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65)
364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13)
– 유송이
가인 오빠의 조언이 알려준 두 명의 고수, 그중 한 명이었던 약초꾼은 기습을 통해 손쉽게 처치했다.
이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깨닫기까지는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수, 숙여!”
미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냥 바닥에 엎드렸다.
동시에 살벌한 금속음과 함께 형체도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날붙이가 허공을 갈랐다.
“대체 아까부터 어디서 날아오는 거야?”
그때, 페로가 고함지를 시간도 아깝다는 듯 달려와서 엎어진 내 몸을 덮었다!
당연하다는 듯, 날카로운 송곳 같은 물체가 하늘에서 날아와 그로테스크의 몸에 구멍을 세 개나 만들고 말았다.
지옥이다.
한 걸음 걷기가 무섭게 비도가 날아들고, 너무 힘들어서 돌 위에 숨었다 하면 갑자기 정체불명의 독사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 구덩이가 있어서 페로가 날 들어올려야 했다.
물론, 그 구덩이엔 딱 봐도 사람 여럿 죽였을 법한 쇠꼬챙이가 숨겨져 있었다.
천장산 지형을 속속들이 꿰뚫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날려대는 날붙이와 온 사방에 설치된 함정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
가장 힘들게 하는 점은, 정체불명의 두 번째 고수가 절대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초에 정면에 나서서 싸우는 유형의 무인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철저히 자신을 숨긴 채, 오로지 기습으로만 일관하는 전투 방식.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답지 않게 한없이 지친 표정을 짓던 아리가 날아온 단검을 잡아들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날아온 단검과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단검의 모양은 똑같았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아리가 무슨 생각 중인지 깨달았다.
아리가 허물어지듯이 사라졌다.
아니, 내 인지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
…
날아오던 단검이 사라졌다.
아리가 정체불명의 고수를 ‘나침반’의 힘으로 추격하기 시작하자 상대가 도주하기 시작한 것.
미로가 지친 표정으로 다가왔다.
“조, 조용해졌어! 이제 무기가 다 떨어진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 아리가 쫓고 있는 거야.”
“아리? 아리가 갑자기 왜 나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로를 보며 새삼스레 아리의 ‘존재감 없는 소녀’가 얼마나 위협적인 힘인지 깨달았다.
나처럼 지속해서 정신을 집중해 아리를 떠올리지 않으면, 이 자리에 아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만다.
지금 미로의 모습이 그 증거다.
“우리, 잠깐만 쉬자….”
“내가 먼저 확인할게!”
방호복을 입은 미로가 앞장서서 근처의 나무 쪽으로 움직이더니 이리저리 확인했다.
— 철컥!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 있던 곰의 발목이라도 으깨버릴 듯한 덫이 작동했다.
물론, 곰은커녕 코끼리 발목을 뜯어버릴 덫이라 해도 방호복을 뚫을 수는 없다.
“이쪽으로 와!”
피곤하다.
진짜 너무 힘들어.
너무 숨이 차서 발 한 걸음 떼기가 힘들다.
미로도 같은 생각인지 나무에 기댄 채 주저앉았다.
그 옆에 앉아서 중얼거렸다.
“우리, 대체 몇 시간째 도망 다닌 거야?”
“… 네다섯 시간은 된 것 같아. 나 힘들어.”
“부럽다. 넌 방호복이라도 입었잖니.”
“페로도 이쪽으로 와!”
고개를 들자 아까 나 대신 칼침을 맞은 덕에 피투성이가 된 페로가 전신을 움찔거리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페로도 힘든가 봐….”
“그렇겠지.”
정면에서 희뿌연 실이 나타났다.
지친 눈에 먼지라도 앉았나 싶어 눈가를 비비는 순간, 날카로운 올가미가 한순간에 내 목을 휘감았다.
시야가 – 360도로 회전한다.
덕분에 평소엔 볼 수 없던 기이한 각도에서 ‘내 몸’을 볼 수 있었다.
“꺄아아악! 소, 송이야!”
… 이것이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미로
올가미에 얽혀 빙글빙글 돌며 허공에 떠오른 송이의 머리를 넋이 나간 채 붙들었다.
송이의 표정은 기묘할 정도로 평온했는데, 죽기 직전까지도 무슨 일이 생겼는지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
밖에 나가면 다시 볼 수 있음을 이미 확인했는데도, 이 순간만큼은 눈물이 흐르는 걸 참을 수 없었다.
“흐으윽…. 송이야….”
그때,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로, 움직이자.”
“아리?”
“여긴 너무 위험해. 초일평은 죽었지만, 그자가 설치한 함정은 여전히 온 사방에 깔려있으니까.”
초일평? 우릴 고통스럽게 만든 고수의 이름?
이름까지 알아낸 것을 보니 아리가 그자를 죽이고 심문까지 끝낸 것 같았다.
“가인이가 있는 장소를 알아냈어?”
“… 아마도.”
어쩔 수 없이 송이의 시체를 남겨둔 채 출발해야 했다.
