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74)
373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22)
– 유송이
아리의 입이 다시 열리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샅샅이 뒤져봤는데, 역시 없네.”
“뭐?”
“가인이가 있는 위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없어. 아예 두뇌를 까뒤집어봤는데도 결론은 같아.”
“그건 아쉽네. 그럴 것 같긴 했어.”
아쉬움과 별개로 놀랍진 않았다.
애초에 환마를 봉인한 무림인들은 영원히 가둘 생각이었지, 언젠가 풀어줄 생각 따윈 없었을 테니까.
편리한 통로 따위를 만들어줄 이유가 없다.
“그래도 흥미로운 정보가 하나 있었어.”
“음?”
“4년 전, 제국이 심한 폭우에 휩쓸려 여기저기서 홍수가 일어났다고 해.”
“아앗!”
“뭐야?”
“엘레나 언니에게 들었어. 그거 이자성이 했던 이야기잖아! 4년 전의 큰 홍수로 광동성에서만 3,000명 넘게 죽었다고.”
내 말에 아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말이 호텔 나름대로는 ‘힌트’였나 보네.”
“… 좀 알아듣기 쉬운 힌트면 좋았을 텐데.”
“여하튼, 폭우와 홍수로 지반이 가라앉으며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자연재해가 발생했는데, 천장산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굉장한 규모의 산사태가 일어났다고 하네.”
“그 말은?”
“위험한 위치에 자그마한 틈새가 생겼다고 해. 동굴이라고 말하기엔 꽤 작아서 성인 남성이 들어가긴 쉽지 않다지만….”
아리와 미로.
이 둘은 처음부터 ‘환마의 추종자’라는 설정을 가지고 시작했다.
덕분에 수도에 합류하기만 해도 이자성이 폭주하고, 신분을 감춘 채 배화교와의 싸움에 합류하려 해도 홍염철선의 심판 대상이라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즉, 호텔은 아리와 미로에게 가인 오빠의 봉인 해제에 전담하기 위한 역할을 부여한 셈.
이 상황에서 봉인구역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는 자그마한 틈새가 생겼는데, 그 틈새는 ‘우연히도’ 성인 남성이 들어가긴 쉽지 않다고 한다.
“우연이 아니네.”
“우연이 아니지.”
이런 수상할 정도로 딱딱 들어맞는 일이 호텔에서 우연일 리가 없지.
우린 그 틈새로 들어가야 한다.
*
– 이은솔
평원에서 펼쳐진 배화교와의 회전은 예상대로 제국의 압도적인 승리였는데,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우리로선 이미 이겼던 전투를 반복한 셈이기 때문이다.
배화교가 군대를 어디에 배치해서 어떤 전술을 취할지, 주요 고수는 어디에 배치할지 다 알고 시작한 상황.
답안지를 미리 보고 시험장에 들어왔는데 탈락하면 저능아지.
물론, 이런 정황을 모르는 배화교 측은 크게 충격 받았고제국 측도 만만치 않았다.
수도의 백성들은 예상 못한 대승에 감격하며 황제 폐하의 은덕이 어쩌고저쩌고하는 노래를 열심히 불러댔다.
그 찬양 대상인 황제 폐하께선 요즈음 매일 눈물겨운 밤을 보내느라 바쁘시지만.
“조만간 배화교에서 하늘 탑을 세우겠죠?”
성벽에 기대어 있던 상현 씨가 답했다.
“조만간일 겁니다.”
“최후의 섬광은?”
“멀쩡합니다.”
“이러면 하늘탑 파괴까지는 별 위험 없이 쭉쭉 가겠네요. 이야~! 이거 -”
설마 이제 곧 해결 아닌가요!
하려다가 내 방정맞은 입을 스스로 닫았어.
호텔에서 이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니까.
“이자성은 어디 있습니까?”
“회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황궁으로 돌아갔어요.”
“황제에게?”
“네.”
“호오….”
상현 씨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자성이 승엽 군을 대하는 태도가 상상 이상으로 진심이군요.”
“그러게요. 며칠 하다 그만둘 줄 알았는데.”
잠시 후, 상현 씨가 옆자리의 할아버님에게 물었다.
“요원님, 혹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 사용 방법을 모르는 초능력을 처음 쓰는 법에 대한 노하우가 있으신지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서 사용 방법을 모르는 초능력?
“선생,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써본 적이 없으면 보통 그런 힘이 있는 줄도 모르지.”
“헛!”
듣고 보니 이건 또 맞는 말이다.
“그, 내게 초능력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
“… 혹시, 근래에 새로 얻은 ‘즐기는 자’에 관한 이야기인가?”
“그렇지요.”
이제야 상현 씨의 말을 이해했다.
후원자가 내려줬으니 본인에게 ‘즐기는 자’라는 힘이 생긴 건 확실한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소리다.
