351화 – 마지막 휴식과 방의 선택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53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X]
– 한가인
아리를 끝으로 아귀 지옥에 끌려간 동료들이 전부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아리와 난 휴식을 겸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일찍 나왔다고?”
의사 선생님이나 진철 형은 아귀 지옥에서 아리보다 빨리 탈출했다.
“뭔가 미묘하게 기분 나쁜데? 어떻게 나왔다는 거야? 사연이 어땠는데?”
“진철 형은 연쇄살인범에게 가족이 죽은 사연을 골랐다고 하네.”
“아…. 연쇄살인범을 현장에서 잡았다?”
“정당방위를 겸해서 그냥 때려죽이니까 즉시 탈출이 떴대.”
“상현이는?”
“악질 교수를 만나서 고생 중인 대학원생의 친형 역할이었고, 교수를 직접 만나서 해결 봤대.”
“… 어떻게?”
“잘.”
무슨 수를 썼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사연에 들어간 우리는 후환이나 뒷감당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뒷일이 문제 될 시점이면 이미 모든 게 끝났을 테니까.
극단적으로 가정하면, 교수의 손모가지를 분질러가며 ‘설득’해서 교수가 사연자에게 친절하게 대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아~ 상현이랑 진철이는 사연을 잘 골랐네.”
“넌 아니었어?”
“그거보단 복잡한 편이었어. 뭐, 이젠 나왔으니 됐어.”
“오늘이 파티 타임 마지막 날인 것 알지? 이따가 내일 들어가야 할 방을 고르기로 했어.”
“그래.”
각자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이던 중, 아리가 갑자기 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지난 3일간 아무것도 못 먹었지?”
“응.”
“…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을 텐데 괜찮아?”
“의외로 버틸 만하더라. 지금 같아선 며칠 더 굶어도 견딜 만할 듯. 다이어트 하는 셈 치지 뭐.”
“…”
*
저녁 무렵, 모두가 회의를 위해 2층의 거대한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모이자마자 누나가 내게 물었다.
“가인이 너 괜찮아?”
“예?”
“… 아니야.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네.”
“생각보다 견딜 만하네요.”
회의가 시작한 후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선생님이었다.
“아시다시피 이번 회의의 주제는 다음에 어떤 저주의 방에 들어가야 하는가입니다. 첫 번째로 고려해야 할 점은 호텔이 우리에게 해준 약속입니다. 그 내용은 직접 본 분들도 있고 전해 들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203호에서 아드라비타는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과도하게 끼어들어서 고통스러운 판을 만들어냈다.
이후, 방이 해결되며 뜬 알림에 따르면 죄수의 이런 개입은 호텔의 의도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이런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 보상 겸 사과 차원에서 호텔은 한 가지를 약속했다.
“‘다음에 들어가실 방에선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딱 이런 문장이었지요. 이 문구의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견을 냈다.
“다음에 들어가실 방이야 말 그대로 보면 될 것 같네요. 우리가 고르는 다음 방을 말함이겠죠.”
“그렇겠지요?”
“문제는 ‘유사한 일’의 해석인데…. 죄수의 개입을 완벽히 차단해준다는 의미일까요?”
“들어가 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습니다만, 그 정도는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최근에 조용한 태도를 보이던 은솔 누나가 오래간만에 입을 열었다.
“경험상 대적자들은 죄수의 수족일 때가 많았지. 죄수가 방에서 추방당하는 수준으로 영향력이 사라진다면, 대적자들 또한 죄수에게 받은 권능을 잃게 될 거야. 이 말은, 방 하나를 그냥 날로 먹게 된다는 의미지.”
아리가 그 말을 받았다.
“솔직히 호텔이 그 정도로 친절하게 해주진 않을 것 같네.”
“같은 생각이야. 나는 일종의 ‘배역’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고 싶어.”
“배역?”
누나가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한다 싶어 보이자 모두의 시선이 누나에게 쏠렸다.
“통상, 호텔이 만들어낸 시나리오에서 우리는 주인공이야. 대적자는 빌런이지.”
모든 방이 이렇진 않았지만, 비슷한 느낌이긴 하다.
“반면, 죄수는 배경에 가까운 존재여야 해. 암중에서 음모를 꾸미는 정체불명의 존재, 악의 근원. 이런 추상적인 역할에 남아있어야 하지. 본격적인 개입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순간, 배드 엔딩이 확정되어 모든 것이 파멸할 때나 등장하는 그런 존재.”
해당하는 예시들이 몇 가지 떠올랐다.
“203호는 전혀 아니었어. 아드라비타 본인이 직접 무대 위의 빌런처럼 행동했지. 호텔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여겼고, 다음 방에선 이런 일을 막아주겠다고 한 거야.”
그럴듯하게 들렸다.
