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55)
354화 – 205호, 저주의 방 – ‘□□□□’ (3)
세상의 수많은 종교는 최선을 다해 지옥을 묘사하느라 바쁘다.
사방에 가득한 식인 벌레들, 쇠몽둥이를 들고 인간을 때려죽이는 옥졸, 혓바닥을 늘려 끓는 기름을 붓는다, 창으로 꿰어 화염에 굽는다.
어떤 면에선 참으로 창의적인 이런 잔혹한 상상들은, 어쩌면 창의적인 상상이 아니라 ‘경험’일지도 모른다.
전장을 걷는 차진철의눈앞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모든 폭력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겪을 일이 아니며, 내 책임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므로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차진철은 그리 믿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믿기 위해 노력했다.
온 세상에서 터져 나오는 고통의 선율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그의 마음이 충분히 얼어붙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순간, 차진철의 상체가 반 바퀴 회전하며 그의 양손에 들린 창이 반원을 그렸다.
— 서걱!
한 번의 휘두름과 두 명의 죽음. 방벽의 일상이었다.
창을 휘두르는 대장군의 모습은 마치 곡식을 베어내는 농부의 낫질과도 같았다.
진철은 상념에 잠겼다.
205호에서 북두 대장군이라는 직책으로 시작했을 때, 이 세계에 무공이라는 힘이 있음을 깨닫고 제법 염려했다.
초능력이나 신의 권능과 달리 ‘무공’이란 말 그대로 공부요, 기술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인간도 노력만 하면 익힐 수 있다는 의미다.
전장의 잡졸조차 호랑이나 늑대 같은 힘을 휘두른다면 아무리 자신이라 한들 활약할 자신이 없었다.
…
기우였다.
대다수의 잡졸은 무공은커녕 체격부터가 잘 쳐줘야 현대의 중학생 수준이었고, 혹독한 투쟁 속에서 매일 수백 명씩 사그라들 뿐이었다.
또, 무림인이라 한들 다 유의미한 강자인 것도 아니었다.
— 툭!
순간적으로 상념에 빠져 집중력이 흩어졌기 때문일까?
제법 빠르게 날아온 비도 한 자루가 교묘하게 차진철의 갑옷 틈새에 파고들었다.
“마, 맞췄다!”
“…”
“이놈! 타락한 제국의 들개야, 지금 네놈이 무엇에 중독되었는지 아느냐?”
“단검에 독이라도 있었나?”
“흐흐…. 칠혈독사의 독액을 정제한 진수가 스며들었으니, 너는 이제 한 호흡을 넘기지 못하고 -”
“이미 10번은 숨을 들이쉬었다.”
“…”
— 콰직!
비도를 던진 자, 흑살비도(黑殺飛刀)는 머리통이 으깨지는 순간까지도 어째서 북두 대장군이 안색 한번 바뀌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문득, 진철은 확실히 어깨가 따끔거림을 느꼈다.
단검에 독이 있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저언젠가부터 그의 몸이 어지간한 독은 감기 기운처럼 날려 보내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때, 분명 한 사람의 목소리인데도 사방에서 동시에 울리는 듯한 기묘한 고함과 함께 시커먼 덩어리 세 개가 날아왔다.
“제국의 북두 대장군이 천룡(天龍)의 지체를 타고났다더니, 과언이 아니로구나!”
진철은 바닥을 굴러온 사람의 머리들을 살폈다.
한 명은 알아볼 수 있었는데, 아침에 그 앞에서 제국의 수호를 다짐하며 용맹하게 나섰던 좌장군(左將軍) 도정명의 수급이었다.
가볍게 묵례하며 답했다.
“그대의 이름을 말하라.”
“… 메르고압이라 한다. 별호는 청안수라요.”
“청안수라? 교의 13 사령?”
“그렇다.”
새로이 나타난 자, 청안수라 메르고압은 눈살을 찌푸렸다.
장군의 목을 베어 던지며 모욕했으니 분노에 찬 반응을 보이길 기대했다.
혹은, 날아오는 머리통에 위협을 느껴 창으로 쳐내는 광경도 재미있었으리라.
대장군은 그저 자신의 이름을 물었다.