“이거 어려운데…. 선생은 이미 205호에서 여러 차례 전투를 겪었지.”
“그래서 혼란스러운 겁니다. 벌써 세 번째 시도고, 비무는 물론 목숨을 건 전투도 두 번 이상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즐기는 자의 발동 조건을 모른다?”
“감이 전혀 오지 않습니다.”
할아버님이 숙고 끝에 답했다.
“영 모르겠으면 나가서 가인이에게 부탁해서 조언 써달라고 해야겠는데.”
“가인 군으로선 ‘타인의 축복’에 관한 조언 아닙니까?”
“그래서?”
“그런 질문은 본인의 기여도가 깎인다고 들었습니다만….”
“그야 그렇지만, 선생이 새로 얻은 힘을 호텔에서 나갈 때까지 썩히는 것보다는 낫지.”
“후우….”
상현 씨는 가볍게 한숨 쉬었다. 그 틈에 내가 슬며시 끼었다.
“상현 씨, 의외로 조건은 단순하지 않을까요?”
“예?”
“제목이 ‘즐기는 자’이니깐. 말 그대로 상황을 즐긴다?”
“기쁠 때도 자주 있습니다만.”
“제 말은, 평소가 아니라 능력을 사용할만한 때 그 상황을 즐겨야 한다는 거죠.”
상현 씨가 곧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그런 상황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상황 아닙니까?”
“그렇죠.”
“그걸 어떻게 즐깁니까?”
“…”
“이것 참, 술이라도 한 병 들이켜고 싸워야 하나?”
옆의 할아버지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그런 조건이라면 어떤 의미에선 무지하게 쓰기 힘들겠구나!”
상현 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떠나갔다.
며칠 후, 평원에 다시금 하늘 탑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
– 박승엽
“으아아아아악!”
“…”
“으아 -”
“폐하, 어린애도 아닌데 조용히 좀 하시지요.”
“비, 비명이 나오는데 어떻게 해요!”
“집중. 자세를 유지하시오. 흔들리면 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으니….”
“…”
개같이 힘들어! 이건 너무 심하다고!
무공 수련이 힘들 줄은 알았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야?
이자성 이 인간, 21세기였으면 진작 아동 학대로 잡혀갔다!
“진짜 이 정신 나간 노인이 -”
“폐하,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속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안 좋은 버릇입니다.”
“…”
갑자기 다리의 힘이 쫙 빠지며 전신이 무너-
무너지려는 순간, 이자성이 손을 뻗어 무형의 힘으로 내 자세를 고정했다.
“이제 여기서 3분.”
“아 진짜!”
“입이 멀쩡한 것을 보니 5분으로 하지.”
5분 후, 나는 연무장에 널브러진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
“폐하, 힘드십니까?”
“… 당연하죠.”
“힘들 줄 모르셨소이까?”
당연히 알았다.
무슨 마법 훈련도 아니고 무공 훈련인데, 육체적인 고통이 상당하리라는걸 예상하지 못하면 바보다.
“알았어요. 알았는데, 근데….”
“막상 그 과정을 해보니까 상상 이상으로 견디기 힘들다?”
“… 아까 버릇없이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노인, 이자성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10대 아이들은 본디 인내심이 부족한 법. 제자들을 가르치며 해괴한 소리를 듣는 일은 흔하니 별일 아니라오.”
“그, 맹호철검 차군악? 그분도 저 같았어요?”
“군악이 그놈은 새벽에 도망가는 걸 붙잡은 것이 최소 세 번일세.”
“…”
그렇게 걸걸한 목소리로 폼 잡던 주제에 도망만 세 번 쳤어?
아니, 그 정도면 이자성의 수련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방금, 내 훈련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에, 에취!”
놀라서 고개를 들자 노인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 농담이었구나.
이자성이 이렇게 웃는 것은 처음 보았는데, 이 순간만큼은 마치 평범한 할아버지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불평이 살짝 나왔다.
“무공 훈련이 힘들 줄은 알았는데 계속 이런 식일 줄은 몰랐어요.”
“이런 식?”
“100년 묵은 산삼을 먹고 내공을 한 번에 각성한다던가!”
“…”
“비급을 읽고 깨달음을 얻는다던가!”
“…”
“슬슬 대련이나 그 비슷한 것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폐하, 어디 이상한 소설에서 터무니없는 지식을 얻으셨구려.”
내 지식의 출처는 묵성 할아버지다.
“첫째, 산삼을 먹는다고 내공이 생긴다는 소리는 쓸데없는 미신이오. 그깟 풀뿌리 좀 먹는다고 고수가 될 수 있다면, 야산에 풀이 남아났겠나.”
205호에 영약 같은 건 없구나….
“둘째, 비급은 제대로 된 스승이 없는 사람이 독학을 위해 보는 것이외다. 내 머리에 지식이 다 있는데 폐하께선 왜 비급을 찾으시는지?”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싶어 말문이 막혔다.
