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68)
367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16)
황제의 조언자, 조화문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알려지자 방벽 일대는 혼란에 빠졌다.
애초에 황제는 10대 초반의 소년이므로 실질적인 제국의 통치자가 죽은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외부의 혼란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상현의 몸을 강탈한 환마가 눈빛을 번뜩였다.
“이야~! 자성이 너 많이 늙었다?”
“…”
“원홍이 그 새끼는 200살 넘고도 생생하던데, 너는 왜 벌써 이리 늙었니?”
“너는 예전과 똑같구나.”
“야, 나는 천하제일 고수니까 너랑 다르-”
“개처럼 두드려맞고 지하 묘지에 갇혀서 30년을 자다 온 주제에 주둥이는 물 위에 둥둥 떠다닐 듯하니 하는 말이오.”
처음으로 환마의 표정이 굳었다.
그토록 무시했던 ‘벌레’들의 합공에 당해 천장산에 30년간 봉인 당한 일은 그로서도 감내하기 힘든 치욕이었기 때문이다.
환마의 창에서 은은한 소리가 나더니 시퍼런 환영이 다섯 개나 나타났다.
나선으로 회전하는 창의 군무가 사방을 채우며 날아들자, 흡사 다수의 고수가 한 호흡에 합공하는 것과 같았다.
이자성의 눈이 만개하며 환영을 꿰뚫는 순간, 절대고수의 직감이 모든 창이 전부 환영인 동시에 진짜라고 알려왔다.
‘그렇다면 한꺼번에 전부 베면 될 일!’
이자성의 검에서 한 줄기 벼락이 일어나며 허공을 찢어발기자 환마가 만들어낸 창들이 일거에 꺾였다.
환마는 진실로 즐겁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번엔 오른손을 기묘하게 뒤틀었다.
대기가 기이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형언할 수 없는 불길함이 깃든 손이 허공에서 나타나 이자성을 덮쳤다.
“타앗!”
그때, 이자성의 검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형태로 움직였다.
빛처럼 빠르지도 않았고, 강철처럼 단단하지도 않았으며, 황소처럼 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검에 그 어떤 거리낌이 없었기에, 무애(無碍)의 검은 여유롭게 나아가 불길한 손을 찢어낼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환마가 감탄했다.
“대단하다! 최근에 익힌 기술이야?”
“…”
이자성은 대답 대신 표정을 굳혔다.
환마를 가두기 위해 목숨을 건 일전을 벌여보았기에 알기 때문이다.
환마의 저런 장난스러운 태도는 본인이 여유 있을 때만 나온다.
“에이~! 안 되겠다. 역시 창 한 자루 들고 싸우는 건 널 당해내기 힘드네.”
이자성이 느끼기에 상대는 칼이나 창을 들고도 능히 천하에서 열 손가락에 뽑힐 기량이 있었다.
단지 그를 막아선 이자성 자신이 그런 형태의 전투에서 천하최고일 따름이다.
이자성을 당해내기 힘들다고 말하는 환마의 표정엔 그 어떤 패배감도 없었다.
도검을 다루는 무예는 이자성에겐 전부였지만, 그에겐 다채로운 재주 중 하나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환마가 ‘장난은 끝났다’라는 듯한 표정으로 눈빛을 빛내는 순간 –
이자성은 자신의 마음을 쪼갰다.
…
“신기하네.”
이자성이 간신히 정신을 찾았을 때, 상대는 장난치는 것 같던 아까와 달리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음속에 벽을 만든 건가? 이건 대체 무슨 재주야?”
“… 분심일여(分心一如).”
“마음을 나누었으나, 여전히 하나다? 내 이혼마공(移魂魔公)에 대응하기 위한 수법?”
“…”
“이건 진짜 대단하다. 아까 그 특이한 검술보다 훨씬 대단해. 그런데, 불필요한 사족이 붙은 것 같지 않아?”
환마는 여전히 이 싸움에 진심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의 이 태도만 보아도 그러하다.
목숨을 건 생사결이라면 이렇게 대결 중 이말 저말 주워섬길 수 있겠는가?
흡사 저 위에 있는 절대자가 하수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이자성은 주저 없이 달려들었다.
“마음을 나누는 ‘분심’까지는 좋았는데, 굳이 ‘일여’를 통해 하나로 모을 이유가 – ”
— 서걱!
거짓말처럼 환마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머리 아래의 몸이 실이 끊긴 인형처럼 쓰러졌다.
“하나로 모을 이유가 없지.”
그리고 상현의 머리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대화를 이어갔다.
“…”
이자성은 새삼 놀라지 않았다.
목을 베고 몸을 불로 태워도 이 괴물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그 대신, 노인은 품속에서 신비로운 오색의 구슬을 꺼내어 깨트렸다.
— 화르륵!