누나의 가설대로라면, 다음 방에선 죄수가 시나리오의 캐릭터처럼 존재감을 드러낼 일은 없다는 의미다.
어디까지나 주역들의 투쟁을 뒤에서 관찰하는 배경 혹은 배드 엔딩이 확정되었을 때 나타나는 마무리 담당만 가능하다.
뒤집어서 말하면, 죄수로부터 힘을 얻은 대적자들은 여전히 그 힘을 쓸 수 있으리라.
그들은 죄수와 달리 시나리오의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누나가 탁자를 툭 치며 정리했다.
“호텔의 약속에 대한 해석은 이 정도로 마무리 짓죠. 다음에 들어갈 방, 다들 의견 말해보세요.”
다음에 들어가야 할 방은 어디일까? 과거 해결한 방을 떠올려보자.
101호, 상식개변 미디어의 죄수는 누구인지도 모른다.
병원 원장이 아닐까 하는 추측은 나왔으나 방이 소멸하는 순간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102호, 공포의 저택의 죄수는 성운의 용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역할이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난 최후의 순간에나 자신이 존재함을 알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정도가 호텔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죄수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방들은 호텔의 약속이 적용된다 한들 바뀌는 것이 전혀 없다.
반면, 103호처럼 죄수인 선생님이 우리의 협조자인 방이라면 약속을 적용하면 큰일 난다.
선생님이 개입할 수 없는 103호? 지금 우리 스펙으로도 깰 자신이 없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다음에 들어가야 할 방은 죄수가 적극적으로 우리를 적대하는 방이다.
그리고 이에 딱 맞는 예시가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진철 형이 손을 들었다.
“생각해보니까 후보가 확실하지 않나? 남은 방이 104호, 205호, 206호인데, 205호와 206호는 내용을 아예 모르니까 넘기자. 104호는 명백히 죄수가 깽판을 치는 방인데.”
선생님이 어딘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호텔의 약속만 생각하면 104호라는 결론이 나오긴 합니다만…. 천기누설을 통해 얻은 정보를 고려하면 또 좀 애매하군요. 가인 군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기누설 이벤트 당시, 104호에 대해 들은 힌트는 다음과 같다.
미러전의 위험성, 교단의 신화와 교리, 적의 탄창을 비워라.
“미러전의 위험성, 이 말의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교단의 신화와 교리? 이건 더더욱 모르겠네요. 그런데 마지막 말은 알겠어요.”
“적의 탄창을 비워라?”
“탄창이란 소모성 능력을 말하는 셈이고, 우리가 가진 힘 중에서 ‘주’의 탄창이라 할만한 힘은 하나죠. 강림 아닐까요?”
이게 내 해석이다.
천기누설은 ‘마지막 남은 강림까지 다른 곳에서 쓴 후에 104호로 들어가라’라는 힌트를 준 게 아닐까?
그 말을 들은 진철 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인이 말대로면, 104호는 아직 피해야 하는 방이다? 강림이 남았으니까?”
“주가 또 강림을 써서 절 조종할 수 있다는 의미겠죠.”
“예전처럼 해볼 수 없겠냐? 네가 마도서의 힘으로 저항하는 사이에 우리가 널 제압하고?”
그때, 곰곰이 생각하던 아리가 탁자를 ‘탁’ 쳤다.
“알겠어!”
“뭐?”
“그 앞 단어, ‘미러전의 위험성’. 방금 진철이가 한 말을 듣고 나니 이 단어의 의미를 알겠어.”
모두의 시선이 아리에게 쏠렸다.
“미러전이란 대립하는 두 존재가 같은 장점을 공유한다는 의미로 쓴 표현이야. 여기서 대립하는 존재란 당연히 주와 ‘우리’지.”
주와 우리는 같은 장점을 공유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대결은 본질적으로 ‘미러전’이다.
송이가 어딘가 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리의 장점? 동료들끼리 사이가 좋다?”
아리가 고개를 저었다.
“맥락에 맞게 생각해. 주에게 동료 따윈 없잖아. 우리와 주가 공유하는 장점은 다름 아닌 회차 변화의 인식이지!”
외부에서 저주의 방을 공략하는 우리가 방의 회차 변화를 인식할 수 있듯이, 내부의 죄수 또한 이 변화를 인식한다.
“우리는 저주의 방을 반복적으로 트라이하면서 내부의 적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 알아낼 수 있어. 이걸 바탕으로 적을 공략하지.”
“… 같은 짓을 주 또한 할 수 있다는 말이지? 우릴 공략한다는 거야?”
“본래 주는 우리가 가진 유산에 대한 정보가 없었어. 이 때문에 가인이가 마도서를 통해 저항하자 신치고는 허술하게 당했지.”