눈앞에 천하제일검 이자성이 있는데 비급을 찾을 이유가 없다.
이자성의 머릿속에 든 지식 자체가 비급보다 훨씬 가치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대련이라.”
이쯤 되자 무슨 대답이 나올지 짐작했다.
초보 단계에서 대련은 무슨 대련이냐, 기초를 탄탄히 다진 후에야 본격적인 무예를 익힐 수 있다는 말이 나오겠지?
“한번 해보지.”
“예?”
이자성은 두말 하지 않고 일어서서 연무장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입을 반쯤 벌린 채 연무장 문을 바라보았다.
뭘 한다고? 대련?
누구랑?
설마 이자성이랑?
*
30분 후, 이자성은 간단한 나무 막대를 쥐고 나타났다.
“피해 보시지요.”
“제, 제가요?”
그는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대신, 나무 막대를 부드럽게 움직여 내 몸을 가볍게 –
— 따악!
“으아아아악!”
“목소리 한번 우렁차다. 목소리 크기의 절반만큼만 통치력을 발휘한다면 제국의 미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개 아프잖아! 잖아요!”
“원래 맞으면 아픈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
— 따아악!
“으아아앙!”
“계속 가만히 맞을 셈인지? 대련이 아니라 맷집 수련이었나? 이걸 맞아가면서 하는 건 미련한 짓인데.”
이자성이 다시 한번 막대를 들어 올리는 순간, 눈을 부릅뜨고 이자성의 막대를 보았다.
내 감각이 예리한 바늘처럼, 한 점으로 모여들며 이자성의 움직임을….
읽어내진 못했다.
— 따악!
“아 진짜!”
“그냥 욕을 하시게. 원래 맞다 보면 욕이 나오는 것이 사람이니.”
생각해보니 이 방향은 아니야!
애초에 내가 은솔 누나처럼 신비한 눈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눈 크게 뜬다고 이자성의 움직임을 읽는 게 더 이상해.
그 반대가 답이야. 나는 희대의 행운아니까.
모여든 신경을 도리어 흩었고, 긴장감도 내려놓았다.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한 채 ‘당연함’을 받아들였다.
당연하다. 나는 당연히 피한다.
내가 이자성의 막대를 보고 피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움직이는 장소엔 애초부터 이자성의 막대가 가지 않을 것이다.
마치 내 변화를 어렴풋이 느꼈다는 듯, 기다리던 이자성이 말했다.
“준비되셨는지?”
“… 네.”
자! 이자성, 네 검을 나에게, 천하의 황제에게 보여봐라!
…
…
…
5분 후, 나는 연무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
간신히 진정하고 눈물을 닦아낼 때쯤, 이자성이 시원한 물을 내밀었다.
“이제 진정했느냐?”
“… 네.”
“흐음….”
“뭔가 이상이 있나요?”
“폐하.”
“예?”
“그동안 폐하를 가르치며 내린 판단을 솔직히 말하겠네.”
날 가르치며 내린 판단?
“폐하의 자질에 관한 이야기요.”
… 내 자질에 관한 이야기란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근골은 평범하다. 다소 왜소하긴 하나, 아직 성장기이니 개선의 여지는 있지.”
시작부터 ‘왜소하다’가 나왔다.
“시력, 청력 등 감각은 평균 이하. 특히 시력이 다소 문제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은 모양이오.”
책은 아니고 컴퓨터를 많이 했어요.
“지적 능력은 이 나이대 아이들 평균보다 훨씬 낫다.”
처음으로 좋은 이야기? 그런데 지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진지하게 이런 평가는 살면서 처음 받아본다!
“다만….”
“아, 안 좋은 이야기인가요?”
“머리가 좋다기보다 출신이 좋아 어릴 때부터 글을 배웠기 때문이지. 사실, 이 나이대 아이들 대부분은 까막눈이라오.”
“…”
지금, 천하제일에 근접했다는 고수가 내게 말했다.
근육과 골격은 평범하고 시력, 청력 등 감각은 평균 이하다.
지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타고난 지능이 뛰어나다기보단 21세기 대한민국 출신이라 초등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죽고 싶어졌다.
“실망했구나.”
“…”
“헛된 거짓말보단 냉엄한 진실이 네게 필요하다고 여겼다.”
“네….”
“그래야, 다음 이야기를 폐하께서 진지하게 들으실 테니.”
다음 이야기?
“예?”
그 순간 –
이자성의 얼굴이 내 쪽으로 훅 다가왔다.
노인이 갑자기 손을 뻗더니, 내 얼굴과 몸을 유심히 살폈다.
“어? 어?”
“오늘.”
“예? 예?”
“처음으로 폐하의 비범한 면, 실로 고금 무쌍한 자질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특별함을 발견했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