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54)
353화 – 205호, 저주의 방 – ‘□□□□’ (2)
– 박승엽
저녁 무렵, 엘레나 누나가 황궁에 들어섰다.
새하얀 수녀복에 푸른 문양이 다수 새겨진 옷을 입고 있어서 그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감탄했는데, 주변 신하들의 반응은 곱지 않았다.
“사교의 추종자가 황궁에 발을 들이다니!”
신하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분노를 토해냈다.
이를 지켜보던 누나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 주변 신하를 물러달라 청했다.
*
“제법 신기한 경험이네요. 완전히 대역죄인을 보는 눈초리던데?”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엘레나 누나에게 은솔 누나가 답했다.
“조심해. 널 원수같이 여기는 사람이 많을 거야. 그리고 말투!”
“네.”
광명 제국은 배화교의 공세에 의해 멸망의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에서 사절이 오면 어떻게든 도와줄 수 있겠냐며 매달려야 정상인데, 도리어 원수를 대하듯 하는 신하들이 많은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설정상 엘레나가 속한 조직인 ‘아베스터 교’와 배화교의 관계 때문이었다.
은솔 누나와 엘레나 누나가 두 교단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배화교주 조원홍, 그에게 붙는 수식어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어떤 왕보다도 많은 백성을 거느린 교주.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배화교의 교세가 제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의미죠.”
“자료에 따르면, 배화교는 광명 제국은 물론이고 서방 세계에서도 어마어마한 위세를 떨친다고 합니다.”
“맞아요.”
“바로 여기서부터가 흥미로운 지점인데, 엘레나가 속한 아베스터 교 또한 원래 배화교라고 해요.”
“부연해 설명하자면, 사실 이 명칭들은 전부 광명 제국 사람들이 멋대로 붙인 것에 불과해요. 아베스터는 경전의 이름이고, 불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신의 상징이죠.”
“맞아. 다른 종교에 빗대면, 기독교가 퍼지는 과정에서 외부에서 기독교 신자들을 관측한 후 누군가는 ‘성경 교’라 부르고, 누군가는 ‘십자가 교’라고 부르는 상황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들었을 때, 의문을 품었다.
어차피 같은 배화교인데 왜 엘레나 쪽만 ‘아베스터 교’라고 구분해서 부르는 걸까?
구분의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한 답은 엘레나에게 들려왔다.
“8년 전, 교단의 대분열이 일어났습니다. 이유는 현재 조원홍이 실행 중인 ‘승천 의식’의 여파에 관한 해석 때문이죠.”
승천 의식.
정황상 205호의 ‘저주’가 바로 이것이리라 추측 중이다.
“대체 어떤 의식이죠?”
“폐하, 지금은 10대 소년이 아니십니다.”
내가 존대하자 듣고 있던 의사 선생님이 즉시 지적했다.
“크흠, 제1사도. 승천 의식에 대해 그대가 아는 바를 말하라.”
“전하, 의식의 결과를 우리가 온전히 알았다면 교단이 쪼개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조원홍은 승천 의식이란 모든 신도를 그 어떤 고통도, 슬픔도 없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극락정토로 이끄는 일이라 여깁니다. 제국 정복은 승천을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엘레나가 속한 아베스터 교 쪽에서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대들은?”
“의식 자체가 악신의 속임수이며, 교주 조원홍이 타락했다 여깁니다.”
“악신이라.”
이쯤에서 배화교와 아베스터교의 관계와 승천 의식에 관한 이야기가 정리되었다.
다음으로 ‘절대 고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보아하니 이 방의 핵심 인물은 셋입니다. 배화교주 조원홍, 천하검 이자성, 환마 한가인. 셋을 모아 고금 3대 고수 혹은 절대 고수라고 하네요.”
배화교주 조원홍.
그는 천하제일 세력 배화교의 교주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한 3명의 초인 중 하나라고 한다.
제국에서 추정하는 그의 나이는 210세에서 230세라고 하는데, 이것만 봐도 이미 인간이라 보기 어렵다.
3인의 절대 고수 중 다재다능함에 있어서 가장 윗줄로 여겨진다.
그는 신에게 선택받은 자이자 천하에서 손꼽히는 술법사이며, 강력한 무인이기 때문이다.
천하검 이자성.