여기까지 들은 진철 형이 혀를 내두르며 답했다.
“이젠 가인이의 마도서는 물론이고 내 별이나 아리의 오래된 피, 송이의 팔찌까지 알게 됐네? 이 정보를 바탕으로 또 다른 계획을 짠다?”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뭔가 이상한데? 유산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니 대응책을 새로 짤 것이다. 다 알겠는데, 호텔의 약속대로면 이렇게 죄수가 날뛰는 상황 자체가 막히는 것 아닌가?”
진철 형의 말을 듣자 또 그 말도 설득력 있게 들렸다.
주가 아무리 심계가 깊은 존재라 해도 호텔 앞에선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에 불과한데, 방구석에서 무슨 계략을 짰다고 한들 호텔이 개입 자체를 억제하면 무력해지는 게 아닐까?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호텔의 약속은 죄수의 적극적인 난동을 막아준다는 것이니 104호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정작 이후에 나온 천기누설을 해석해보면 ‘아직 때가 아니며 강림 마저 쓰고 가라’ 쪽에 가깝다.
마치 104호의 주는 호텔의 제약을 무시하고 날뛸 수 있는 것처럼.
그때, 누나가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나 방금 엄청나게 대단한 사실을 깨달은 것 같은데….”
“네?”
“주가 신기할 정도로 제멋대로 굴 수 있는 원리 말이지.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주’의 본체는 최초의 시도 당시, 가인이에게 강림을 내린 후로 개입한 적 없는 게 아닐까?”
“예?”
“주는 그냥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뿐이야. 첫 회차 이후로 개입한 적 없어. 그러니까 호텔에서도 주를 문제 삼지 않아.”
대체 무슨 소리인가? 황당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니, 제 몸에 빙의해서 여러분을 죽이려고 한 건 누군가요?”
“… 이 이야기는 이쯤 하자.”
누나는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특이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이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혹은 ‘이 자리에 내가 있으니까’ 말을 아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04호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다름 아닌 나고, 동료들은 104호에 대한 계획은 나에겐 숨기곤 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침울한 분위기를 환기하듯 좋은 이야기를 꺼냈다.
“뭐가 어찌 됐든 다행입니다! 104호에 대한 천기누설은 우리에게 귀한 정보를 알려주었죠.”
“귀한 정보?”
“적의 탄창을 비워라. 여기서 탄창은 강림이라는 게 가인 군의 해석이죠? 즉 강림을 마저 다 쓰라는 뜻이고, ‘써도 된다’라는 의미입니다.”
나 역시 떠올린 생각이다.
호텔은 천기누설을 통해 나에게 말해주었다. 마지막 남은 강림을 써도 되니까 써라.
이를 깨닫자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의사 선생님은 다음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호텔의 약속은 딱히 104호를 염두에 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염두에 둔 방은 다른 방인 거죠. 이렇게 생각하면, 이후의 천기누설에서 104호는 강림을 다 소모한 후에 들어가라 주문한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리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호텔이 염두에 둔 방은 다른 방이라…. 어디라고 생각하는데? 죄수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우리를 적대하는 방이 또 있어? 205호와 206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잖아.”
“전혀 없다니? 천기누설이 있잖아?”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205호와 206호에 대해 주어진 정보를 떠올려봤다.
205호 : 절대 고수. 피할 수 없는 죽음, 요행수가 통하지 않으며, 탁월한 무력이 필요.
206호 : 3자 대결, 창작물의 단골 소재, 날짜를 수시로 확인할 것.
이 문구들 사이에 ‘죄수가 적극적으로 우리를 적대한다’라고 해석할 내용이 있나?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선생님이 확신 어린 태도로 말했다.
“205호.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단어,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
“지금 호텔파티엔 정말이지 대단한 강자가 많습니다. 관리국 분들이 보기에도 그렇지 않나?”
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리 중 몇몇은 관리국 기준으로 봐도 필멸자 중에선 한 손에 꼽힐만한 초인들이야.”
“그런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겠습니까?”
여기까지 듣자 이해했다.
선생님은 205호의 천기누설 내용 중,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적대적인 신의 존재를 암시한다고 말하고 있다.
설득력 있게 들렸다.
지금의 우리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선사할 힘이라면 분명 필멸자의 힘은 아닐 것 같았다.
아리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게 들리네.”
“그러면 다음번엔 205호로?”
여태 조용히 있던 미로가 처음으로 의견을 냈다.
“205호에 가야 한다는 거죠? 다행이네요. 206호는 그…. 어려운 방이라고 했잖아요?”
아리의 후원자에게 얻은 정보다. 각 층의 마지막 저주의 방은 특별히 어렵다고 한다.
“가능하면 무지무지 어려운 방은 마지막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 정도로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우리가 다음에 들어갈 방은 205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