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67)
366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15)
수백 년간 광명 제국을 외적으로부터 지켜온 방벽, 그 위에 선 노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제국의 미래가 염려스러웠기 때문일까?
아니었다.
김묵성에게 있어서 ‘제국’이란 아무 가치도 없는 가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허울뿐인 제국의 미래 따위가 아니라 방벽 너머의 하늘 탑을 파괴하기 위해 떠난 동료들의 안위였다.
“으으…. 나도 같이 갔어야 했는데! 엘레나, 잘 될 것 같냐?”
노인의 옆에 선 망토를 두른 여인, 조금 전에 방벽으로 복귀한 엘레나가 답했다.
“글쎄요…. 잘 풀려야 할 텐데-콜록!”
늦은 시각이라 날이 춥기 때문인지, 아니면 불길한 상상을 지나치게 썼기 때문인지, 엘레나는 평소보다 훨씬 초췌하고 힘들어 보였다.
“너는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다. 아예 승 – 황제 쪽으로 가서 쉬어라.”
“사양하지 않을게요.”
그 말을 끝으로 엘레나는 휴식과 황제의 호위를 겸해서 황궁 쪽으로 떠나갔다.
방벽에 홀로 남은 묵성이 한숨을 쉴 무렵, 초소를 감시하던 위병이 달려와 보고했다.
“어르신!”
묵성은,보고를 받는 상황 자체가 좀 웃겼다.
애초에 자신이 무슨 관직을 가진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전의 회전에서 크게 활약한 후, 병졸들은 자신을 무슨 장군쯤 되는 사람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허울 좋은 고위 문관보다는 얼마 전에 같이 싸운 관직 없는 고수가 믿음직한 시대이기 때문이리라.
“뭐냐?”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이 왔습니다!”
“왔는데?”
“어, 어르신의 친구분이라 하십니다!”
대체 뭔 개소리야? 여기에 내 친구가 있을 리가 –
있다.
김묵성의 친구가 아니라 ‘탈혼노야’의 친구라면 있을 수도 있겠지.
설정상 무림인으로 산 세월만 50년이 넘은 것 같은데, 친구 하나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 상황에서 무슨 친구? 노잣돈이나 주고 돌려보내라.”
“그, 죄, 죄송합니다만 -”
아무래도 고수인 모양이다.
“하이고…. 어디냐? 안내해.”
“예!”
*
– 이은솔
하늘 탑에서의 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찌 됐든 카르다모스의 소환 의식 자체는 저지했잖아?
문제는그다음부터의 일이 심히 상식에서 어긋났다는 점이다.
카르다모스가 보여준 환영에서 깨어난 후, 하늘 탑을 나오자마자 우릴 반긴 것은 악몽에서 깨어난 채 분노에 휩싸인 배화교도들이었다.
우리가 전멸당하거나, 혹은 기적같이 대학살을 펼치며 탈출하거나 둘 중 하나의 운명이 확정되었다 싶었지.
아니었다.
난데없이 피를 줄줄 흘리며 나타난 조원홍이, 그 배화교주가 교도들을 제지하며 우릴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물론이고 우릴 포위했던 배화교도들도, 교주를 추격해온 이자성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교주는 한없이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돌아가라. 돌아가서, 그대들의 운명을 마주하라.’
‘… 대체 무슨 말이지?’
‘네 눈으로 보지 않았느냐? 청염의 왕자께서 준비하신 너희의 결말은 이곳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첫째로, 청염의 왕자라는 자가 보여준 끔찍한 죽음의 환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둘째로, 신의 장손이 그런 미래를 예지했으니 지금 자신이 우릴 죽여서는 안 된다는 교주의 정신 나간 태도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이지 이런 광신도의 생각은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황궁에서 쉬고 있던 엘레나가 방벽에 들른 김에 불러서 물어보았다.
“언니?”
“엘레나, 배화교의 신에 관해 물어볼 게 있어.”
“말해보셔요.”
“배화교는 일종의 다신교야?”
“다신교?”
“신적인 존재가 여럿인 것 같아서. 아샤, 카르다모스. 또 있나?”
“보후 마나흐, 아샤 바히스타, 아메레타트, 아그니 등등 많죠. 다신교라고 말해도 틀리진 않겠네요.”
“그중 누가 죄수일까?”
“글쎄요…. 굳이 알아낼 필요가 있을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요번 방에서 죄수가 날뛰는 일은 없을 테니 굳이 정체를 탐구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카르다모스에 대해 다시 한번 말해줄래?”