기묘하게도 이 행동 하나 때문에 기세에서 밀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청안수라가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수라도의 기억이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대응책을 알려주었다.
공격이다.
“흐앗!”
벼락처럼 뻗은 희뿌연 반월도가 나선을 그리며 날아든다.
칼날의 궤도가 매 순간 기묘하게 요동치는 것이 흡사 모래사막을 가로지르는 뱀의 움직임과 같았다.
그때, 벼락처럼 날아든 한 줄기 섬광이 뱀을 그대로 꿰뚫었다.
대장군의 창날엔 심오한 무리도, 기오막측한 궤적도 없었다.
“빠르고 강하구나!”
몸을 연거푸 회전시켜가며 간신히 탈출한 메르고압의 반응이었다.
무언가 더 그럴듯한 표현을 쓸 법도 했으나, 그는 더 나은 표현을 찾아낼 수 없었다.
대장군의 창은 빠르고 강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온 힘을 다해 일직선으로 찔렀을 뿐이지 무슨 대단한 이치가 담겨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상대하기 힘들었다.
다음 순간, 청안수라의 허리춤에서 난데없이 단창이 솟아났다.
상대가 또 하나의 무기를 사용할 줄은 몰랐기에 진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칼에 이어서 창까지? 이 무슨 -”
청안수라는 창을 잡고 달려드는 대신 대장군을 향해 집어 던졌고, 그와 함께 반월도로 유백색 기운을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전방을 점하는 귀신의 창을 막아내지 못하면 다음이 없으며, 창을 막아내는 데 힘을 쓰고 나면 이후에 달려드는 아수라의 참혼(斬魂)의 일격을 받아낼 수 없다.
그렇기에 청안수라의 귀창참혼(鬼槍斬魂)의 공세는 강호의 일절이라 불렸다.
— 퉁!
대장군은, 청안수라가 마주했던 상대들이 대체로 그러했듯이 일단 귀창을 퉁겨내었다.
‘지금!’
대장군이 아무리 빠르고 강하다 한들 무기가 하나인 이상 창을 퉁겨내고 칼을 막아내는 동작을 동시에 취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귀창참혼은 펼쳐지기 전에 막아야 하는 것이지, 펼쳐진 후엔 어떻게 대응하더라도 당해낼 수 없는 절기였다.
적어도 청안수라는 그렇게 믿어왔다.
최소한 대장군이 한 손으로 창을 휘둘러 귀창을 튕겨내며, 다른 손으로 철권을 휘둘러 참혼격을 옆으로 쳐내기까지는 그리 여겼다.
“이게 대체 무슨!”
믿을 수가 없었다.
무예에 무지한 자는 말하리라.
공격이 두 방향에서 날아오는데, 팔은 두 개니까 한 손으로 하나씩 막아낸 것이 뭐 그리 신기하냐고.
당한 청안수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수라심결의 공능을 담아 전력으로 던진 창이고, 혈맥이 들끓을 기세로 전력을 끌어올려 내뻗은 검이다.
이 공세를 각기 한쪽 팔로 막아냈다는 것은, 대장군이 팔 하나로 내는 힘이 청안수라가 전신으로 내는 힘에 맞먹을 정도임을 뜻했다.
물론, 숨 가쁜 결투 속에서 그가 여유롭게 상념에 빠질 시간은 없었다.
자세를 바로 세운 대장군의 창날이 허공을 쪼개며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세 번의 찌르기가 연달아 날아든다.
그저 창날이 반 바퀴 회전하며 날아들 뿐인데, 그 단순한 공세에 담긴 위력은 메르고압이 일평생의 투쟁 속에서도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어깨로 쇄도하는 공세는 창대의 옆면을 쳐내어 방어했다.
복부를 꿰뚫을 듯 찔러오는 창날은 몸을 한 바퀴 돌리며 피해냈다.
그리고 세 번째 공격은, 메르고압의 허벅지를 그대로 관통했다.
… 아니다.
관통하기 직전에 창이 스스로 궤도를 틀어서 피부를 긁어내는 선에서 그쳤다.
