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64)
363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12)
– 이은솔
첫 회전은 제국의 승리로 끝났다.
배화교주는 아직은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는 듯, 교의 핵심 고수라는 13 사령 중 셋이 죽을 때까지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이것이야말로 상대에게 남은 수가 있다는 명확한 증거다.
그들에게 회전이 마지막 수였다면, 조원홍 또한 전면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을 테니까.
그리고 3일 후, 배화교가 차지한 평야에서 기이한 탑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탑의 정체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 있었는데, 엘레나의 말에 따르면 저것은 교단 내에서 ‘하늘 탑’이라 불린다고 한다.
“일종의 소환 의식을 위한 도구라고 합니다.”
엘레나의 말에 이자성이 반응했다.
“어떤 존재의? 제1 사도께서도 아시겠지만, 배화교가 소환할 수 있는 존재는 한둘이 아니오.”
“확정할 수 없으나…. 이런 상황에선 불러낼 수 있는 가장 강한 존재로 가정해야겠죠.”
차진철이 어딘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가능하면 사람과 싸우는 선에서 끝나길 바랐는데…. 기어이 괴물이 나올 모양이군. 가장 강한 괴물이 뭡니까?”
“아샤(Asha)의 장자의 장자의 장자. 영원히 타오르는 청염의 왕자, 카르다모스…. 라고 하네요.”
김묵성 : 옆에 이자성이 있으니 너무 외워서 말하는 티 내지 마라.
엘레나 : 주의할게요.
“카르다모스? 그렇게만 들어서는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네.”
“신성한 피가 흐른다는 하늘의 자손, 신의 후예. 더 쉽게 표현하면 일종의 불사조죠.”
차진철 : 시네마에서 나왔던 벼락 늑대 같은 느낌?
엘레나 : 아마도?
그때, 이자성이 가볍게 탁자를 치며 말했다.
“조화문주께서 특이한 재주가 있으신 모양인데, 가능하면 나도 들을 수 있게 말해주었으면 좋겠구려.”
“…”
“어지간하면 모른 체 할 셈이었는데, 워낙 티를 내서 말이지.”
“주의하죠.”
한숨이 나왔다.
대화창을 봤을 리는 없고, ‘전음’이라는 대화창과 유사한 수단이 있는 무대다 보니 그쪽의 눈치가 빠른 것 같았다.
이자성은 역시 여러모로 대하기 까다롭다.
지금은 아군이나, 이 아슬아슬한 평행선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가늠할 수 없었다.
— 탁!
할아버님이 가볍게 탁자를 쳐서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맹주, 황실의 사람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고충은 있을 테니 너무 몰아붙이실 필요는 없을게요.”
“…”
“그보다 제1사도, 그래서 카르다모스의 소환을 어떻게 저지해야 하는지?”
“단순합니다. 하늘탑을 파괴하는 것으로 충분하죠.”
그 말을 듣자마자 상현 씨를 떠올렸다.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거대한 건축물을 창칼로 부수려 들면 세상 힘들겠지.
그러나 최후의 섬광이라면 멀리서 손가락 한번 까딱이면 되는 것 아닌가?
대화창이 다시금 깜빡였다.
김묵성 : 최후의 섬광이라면 한방에 부술 것 같긴 한데….
이은솔 : 섬광을 쓰고 나서가 문제.
방벽과 하늘 탑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아무리 최후의 섬광이 강력한 유산이라 해도 방벽에서 쏘아서는 위력을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모두가, 최소한 상현 씨는 방벽을 버리고 배화교가 점령한 평원으로 나아가서 최후의 섬광을 쏘아야 한다.
헌데, 최후의 섬광은 사용 후 재충전까지의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 유산이다.
따라서 최후의 섬광으로 하늘 탑을 파괴한 후, 우리는 유산 하나가 사라진 상태로 평원에서 도주하지도 못한 채 조원홍에게 공격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조원홍으로부터 살아남을 방도가 있을까?