“아샤의 장자의 장자의 장자, 영원히 타오르는 청염의 왕자.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자. 운명의 아들.”
“미래를 볼 수 있다?”
“신화에 따르면 그렇죠.”
“흐음….”
“왜 그래요?”
“아니야. 가서 쉬어.”
엘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결국 황궁으로 돌아갔다.
“…”
조금씩 속이 답답해진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신이 보여준 환영은 정말 환영인가?
무언가 구체적인 정보라면 동료들과 이야기라도 해봤을 텐데, 그냥 불길함이 뭉친 이미지에 가까워서 주제로 삼기도 꺼림칙했다.
답이 없는 고민을 한숨 한 번으로 잊고, 방벽을 떠난 사이 탁자 위에 가득 쌓인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늦은 시각, 누군가 노크했다.
“조화문주, 들어가도 되겠소?”
할아버님의 목소리다.
이런 시간에 올 일이 있나? 대화창을 쓰셔도 되었을 텐데….
‘김묵성’으로서 온 게 아니라 방벽의 임시 책임자로서 온 건가?
“들어오셔요.”
— 탈칵!
할아버님은 태연한 태도로 방벽 하단에 설치된 수로에 이상이 생겼다거나, 보관하던 식량 중 일부가 썩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평범한 보고다.
“…”
이은솔 : 대답.
“참, 문주님. 어제저녁엔 북방의 야만인들이 사신을 보내왔습니다. 듣자 하니 -”
이은솔 : 대화창 보이는 사람은 당장 –
“허무맹랑한 소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 자식들을 돌려보냈에이~! 너 벌써 눈치챘구나? 머리 좋네!”
*
– 김상현
대화창에서 은솔 양의 말이 끊어지는 순간, 이미 내 몸은 침상에서 일어섰다.
벼락같이 문을 열어젖히자 근처에서 지나가던 시녀들과 졸고 있던 병사들이 놀라서 날 바라보았다.
“호, 호위님? 갑자기 무슨 -”
“알려라! 조화문주의 신상에 이변이 생겼다!”
뒤쪽에서 병사들이 놀라서 사방으로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없이 달려서 은솔이 행정 업무를 처리하던 방으로 달려가자, 문을 열기도 전에 코를 찌르는 피 냄새가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 벌컥!
방 내부엔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묵성과 무어라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잔혹하게 살해당한 은솔의 시체가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나도 모르겠다! 보고하려고 들어왔는데 조화문주가 이미 이 꼴이었어!”
“이게 대체 무슨! 배화교에서 암살자라도 보냈나? 카, 카르다모스가 보여준 예지가 이런 식으로 실현되다니!”
“카르다모스의 예언?”
하늘 탑 파괴에 참여하지 않은 묵성이 무슨 말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일단은 상황을 수습해서 -”
“나는 지금 듣고 싶은데.”
“…”
넋이 나간 채로 고개를 들었다.
노인의 눈동자가 기묘한 각도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는 묵성이 아니었다.
묵성의 몸을 차지한 ‘무언가’였다.
*
고즈넉한 방, 고급스러운 장식은커녕 최소한의 가구조차 보이지 않는 공간.
노인은 그 가운데에서 말없이 가부좌를 한 채 앉아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젊은 남성, 김상현이 들어왔다.
“스승님!”
“…”
“큰일 났습니다! 배화교의 암살자가 들어와 조화문주를 해쳤다 합니다. 당장 황궁으로 이동해서 -”
“장난은 이쯤 하게.”
“…”
“황제를 보고 싶은 모양이지? 목적은 복수? 선황은 진즉 죽었을 텐데….”
“아, 오늘 체면 좀 구기네.”
노인은 오랜 친구를 대하는 듯, 태연히 물었다.
“불쾌한 일이라도 있었는가?”
“있었지! 허 참…. 자성아, 잠깐 내 하소연 좀 들어다오.”
“말해보시게.”
“개 좆같은 벌레들에게 당해서 30년 자다가 깨어났거든?”
“고생 많았네. 그때 칼침 한 번 더 넣어주지 못해서 아쉽군.”
“너 참, 말 이쁘게 한다. 여하튼, 날 깨운 꼬마는 이상한 물건을 써서 갑자기 건드릴 수 없는 상태가 됐어.”
“호오?”
“모래시계를 뒤집으니 그렇게 되던데, 너 그런 물건 아냐?”
“아직 내 견문이 짧아 모르겠다.”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해야 할 일은 해야겠으니 제국 수도로 왔지. 오면서 얼마나 기대했나 몰라.”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게 다들 날 빨리 알아채더라고.”
