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71)
370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19)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78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자정의 미로가 또 다른 자신에게 남긴 메시지의 내용을 집중해서 읽었다.
1. 움직이지 않고 대기하다 보면 탈출이 뜰 것.
2. 자정의 시간을 아껴라. 마지막, 207호에서 30분 이상 필요할 것. 이미 20분 가까이 소모.
3. 이자성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1번이었는데, 선생님도 비슷하게 느꼈다.
“1번은 알겠습니다. 곧 탈출이니 기다리라는 이야기군요.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까?”
“네.”
“짐작은 갑니다. 205호의 위험이라면 배화교, 여기에 하나 더한다면 환마겠지요?”
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보니 환마는 의외로 겁이 많은 성품인 모양인데, 된통 당하고 도주했으니 한동안 돌아올 일 없었겠네.”
“배화교도 비슷하지.”
“걔네도 ‘카르다모스의 예언’을 같이 들었으니까.”
배화교의 관점에서 당시 상황을 해석하자.
신이 예지한 불가해한 재앙이 일어나 환마가 깨어나 학살이 벌어졌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힘이 일거에 도시를 무너트리고 환마를 도주하게 만든 상황.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정복 전쟁을 재개한다거나 어떤 괴물이 숨어있을지 알 수 없는 수도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필시 모든 계획을 멈춘 채 상황을 살폈을 테고, 그 멈춘 시점에서 탈출 판정이 뜬 것 같다.
비교적 쉽게 이해한 1번과 달리 2번부터는 모두의 머리를 싸매게 했다.
미로가 갸웃거리며 말했다.
“자정의 미로를 함부로 소환하지 말라는 것 같죠?”
2번의 문맥상 의미는 자정의 미로를 최대한 아껴서 207호에서 쓰라는 말이다.
저장된 1시간 중 이미 20분 가까이 소모했는데, 최소 30분은 남기라고 한다.
207호에 들어가기 전에는 10분 이상 쓰지 말라는 의미인데,마치 자정의 미로는 207호를 위해 준비했다는 느낌이라 이해하기 힘들었다.
207호는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이고 동료들도 전혀 모르는 장소인데, 지금의 나보다도 과거 시점에서 저장된 미로가 대체 뭘 안다고 이런 글을 남긴 걸까?
은솔 누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모르겠네. 아리에게 듣기로 예전의 미로는 2층 중반쯤에서 진행이 멈췄다고 들었는데. 맞지?”
아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누나가 말을 더 이어갔다.
“지금 우리보다 진행이 더디거나 비슷할 거야. 그런데 207호에 대해 어떻게 알아?”
생각해보니 짐작이 가는 바가 있어 입을 열었다.
“다음 방에 대한 정보를 모종의 수단으로 얻은 모양이네요. 우리도 그랬잖아요? 205호, 206호에 들어가기 전부터 약간의 키워드를 얻었죠. 다만…. ‘관문의 방’의 정보는 얻기 아주 힘든 것 같던데.”
“흐음. 이해했어. 호텔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힌트를 뿌리고, 다음 방의 정보도 종종 얻을 수 있지. 아마 상당한 대가를 치러서 207호의 정보를 일부 얻은 모양이네.”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포인트가 있었다.
“이상하긴 하죠. 자정의 미로가 얻어낸 207호의 정보는 ‘심해의 호텔’의 207호 관련 내용이었을 텐데요.”
그 말에 선생님이 무릎을 ‘탁’ 쳤다.
“허! 그렇군요. 얻었다 한들 심해의 호텔에 대한 정보일 뿐, 그 시점에선 먼 미래인 ‘지금 호텔’의 207호와는 전혀 다른 방일 겁니다.”
“그런데 미로가 남긴 문장의 뉘앙스를 보면, ‘지금 호텔’의 207호에 대해 말하는 것 같죠.”
“혹시 기억 착란 증세를 일으킨 것 아닐까요? 시간대여기로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뒤섞였다던가?”
선생님의 그 말은 할아버지가 반박했다.
“크흠. 관리국 베테랑 요원의 견고한 정신을 너무 무시하는 말 아니냐?”
“으음….”
그때, 아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어쩌면?”
“207호의 내용은 호텔이 바뀌어도 큰 틀에서 유사한 게 아닐까? 심해의 호텔이나 지금 호텔이나 207호의 내용은 비슷하고, 이 정보까지도 미로가 얻어냈다면.”
“…”
그렇게 생각하면 논리적이면서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했다.
다만, 점점 대화 주제가 합리적 추론이 아닌 창의적 상상의 영역으로 간다 싶었다.
“아무래도 우리끼리 회의해서 알아내긴 어렵겠네요. 다음 주제로 갈까요?”
내가 주제를 넘기긴 했지만, 막상 다음 주제도 할 말이 마땅치 않기는 똑같았다.
