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59)
358화 – 205호, 저주의 방 – ‘□□□□’ (7)
– 엘레나
“이상하네요.”
흔들거리는 마차, 고개를 갸웃거리는 송이의 말에 할아버지가 반문했다.
“무엇이?”
“페로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아요.”
“그놈이 언제는 우리에게 말하고 다니더냐?”
“떠나더라도 보통 하루면 돌아오는걸요? 이렇게 장기간 떠나있는 경우는 보통….”
“보통?”
“멀리 있는 다른 동료를 돕고 있는 것 같네요. 누굴까요?”
“흠…. 이 자리에 없으면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미로뿐인데? 미로를 우리 쪽으로 데려오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있겠네요.”
— 철컥!
“제1사도! 잠시 나와보시겠습니까?”
황궁을 떠난 지 3일 차, 기사단장이 알려왔다.
“제1사도,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부터 말씀드리면, 교단에서 이단자들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광명 제국의 내란에 우리가 정식으로 끼어들 명분이 생긴 셈입니다.”
“다행이네요. 안 좋은 소식은요?”
“어제, 배화교에서 추격대가 출발했다고 합니다.”
“예상한 일이죠.”
“거기에 조원홍이 끼어 있다고 합니다.”
“…”
서방 제국의 영역에 들어서기 전에 배화교의 추격대가 우릴 따라잡을 수 있을까?
배화교의 평범한 무인들이라면 어렵겠지.
애초에 이쪽에서도 정말이지 쉴 틈 없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원홍이라면 어떨까?
기묘한 술수를 써서 하늘을 날아온다 해도 그러려니 할만한 존재가 아닌가.
그 답은, 저녁 무렵 자연히 알게 되었다.
*
해가 질 무렵, 숨이 탁 막혔다.
동쪽 하늘로부터 뻗어온 압도적인 존재감이 천지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무공을 익힌 적 없는 우리는 물론이고 말들조차 놀라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어두운 표정으로 장탄식을 터트렸다.
“하! 소설에서나 봤던 고수의 존재감이 이런 거였구나!”
심지가 약한 사람들은 슬슬 헛구역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
슬슬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조원홍이 어둠을 두른 채 나타났다.
그는,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단 한 사람을 불렀다.
“제1사도. 얼굴 한번 봅세.”
나와 아는 사이라는 설정이구나. 이상한 일은 아니다.
승천 의식의 해석 문제로 교단이 쪼개지기 전에는 나와 그가 같은 종교에 속해있었다는 설정이니까.
어차피 말들이 겁먹어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마차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입니다.”
처음으로 직접 만난 조원홍은 외견부터 특별한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매우 잘생겼고, 체구도 당당한 데다가 눈빛이 빛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3년만인가? 그대는 여전히 별빛처럼 아름답구나!”
“…”
“안타까운 일이로다. 본래 한 가족이었던 우리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당신의 책임 아닙니까?”
“내 책임? 왜 그리 생각하나?”
“승천에 대한 교리를 당신 멋대로 -”
“그만. 교리에 대한 혼란스러운 이야기는 피차 이쯤 하지. 평생 경전만 들여다본 노인들이나 할 이야기라네. 그리고 솔직히 말해보게. 자네가 나보다 경전과 교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신하나?”
“…”
“그런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한 사람의 인간 대 인간으로 말해보게. 내가 하는 일이 자네가 ‘심판’할 일이라 여기나?”
심판? 이 단어는 뭔가….
“4년 전에 큰 홍수가 들었네. 광동의 재능 있고 성실한 사람들이 3,000명 넘게 죽어 나갔지.”
지금, 배화교주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재작년엔 초여름에 서리가 내려 하북 평야의 밀 농사가 망쳐졌네. 이런 환란 속에서 황실이 무엇을 했는지 아는가?”
“글쎄요.”
“그놈의 황태자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를 가지고 싸우느라 바빴다네. 이 과정에서 이자성의 딸이 죽기까지 했지.”
“…”
“배화교니, 승천 의식이니 하는 건 제쳐두고 자네 눈으로 보게. 제국을 뒤엎겠다는 내 결단에 그 어떤 탐욕이 보이는가? 내가 이 한 몸 편해지자고 일을 벌였다면, 하늘에 맹세코 그대의 심판에 저항하지 않을 것이야.”
배화교주 조원홍은 축복 ‘정의’에 대해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내게 자신이 결코 ‘악인’이 아님을 주장하며, 내가 데리고 도주 중인 제국의 황제가 배화교에 의해 응징당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뒤집어서 말하면, 조원홍은 내가 지금 ‘정의’를 쓸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보아하니 정의의 힘은 이 무대에선 배화교가 섬기는 존재가 제1사도인 내게 내린 권능인 모양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본래 같은 종교였으니 교주가 내 힘을 아는 건 자연스럽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내가 왜 다른 동료들과 달리 서방 제국의 아베스터 교단이라는 배경으로 시작했는지 깨달았다.
