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53)
352화 – 205호, 저주의 방 – ‘□□□□’ (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54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5호 – 저주의 방 ‘□□□□’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춥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에 내 영혼까지 얼어붙을 것 같다.
지금이 대체 무슨 상황이지?
아침에 일어나서, 동료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친 후, 2층으로 올라와서 –
깨달았다. 이곳은 저주의 방, 205호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봉인 당했다.
어떻게든 눈을 떠서 상태창에 적힌 방의 제목이라도 보려 했는데, 방 제목도 알려주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201호에서 봉인 당했을 때도 이랬었지?
생각이 여기쯤 닿았을 때, 의식이 허물어졌다.
*
자갈 가득한 황량한 벌판에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곧 신도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벌판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는데, 무언가 있어서는 안 될 불길한 일이 생긴 듯했다.
“불꽃이 꺼졌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변고일까요?”
“기도드리나이다! 부디 저희를 용서하시옵소서!”
“대업이 진행 중인데 어찌 이런 일이?”
“위대한 불꽃이시여…. 아그니시여….”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죄를 말씀하시고 -”
그때, 가장 앞줄에 있던 장년인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리하자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다.
흡사 남자의 두 손 사이에 소리를 집어삼키는 구멍이라도 생긴 것처럼, 사방의 소음이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자리에 ‘미래에서 온 자’가 있었다면, 현실에서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 같다고 평했으리라.
“진정들 하게.”
장년인의 태도는 실로 태연해서 불꽃이 꺼진 일 정도가 무엇이 대수냐는 듯했다.
곧, 이 자연스러운 기백이 주변에 퍼져나가며 신도들이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교주께서 이리 굳건하신데 대체 무슨 문제가 있겠나?
그는 하늘 아래 가장 고귀한 자요, 인간 주제에 ‘황제’를 자칭하는 거짓된 왕의 목을 베어 모두를 해방할 존재다.
그러나 이 순간, 신도들을 안정시킨 배화교주 조원홍의 마음은 절대 평온하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 장소가 어떤 장소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보기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무지로 보이겠으나, 기실 이 땅은 천하에서 가장 신비한 땅이다.
최초에 교를 일으킨 자, 선지자께서 존귀한 아그니로부터 계명을 받은 자리가 바로 이곳 아니던가?
한데….
지난 780년간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풍우가 쏟아져도 흔들림 없이 고고히 불타올랐던 성스러운 불꽃이, 존재 자체만으로 아그니의 위대함을 입증하던 기적의 증거가.
꺼졌다.
‘하필 제국을 정벌 중인 이 시기에 이런 일이!’
지금 조원홍은 천하제일교(天下第一敎)의 지존도, 고금 3대 고수도, 지상을 걷는 둘 뿐인 절대 고수도 아니었다.
평생을 꿈꿔온 숙원, 평생을 믿어온 신앙이 흔들릴까 봐 두려워하는 한 명의 인간이었다.
“돌아가자!”
좌중을 압도하는 일성이 울려 퍼지자 엎드려있던 신도들이 일어섰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품었던 불안감과 의문조차 잊은 채 교주의 뒤를 홀린 듯 따르기 시작했다.
*
– 박승엽
“폐하, 언제나 은혜로운 자비를 베푸심에 송무부 상서 이원철이 감사를 드립니다. 남쪽에서 덮쳐오는 배화교의 불온한 준동에 대해 고하고자 합니다. -”
아까부터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성서성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보고가 올라왔으며, 창천각에선 배화교의 13 사령이 방벽 근처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옵니다! 또 -”
내 앞에서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떠드는 노인에게, 당신이 보기엔 내가 이 복잡한 보고를 알아듣는 것 같냐고 묻고 싶었다.
그때, 옆에서 새하얀 옷을 입은 채 그림처럼 앉아있던 은솔 누나가 입을 열었다.
“방벽 인근의 준동에 대해 더 상세히 고하라. 북두 대장군의 신변은 어찌 되었는가?”
“북두 대장군께서는 -”
다행히 몇 시간째 끝없이 이어지는 보고를 이해하고 답변 중인 사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저 노인들도 나에게 보고하는 시늉만 하는 것 같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205호, 아직은 이름도 모르겠는 정체불명의 방의 무대는 전근대 동양풍의 국가였다.
반란군이 국토의 절반을 점령한 망해가는 나라, 눈치 빠른 자들은 이미 재산 챙겨서 도주 중이라는 답 없는 제국.
그런 주제에 이름만 화려하게 ‘광명’이란다.
그리고 나는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제국의 소년 황제다.
통상 황제의 시호는 죽은 후에 받는다던데, 나는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이미 백성들이 시호로 불러주는 상태였다.
고맙게도 그 시호는 다름 아닌 말제(末帝), 즉 마지막 황제다.
*
“수고했어~!”
망해가는 제국의 황제라 해도 밥은 먹어야 하기 마련이다.
덕분에 잠깐은 쉴 수 있었다.
“… 조화문주 이은솔, 말이 너무 편해진 것 아닌가?”
분명히 처음 깨어나서 누나와 아침에 만났을 땐, 205호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끼리 있을 때도 관직으로 부르라고 했는데?
