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58)
357화 – 205호, 저주의 방 – ‘□□□□’ (6)
– 박승엽
— 쏴아아!
하늘에서 미친 듯이 비가 쏟아졌다. 내 마음에서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틀 전, 은솔 누나는 황궁 외곽의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아리 누나와 미로를 만나서 특별한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제저녁부터 충격적인 소식이 끊임없이 황궁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화문주 이은솔이 죽었다.
천의맹주 이자성이 죽었다.
북두 대장군 차진철이 죽었다.
황제 직속 호위 김상현이 죽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한 가지 운명을 엄숙한 태도로 받아들였다.
망했다.
전력의 태반이 작살나서 해결은 물 건너갔고, 당장 내일부터 국정 회의를 주도할 사람도 없다.
다음 날, 다행히 국정 회의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음을 깨달았다.
“…”
“…”
“폐, 폐하?”
“엘레나 누나. 이제 그냥 말 편히 하세요. 어차피 사람이 없어요.”
“신하들이 다 어디 간 거야?”
“어제부터 다 도망가던데요?”
“… 황제의 곤룡포는 어디 갔나요?”
“시종 몇 명이 들고 튀었어요.”
“그걸 보고 내버려 둬?”
“그렇다고 제가 쫓아가서 잡아요? 곤룡포 내놓으라고?”
나라가 망하고 세상이 망했다.
국정을 운영하던 사람부터 방벽을 수호하던 대장군까지 싹 죽었고, 심지어 황제의 호위와 천하제일검이라는 사람까지 사망.
이쯤 되자 도망치는 사람들이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솔직히 국운이 기운 것 맞잖아?
내가 백성이고 신하여도 튀었다.
아직도 황궁에 출근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은 정신이 이상하거나 수상한 목적이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나랑 엘레나 누나가 그 좋은 예시다.
어제저녁, 늦은 밤이 되어서야 소식을 들은 엘레나 누나는 아침 일찍부터 황궁에 나와서 앞으로의 계획을 나와 논하기 시작했다.
나와 엘레나 누나의 조합이라.
누나에겐 좀 미안한 소리지만 솔직히 둘 다 두뇌파는 아닌 것 같은데.
우리가 어떤 조합인가? 이른바 쿠키 파티다.
쿠키 파티란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동료들이 현명한 결론을 낼 때까지 옆에서 쿠키만 열심히 집어 먹다가 정해진 결론을 따르는 스타일을 뜻한다.
쿠키 파티 둘이 머리를 맞댄다 해서 뭔가 할 수 있을까?
“떠, 떠올랐어!”
“네?”
“승엽아, 이미 동료가 많이 쓰러져서 해결은 힘들잖아? 우리끼리는 탈출을 목표로 해야 해.”
“그렇죠.”
“지방으로 도망가자!”
“… 네?”
“왜, 역사에서도 나오잖아? 전근대 왕조 국가의 전쟁은 왕이 죽거나 잡히기 전엔 패배했다고 볼 수 없어.”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한국사를 돌아보면 고려고 조선이고 왕들이 패전 위기다 싶을 때 열심히 도망 다니지 않았는가.
이게 또 잘 통할 때는 통했다.
왕조 국가의 전쟁이란 현대의 전쟁과 그 논리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나, 그건 그냥 전쟁에서 느리게 지는 길 아니에요?”
“그게 탈출 아닌가?”
“저주의 근원은 배화교의 승천 의식이니까.”
“으음….”
“교주가 수도를 점령한 후, 절 쫓지 않고 그냥 자기들끼리 승천 의식을 진행하면 배화교의 승리로 끝나는 것 아닌가요?”
“아니, 그건 아니야.”
“왜 아니에요?”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누나는 명확한 말투로 내 가설이 틀렸다고 했으나 왜 아닌지 명확히 답하지 못했다.
직감적으로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는데, 내 주장의 어느 부분이 틀렸는지 헷갈리는 듯했다.
“알았다!”
“또?”
“승엽이 너와 내 의견의 차이는, 교주가 널 ‘쫓아다닐’ 필요가 있냐 없냐의 문제야. 교주가 수도만 점령해도 된다? 도주의 의미가 없어.”
