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60)
359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8)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6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호텔에서 깨어났다.
이제 봉인도 두 번째 당해보는 셈인데,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도 된 것 같았다.
요전에 203호를 진행할 때는 한 번씩 밖으로 나올 때마다 모두가 고통스러워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나오자마자 모두의 상세를 살폈는데,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식사 시간은 아직 아닌 것 같으니 음료수나 마시면서 이야기합시다.”
진철 형의 제안대로 다과 테이블 쪽으로 이동했다.
테이블에서 제일 먼저 나온 이야기는 각자의 역할이었다.
“승엽이가 황제였어요?”
“가인아, 내가 말했 – 참, 이제는 잊었겠네.”
미로의 반응을 보아하니 시간대여기로 날 불러봤던 모양이다.
“형, 제가 손짓 한번 하면 삼천 궁녀가!”
“삼천 궁녀?”
“삼천 궁녀가 있을 줄 알았는데 다 도망가고 없었네요.”
“도, 도망가?”
은솔 누나가 그 말에 정신없이 낄낄거리더니,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설명해줄 겸 해서 205호의 기본적인 시나리오를 설명해줬다.
“그러니까…. 황제가 정치를 개판으로 해서 나라를 말아먹으니까 배화교라는 사교 집단에서 반란을 일으킨 상황이라는 거죠?”
“그렇지.”
“배화교는 백성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본래라면 제국을 지켜야 할 천의맹 같은 무림 세력도 황실에 학을 떼서 방관 중이고.”
“맞아.”
“저주의 근원은 정황상 배화교가 제국을 무너트린 후 진행한다는 승천 의식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저주의 방 줄거리가 지금처럼 3줄 요약으로 끝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승엽이가 여러 차례 접시를 테이블 아래로 움직였다 위로 올렸다 하며 감자튀김을 대량으로 모았다.
아리가 그 광경을 보며 물었다.
“그게 그렇게 맛있니? 이번 방에선 딱히 굶긴 것도 아닐 텐데.”
“누나, 이젠 진짜 장담할 수 있는데 옛날 황제가 먹던 음식보다 감튀 케첩에 찍어 먹는 게 더 맛있어요!”
전직 황제의 발언이었기에 무척 설득력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이놈아, 너 이렇게 튀김 좋아하면 사람이 아니라 통돼지 되는 것 아니냐?”
“아~ 자꾸 저한테 눈치 주지 마세요. 송무부 상서 이원철도 아니고.”
“뭐? 누구…. 뭐시기?”
“흠 흠!”
승엽이가 난데없이 목청을 가다듬더니 테이블에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폐하, 광명성세를 이끄시는 황실의 영광을 위해 송무부 상서 이원철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근래, 흉년과 반란이 겹쳐 민생이 참담하며 식량이 부족합니다. 전하께서 백성들의 근심과 아픔을 덜어주고자 -”
“그만! 이게 다 뭔 소리야?”
“식사를 줄여 모범을 보이신다면, 천하 백성들이 전하의 은덕을 보일 것이며 하늘의 뜻이 -”
이 시점에서 은솔 누나가 정신없이 킬킬대며 요약했다.
“별것 아니고, 징그러울 정도로 잔소리가 많던 신하가 몇 명 있었어. 사극으로 치면 허구한 날 ‘통촉하시옵소서!’ 하는 스타일.”
승엽이가 불평을 내뱉었다.
“아니 무슨 밥 한번 먹어도 나 때문에 흉년이 들었고, 눈 한번 감았더니 나 때문에 반란이 일어났다는데,진짜 곤장 마려운 거 참느라 힘들었죠.”
“연산군이 이래서 나왔구나!”
“…”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고 같이 농담할 수 있었다.
“원래 전근대는 그래.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왕이 못난 탓이지. 그래도 다행이잖아? 원시시대가 아니니까 ‘이게 다 황제 때문이다’ 하고 욕하는 선에서 끝났지.”
아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네. 고대 문명이면 일단 화형대에 왕 묶어두고 생각해야지. 부위별로 나눠서 태우면서 어딜 태워야 비가 빨리 올지 확인해야 하니까.”
실제로 장대에 묶여봤던 승엽이의 표정이 해쓱해지더니, 정신없이 감자튀김을 퍼먹기 시작했다.
이러니까 왠지 더 놀리기가 좀 그랬는지, 누나가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상황 자체는 단순한 방이니까, 이제 주요 인물에 대해 말해보자.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하고 끝내면 될 것 같네.”
이쯤에서 205호의 제목, 봉인 당할 때 봤던 「저주의 방 – ‘□□□□’」의 빈칸에 들어갈 단어를 저절로 알았다.
“절대고수….”
“뭐?”
“205호 제목, ‘절대고수’네요.”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한 3명의 초인, 다른 고수와 한 차원 달리하는 신화적인 무용의 소유자들.
3명의 절대고수들이 205호의 핵심 인물이다.
“이자성 그 개새끼부터 말해봅시다.”
진철 형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나름대로 스승인데 개새끼 소 새끼는 좀 그렇고. 미친놈 정도로 순화하지.”