본래는 알아내기 어려운 배화교의 내밀한 정보, 특히 승천 의식의 구체적인 내용을 동료들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교주가 ‘정의’에 대해 알게 하려는 것이다.
교주가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예컨대, 정의의 구체적인 기준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교주. 인간 대 인간이니, 만민을 구하고자 하는 결단이니 하는 말이야말로 의미 없음을 알지 못하시나요?”
“무슨 말이지?”
“일찍이 천상의 왕좌에 앉아계신 분이 내게 죄인을 벌할 힘을 내리셨나니…. 죄인이란 곧, 하늘의 뜻에 거스르는 자.”
“…”
“그대가 교리를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곧 대죄임을 어찌 알지 못합니까?”
나는 조원홍에게 말했다.
백성의 고통이니, 황실의 폭정이니 하는 건 내 알 바 아니고, 심판의 기준은 신의 뜻에 따랐느냐 따르지 않았느냐의 문제라고.
“마음대로 해석했다? 교리의 해석에 어찌 정답이 있을 수 있는가! 제국의 1억 8천만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내 믿음은 단 하나의 거리낌도 없으니, 그대는 날 심판할 수 없음이야.”
대답을 듣는 순간 확신했다.
조원홍은 내 힘의 정확한 기준에 대해서 모른다.
하늘에 있다는 205호의 죄수에겐 미안한 말인데, 나에게 무슨 신앙심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정의의 기준이 신의 뜻과 관련이 있을 리가 없다.
그냥 내 마음속 기준이 핵심이고, 조원홍이 처음 주장한 황실의 폭정 따위의 논리가 더 의미 있다.
“바로 이런 대답이야말로 당신이 죄인이라는 증거! 하늘에 계신 분의 뜻을 제 마음대로 재단하며, 자기 생각을 곧 신의 뜻이라 착각하니 이것은 곧 오만이 아니겠습니까?”
“오만이라. 그러면 내가 물어보마. 네 말대로 지상의 졸자인 우리가 감히 위대한 빛, 아샤(Asha)의 뜻을 가늠할 수 없지. 한데, 너는 대체 그분의 뜻을 어찌 알고 내가 틀렸다 단언하는가?”
“…”
여기서 막혔다. 뭐라고 답해야 하지?
교주의 주장은 신의 뜻을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데 넌 무슨 기준으로 내가 틀렸다고 단언하냐는 것인데, 여기에 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이 문답은 의미 없는 헛소리 대결이 아니다.
적어도 ‘교주’에겐 그러하다. 그는 정말로 하늘에 신이 있음을 믿는 신앙인이므로.
김묵성 : 최근에 신과 소통한 적 있냐 물어!
이, 이거다!
“교주, 이 문제는 그대 스스로 답할 수 있는 문제!”
“무어라?”
“그대는 아샤(Asha)의 뜻을 받들어 세상에 영광을 퍼트릴 운명을 타고난 자, 그러니 묻겠습니다. 최근에 천상에 거하는 분께 계시받으셨습니까?”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마신, 아드라비타의 흉계를 이겨낸 우리에게 호텔은 약속했다.
다음 방에선 죄수의 개입을 억제해주겠노라고!
205호의 죄수, 정황상 배화교의 신이다. 그 존재의 개입이 억제되었다면 분명 교주 또한 ‘무언가’를 느꼈으리라.
뭘 느꼈지?
매일 내려오던 계시나 예지몽이 멈췄다거나?
신이 내린 축복이 소멸했을지도 모른다.
신성한 물건이 부서졌을 수도 있고, 성역이 철거되었을지도 몰라.
…
장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교주는대답 대신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다음 순간, 장내를 억누르던 교주의 광포한 기세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숨을 헐떡이던 말들이 다시금 자세를 바로잡았고,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 사람들이 간신히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후우….”
“…”
“무엇을 속이랴. 얼마 전, 아샤께서 최초의 선지자께 내리신 신성한 불꽃이 꺼졌다.”
“그 말은 -”
“어쩌면 그대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정말 설득이 되는 건가?
이해득실 이전에 신의 뜻을 살피는 종교인이니까?
“제1사도, 그대 말대로 내가 오만함에 취해 아샤의 뜻을 곡해했을지도 모른다. 정녕 그러하다면, 내게 심판이 내려짐이 순리일 터….”
진짜 이런 말장난으로 해결된다고?
“그러므로 나 조원홍은 이제 피하지 않겠다.”
