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62)
361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10)
– 김상현
두 번째 시도가 시작하자마자 천의맹으로 이동하며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을 다시금 되새겼다.
205호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란 곧 배화교이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주 조원홍이다.
까다로운 점은 조원홍 본인도 무지막지한 강자인데다가 그의 수하도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자성이 사태의 근원이었다면 나았으리라.
첫 번째 시도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이자성의 행동 방식은 조직의 수장이라기보단 그냥 무지하게 강한 무인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눈앞에 사마외도가 나타나면 천천히 거리를 두고 천의맹의 무인을 동원하기보다는 즉시 칼 들고 혼자 움직이는 쪽을 선호한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설령 조원홍보다 강하다 해도 상대하기는 더 수월하다. 숫자 앞에 장사 없는 법이니까.
반면 조원홍은 이 정도로 단독 행동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며, 전장에 있던 차진철은 조원홍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요전에 단독으로 엘레나를 추격해온 것은 황제가 국경을 넘어 도주 중이라 다른 사람들의 추격 속도로는 쫓을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호텔 파티가 그를 협공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다.
요컨대, 우리 힘만으로 조원홍을 상대하기가 까다롭다는 것이며 이에 대한 해결책은 둘이다.
첫째, 천의맹과 이자성을 끌어들일 것.
둘째, 환마를 깨울 것.
나는 첫 번째를 수행해야 한다.
*
천의맹에 도착하자 상황은 예전과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사방의 천의맹 무인들이 날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근처에 이자성이 몰래 도착해서 맹호철검 차군악에게 내 실력을 확인하라 지시했다.
“듣자 하니, 철혼신창께서는 -”
“좋습니다.”
“…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좋다고 하시오?”
아차차!
혼자 생각을 너무 깊게 하다가 차군악이 무예를 겨루자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대답하고 말았다.
“이 상황이라면, 한 수 겨뤄보자는 말씀 아니신지.”
“후! 그대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지?”
여기부터 예전과 다소 다르게 진행해야 한다.
…
대략 20번 정도의 공방이 오갔다.
맹호철검 차군악의 무예는 복잡한 기교를 부려 번잡한 초식을 쓰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그의 호쾌한 검술에 담긴 기저 심리는 ‘너와 나중 누구의 힘이 더 센지 겨루어보자’로 요약할 수 있겠지.
반면, 나는 아까부터 힘 싸움을 철저히 피하고 있었다.
덕분에 상대는 승부를 걸어오려 하는데, 나는 그 승부를 피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며 서로가 답답함을 느꼈다.
“하앗!”
“…”
“철혼신창,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셈인가?”
“…”
당연히 도망 다닐 생각으로 온 건 아니다.
단지, 출발하기 전 묵성과 나눈 대화가 머리에 맴돌아서 결정타를 날릴 시점을 잡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
“선생, 205호의 천기누설 내용 기억하십니까?”
“절대고수, 피할 수 없는 죽음, 요행수가 통하지 않고 탁월한 무력이 필요하다. 이 정도였지요?”
“앞의 두 단어는 이제 의미를 알았습니다. 절대고수야 조원홍, 이자성, 환마를 말하는 것이며 피할 수 없는 죽음은 홍염철선을 뜻하지.”
“요행수와 탁월한 무력의 해석이 애매하군요.”
“맥락상, 요행수는 탁월한 무력의 반의어입니다.”
“무력 외적인 수단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협지에서 말하는 ‘사술’을 뜻한다고 생각하는데 -”
“요원님, 저는 그 ‘무협지’라는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설명해주려는 겁니다.”
*
묵성은 천기누설의 세 번째 문구를 ‘사술을 자제하라’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듣고 나서 생각하니 끄덕여지는 구석도 있었는데, 첫 번째 시도에서 내 초현실적인 창술을 접한 차군악은 즉시 사술을 썼다며 분개했다.
당시 이자성은 도리어 차군악을 훈계하며 내 창술을 문제 삼진 않았으나,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자.
이자성은 결국 밤에 날 불러내어 죽였다.
물론 창술보다는 환마의 추종자와 황실이 결탁했다는 사실이 훨씬 큰 명분이었겠으나, 기이한 창술 또한 이자성의 심증을 굳히는 데 큰 역할을 했으리라.
요컨대, 무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온 자가 사술을 써서 그들을 제압해봐야 득 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나는 흡사 서커스 단원이 된 기분으로 내 기술을 묵성 앞에 보이며 ‘무엇이 사술이 아닌 정도의 무술처럼 보이는지’ 확인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결과 나온 기술이 이것이다.
— 퉁!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불꽃이 일어났다.
곧, 손끝에서 일어난 불길이 창대를 쭉 따라가더니 창날에서 아지랑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차군악의 눈동자가 벌어지며 그의 표정에 충격이 깃들었다.
“사, 삼매진화(三昧眞火)! 스승님도 아니고 네가 대체 어떻게?”
이 시점에서 비무의 승패가 갈렸다.
— 짝!
“되었다.”
창을 내지를 필요조차도 없었다.