무림 세력만 친다면 강호에서 가장 큰 세력인 천의맹의 맹주이다.
나이는 현재 77세로 절대 고수 중에서는 가장 어리다.
역량적인 면에선 순수한 무인이며, 술법 등은 아예 관심이 없다고 한다.
또, 설정상 의사 선생님의 신분인 철혼신창 김상현의 스승이다.
이 말이 나오자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떠오른 기억을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이자성이 술법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본인이 쓸 생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누나가 답했다.
“본인이 쓸 생각은 없지만, 대응법은 숙지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정확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김상현’의 판단이라기보다 ‘철혼신창’의 판단이긴 한데….”
“그래서 더 믿음이 가네요.”
“순수한 1-1 결투에 있어선 조원홍보다 한 수 위라고 합니다.”
“이야! 아니, 이자성이 나이도 훨씬 어리고 술법도 익힌 적 없고 신의 사도도 아니라면서요? 그런데 조원홍보다 한 수 위에요?”
“다시 말하지만 ‘제자의 스승에 대한 평가’이므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대단하네요. 대체 뭐 하는 양반이지? 하긴, 세상 이치가 본래 오래 산다고 그만큼 뛰어나지는 건 아니긴 한데….”
그때, 엘레나가 환마에 대해 적힌 반쯤 삭은 종이를 펄럭이며 중얼거렸다.
“그래봐야 둘 다 2인자에 가깝긴 해요.”
“…”
환마 한가인.
고금 3대 고수 중에서 가장 정체불명의 존재를 고르라면 모두가 환마를 꼽는다고 한다.
조원홍이나 이자성이 사람으로 태어나 반선의 계열에 들어선 자라면, 환마는 애초에 인간으로 태어난 건 맞는지부터 의문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소 수백 년, 어쩌면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의 몸을 갈아타며 살아왔기에 나이를 논함이 무의미하며, 그에게 육신은 인형에 불과하다.
이런 존재가 인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세상을 진실로 ‘놀이터’처럼 여겼다.
두 국가의 왕을 동시에 지배해 이유 없는 전쟁을 일으키거나, 서로 다른 가문을 배후에서 조종해 혈사를 빚어내는 일을 취미처럼 여겼다.
이외에도 환마의 악행은 종이 뭉치를 넘겨도 넘겨도 끝이 없을 정도였다.
은솔 누나가 입을 열었다.
“사실 이런 악행보다도 진짜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환마는 불멸의 존재였거든요.”
이게 제일 큰 문제였다.
환마는 진정한 의미에서 불멸의 존재였으며 이는 조원홍이나 이자성이 가질 수 없는 그만의 힘이었다.
아무리 강한 이라 해도 육신을 파괴하면 죽어야 인간이다.
이자성은 나이가 들며 잔기침이 늘고 때로는 병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200년을 넘게 살아온 조원홍도 목이 베이겠다 싶으면 주저 없이 도주한 기록이 있다.
수명의 한계를 초월했을 뿐, 육신에 속박된 자의 한계는 남아있던 셈이다.
그러나 환마는 이 한계조차 넘어선 존재였기에 다른 두 절대고수들조차 환마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30년 전, 두 절대고수가 손을 잡았습니다. 천의맹과 배화교가 힘을 모아 환마를 토벌했죠.”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잔혹한 과정이었다고 해요. 환마의 존재가 확인된 특정 지역 전체를 인의 장막으로 둘러치고, 내부의 모든 인간을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예외 없이 전부 죽이는 식이었죠.”
놀랍게도 그 엄청난 일을 벌이고도 환마를 죽일 수는 없었고, 결국 마지막에 깃든 ‘청년의 몸’ 자체를 어딘가에 영원히 봉인했다고 한다.
이게 가인 형의 봉인에 관한 설정인 것 같은데, 이 과정을 짚어본 우리는 다소 의구심을 품었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아는 가인이는 이렇게까지 죽지 않는 존재는 아닌데.”
은솔 누나의 의문에 엘레나가 답했다.
“빙의 자체도 약간의 지연시간이 있고, 무엇보다 깃들어있는 몸이 죽으면 본인도 죽어요.”
“우리가 아는 가인이의 능력대로라면, 환마의 육신을 확보한 시점에서 토벌군이 이긴 거야. 봉인할 필요 없이 그 몸을 죽이면 가인이도 소멸하니까.”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의사 선생님이 중얼거렸다.