“그렇죠.”
“하지만, 교주가 널 쫓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도망 다닐 이유가 있지.”
“그게 뭔가요?”
“이걸 이해하기 위해선 승천 의식에 대해 -”
바로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왔다.
“엘레나! 그게 정말이면 넋 놓고 설명은 왜 하는 거냐!”
“할아버지!”
“이러쿵저러쿵 설명할 시간이 있으면 당장 짐 싸서 튀어야지!”
벼락같은 외침과 함께 황궁에 나타난 할아버지는 1분 1초가 아깝다는 티를 냈다.
엘레나 누나가 무언가 안심된다는 듯, 피식 웃었다.
“맞네요. 설명은 나중에 하고, 할아버님이 승엽이를 데리고 도망가주세요.”
“엘레나 너는?”
“말하면서 더 좋은 계획이 떠올랐어요.”
“더 좋은 계 -”
더 좋은 계획이 뭐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할아버지가 바로 내 몸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뭔지 몰라도 해라!”
“네!”
…
하늘에서 비가 오던 날, 제국을 지탱하던 두뇌와 검이 동시에 부러지며 나라가 망했다.
그리고 황제 또한 누구보다도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서, 선조도 이런 마음으로 튀었겠죠?”
“이놈아, 좀 주둥이라도 다물지 못하겠니?”
“네.”
*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할아버지는 날 송이 누나와 함께 황궁의 은신처에 숨겨둔 후, 사방을 쏘다니며 말과 마차, 대량의 경비와 식량까지 구해왔다.
대체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런 걸 어떻게 구해왔나 싶어서 물어봤다.
“아니, 식량도 식량인데 말은 어떻게 구하셨어요?”
“잘!”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자랑하는 외계인의 팔이 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평화로운’ 대화가 잘 진행된 것 같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엘레나 누나는 오후 내내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대화창을 통해 나와 송이 누나가 숨어있는 위치를 듣고 합류했다.
새삼스럽지만, 할아버님의 ‘대화창’은 참 편리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핸드폰도 없는 세상인데 대화창이 없다면 서로 여기저기 쏘다니는 동료들끼리 어떻게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의견을 맞출 수 있겠는가.
“승엽아, 탈출 계획 이해했지? 큰 틀에선 처음에 내가 말한 도주와 비슷해. 다만, ‘그럴듯한 배경’을 하나 얹었을 뿐이지.”
“네.”
“정말 이해한 것 맞지?”
보아하니 엘레나 누나는 날 믿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이해했다.
나도 쿠키 파티의 판단력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나 자신에게도 엄격한 사람이므로 내 판단도 그다지 믿지 않는다.
“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 역할이 선조에서 고종으로 바뀐 것 같네요.”
“뭐?”
한국사에 약한 엘레나 누나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
반면, 옆에서 듣고 있던 송이 누나가 정신없이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으앗! 읔크크잌크크~!”
“누나, 그냥 시원하게 웃으세요.”
“비유 딱 맞네! 아관파천인가 뭔가 그거지?”
엘레나 누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은신처를 떠났다.
사실, 지금 상황이 무슨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을 때는 아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엘레나 누나는 탈출 계획을 진행하느라 숨 한번 쉬지 않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바빴다.
나는 중학생인데다가 무려 황제라서 저잣거리를 나설 수도 없고, 붙잡히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이런 장소에서 쉬고 있을 뿐이다.
저녁 무렵, 철갑옷으로 몸을 감싼 삼엄한 기세의 남자들이 은신처에 나타났다.
아베스터 교단의 제1사도인 엘레나의 요청에 따라 서방 제국 무력의 상징인 철십자 기사단이 도착한 것이다.
엘레나 누나가 손짓하며 날 가리키자, 딱 봐도 ‘나 진짜 엄청나게 세다’라고 몸으로 말하는 듯한 장대한 체구의 기사가 내 앞에 다가와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저, 콘라드의 아들 드리안 데 -”
“빨리하시죠.”
“…”
엘레나 : 황제의 말투! 이건 두 국가의 공식 절차라고!
“드리안, 빨리 말하라. 피차 바쁘지 않은가.”