신비로운 불꽃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지며 방 전체를 태우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노인도 바닥을 굴러가던 머리도 한 줌 재가 되어버릴 상황이었으나, 두 사람 다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니, 이건 진짜 또 뭐야?”
“내가 분심일여를 만들어내는 동안 조원홍은 놀았겠는가?”
“아하! 요건 배화교의 멍청이가 만든 수법? 물건으로 만들어서 네게 줬구나?”
“그대, 정화의 불길 속에선 더 이상 타인의 몸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오.”
“이야~! 우리 자성이랑 원홍이 둘 다 진짜 열심히 살았네?”
“…”
“그럼 난 이제 끝장인가?”
“아마도.”
“좋아. 아까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자. 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으면서 일여를 통해 도로 모은 이유가 뭐냐?”
“…”
“보나 마나 뻔하지. 네 정신이 쪼개지는 것이 두려웠지? 그래서 도로 모은 거야. 10개의 손을 만들어놓고, 이걸 다시 실로 묶어서 두 덩어리로 만드는 개삽질을 -”
— 서걱!
무애의 검이 바닥을 구르는 환마의 머리를 쪼갰다.
조용해진 공간, 시퍼렇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이자성은 어딘가 자신 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난…. 틀리지 않았다. 자아란 곧 유일성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이것을 어찌 쪼갤 수 있단 말인가? 결코 -”
그 순간, 바깥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네가 모자란 거야. 딱 한 발자국을 넘으면 천상에 닿을 수 있었는데, 그걸 못 넘어서 또 이 꼴이구나.”
타오르던 벽이 종잇장처럼 허물어진다.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이자성이 고개를 돌리자 수십의 병사가 주변을 포위 중이었다.
병사들의 눈을 보는 순간, 이자성은 비로소 환마가 보였던 여유의 정체를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자성이 구슬을 깨트려 정화의 불꽃을 만들어내기 전부터.
환마는 이미 다수의 인간의 몸을 동시에 강탈한 상태였다.
김상현은 환마의 열 손가락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자성아, 이게 진짜 ‘분심(分心)’이다. 여기에 불필요한 사족은 달 필요 없지.”
“본래 이런 짓까지 할 수 없었을 텐데!”
“혹시 아직도 남은 수가 있니? 어디 한번 다 부려보거라.”
빙그레 웃는 악마의 미소를 보고서야 노인은 애초에 승패는 정해져 있었음을 알았다.
단지 악마에겐, 노인을 손쉽게 죽일 생각이 없었을 뿐.
환마는 이자성이 준비한 모든 수를 쓰고도 패배하며 절망하는 순간을 보고자 했다.
“참, 내가 밖에서 최고의 무기를 발견했단다. 하늘 아래 이보다 뛰어난 몸은 본 적 없어. 북두 대장군이라던가?”
*
– 엘레나
“빨리! 빨리 준비해요!”
“사, 사도님.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정신없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주변 병사들을 채근했다.
옆에 있는 승엽이를 살피자,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방벽에서 돌아와 피곤함에 지쳐 한숨 자고 일어나자 동료들이 거의 다 죽었다!
이게 대체 뭔 일이래?
자고 일어나니까 은솔 언니가 끔찍하게 살해당했단다.
놀라서 대화창을 통해 동료들을 부르자 승엽이를 제외하곤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대화창은 거리 제한이 있으니 지나치게 멀리 있다면 대답하지 못하겠 –
지랄!
내가 바보야?
아직도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살아있길 기대할 만큼 바보는 아니다!
호텔에서 불길한 예상은 백발백중이라고?
동료들은 나와 승엽이를 제외하면 다 죽은 게 확실하다.
이 시점에서 대항할 생각 자체를 버렸다.
내가 정의를 쓴다면?
이런 생각 자체를 버렸다는 말이다.
애초에 불길한 상상은 얼마 전에 한계까지 끌어다 써서 한동안 더 쓰기 힘들고, 상대가 사람인지 괴물인지도 모르니 정의를 믿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넋 놓고 자고 있던 승엽이를 끌고 와서 탈출 작전을 개시했다.
튀어야 한다!
1회차 때처럼 서방으로 일단 튀자!
다행히 탈출 준비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내가 옆에서 재촉하고 있기도 했고, 아베스터 교의 사람들이 보기에도 방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마차가 준비되자마자 승엽이와 내가 즉시 탑승했고, 채 1분이 지나기 전에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누, 누나….”
“…”
“살 수 있을까요?”
“그러길 바라야지.”
긴장감 속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자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며 마차가 멈추었다.
숨이 턱 막힌 표정을 한 승엽이를 뒤로 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무슨 일이죠?”
“별일 아닙니다! 마차에 다시 타시면 됩니다!”
기사의 말대로 큰일은 아니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초소의 위병이 마차를 가로막은 것인데, 아베스터 교에서 파견된 무인은 주저 없이 위병을 죽여서 상황을 해결했다.