“한 가지 가설입니다만….”
“말해보셔요.”
“201호의 수석 연구원은 부등변다면체를 다룰 수 있었습니다. 202호의 해신의 차녀는 안식의 피리를 쓸 수 있었죠.”
“203호의 선장은 최후의 섬광을 쓸 수 있었지요.”
“정황상 ‘진짜 환마’는 아예 육신이 소멸해도 생존할 수 있는 존재인데, 이런 일은 가인 군에게는 불가능합니다.”
“환마에게 특별한 보물이 있는 걸까요?”
“그겁니다. 우리가 아는 빙의, 마도서의 한계조차 넘어선 진정한 불멸을 이룩하게끔 하는 물건이 있는 거죠.”
“그게 이 방의 유산 중 하나겠네요.”
엘레나 누나가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전 조금 다른 부분이 걱정되네요.”
“제1사도, 말해보시죠.”
“봉인을 해제하면, 봉인 당한 사람만 깨어나는 게 아니에요. 원본 인물도 깨어나죠. 201호에서 수석 연구원이 깨어났고, 202호에서 제가 해신의 차녀가 품은 기억에 때때로 휩쓸렸던 것처럼.”
“…”
가인 형이 깨어나면 환마도 깨어난다.
“방을 깨는데 봉인 해제가 꼭 필수는 아니니까. 가인이를 깨우지 않고 해결하면 될 문제네요. 또.”
은솔 누나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 생각엔, 가인이 쪽도 격이 크게 부족하지 않을테니 의외로 좋은 승부가 될지도.”
“…”
그때, 의사 선생님이 가볍게 탁자를 치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다시 배화교로 돌아옵시다. 우리에게 당면한 적은 어딘가에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환마가 아니라 배화교입니다.”
“그렇죠.”
“다들 동의하셨겠지만, 205호의 시나리오는 단순명쾌합니다. 저주의 근원은 승천 의식임이 분명하고, 이걸 막으면 해결입니다. 탈출 조건도 짐작이 갑니다. 승천 의식을 유의미하게 늦추면 되겠지요.”
“결국 배화교를 상대로 싸워서 이기면 되겠죠. 천기누설에서도 쓸데없이 요행수 생각하지 말고 순수한 힘이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이 배화교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은솔 누나가 답했다.
“천의맹 이 개새끼들이 -”
“조화문주….”
“천의맹 이 착한 친구들이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도 협조를 하지 않네요.”
“후우…. 우리의 힘만으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배화교의 세력이 크다 하나 신도 대다수는 그냥 일반인입니다.”
은솔 누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까 숫자를 확인했는데, 절대 고수인 조원홍 아래로 절정 고수라는 13 사령이 있고, 이 아래로 강호 일절을 자랑한다는 무인의 숫자만 따져도 3,000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
“조원홍과 13 사령의 실력은 붙어보기 전엔 가늠하기 어렵지만, 일단 물량이 너무 답이 없는데…. 게다가 적에게도 나름의 명분이 있으니 엘레나의 정의도 자유롭게 쓰기 힘들 것 같고.”
“솔직히 그렇군요.”
“애초에 천의맹이 있는 이유가 뭐겠어요? 얘네를 어떻게든 포섭해보라고 넣은 것 같은데. 상현 씨, 이자성의 제자잖아요? 왜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도 관망 중인지 아는 것 없어요?”
“너무 많이 떠오르는군요.”
“예를 들어?”
“이자성은 과거 본인의 딸을 황제에게 시집보냈습니다.”
“오?”
“그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시신으로 발견되었지요.”
“…”
“천의맹주의 제자 중 둘은 황실에 의해 숙청당했습니다.”
“…”
“이것 말고도 많습니다. 제국은 오랜 세월 천의맹을 견제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서, 선황의 아들이자 제국의 마지막 황제 유력 후보인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마가 쓰러진 지금, 하늘 아래 절대 고수는 딱 둘이다.
그중 한 명은 제국을 갈아 마시려 달려드는 중이고, 다른 한 명은 제국 혐오증에 걸렸다.
…
그냥 나라가 망할 때가 된 것 아닐까? 이 정도면 망하는 게 순리 아닌가?
“그, 그래도 어떻게든 천의맹을 끌어들여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