“실례했습니다. 광명 제국의 황제 폐하, 이제부터 철십자 기사단이 폐하를 모시겠습니다. 기사의 명예에 맹세하건대, 이는 결코 철십자 기사단이 무력으로 폐하를 억압한 결과가 아니며 -”
“내 요청이지.”
“그러므로, 이는 루안 제국과 광명 제국의 평화를 위한 결단이자 -”
박승엽 : 바쁜데 이 지랄 해야 함?
엘레나 : 생략할 수 없는 절차. 서방 제국이 광명 제국의 황제를 납치하는 것이 아님을 선언하는 것.
잠시 후, 마침내 205호의 탈출을 위한 위대한 도주가 시작되었다.
*
— 덜커덩!
마차가 정신없이 요동친다.
불평 많은 귀족이라면 마부에게 거세게 따졌겠으나, 다행히 우리 중 그 정도로 철없는 사람은 없었다.
1분 1초라도 아껴서 튀어야 하는 상황인데 편안함을 챙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엘레나 누나가 우리에게 승천 의식에 대해 모두에게 설명했다.
“승천 의식이 배화교 내부에서 종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부분은 해석이 다양하고 복잡하니 확답을 드리기 힘들어요. 조원홍 쪽은 인류의 구제라 여기고 아베스터 교단은 악마의 유혹이라 여긴다는 점만 알아두세요.”
“쉽게 말해 다 같이 천국 간다는 소리 아니냐?”
“아주 거칠게 말하면 그렇죠.”
…
“중요한 건 이거죠. 배화교가 그 의식을 진행하기에 앞서 제국을 정복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간단해요. 승천 의식은 본디 배화교의 교도들에게만 베풀어지는 ‘혜택’이거든요.”
할아버지가 반문했다.
“배화교도가 아닌 제국인들에겐 해당 사항 없다?”
“맞아요. 그런데, 조원홍은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죠.”
“여러 가지 루트라…. 경전의 해석이나 죄수의 계시인가? 뭘 알아냈는데?”
“설령 배화교도가 아니라 해도 교주를 섬기는 자라면 일종의 ‘묵시적 교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는 거죠.”
고민해보자 두 해석의 차이를 이해했다.
종래의 해석에 따르면, 오로지 배화교의 신도만 승천 의식에 참여해 배화교에서 일컫는 천국과 같은 장소에 갈 수 있다.
조원홍이 찾아낸 새로운 해석에 따르면, 설령 배화교의 신도가 아니라 해도 조원홍을 ‘황제로’ 섬기는 자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조원홍 그놈이 황제 자리에 앉고 나서 승천 의식을 진행하면 제국의 백성 전체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소리구나.”
“그래서 교주에게 황제 자리에 앉을 수 있는가 없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상징적인 목표가 아니에요. 조원홍은 진실로 자신을 구세주라 믿으니까요.”
이쯤에서 나도 물었다.
“최대한 많은 인간을 천국에 보내주고 싶어 한다는 말이죠?”
“별 전체의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면, 적어도 자신이 나고 자란 제국의 백성들만큼은 반드시!”
“이야~ 솔직히 저보다 훨씬 황제 자격 있는 듯!”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넌 좀 조용히 해라. 내가 보기에 배화교주가 없었어도 이 나라는 너 때문에 망했어!”
엘레나 누나가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그냥 승엽이만 데리고 숨을까 했는데, 허점이 있었어요. 배화교측에서 승엽이가 죽었다고 발표하면 어쩌죠?”
“제가 멀쩡함을 밝히면 되는 – 아 그러면 위대한 절대고수 배화교주가 날아와서 절 죽이겠네요.”
이래서 내가 단순히 도망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니까 망명해야 하는 거야. 교주의 손길로부터 널 지켜줄 수 있는 세력, ‘이단’ 배화교의 천하통일을 대단히 불쾌하게 여기는 집단의 품에 안겨야지.”
3일 후, 서방 제국에서 배화교에 서신을 보냈다.
오랜 형제이자 동맹, 광명 제국 황제가 타락한 이단자의 손길을 피해 구원을 요청했으니, 정의로운 아베스터 교단은 그 부탁을 거절하지 않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