청안수라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전, 자신은 대장군의 힘과 속도를 오판한 탓에 겨우 10초를 버티지 못하고 패사할 운명에 처했다.
그런데 왜 대장군은 창을 틀었는가?
— 뿌드득!
이윽고 청안수라가 분노를 담은 일성을 토해냈다.
“자비에…. 감사드리오! 다음 수는 그대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 터!”
진철은 순간 헛웃음을 지었다.
당연하게도 무슨 자비를 베풀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배화교의 13 사령 중 하나라는 이 남자를 놀릴 생각도 아니었다.
방금의 일은 청안수라로서는 꿈에도 상상 못할 이유로 인해 일어났다.
차진철에게 오늘이란, 태어나서 두 번째로 창이라는 물건을 쥐어본 날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손에서 창이 미끄러졌을 뿐이다.
다음 순간, 뒤로 물러선 청안수라의 몸 전체에서 불길하기 짝이 없는 구름 같은 기세가 일어났다.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들불 같은 위세에 경각심을 느낀 진철은 즉시 뒤로 세 보 물러섰다.
…
…
…
약 3초.
진철이 마음먹었다면 청안수라의 목을 10번은 베었을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제야 진철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
상대는, 진철이 자신을 농락하며 ‘어디 재주 한번 보여봐라!’라는 태도를 보였다 착각하고 준비하는 데 시간이 무지하게 오래 걸리는 기술을 썼다.
그리고 진철은 이 사실 자체를 뒤늦게 알아챘기에 정말로 청안수라에게 준비 시간을 주고 말았다.
“아 씨발 -”
사방의 무기들이 떠올랐다.
온 세상에 가득한 시산혈해(屍山血海), 흩어져 있던 주인 없는 수십 개의 병장기가 청안수라의 뒤편으로 떠오르며 살벌한 소음을 내었다.
“이윽고 전쟁 신의 분노가 세상을 채웠노라….”
“야 이 새끼야! 이게 무슨 무공이냐?”
제사장이자 술법사이자 무인이라는 교주의 다재다능함을 그 수하들도 이어받았기 때문인가?
아무리 봐도 무공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마술적인 힘이 사방을 압도하는가 싶더니, 수십 개의 병장기가 일제히 대장군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목이 떨어졌다.
*
– 차진철
“우와아! 으아아아! 진짜 놀랐어! 진철아, 아까 그거 뭐야?”
“누님, 황제의 조언자라 하시더니 방벽까지 오셨군요.”
“나라가 곧 망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황궁에만 있겠어? 아까 그거 뭐냐니까?”
“새롭게 얻은 힘이죠.”
“무슨 서커스 하는 줄 알았어. 한 50자루의 칼과 창이 날아드는데, 네 손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면서 하나하나 쳐내는가 싶더니 칼들 사이를 움직이던데?”
“그렇게 보였습니까?”
“마치 폭풍우 속에서 비 사이로 걸어가는데 몸에 물방울 하나 묻지 않는 묘기를 보는 것 같았어.”
“으음….”
설명하기 어려웠다.
‘찰나’를 사용했던 그 순간은 나에게도 흡사 환상의 순간 같았기 때문이다.
극도로 느려진 세상, 오로지 나만 인지할 수 있는 만상의 느릿한 변화.
마지막 순간, 청안수라는 내 창을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무려 존경심까지 느껴지는 눈빛으로 이리 말했다.
‘그대에게 죽음을 영광으로 알리다.’
“조금은 미안한 기분입니다.”
“뭐가?”
“상대는 제가 무슨 위대한 심득을 깨달은 고수인 줄 알더군요.”
“아니야?”
“… 아니죠. 날붙이를 제대로 휘둘러본 건 오늘이 두 번째인데요. 그냥 호텔이 내린 초능력을 썼을 뿐인데.”
“뭐가 달라?”
“네?”
“쟤네가 쓰는 무공이나, 네가 쓰는 축복이나. 내가 보기엔 둘 다 기가 막힌 위력의 초능력일 뿐인데.”
“수련을 통해 얻은 힘이 아니지 않습니까?”
“너라고 한들 ‘찰나’를 날로 먹은 것도 아니지. 단지 저들과 다른 고생과 노력을 했을 뿐.”