여러 명의 동료가 너나 할 것 없이 이자성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우습게도 가장 감정이 덜한 사람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죽은 은솔 누나였다.
“나는 할 말이 없네. 이자성 얼굴도 본 적 없어.”
여러 사람의 말을 종합해보면, 정말이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강한 것 같았다.
보아하니 1-1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는데,엘레나는 정의를 써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 아리가 선생님에게 물었다.
“상현아, 최후의 섬광은 빗나갔던 거지?”
의사 선생님은 드물게도 자존심 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어떻게 빗나간 거야? 최후의 섬광의 탄속은 광속의 16%, 초속 5만 km 정도로 알고 있거든?”
“당연히 이자성이 초속 5만 km로 움직여서 피한 건 아니야. 그는 내가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였어. 흡사…. 순간이동 같았다?”
“순간이동?”
“아니야. 분명 순간이동과는 달랐는데. 전조가 없는 움직임? 표현하기 어렵다. 워낙 기기묘묘한 재주가 많은 사람이니….”
그때, 할아버지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형환위(移形換位)….”
총을 피하고자 총알보다 빠를 필요는 없다.
총을 쏘는 사람이 쫓지 못하는 속도로 움직이면, 조준이 실패하기 마련이니까.
이자성은 이런 원리로 최후의 섬광을 피한 후 선생님을 쓰러트린 모양이다.
이외에도 천하제일검이 부린 묘기는 하나둘이 아니었다.
“이자성의 칼이 형의 창을 무시하고 들어갔어요?”
“그랬다니까!”
“어떻게요? 창을 쪼갰나? 아니면 선생님의 손이 우리 피부를 무시하듯이 창을 투과해서?”
“아니, 아니 가인아. 그런 개념이 아니고….”
진철 형은 표현을 한참 고르더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꺼냈다.
“내 창의 흐름을 자신의 흐름에 끌어들였다?”
“네?”
“하늘을 나는 새나 범선이 역풍을 타고 도리어 직진하는 느낌으로.”
“그게 무슨 느낌인데요?”
“으음….”
“가인아! 가인아! 나도 할 이야기 있어!”
미로가 하는 말은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신을 쪼개서 빙의에 저항해? 칼을 휘둘러서 마도서의 힘을 썰었어?”
심지어 이 말을 시간대여기로 소환한 ‘내’가 했고, 이걸 꼭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라 했단다.
이쯤 되자 난 이자성이 칼을 휘둘러 바다를 갈라서 모세의 기적을 일으켰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선생님과 진철 형, 미로의 뜬구름 잡는 설명을 듣다 보니 한 가지는 명확히 깨달았다.
동료들도 이자성이 정확히 무슨 무공을 썼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동료들은 절대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깨달음을 얻은 은솔 누나가 대화 주제를 돌렸다.
“그만, 이쯤 하자. 몇 분 듣는다고 이해하면 누구나 절대고수가 됐겠지. 난 그보다 상현 씨가 들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워.”
“내가 이자성과 나눈 대화 말이지?”
“상현 씨, 이자성이 자신은 황실과의 은원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죠?”
“맞아. 이자성은 환마를 보며 세속의 이치에 얽매이지 않아야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급기야 딸이나 제자의 죽음조차 개의치 않게 되었다.”
“좀 희한하네요.”
누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본인이 느낀 이자성의 모순을 짚었다.
“우리 앞에 나타났던 이자성은 환마가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아냐고 말했어요. 그런 존재의 부활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고, 한 명의 협객처럼 우리 앞에 섰죠.”
“으음….”
“세속의 이치에 초탈해서 가족의 죽음조차 가벼이 여긴다면서, 환마의 추종자가 수도에 들어왔음을 깨닫자 물불 가리지 않고 칼 한 자루 들고 협객처럼 나섰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의사 선생님에게 한 말은 뭔가 세속의 법도를 무시하는 혼돈의 깨달음을 얻은 마인 같았는데, 정작 행동은 협객 그 자체였다.
잠시 후, 두 가지 해석이 나왔다.
“전 사람의 말보다는 행동을 신뢰합니다. 이자성은 여전히 강호 협객 같은 사람이죠. 상현 씨에게 한 말은 떠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날 떠본다?”
“그 시점의 이자성은 모종의 수단으로 환마의 추종자가 수도에 들어섰음을 알았어요. 마침내 황실이 사악한 마귀와 결탁했다고 여겼겠죠. 그리고….”
“나도 의심의 대상이었겠군. 그래서 자신이 환마와 비슷한 존재가 되었다고 밝히며 내 반응을 떠본 건가?”
누나는 이자성의 행동이 진심이고, 말은 의사 선생님을 떠보기 위함이라 여겼다.
묵성 할아버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니지, 아니지. 그렇게 정리해버리면, 상현이가 낮에 이자성과 대화하며 느꼈다는 위화감을 설명할 수 없다. 이자성이 연기하고 있다고 느꼈다며?”
“분명 그랬지.”
“내가 보기에 이건 무협 소설 클리셰다.”
무협 소설 클리셰?
“이자성은 심마에 빠졌다.”