은솔 누나가 단어를 읽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자성을’이라. 미로야.”
“네?”
“이거 진짜 우리에게 장난치는 것 아니지?”
“엣! 아니라니까요!”
누나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이런 식으로 적을 거면 차라리 적지 말라고…. 어쩌라는 거야? 경계해라?”
진철 형이 쓴웃음을 지었다.
“새삼스러운데? 애초에 여기 이자성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있나?”
나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회의 때 주변 반응을 보면 안다.
이 자리에 이자성을 신뢰하는 사람 따위는 없다.
애초에 첫 번째 시도가 왜 터졌나?
이자성이 칼 들고 동료들을 썰어 죽여서 망했다.
방이 초기화되며 이자성이야 기억을 잃었지만, 동료들의 기억 속엔 여전히 이자성에게 칼 맞아 죽던 기억이 생생하다.
선생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뭐, 다들 알고 있는 일이라 해도 한 번쯤 다시 경고해줄 수 있는 법입니다. 이자성을 경계하라 정도로 넘어갑시다.”
다음으로 나온 주제는 자정의 미로 그 자체였다.
미로는 ‘너무나 멋지고 부럽고 엄청난’ 과거의 자신에 대해 약간의 동경심까지 표현하며 길게 떠들었는데, 한참 동안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로 본인도 잘 모르는구나.
현 미로가 자정의 미로에 대해 가진 기억은 추상적이고 모호했다.
어떤 행동을 했다는 건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모른다.
어떻게 싸웠다고 설명은 하는데, ‘어떤 원리로’ 싸웠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몇 가지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강하고, 과감한 결단력이 있으며, 최소한 미친 사람은 아니다.
일반인과 다를지언정 나름의 어떤 논리가 있는 존재다.
그 논리는 아리나 할아버지의 사고방식과 닮았으며, 나아가서 관리국의 철학 그 자체였다.
“좋게만 볼 일은 – 아닙니다.”
선생님은 과거의 미로에 대해 복잡한 감정이 남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름의 불만을 표하려 했지만, 새삼스레 기억을 잃은 현재의 미로에게 따져봐야 의미 없다 싶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때, 진철 형이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건 개인적인 호기심인데, 자정의 미로는 대단한 강자인 것 같거든?”
그건 확실하다.
“이런 강함을 1층 후반, 혹은 2층 초반 시점에서 얻었다는 말이지.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나아가지 못했어. 2층 중반쯤에서 막혔으니까 지금 우리보다 부족하거나 비슷한 정도 아닌가?”
누나가 답했다.
“봉인 당했다며?”
“매번 본인이 봉인 당한 건 또 아니라면서요? 또, 본인처럼 유산 다수를 얻은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던데. 물론 그 사람은 미로만큼 강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일단 관리국 출신은 아니니 말입니다.”
형의 의문은 간단하다.
천재지변 급으로 강한 미로와 그 미로에 버금갈 정도로 강한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면서 왜 2층 중반에서 멈췄는가.
이에 대해 ‘경험자’인 선생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뭐…. 이젠 하도 오래된 일이라 가물가물하긴 한데, 대충은 말해줄 수 있겠네. 별것 아니고, 저주의 방이라는 게 생각보다 개개인의 강함이 별 의미 없기 때문이지.”
저주의 방에서 ‘강함’은 생각보다 의미가 없다.
“진철 군도 한번 생각해봐. 예컨대, 201호에서 TV에 섣불리 들어가면 ‘0차원의 눈’과 마주치지? 저 대단한 자정의 미로 양이 0차원의 눈을 마주하면 어떻게 됐을까?”
“즉사?”
“202호로 바꿔보자. 하루? 이틀이라 했던가? 여하튼 그 짧은 기간 내에 이수호를 찾아내지 못하면 그놈이 해신을 소환한다고 했지. 해신 앞에서 자정의 미로 양이 뭘 할 수 있을까?”
“물고기로 변하기?”
저주의 방에는 ‘죄수’가 있다.
그들의 힘은 유산을 3개가 아니라 5개 6개를 먹어도 비벼볼 수 없을 정도다.
그러므로 저주의 방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의 강함이 아니라 ‘선택’이다.
올바른 선택지를 골라 대적자의 음모에 빠져 죄수에게 맞아 죽는 배드엔딩을 피해야 한다.
“결국 이런 끔찍한 결말을 피하려면, 충분한 정보의 획득이 필수야. 그리고 예전의 동료들은….”
“…”
“그런 면에선 최악이었지. 다들 자신이 얻은 정보를 숨기기 바빴으니.”
과거의 호텔에 관한 이야기.
여러모로 부정적인 주제다.
선생님과 아리의 아픈 기억이기도 하고, 미로와 관련한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으니까.
누나가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로 넘겼다.
“슬슬 저녁이네! 내일, 세 번째 시도는 어떻게 진행할지나 말해보자.”