주변 무인들 틈에 숨어있던 이자성이 몸을 일으키며 비무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무기를 맞댈 필요도 없이 이미 내가 이긴 느낌이었는데, 심지어 패한 차군악 또한 패배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다르다.
주변 무인들의 반응이 예전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예전엔 기괴한 수를 써서 맹주의 제자를 제압한 ‘사특한 배신자’를 보는 눈길이었다면, 지금은 소속을 떠나 드높은 경지에 도달한 강호의 선배를 보는 눈길이다.
묵성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느끼는 동시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창날이 허공에 날아다니는 건 사술이라 치자.
손에서 불꽃이 일어나는 건 왜 사술이 아닌 거지?
최소한 전자는 냉병기를 다루는 기술이기라도 하지, 후자는 대놓고 마법 아닌가?
이 기이한 논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따졌을 때, 묵성은 명쾌히 답했다.
“그냥 받아들여!”
*
사술을 쓰지 않고 –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 차군악을 제압하자 전개 자체가 달라졌다.
이자성은 흡사 강의라도 하려는 듯 천의맹 무인들을 주변에 앉힌 후, 중앙에 혼자 서서 ‘무학 시연’을 시작한 것이다.
“천지의 기(氣)는 곧 만변(萬變)이라! 그 무한한 가능성을 너희가 쥔다면 이루지 못할 바가 없음이요 -”
…
“불꽃, 바람, 벼락. 이러한 자연 현상들 또한 만변의 결과이니, 무예의 끝에 자연이 깃든다고 함은 결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
어느새 나 또한 이들 사이에 껴서 이자성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천의맹 무인들이 내게 보이던 적대감은, 진작 눈 녹듯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므로 이것이 곧 춘하추동의 이치니라. 보아라.”
기적이 일어났다.
주변을 따뜻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봄의 숨결이 사방을 채웠으니, 이것이 곧 봄이다.
하늘의 태양을 닮은 불꽃이 환영처럼 이지러졌으니, 이것이 곧 여름이다.
시원한 바람이 여름의 열기를 걷어냈으니, 이것이 곧 가을이다.
이윽고 피부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의 냉기가 연무장을 스쳐 갔으니, 이것이 곧 겨울이다.
천하제일검에게도 이 정도의 술수는 상당히 고된 일이었는지, 이자성의 이마는 어느새 땀으로 가득했고 손은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수법은, 적어도 ‘제자들의 존경심 고취’라는 면에선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주변의 천의맹 무인들이 이자성을 신을 대하듯이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존경 가득한 눈으로 스승을 바라보는 제자들 한가운데서….
나는, 끊임없이 속으로 외쳤다.
‘이게 대체 무슨 무술이냐!’
진짜 이런 황당무계한 대마법도 ‘무공’이라면서, 창날만 허공에 날아다니는 건 ‘사술’인 이유가 뭔데?
다소 반항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갑자기 이자성이 날 불렀다.
“상현아.”
“예?”
“한데, 마지막에 네가 보인 재주는 놀랍구나. 화기(火氣)를 연성해낸 것은 따라 할 수 있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나, 그 힘을 철창에 담아낸 기예는 흔치 않다. 그 이치에 대해 논해보거라.”
“…”
모르지.
나도 내 손에서 어떻게 불꽃이 생겨나는지도 모르겠고, 그 불꽃을 어떻게 병기에 실을 수 있는지 모른다.
애초에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거든.
연소의 3요소는 산소와 연료, 열이다.
산소야 대기중에 많고, 열은 내 손가락으로 만들어냈다 치자.
연료가 없는데 불이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
내 손가락이나 창에 기름을 바른 것도 아닌데.
“…”
“…”
그럴듯한 소리를 지껄이고 빠져나가자.
“죄송합니다. 드높은 깨달음이란 곧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였으니…. 깨달음을 말로 표현할 자신이 없습니다.”
“호오…. 아직은 정상에 오른 것이 아니라 나아가는 과정인가?”
뭔 소리야?
“알겠다. 깨달음을 추스르는 과정이겠지. 언젠가 네가 그 지혜를 모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입니다. 스승님께서 일찍이 제게 베푸신 가르침, 언젠가 저 또한 맹에 나눌 날이 있을 겁니다.”
내가 원리를 이해할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강의가 끝나자이자성은 몸을 털며 일어섰다.
그제야 내가 이 장소에 온 목적을 돌이키며 이자성에게 다가가서 –
“되었다.”
“예?”
“네가 하려는 말을 내가 모르겠느냐?”
“…”
“황궁으로 돌아가거라.”
“스승님, 부탁이니 -”
“내가 거절한다고 하였느냐?”
“예?”
“돌아가거라.”
그때, 예전처럼 귓가에 다른 문장이 들려왔다.
– 조만간 황궁에 사람을 보내겠다. 그러니 일단 돌아가거라.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내가 빠져 줘야 이들도 제국을 도울지 말지 논할 수 있을 것 아닌가!
*
저녁 무렵, 무인이 황궁에 도착해 우리가 기대했던 소식을 전했다.