“그게 무슨 -”
“홍염철선(紅焰鐵扇)의 심판을!”
허공에서 – 기이한 물건이 나타났다.
그것은 쇠로 만들어진 부채였다.
금속으로 빚어진 부챗살엔 기기묘묘한 다채로운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배화교의 선지자가 광야에서 아샤(Asha)의 부름을 듣던 순간을 그려내고 있었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정의롭고 진실한 자, 아샤께 여쭙나이다. 지금 이 자리의 인간 중 대죄를 지은 자는 누구입니까? 누구보다 큰 죄를 지은 자에게 심판의 불길을 내려주소서!”
부채가 오색의 광휘를 드러낸다.
감히 사람의 힘으로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신성한 빛이 세상의 경계를 허물었다.
찰나의 순간, 이해할 수 없는 환영이 시야를 사로잡았다.
불꽃이다.
단 하나의 불똥만 튀어도 세상 전체를 태워버릴 불꽃이다.
그 힘의 극히 일부만 새어나가더라도 온 세상의 바닷물을 말려버리고도 남을 빛이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압박감 속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패배를 직감한 때.
홍염철선의 심판이 내려졌다.
…
…
…
“뭐죠?”
“…”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심판이 내려진 대상이 나는 아니다.
“대체 이 무슨?”
멀쩡히 말하는 걸 보니 교주도 아니었다.
분명히 뭔가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았는데, 아무에게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둘 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는 때, 홍염철선(紅焰鐵扇), 딱 봐도 이 방의 유산으로 여겨지는 물건이 빛을 잃었다.
적막이 내려앉았다.
배화교주 조원홍도, 제1사도 엘레나도.
뒤쪽의 소년 황제 박승엽이나 철십자 기사단원들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침묵을 지켰다.
잠시 후, 교주가 나름대로 상황을 깨달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1사도. 그대도 알다시피 홍염철선의 심판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고금 제일의 마귀라는 환마 또한 알 수 없는 힘으로 죽음을 면했을 뿐, 지금의 우리처럼 터럭 하나 다치지 않은 모습은 아니었지.”
“그 말은?”
“이 자리엔 죄인이 없다는 의미다. 나는 그리 여긴다.”
“…”
“아샤께서 말씀하셨다. 이 조원홍이 틀린 것도 아니나, 제1사도의 선택 또한 틀리지 않았노라고.”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국의 선황은 천하를 도탄에 빠트렸으나, 이를 벌하기 위해 일어선 나 또한 많은 사람을 죽였지….”
“그 말씀은?”
“어쩌면 너무 서둘렀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게 소년 황제를 벌할 자격이 없을지도. 이것이 아샤의 뜻이라면, 나는 여기서 물러서겠다.”
“…”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교단이 힘을 모아 천하의 고통을 가라앉히겠다. 그리하면 천명이 내게 올 것이며, 아샤께서도 내게 말제로부터 황위를 받아낼 자격이 있다 말씀하시리라.”
그 말을 끝으로 배화교주는 떠나갔다.
힘으로는 이자성에 버금간다는 초인, 내가 정의를 활성화해도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 무적의 존재.
허나…
그는 무슨 절대 고수이기 이전에 종교인이었다.
4일 후, 서방 제국에 도착할 무렵 ‘탈출 알림’이 떴다.
*
– 미로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무시무시한 할아버지가 쓰러진 후, 혼자 살아남은 난 적극적으로 ‘힘이 담긴 말’을 사용해 주변 일반인들의 도움을 받아 숨어들었다.
그리고,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내게 하늘의 새가 다가왔다.
“페로야!”
페로는 가타부타 말도 하지 않고 – 생각해보면 원래 말은 못 하지 않나? – 변신하더니, 날 태운 채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반쯤 기절할 지경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상황을 이해했다.
페로는 날 동료들이 있는 장소로 데려가려는 게 아닐까?
…
황궁을 출발한 지 3일 차, 슬슬 앞서 지나간 마차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불꽃을 보았다.
「그대, 천고의 대죄를 저지른 자. 천지에서 가장 큰 죄인이여….」
“어? 페로, 이 소리 들 -”
「정의롭고 진실한 자, 아샤(Asha)의 이름으로 묻겠다. 어찌 네 탐욕을 위해 온 세상을 종말의 위기에 몰아넣었는고?」
“제가요?”
「그대의 죄악은 너무나 깊도다. 2만 5000년 동안 무간지옥에서 불타오르더라도 전부 씻어내기엔 부족하며, 3,000번의 삶을 축생처럼 살아가더라도 죗값을 다 치르지 못 하리라.」
대체 뭔 소리야?
「심판을 받아들여라.」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나를 덮쳤다.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