모두가 두 번째 시도를 한 차례 복기한 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언니, 그다지 바꿀 것 없지 않아요?”
엘레나의 그 말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했다.
진행 방식을 바꿀 필요가 없다.
애초에 205호는 호텔이 공인한 ‘단순한 구조’의 방이기 때문인가?
이미 정답에 가까운 루트를 찾아낸 상태다.
박승엽 : 황제.
이은솔 : 조화문주, 제국 실권자.
김상현 : 황제의 호위이자 천의맹주의 제자.
차진철 : 대장군.
엘레나 : 배화교의 배신자, 서방과 연결고리가 있는 제1사도.
이렇게 다섯을 ‘제국 파티’라 치자.
두 번째 시도에서 제국 파티의 진행은 이미 흠 없이 훌륭했다.
천의맹을 성공적으로 끌어들여 회전을 승리로 이끌어 배화교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배화교주의 숨은 패였던 카르다모스의 강림도 저지했고, 다음 회차에서 최후의 섬광을 쓴다면 더 쉽게 저지할 수 있겠지.
이런데도 실패한 것은 순전히 환마의 난입 때문인데, 이건 제국 파티의 실수와 무관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은솔 누나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냥…. 환마를 건드리지 않고 진행하면, 다음 회차에서 해결할 것 같은데?”
그 말에 미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인이를 깨우지 말자는 말이에요?”
“자꾸 가인이를 깨워보려다가 사고가 터지는 느낌이라. 1회차에선 너희가 제국 수도로 오는 바람에 이자성이 폭주했고, 2회차에선 너희가 환마를 깨우는 바람에 망했고….”
“헉! 다 우리 때문? 죄, 죄송 -”
“아니! 누구 탓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여태 드러난 정황상 굳이 가인이를 깨울 필요 있나 해서.”
날 그냥 내버려 두자는 이야기인데, 뭔가 불편한 것과 별개로 논리는 이해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굳이 날 깨울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날 깨우려다가 자꾸 사고가 터지고 있다.
엘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본적으로 봉인은 풀라고 만든 걸 텐데, 아예 봉인 해제를 포기하는 것도 좀 이상하네요.”
아리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우린 아직 205호의 모든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어. 분명, 가인이를 깨워야 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두 사람의 말을 들은 누나도 의견을 굽혔다.
“좋아. 그러면, ‘봉인 해제 파티’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정도로 하자.”
이후, 내 조언을 활용해가며 세 번째 시도를 어떻게 진행할지 세부적인 내용을 다듬은 후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
– 김아리
“하아아암!”
졸리다.
“하품하지 마. 중요한 순간이라고!”
“알았어, 알았어.”
— 휘이잉!
춥다.
“에잇!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시끄럽다.
대체 난 이 늦은 시각에 왜 2층 설원에 나와서 미로의 재롱을 감상 중인 걸까?
사건의 시작은 간단했다.
내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회의가 끝난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때, 난데없이 미로가 날 데리고 2층 설원으로 이동한 것.
그리고….
“신기술을 익히겠어! 반드시!”
이런 소리를 하면서 두 눈 부릅뜨고 회중시계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 신기술?”
미로의 설명은 간단했다.
자정의 미로가 싸웠던 방식에 대해 어렴풋이 떠올렸는데, 시간대여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시간대여기로 타인을 소환할 때와 과거의 날 소환할 때는 판정이 전혀 달라.”
과거의 자신을 소환하는 경우 새로운 몸이 생기는 대신 현재와 과거의 자신이 겹친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시간대여기로 자기 자신을 ‘저장’하거나 원하는 위치에 ‘소환’하는 과정을 엄청난 속도로 반복하면 일종의 무적기나 이동기처럼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집중!”
“…”
회중시계의 바늘은 단 1mm도 미동하지 않았다.
“… 미로, 그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꽤 오랜 수련이 필요한 것 같아.”
“그래서 지금 하잖아.”
“왜 굳이 나랑….”
“조용히 해!”
“…”
“흐읍!”
은발의 소녀가 두 눈 부릅뜨고 회중시계를 노려본다.
그리고….
“돼, 됐다! 방금 봤지?”
“…”
“세상 전체가 어두워졌다가 밝아졌어. 방금, 내 찰나의 순간을 시간대여기에 -”
“아니야.”
“어?”
“시간대여기가 아니야. 이마에서 땀이 흐르니까 네가 눈을 감았다 떴어.”
“…”
문득, 생각했다.
관리국은 대체 이런 여자아이에게 무슨 교육을 했길래 그리 무자비한 초인을 만들어냈는가.
그 교육 방식이야말로 진정 우주의 신비가 아닐까?
모를 일이다.
“오늘 밤, 나는 반드시 깨닫겠어!”
나는 이제 정말 자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