앞으로 천의맹은 배화교와의 일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며, 만일 배화교주가 옥좌를 탐한다면 천의맹주 또한 제국을 위해 검을 뽑겠다고 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그들은 황실이 과거 천의맹에 저질렀던 패악질에 대한 황제의 친필 사과와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몇 가지 조치를 요구했는데, 황제는 내용을 읽지도 않고 도장부터 찍었다.
승엽 군이 도장을 워낙 호쾌하게 찍어서 천의맹의 무인이 당황할 지경이었다.
상황이 잘 풀리자 은솔 양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오호! 생각보다 잘 풀렸네요? 조만간 천의맹에서 무인을 보내줄 모양이죠? 이자성도 합류하는 건가?”
“그럴 겁니다. 이자성의 전음은 분명 그런 뉘앙스였습니다. 한데….”
“한데?”
“정말이지 이해하기 어렵군요. 내가 한 일이라고는 맹주의 제자를 쓰러트리고 손으로 불꽃을 피웠을 뿐인데, 그게 천의맹과 황실 사이의 원한을 씻어낼 근거가 됩니까?”
내 말을 들은 묵성 요원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다 설명했잖냐? 선생은 천의맹 입장에선 집 나간 막내아들이다. 권력자의 사특한 말에 홀려 올바른 길을 벗어난 막내아들이 10년 만에 집에 돌아온 꼴이라고!”
“그래서?”
“그렇게 막내가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하늘 아래 그 어떤 거리낌도 느껴지지 않는 올바른 정도(正道)를 보여준 것이지.”
“… 손가락을 튕겨서 불꽃을 보여준 게 말입니까?”
“이 친구 답답하네? 비무도 했다며? 강호의 무인들은 원래 한번 붙어보면 서로 착한 놈인지 나쁜 놈인지 안다니까?”
“살다 살다 그런 개똥같은 심리학 이론은 처음 듣는 -”
“아오! 상현아! 이게 심리학이 아니라니까? 강호인들이 보기엔 사람의 인생이 칼끝에 담겨있다고!”
“하하! 묵성아, 어지간하면 관리국 경력을 보고 참겠는데, 내가 하버드에서 의사 면허 딴 사람이야! 터무니없는 소리를 -”
“제발…. 두 사람 다 지랄 좀 그만 해요.”
“크흠. 선생, 논리로 이해하기보다는 ‘무림인’이라는 범인과 다른 족속이라 생각하시는 게….”
“… 이해했습니다.”
분위기가 진정된 후, 아까의 일을 돌이켜보자 무언가 애매한 구석이 있긴 했다.
성공은 성공인데 절반의 성공이라는 느낌?
묵성 요원도 그 부분을 느꼈는지 내게 물었다.
“이자성의 심마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나?”
“그런 이야기가 나올 상황이 아니었지.”
이자성의 심마, 원인은 아마도 환마에 대한 열등감이리라.
환마의 추종자인 아리와 미로가 수도에 오지 않았기에 이자성은 ‘환마’라는 키워드를 떠올리지 않았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환마의 추종자가 수도에 오면 이자성을 자극해서 폭주하게 만드는데, 그래서 오지 않게 했더니 이번엔 심마라는 이자성의 핵심 키워드에 다가갈 수 없었다.
은솔 양이 무엇이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다.
“상관있어요? 뭐가 어찌 되었든 이자성과 천의맹을 끌어들이면 그만인데 끌어들였잖아요?”
그것도 맞는 말이다.
심마라는 키워드를 건드리지 않고도 천의맹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때, 묵성 요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네? 심마라는 키워드를 무시하고도 천의맹을 끌어들였다. 그렇다면….”
“그러면?”
“이 키워드는 ‘왜’ 있는 거지?”
“…”
*
– 유송이
따사로운 햇볕 아래에서 저잣거리를 거닐며 필요한 물품을 모았다.
처음엔 돈이 없어서 괜찮을지 걱정스러웠는데, 알고 보니 필요가 없었다.
“으아아악! 모,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
“지, 집에 늙으신 어머님과 어린 딸이 있습니다.”
“아내는요?”
“작년의 흉년을 이기지 못하고….”
슬픈 사연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왜 내 앞에서 이러고 있을까?
“그럼 쌀이랑 옷 전부 이 주머니에 담아!”
거대한 ‘백룡신갑’의 헬멧에서 나오는 기계음에 남자는 덜덜 떨며 주저앉았다.
“다, 담으라 하시면 -”
“에잇! 말귀를 못 알아먹네? 환마펀치!”
‘백룡신갑주’ 미로의 비전절기, 환마펀치는 단숨에 좌판을 쪼개며 –
“아리야, 얘 좀 데려가 당장!”
머리가 아파진다.
우린 대체 뭘 하다가 대낮에 하남성의 좌판을 털고 다니는 강도가 됐을까?
방호복을 입은 미로는 왜 초등학생도 놀랄만한 정신연령을 자랑하기 시작한 걸까?
— 피요오오오!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헛웃음 지으며 고개를 돌렸더니, 페로가 대놓고 정육점을 털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젠 나도 포함해서, 환마의 추종자요 무림공적이다.
설정만 무림 공적이 아니라 하는 짓도 무림공적이다.
“아리 얘는 이 와중에 어딜 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