정체 모를 존재가 황제를 해치려 드는 상황.
위병 따위의 목숨을 신경 쓸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
그때, 옆에서 승엽이가 당황한 티를 냈다.
“어?”
“왜 그래?”
“천운이 갑자기 -”
…
[명경지수가 작동합니다.]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말문을 잃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지?
알 수 없는 힘으로 의식을 잃었고, 명경지수가 작동하며 정신을 차렸다.
명경지수는 ‘불길한 상상’의 후유증을 막기 위해 후원자가 내린 힘이므로 정신에 이상이 생기면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작동한다.
그러니까….
“으아악!”
모종의 수단으로 내가 정신을 잃고, 명경지수가 날 회복시킬 때까지의 시간.
고작해야 몇 분.
“…”
다 죽었다.
그 잠깐 사이에 마차를 몰던 무인부터 하인들까지 모조리 죽어서 온 사방에 시체가 가득했다.
서, 설마 이 시체 중 승엽이도 있는 거야?
내가 내 손으로 승엽이를 죽였다고?
어떻게 그런 끔찍한 –
그 순간, 내 파괴적인 생각을 멈춰 세우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1 사도!”
“… 승, 승엽아?”
넋이 반쯤 나간 채로 멍하니 고개를 들자 승엽이가 피범벅이 된 채 울먹이며 내게 다가왔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일단 우리 둘은 살았으니까, 어떻게든 –
…
‘제1사도?’
우리 둘만 있는 상황인데, 승엽이가, 나를.
제1 사도라고 불렀다.
— 푸욱!
예리한 검이 단박에 내 심장을 꿰뚫었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흡사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 소년의 얼굴이었다.
뜨거운 불꽃이 내 몸 전체를 지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이 악물고 정의의 힘을 일으켰다.
황금의 저울이 나선을 그리며 사방을 휘저었고, 찰나의 순간에 승엽이의 몸을 들어 올려서 –
내동댕이칠 수 없었다.
첫째로, 승엽이는 정체 모를 악마에게 신체를 강탈당한 피해자였기에 정의의 심판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미 내 죽음은 피할 수 없는데 여기서 승엽이까지 죽으면 진정으로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다.
“…”
“아하하! 사람이 바뀌었는데도 배화교 제1 사도의 힘은 예전하고 비슷하네? 어린애는 함부로 해칠 수 없다? 아니면 내게 몸을 뺏긴 희생자니까 해칠 수 없다?”
“…”
“그런 하찮은 관념에 매달리니까 너희가 날 이기지 못하는 거야. 알겠어?”
몸이 허물어진다.
애초에 정의의 힘에 신체 회복 따위는 없으니 심장이 꿰뚫린 채 더 이상 싸울 수는 없지.
설령 더 싸울 수 있다 해도….
내 정의로는 무고한 희생자를 학살해가며 환마를 심판할 방법이 없었다.
최악의 상성이다.
… ‘다른 정의’가 필요하다.
악마를 심판하기 위해선, 100만의 인간조차 깃털처럼 태워버릴 수 있는 정의가.
*
– 미로
무서워.
정말 너무 무섭다.
내 손으로 자유를 준 악마가 대체 무슨 짓을 했을지 상상만 해도 두려워.
숨이 멎을 듯한 공포가 내 영혼을 잠식해간다.
이 상황에서 날 움직이게 만든 것은 역설적으로 두려움 그 자체였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가 죽어서, 내 죽음이 곧 모든 것이 종말인 상황이 너무나도 두려웠기에….
나는 이 악물고 일어서서 차진철을 소환했다.
그는 별 조각의 힘으로 지형을 무너트려 가며 나를 천장산 바깥으로 내보내 주었다.
뛰었다.
천장산에서 수도까지, 두 발로 달려서 단기간에 도착하는 것.
10대 소녀의 몸으로는 무리다.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노력한다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10대 소녀조차 주먹질 한 번에 나무를 부수고 발길질 한 번에 지표를 박차게 만드는 방호복의 힘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
마침내 방벽에 도착했을 때, 이미 늦었음을 알았다.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옥.
비명으로 가득한 세상.
온 평원에 수천 개의 꼬챙이가 솟아 있었다.
꼬챙이의 끝에는 사람이 달려있었다.
다가온다.
멀리서, 어둠 속에서.
두려움을 형상화한 듯한 존재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나를 알아보았다.
“이야~! 너, 날 풀어준 꼬마 맞지?”
떨리는 손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시계. 모래시계가 아닌, 회중시계.
나의 유산. 나의 희망.
— 철컥!
“그건 또 뭐야? 예전의 모래시계랑 다른 건가? 넌 신기한 물건이 많구나?”
시곗바늘이 자정을 향한다.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가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