이후, 할아버지는 ‘심마’라는 개념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해줬다.
탁월한 고수들이 벽에 막힌 채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릇된 유혹에 흔들리곤 하며 이것을 곧 심마라 한다.
의사 선생님은 정신병의 일종인 것 같다며 흥미로워했다.
그때, 대화가 다소 허무맹랑한 영역으로 간다고 여겼는지 아리가 끊었다.
“깨달음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이쯤 하자. 그보다, 듣다가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알았어. 우리, 사실 이자성과 싸울 필요가 없던 것 아닐까?”
“뭐?”
“이자성은 황실을 적대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냥 방관할 뿐, 칼 들고 소년 황제의 모가지를 날릴 생각은 없어. 이자성이 움직인 건 순수하게 환마의 부활을 막기 위해서잖아.”
“그, 그렇지!”
아리가 단순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다음 시도부터는 나랑 미로는 수도로 가지 말자. 수도로 가면 어떤 식으로든 이자성이 우릴 눈치채고 칼 들고 날뛰는 모양이니까.”
“어엇! 우리 때문에 이자성이 날뛴 거였어?”
미로의 놀란 외침에 아리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때문이 아니라 가인이 때문에.”
“가인이가 범인?”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다음으로 조원홍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다 한마디씩 하던 이자성과 달리 조원홍은 대면한 사람이 엘레나뿐이기에 엘레나 혼자 설명했다.
“미쳐 날뛰는 악마 같은 사람은 절대 아니에요.”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이면 애초에 거대한 종교단체의 수장이 될 수 없었을 거야.”
“광기에 물든 사교 집단의 교주, 이런 느낌보다 폭정에 시달리는 백성을 위해 일어선 혁명가? 적어도 조원홍 본인은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것 같았다.
승천 의식 또한 ‘저주의 방’이라는 개념을 이해한 우리 시각으로 보니까 205호의 저주처럼 보이는 것이고, 그들이 여기기엔 세상을 구할 수단이다.
“이자성과 달리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강한 건 분명해요. 그리고…. 신앙심이 흔들리고 있어요.”
조원홍의 신앙심은 흔들리고 있다.
듣자마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바로 호텔이 약속한 ‘죄수의 개입 약화’가 만들어 낸 가장 큰 혜택이다.
호텔이나 죄수의 개념을 모르는 조원홍으로선, 어느 날 깨어났더니 신성한 땅에서 800년간 불타오른 신이 내린 불꽃이 꺼졌다.
종교인이라면, 신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자신들이 뭔가 큰 죄를 저지른 게 아닌지 의심할 만한 상황이기도 하다.
“이건 두고두고 그의 약점이 될 겁니다. 또, 그에겐 심판의 힘이 담긴 보물이 있어요.”
조원홍은 홍염철선(紅焰鐵扇)이라는 신물을 가지고 있으며, 신의 힘으로 죄인을 심판하는 도구라 한다.
어째 엘레나의 축복과 미묘하게 비슷했는데, 듣자마자 미로가 황당해했다.
“내가 죽은 게 그것 때문이었잖아!”
미로의 설명을 듣자 엘레나도 황당해했다.
“아니, 홍염철선이 심판한 사람이 근처에서 지나가던 미로였어? 나랑 조원홍은 그것도 몰랐네.”
“대체 왜 날 죽인 거야?”
아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 그거야 뭐, 고금 제일 대악마의 부활을 꾀하는 추종자라는데 정의의 신으로선 죽일 이유가 100만 개는 되는 것 아닐까.”
그 말에 미로가 입을 다물었고, 아리는 곧 킥킥거리면서 날 쳤다.
“진짜 얘가 문제네. 가인아, 좀 착하게 살라고 했잖아.”
웃음과 별개로 잠깐의 대화 속에서 홍염철선의 특징 몇 가지를 알아냈다.
첫째, 심판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다.
엘레나와 배화교주 둘 다 미로가 접근했음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홍염철선은 미로를 심판 대상으로 삼았다.
꽤 장거리에서 심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둘째, 심판했는지, 누굴 심판했는지는 사용자도 모른다.
조원홍은 미로가 심판당했음을 깨닫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심판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그 대신, 혼자 헛다리를 짚고 이 자리에 죄인이 없었다고 착각했다.
셋째, 심판에 저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황상 천기누설에서 말한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바로 홍염철선의 심판이다.
단순히 몸이 튼튼한 정도로는 대항할 수 없다.
그러나.
“환마는 심판을 겪고도 죽음을 면했다라….”
누나의 말에 할아버지가 답했다.
“여기까지 들으니 더 확실하다. 환마에겐 ‘불멸’을 보장하는 보물이 있는 거야. 그게 205호의 두 번째 유산임이 분명하다.”
환마가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멸’의 유산은 홍염철선의 심판으로부터 주인을 지켜줄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내리는 유산과불멸을 보장하는 유산.
창과 방패의 대결에서 방패가 이긴 셈이다.
“자, 이제 고금 제일의 악마에 대해 말해보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나에게 모였다.
“… 다들 갑자기 왜 절 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