“허어…. 아무래도 카르다모스의 예언 덕에 긴장을 유지했던 모양이군.”
“예언? 그 이야기는 아까도 들었지. 대체 뭔데?”
“별것 아니야. 배화교에서 소환하려 했던 존재인데, 많은 이의 죽음을 예지했다네.”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뒤로 돌아섰다.
그때, 입꼬리를 끌어올린 상현이 노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자성아….”
“…”
“예언에서 네 상태는 어땠니? 너도 죽었었니?”
“직접 확인하라.”
*
– 이틀 전,미로
선생님이 최후의 섬광을 발사한 후, 지하로 향하는 거대한 통로가 생겨났다.
통로로 뛰어들 때만 해도 거대한 미끄럼틀 같은 느낌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표면이 매끄러운 미끄럼틀과 달리 온 사방에 뾰족한 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방호복을 입은 게 아니었다면 통로에서 미끄러지다가 내 몸이….
끔찍하니까 그만 생각하자.
애초에 방호복을 입지 않았다면 한참 전에 죽었어.
한참을 미끄러지던 중, 난데없이 지하에 공터 같은 장소가 나타났다.
중력에 의해 몸이 밑으로 떨어지며 마침내 바닥에 닿았다.
— 출렁!
“어이쿠!”
…
“이건 뭐야?”
주변에는 새까만 젤리 같은 물체가 가득했는데, 만져보니 무언가 탱글탱글하면서도 갑자기 기체로 변하는 것이 신비하기 그지없었다.
“어디로 가야 해? 저기인가?”
정면에 길이 뚫려 있었다.
공터에 도착하자마자 중력에 의해 떨어지며 이동이 멈춘 나와 달리, 섬광은 그런 영향 없이 쭉 직진했기 때문이다.
“으아앗! 이, 이게 뭐야?”
공터 중앙엔 위에서 떨어진 바위의 흔적, 덕분에 이리저리 터져나간 족쇄와 깨어진 쇠창살, 그리고 흔적만 남은 사람의 잔해가 있었다.
바보도 아니고, 눈으로 보고도 이게 무엇인지 모를 수는 없었다!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헐레벌떡 뛰어가서 사방에 흩어진 사람의 ‘손’을 움켜쥐었다.
아는 손이다! 이미 몇 번 잡아본 손이야.
“가인아….”
이 시점에서 난 넋이 나가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가인이를 깨워보겠다고 온갖 개고생을 감수하며 천장산 내부로 파고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섬광이 일으킨 지형 파괴 덕택에 중앙에 있던 가인이의 몸이 으깨져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어처구니없는 사고야?
너무 황당해서 화를 낼 기운조차 사라졌다.
따지고 보면 잔혹하기 그지없는 유혈이 낭자한 장소였는데, 황당함과 허무함이 공포심을 이겨버렸어.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진짜 이딴 게 말이 되냐고!”
“말이 안 되긴 하지.”
“그렇지? 아니, 깨워보겠다고 개지랄했는데!”
“그래?”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 모든 게 헛수고였다고? 진짜 이 무슨 -”
“헛수고는 아닐걸?”
“…”
문득, 정신을 차렸다.
지금 나는….
‘누구와’ 대화 중이지?
사방에 퍼져있던 진득한 기체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음에도….
누군가, 내 심장을 움켜쥔 듯한 압박감이 영혼을 얼어붙게 했다.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덜덜 떨며 생각한다.
환마는 가인이와 달리 육신이 사라져도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다.
올빼미는, 가인이의 정신이 깨어난다면 환마를 감당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최후의 섬광은….
환마의 봉인을 파괴함과 동시에 가인이의 몸을 파괴해 그 정신마저 소멸시켰다.
진득한 기체가 흡사 손처럼 뭉쳐진 채 방호복 표면을 건드렸다.
“잠깐 네 몸 좀 빌릴게. 밖으로 -”
다음 순간, 이상한 환영을 보았다.
심해에서 타오르는 불꽃, 용암 속에서도 녹지 않는 얼음.
억겁의 세월 속에서도 변치 않는 무언가가, 그 손을 뻗어 내 몸을 가볍게 감쌌다.
넋 나간 채 고개를 든 나에게 –
가면을 쓴 자, 후원자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모래시계’
“너, 뭔가 특이한 재주를 익혔구나? 겁먹을 것 없단다. 네가 날 해방했잖니? 난 너에게 무궁한 영광을 내릴 것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