그래야 남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는다고 하시지 않았었나?
“승엽아. 이 나라 거의 망했으니까 그냥 대충 하자.”
“… 네.”
— 탁!
뒤에서 나타난 황제의 수신 호위, 철혼신창 김상현이 가볍게 탁자를 쳤다.
“조화문주, 약속대로 합시다. 제국의 국운이 기운 것은 사실이나, 우리는 이 나라를 지켜야 하는 상황입니다. 호칭!”
“그리하죠. 조금 전엔 너무 헛웃음이 나와서 그만….”
“조화문주, 알다시피 난 황제의 호위 역할이라 운신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혹시 다른 동료들의 역할은 알아내셨습니까?”
“네. 차진철은 아까 보고받을 때 말 나온 ‘북두 대장군’입니다. 지금은 방벽 인근에 있다는데, 정황상 이미 배화교의 세력과 한 차례 붙은 모양이네요.”
“시작부터 전투라니…. 꽤 힘든 위치에서 시작했군요. 다른 동료들은?”
“엘레나는 서방 제국에서 온 사절 겸 선교자 역할이죠. 더 정확히는 서방의 국교인 아베스터 교단의 제1 사도라고 하네요. 아까 만났는데, 저녁 회의에는 올 수 있을 겁니다.”
“흐음…. 승엽 군과 은솔 양, 그리고 나는 제국 소속인데, 엘레나 양은 소속이 다르군요. 이런 역할 배정에도 의미가 있을 텐데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할아버님과 송이는 아예 기록에 없네요. 정황상 공적인 관직이 있진 않은 것 같고, 천하를 떠도는 무림 고수 같은 역할이 배정된 것 같은데.”
“아리 양과 미로 양은 어떻습니까?”
“이쪽도 모르겠네요. 마찬가지로 무림 고수 역할 아닐지? 무림인의 경우 보통 별호에 대한 정보는 있는데 ‘이름’이 없어서 알아보기 어려워요.”
“아무래도 상당수 무림인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인생이라 신분이 불명확한 자들이 많기 때문일 겁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 방, 205호는 시나리오고 뭐고 너무 명확하네요. 되게 정직한 방 같다고 해야 하나?”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해야 할 일은 위기에 처한 제국을 덮치는 사교 집단을 막는 것. 대적자는 배화교주 조원홍이군요.”
“저주의 근원은 배화교주가 천하를 정복한 후에 진행하겠다는 ‘승천 의식’인지 뭔지겠죠. 이건 뭐, 숨기지도 않고 온 세상에 포고문까지 돌리고 있던데.”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시나리오가 뻔하고 명확하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길을 알아도 이겨내기 어려울 것이다.”
“강할 겁니다. 조원홍도, 그의 부하라는 13 사령이라는 자들도. 엄청나게 강할 겁니다. 천기누설에서 이미 경고해주었지요.”
이를 끝으로 누나와 선생님의 대화가 잠시 멈추었다.
그 틈에 누나가 알아낸 동료들의 현 역할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박승엽 : 광명제국 황제. 모두가 마지막 황제라 부름.
이은솔 : 황제의 조언자이자 먼 친척, 조화문주.
김상현 : 황제의 수신 호위, 엄청나게 유명한 고수의 제자. 별호는 ‘철혼신창’
차진철 : 제국의 북두 대장군. 방벽의 수호자.
엘레나 : 아베스터 교단의 제1사도, 서방의 사절.
김묵성, 유송이, 김미로, 김아리 : 아직 알 수 없다.
한명 한명 떠올리던 중, 한 사람이 빠졌음을 깨달았다.
“가인 형은요?”
두 사람이 동시에 날 바라보았다.
“승엽이 넌 – 아니, 폐하께서는 아직 떠올리지 못하셨군요.”
“가인 군은 아마 봉인 당했을 겁니다.”
“예?”
형이 201호에 이어서 또 봉인 당했다? 그럴 수 있다.
심해의 호텔파티를 경험한 아리 누나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봉인은 한 사람이 여러 번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이 봉인 당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벌써 알아낸 걸까?
누가 봉인 당했다고 호텔에서 알림을 띄워준 것도 아닐 텐데?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는 김묵성, 유송이, 미로, 김아리 넷 중 한 사람이 봉인 당했을 수도 있지 않나?
그때, 의사 선생님이 헛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
나는 그제야 가인 형이 이 세계에서 ‘어마어마하게’ 유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이미 늦은 시각, 밤하늘에 희끄무레하게 떠 있는 달은 이미 산봉우리에 그 몸을 뉜 채 세상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흐릿한 달빛을 등불 삼아 어렴풋이 드러난 산길을 걷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할아버지, 진짜 피곤해 죽겠어요…. 이 시간에 산길을 걷는 건 너무 위험한 것 아니에요?”
“위험하긴 한데 별 수 있냐? 제국이 오늘내일 한다잖냐.”
“어휴….”
“나도 객잔에서 하룻밤 자고 출발할 셈이었다. 옆에서 말제의 끝이 다가온다는 노래가 들리지만 않았다면!”