있다.
차진철 : 이자성이 우릴 보호해주면 됨.
이은솔 : 솔직히 믿기 힘든 사람이라.
차진철 : 요전에 누님을 구해주지 않음?
결국 눈앞의 절대고수, 이자성의 속내가 어떠하냐에 달렸다.
딸과 제자가 황실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명확한 원한과 이 원한조차 밀어낼지 모르는 심마라는 불길한 키워드.
복잡한 감정을 담아 이자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자성이 다시 한번 크게 한숨 쉬었다.
“제발 내게도 무슨 말이라도 해 주시게. 지금 10분째 내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서로 눈을 깜빡이는데, 이게 무슨 기묘한 장난인가 싶구려.”
“… 죄송합니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회의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그때, 차진철이 돌발적인 언행을 보였다.
“그냥 솔직히 말하지.”
“그것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려.”
“배화교가 만들고 있는 하늘 탑, 이것을 파괴할 방도가 우리에게 있다.”
“호오?”
이은솔 : 잠깐!
차진철 : 하늘 탑은 이 시간에도 만들어지는 중. 시간을 끌면 불리함.
“문제는, 이걸 쓰기 위해선 평원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여기까지 들은 이자성은 즉시 상황을 깨달았다.
“일부는 황제를 지키기 위해 황궁에 남아야만 하는 상황인데, 부족한 전력을 쪼개서 방벽 아래로 내려가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배화교주가 그대들을 덮칠 테니까?”
“바로 알아들으시는군.”
“그거야 내가 – 오호라. 내가 그대들을 제대로 지켜줄지 믿기 어려운 모양이군.”
“…”
이자성은 상황이 우습다는 듯, 갑자기 허리춤의 칼을 뽑았다.
“무슨 -”
차진철이 내 어깨를 가볍게 잡으며 제지했다.
노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숨이 달린 상황, 피차 서로를 진실로 믿긴 어렵겠지. 이해한다.”
“…”
“허나, 한 가지는 명심하게. 나 이자성, 열일곱에 강호에 출두한 이래 이 칼에 떳떳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
“더 할 말이 없군. 조화문주, 결정하시게. 이대로 어영부영 방벽에서 시간을 낭비하다가 신의 자손과 한바탕 벌일지, 그게 아니라면 날 믿고 탑을 부술지 말이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직감이 뇌리에 스쳤다.
지금 이 결정이 이번 회차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아닐까?
*
– 유송이
숲길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 지 20분 정도가 흘렀다.
슬슬 이마에서 송골송골 땀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이 광대한 산악지형에서 어디를 뒤져야 가인 오빠가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때, 방호복을 입고 유치원생처럼 날뛰던 미로가 약초꾼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한참 더 가야 해요?”
“그, 그렇습니다요. 그래도 대로로 가는 것 보다 훨씬 빠릅니다. 길이 험하긴 해도 지름길이라 -”
“하아암! 아저씨.”
“예?”
“잠깐 저쪽 나무에 붙어봐요.”
“네?”
“에잇! 저 소변봐야 한단 말이에요!”
“아, 알겠습니다!”
난데없이 소변 이야기를 꺼내니 약초꾼은 크게 당황하며 뒤로 돌아서 나무에 붙었다.
그리고 – 시계가 튀어나왔다.
뭐야?
— 철컥!
바늘이 한 바퀴 도는가 싶더니, 허공에서 가인 오빠가 나타났다.
아니 이거 진짜 뭔 상황?
미로는 말없이 약초꾼을 가리켰고, 오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도서를 꺼내 들었다.
잠시 후, 약초꾼이 뒤로 돌아서 머리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 뭐, 뭐 -”
“송이야, 조용히 좀 해.”
“대체 뭐야? 갑자기 뭐야?”
“가인이가 저 사람에게 빙의한 상황이지.”
“왜? 대체 왜? 왜왜왜?”