반나절 이상 초일평과 씨름한 끝에 다들 발 한번 뗄 기운이 없었기에 송이의 시신을 묻어줄 기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로가 말없이 송이 옆에 앉았다.
“얘도 더 움직이기 힘든 모양이네.”
깃털 전체가 피로 물들어서 원래의 색깔을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아무리 강인한 생물이라 해도 이런 몸으로 움직이는 건 쉽지 않겠지.
20분 정도 더 이동한 후, 시야에 자그마한 동굴이 들어왔다.
너무나 흔한 모양새인데다가 덩치 큰 사람은 아예 들어갈 수도 없는 크기.
아리가 손을 뻗어 지목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 같다.
“여기야?”
“이제부터 내 말 들어.”
“응.”
“엄밀히 말해서 가인이의 봉인 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이나 입구 같은 건 없어.”
“어?”
“환마를 봉인한 사람들은 세상 그 누구도 봉인 구역에 접근하지 못하길 바랐으니까. 당연히 봉인을 풀기 위해 들어갈 수 있는 편안한 길 따위는 만들지 않았어.”
“그, 그렇겠네.”
“다만, 봉인한 사람들이 나오기 위해 만들었던 출구는 있고 저 동굴이 그 출구의 흔적이지.”
아리가 하려는 말을 깨달았다.
저 장소로 들어가도 가인이가 있는 장소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길 따위는 없다.
*
동굴에 들어선 후, 내가 정면에 서서 횃불을 든 채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떼기가 힘들 정도로 좁고 불편한 데다가 의도적으로 설치한 건지 자연적인 지형인지 알 수 없는 날카로운 돌조각이 사방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 팅!
“익! 또 위에서 뭐 떨어졌어.”
“내가 안 맞아서 다행이네.”
“너무해.”
“미로가 맞아서 다행이네.”
“표현이 더 심해졌는데?”
“그러면 미로는 내가 맞길 바랐어? 난 방호복 없는데.”
“그건 아니지만….”
— 철컹!
그 순간, 불길한 금속음이 동굴 전체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으아악! 이, 이거 뭐야?”
아리는 어딘가 포기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징그럽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또 함정을 숨겨뒀구나.”
철과 철이 마찰하는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
침입자를 몰살하기 위한 기관진식!
…
최선을 다했다.
살기 위해 정말이지 할 수 있는 한 온 힘을 다했어.
하지만 좌우의 벽과 천장, 바닥까지 빠짐없이 함정이 있었고, 모든 함정이 작동하자 인간의 부드러운 몸으로는 버텨낼 수 없었다.
단 한 명, 도검불침을 자랑하는 호텔 특제 방호복을 입고 있던 나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리야….”
“…”
녹슨 쇠꼬챙이 세 개가 아리의 몸을 헤집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죽고도 남았을 텐데, 오래된 피의 힘인지 아리는 여전히 말할 수 있었다.
“소, 송곳을 빼면 되는 거야?”
“아니. 이 상황에서 이걸 빼면 더 빨리 죽어.”
“…”
“미로, 잘 들어. 아무래도 여기부턴 너 혼자 진행해야겠네.”
“흐으윽….”
“울지 말고 이것 받아.”
아리의 손에서 ‘모래시계’가 튀어나왔다.
“모래시계?”
“예전에 나랑 가인이가 기능 설명해준 것 기억나지?”
“응….”
“잘 해봐.”
“…”
“시간… 대여기로… 적절한 동료를….”
아리의 고개가 툭 떨어지는 순간, 정말로 나 혼자 남았음을 깨달았다.
숨이 막혀온다.
그동안 날 이끌어줬던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내 곁에 남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가 들어온 길조차도 엄청난 소음과 함께 돌무더기로 막혀버린 상황.
여기까지 와서 성과 없이 도망갈 생각도 없었지만, 도망갈 길 자체도 사라졌다는 의미다.
누굴 소환해야 하지?
그 전에, 지금 난 뭘 해야 해?
내가 있는 장소는 사방이 막힌 지저 동굴이다.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야 환마의 봉인 구역이 나타나고, 그 장소로 가기 위한 길 따위는 없다.
길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 탈칵!
시곗바늘이 오전으로 움직이며 큰 키와 당당한 체격의 남성이 나타났다.
그가 나타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손가락을 튕기는 것이었다.
— 화아아!
“이제야 좀 보이는군요. 무척 어두운 장소인 듯한데…. 미로 양, 상황을 간략하게 말해주시지요.”
선생님께 상황을 전달했다.
“으음. 그러니까, 지하 어딘가에 가인 군의 봉인지역이 있다?”
“맞아요!”
“최후의 섬광이라면 분명 길을 만들 수 있는 건 사실인데, 어렵군요.”
“네?”
“어디로 뚫어야 합니까? 지하 대체 어디에 가인 군이 있죠? 대략적인 방향이라도 알아야 합니다.”
“…”
“어렵군요. 제 기억으로 동료 위치 정보나 아리 양의 나침반을 쓴다 해도 봉인된 동료의 정확한 위치를 탐지할 수 없습니다.”