“말제 박승엽. 뭔가 멋있는 느낌이네요. 은근히 승엽이에 대해선 동정적인 말이 많이 돌던데요?”
“소년 황제니까. 세상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니 제위에 오른 지 이제 1년 반 됐다는 꼬맹이에게 망국의 책임이 없음은 잘 알고 있을 게다.”
“선황의 문제일까요?”
“아마도. 나라 말아먹은 새끼는 이미 뒤진 모양이지.”
“에잇! 말 좀 점잖게 하세요!”
밤길을 걷던 10대 후반의 소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노인을 가볍게 걷어찼다.
물론, 노인은 소녀가 전력을 다해 주먹을 휘둘러도 코털 하나 까딱할 사람이 아니었다.
“등허리가 뻐근하다 싶었는데, 좀 시원하구나. 한 번 더 쳐봐라.”
“… 피곤해요.”
“내가 업어주랴?”
찰나의 순간, 신조낭랑(神鳥娘娘) 유송이는 정말 노인의 등에 업힐지 고민했다.
밤새도록 이어진 산행이 그녀의 체력을 제법 갉아먹은 탓이다.
“아니에요.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뭐가 아니야? 어린애지.”
송이는 묵성과 대화하는 대신 그녀에게 ‘신조낭랑’이라는 별호가 주어진 이유를 주목했다.
아까부터 어깨 위에서 은근한 무게감을 과시하는 존재!
“페로! 너 -”
무슨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페로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
“캬! 고놈 참 눈치도 빠르지. 얼마나 똑똑하냐? 태워달라는 말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미리 깨닫고 날아가는 것 봐라. 저 정도면 신조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다.”
“… 진짜 저걸 -”
“멈추거라.”
다음 순간, 묵성이 날카롭게 외치며 송이를 제지했다.
잠시 후, 사방에서 철컹거리는 금속음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어둠을 밝히는 횃불 또한 여기저기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히야! 이거, 귀한 분들이신가? 날이 어두워서 미처 못 알아뵀네?”
송이는 곧 한숨 쉬었다.
망해가는 제국, 치안이야 진즉 무너진 지 오래다.
세상이 이 꼴이니 밤 산행을 하다 보면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그랬기에 산적 대여섯 명이 나타난 것은 놀랍지 않았다.
그보다 산적 주제에 그럴듯한 철편이 덧대어진 갑옷과 예리한 창을 가지고 있는 게 더 신기했다.
“으어? 고우신 아가씨는 어떤 분이시오? 이 산길이 거친데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오셨소?”
“…”
“부끄러움이 많으신 모양인데, 우린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외다. 무례하게 대할 생각 없으니 잠시 들렀다가 -”
“송이야.”
묵성은 눈앞의 산적이 아예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태연히 말했다.
“네?”
“너, 내 별호가 뭔지 아냐?”
“… 아까부터 10번은 자랑하셨잖아요? 뭐? 탈혼노야?”
“무협지에서 ‘탈혼’이라는 단어가 보통 어떤 사람에게 붙는 줄 아냐?”
“모르죠.”
“보통 살수, 암살자 뭐 이런 계통 고수에게 많이 붙어.”
“그래요?”
“내가 암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천하제일이란 의미지.”
“암기?”
그때, 면전에서 무시당한 남자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곱게 곱게 말해주니 상황 파악이 어렵나? 뭐, 탈혼노야? 우습지도 않은 -”
— 탕!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남자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뒤늦게 위기를 느낀 다른 산적들이 돌아서려 했으나,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 탕! 탕!
채 1분이 지나기 전에 산에는 다시금 한 명의 노인과 한 명의 소녀만 남았다.
“멍청한 놈들. 강호에선 노인과 여자를 조심하라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냐?”
“그런 말도 있어요?”
“그럼.”
“할아버지, 그런데 이게 암기에요?”
“당연하지. 인마, 이게 암기가 아니면 뭔데?”
“보통 단검이나 표창 이런 걸 암기라고 하는 것 아닌가?”
“장담하는데 그거 쓰는 모지리들도 총 한 발만 쏴보면 바로 이걸로 갈아탈 거다. 이게 고금 제일 암기야.”
“그건 설득력 있네요.”
“그나저나 가인이 녀석이 부럽구나….”
“네?”
묵성은 마치 시조를 읊듯이 중얼거렸다.
“드넓은 천하, 도산검림에 얼마나 많은 고수가 숨어있으랴! 그러나 하늘 아래 오직 세 명의 고수가 불멸의 명성을 얻었도다.”
“…”
“칼 한 자루로 천하를 안정시킨 이가 있으니, 천하검 이자성이라 한다. 그 어떤 왕보다도 많은 백성을 거느린 교주가 있으니, 배화교주 조원홍이라 한다.”
“…”
“세상의 모든 비밀을 짊어진 자! 삶과 죽음을 비웃고, 육신이란 곧 족쇄라 일컫는 자! 그자의 이름을 환마 한가인이라 한다.”
“…”
“기가 막히지 않냐? 나도 이런 설정 받아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가인 오빠 깨어났을 때 지금 말 그대로 앞에서 해주세요.”
“당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