누님의 말을 듣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찰나’의 힘을 딱히 운 좋게 얻은 건 아니니까.
물론 내가 무공 수련 같은 것을 한 적은 없지만, 저놈들도 저주의 방에서 구른 적은 없으니 피차 비슷하다.
“13 사령이라는 존재, 어느 정도였어?”
“지금 다시 싸우면 10초 내로 죽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까는 허튼짓을 많이 해서 좀 오래 끌린 것이지.”
“믿음직하네. 대장군과 철혼신창의 실력이 13 사령보단 한참 윗줄이구나.”
“하지만….”
13 사령과 싸워봤기에, 상대가 어느 정도의 강자인지를 알았기에 이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조원홍은 혼자서 13 사령 전부를 압도한다더군요.”
“…”
“아까 전 청안수라 같은 놈 13명이 달려들면 이길 수 있나? 제겐 불가능합니다.”
“교주…. 진짜 사람 새끼가 아니구나.”
“누님, 아무리 생각해도 교주는 우리 중 한두 명이 어찌해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모두 모인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교주가 혼자 다니겠습니까? 청안수라 같은 놈도 12놈이나 더 있고, 보나 마나 숨겨진 전력도 있을 텐데요.”
“…”
“천의맹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아무리 봐도 이자성 그 작자가 교주를 상대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철혼신창이 천의맹으로 갔어.”
“다행이군요. 이자성도 제자의 말이라면 듣는 시늉은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 쉽지 않을걸. 그보다 다른 수단을 찾아내긴 했어.”
“예?”
누님은 몸을 반 바퀴 돌려서 어딘가 먼 장소를 바라보았다.
“대장군, 아리와 미로의 별호가 뭔지 알아?”
“풋! 죄송합니다. 별호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웃음이 나와서 그만. 뭡니까?”
“혈천마녀 김아리, 반혼신녀 김미로.”
“거창한데요?”
“그리고 얘네들에겐 놀라운 설정이 한 줄 더 있어.”
“설정?”
“혈천마녀와 반혼신녀. 이들은 현 무림의 공적이야.”
“무, 무림공적?”
“왜냐하면, 이들이 바로 환마의 추종자들이기 때문이지.”
“…”
“205호에서 아리와 미로에게 주어진 역할이 바로 그거야. 가인이의 봉인을 풀어내는 것.”
문득, 머릿속에서 한 가지 신기한 가능성이 떠올랐다.
반혼신녀가 가진 시간을 빌릴 수 있는 위대한 기적, 시간대여기의 힘이라면….
“누님,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인데 -”
“뭔지 알아. 나도 미로를 확보하는 대로 시도해볼 생각이야.”
*
– 김상현
— 스르릉!
사방에서 살의가 느껴진다.
“…”
“…”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전설 속의 경지라는 심즉살의 고수가 주변에 있었다면.
나는 이미 100번은 죽었다.
“크흠. 사형, 스승님께 연락은 드리셨는지요?”
“철혼신창. 폐하의 대리인으로 오셨다니 예우해드리겠으나, 한 가지는 명심해주시오.”
“…”
“나에게 김상현이라는 사제는 없소. 그러니 그 입으로 ‘사형’이니, ‘스승님’이니 하는 말을 다시는 꺼내지 마시오.”
“… 그리하지요.”
205호의 철혼신창이란 어떤 인물인가.
천의맹주 이자성의 셋째 제자인 동시에 황실에 오랜 세월 충성을 바쳐온 충신 가문의 말예이기도 하다.
30년 전, 환마가 지상을 거닐던 시기.
세상에 공적이 있었기에 천의맹과 황실도 하나로 뭉칠 수 있었고, 철혼신창도 황가의 충신인 동시에 천의맹의 자랑스러운 무인일 수 있었다.
환마가 사라진 세상, 제국이 보기에 천의맹은 너무나 위험한 집단이었다.
두 집단의 갈등 속에서 철혼신창은 단 하나의 정체성을 택해야만 했다.
“… 스승, 아니 천의맹주께서 언제쯤 오실지 알 수 있겠습니까?”
“…”
문득, 내가 이 장소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