“어, 어떻게 해요?”
“불러낼 수 있는 다른 동료는 누구입니까?”
“오전의 선생님, 정오의 가인이, 저녁의 진철 오빠 이렇게 채워서 들어왔어요.”
“가인 군의 힘은 지하를 뚫고 길을 만들만한 능력은 아니고, 진철 군의 이계의 별은 온 사방을 공격하는 힘이니 좁은 장소에서 쓰긴 어렵겠군요.”
“…”
“사실, 최후의 섬광을 쓰는 것도 위험한 장소입니다. 지반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 어떻게 해요?”
“답은 하나군요. 이런 일은 본래 승엽 군에게 최적화되었습니다만, 부득이하게 제가 해야겠습니다.”
“네?”
“찍겠습니다.”
“으악!”
“조용조용, 완전히 찍는 건 아니고, 대화하면서 주변 지형을 살펴보니 가능성을 두 개 정도로 좁힐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호텔 기준으론 해볼 만한 확률입니다.”
그 말과 함께 의사 선생님이 말없이 손을 들었다.
“불안하긴 하군요.”
“틀릴까 봐요?”
“그것보다도 이런 지하에서 최후의 섬광을 쓰면 무슨 일이 생길지….”
“선생님이 섬광 쏘시는 대로 바로 돌려보낼게요.”
“그 경우 제가 즉시 사라집니까?”
“그건 아니고 몇 초는 걸려요.”
“그렇습니까? 별수 없군요. 쏘겠습니다.”
— 쿠르릉!
머나먼 미래의 인류가 만들어낸 초병기, 최후의 섬광이 단숨에 동굴 바닥을 꿰뚫으며 심연을 향하는 깊은 통로를 만들어냈다.
통로를 향해 몸을 던지며 의사 선생님을 돌려보냈다.
부디, 무너지는 동굴이 선생님을 해치기 전에 역소환이 끝나기를 바랐다.
*
– 이은솔
“쿨럭!”
해가 사라진 늦은 시각, 달빛을 길잡이 삼아 평원을 나아가던 중 갑자기 상현 씨가 바닥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사, 상현 -”
놀라서 소리치려는 순간, 반사적으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천하의 이자성도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며 상현 씨에게 다가가 상세를 확인했다.
“철혼! 무슨 일이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상현 씨의 입에서 끊임없이 침과 피가 섞인 거품이 흘러나왔다.
결국 일행 전체가 멈춰선 채 주변을 경계하며 상현 씨의 상세를 확인해야 했다.
…
10분 정도 흘렀을까?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은 상현 씨가 중얼거렸다.
“… 큰일입니다.”
“갑자기 왜 이래요? 지병이라도 있었어요?”
“최후의 섬광.”
“예?”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으아앗! 갑자기 무슨 소리?”
옆에 있던 진철이도 입을 쩍 벌리며 다가왔다.
“형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또 다른 내가 최후의 섬광을 썼군요. 그리고….”
“시간대여기!”
“크게 다친 것 같습니다. 아직 내가 살아있는 것을 보니 죽진 않았고, 크게 다친 채로 미로 양이 돌려보낸 모양이군요.”
조금 전에 바닥을 구르며 피거품을 토한 건 분신이 크게 다치자 그 타격의 일부가 본체에 돌아온 건가?
모르겠다. 시간대여기의 메커니즘 따위는 아무래도 좋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진철이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니, 하늘 탑을 저격할 수 있는 위치까지 이렇게 고생하며 왔는데 갑자기 최후의 섬광을 쓸 수 없다니….”
그때, 옆에서 듣던 이자성이 입을 열었다.
“최후의 섬광이라. 그게 하늘 탑을 파괴하기 위해 준비했다는 그대들의 수단인가?”
“… 그렇습니다.”
실수했다.
이자성의 앞에선 유산에 관련한 이야기는 피해왔는데, 조금 전 모두가 당황해서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까지 나오고 말았다.
침착해야 한다.
시간대여기니, 최후의 섬광이니 하는 단어만 듣는다 해서 유산의 힘을 전부 알아낼 수는 없으니까.
당황하는 우리와 달리 이자성은 침착한 투로 말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들이 준비한 수단이 먹통이 된 모양이지?”
“… 이, 일단 돌아가서 -”
“돌아가? 내가 건축에 대해선 잘 모르나, 저 탑이 슬슬 완공 단계라는 건 보이는군.”
“…”
“아무래도 좋지.”
“예?”
“이 나이까지 살면서 기이한 술수 하나 믿고 움직인 적이 없다. 결국, 최후의 순간에 내가 믿어온 것은 언제나 손에 들린 칼 한 자루였다네.”
“…”
“몸이 멀쩡하고 무기가 멀쩡한데 무엇이 그리 큰일이겠나? 가세.”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별일 아니라는 듯, 불길한 형상을 갖춰가기 시작한 탑을 향해 나아갔다.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진짜’다.
절대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