아리는 어딘가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 못 느꼈어? 우릴 이끌고 이상한 장소로 움직이는데?”
“지, 지름길이라고 -”
그때, 미로가 가볍게 답했다.
“아까 성에서부터 이상했잖아. 다들 도망가고 우느라 정신없는데, 뭔가 겁먹은 흉내를 내면서 달라붙었잖아?”
“그때부터 의심스럽긴 했지. 송이 네가 호텔에서 여태 살아있는 게 미스터리 같아.”
아리는 한없이 진지한 말투로 날 무너트렸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이런 눈치가 빠른 아리는 그렇다 치고 미로조차도 나보다 먼저 약초꾼의 이상함을 눈치챘다는 점이다!
아리가 담담히 약초꾼에게 다가갔다.
“뭔가 알아냈어?”
“…”
“아직 정보를 읽어내고 있는 거야? 빨리 좀 -”
다음 순간, 아리가 갑자기 백 텀블링을 하며 상대의 공격을 피해냈다.
여유롭게 날 놀리고 있던 미로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는 순간 –
약초꾼은 번들거리는 눈을 빛내며 미로 옆에 쓰러진 가인의 몸을 노려보았다.
“이 힘…. 경지가 부족한 듯 하나 환마의 힘과 닮았다. 게다가 저자의 몸뚱이는 환마가 깃든 몸과 너무나 닮았구나!”
“비, 빙의에 저항하다니? 대체 무슨 수로 -”
“환마가 천하를 도탄에 빠트린 지 대체 몇백 년이 흘렀는가. 언제까지고 무력하게 당한다면 우리의 게으름이겠지. 하나…. 견디기 힘들구나.”
다음 순간, 약초꾼의 손에서 번쩍이는 비도가 솟아나더니 –
“크아악!”
그 비도를 자기 어깨에 박아넣었다!
신체의 주도권을 가지고 가인 오빠와 싸우고 있는 건가?
혼란스러워서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님은 확실했다.
다양한 관점의 힘으로 상대의 감각을 비틀어 타오르는 불길 속에 던져넣었다.
“으아아악!”
남자가 어찌할 바 모르며 바닥을 뒹구는 순간, 그 틈을 노리지 않고 달려든 아리의 손이 남자의 목을 베었다.
…
소강상태가 지나가고, 미로 옆에 쓰러져있던 가인 오빠가 깨어났다.
“으윽!”
“오빠! 괜찮아요?”
“아니, 빙의에 저항하는 놈이 왜 이렇게 많아? 그동안 이런 일이 많지 않았는데….”
아리가 가볍게 한숨 쉬었다.
“환마가 수백 년을 날뛰었다잖아. 봉인지역을 지키는 무인답게 대응할 수 있는 무공을 익힌 모양인데.”
“이제 알겠어.”
“음?”
“첫 회차에서 내가 미로에게 해줬다는 말의 의미, 이제 알았어. 정신을 쪼개서 빙의에 저항한다. 이게 무슨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였네.”
“… 양의심공(兩義心功)?”
“그게 뭔데?”
“마음을 쪼개는 술수를 나름대로 표현해본 거야. 아무래도 네가 해결법을 익혀야겠는데?”
“어떻게? 지금 얻은 깨달음은 시간이 지나면 또 사라질 텐데.”
“그렇네. 그건 그렇고, 무언가 알아낸 건 없어? 지금 죽인 이 자가 조언에서 경고해준 두 명의 고수 중 1인인가?”
“맞아. 정공법으로 붙었으면 매우 힘들었을 텐데, 어찌 됐든 기습을 통해 쉽게 해결한 셈이지.”
“또 한 명은?”
“그 사람에 대한 정보는 없어.”
여기까지 들은 아리가 즉시 미로에게 손짓해서 가인 오빠의 소환을 해제하게 했다.
사라지기 직전, 가인 오빠는 어딘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라졌다.
“한 명은 처치했으니 이제 하나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