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75)
374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23)
– 이은솔
모든 일이 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자성이 황제의 스승, 태사 직책을 받아들이며 자연스레 천의맹도 황실의 편에서 참전했다.
덕분에 평원에서 펼쳐진 배화교와의 대회전 또한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
결국 위기에 몰린 배화교가 카르다모스 소환을 위한 하늘 탑 건설을 시작했으니 부수면 되는 상황.
여기까지도 아무 문제 없었고, 이전 회차보다 훨씬 쉽게 진행되었다.
예전엔 맨몸으로 이 악물고 탑 내부로 들어가서 진철이의 별을 써야 했지만, 이번엔 원거리에서 상현 씨가 ‘딸깍’하는 것으로 끝났으니까.
— 콰르릉!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뻗어간 최후의 섬광이 하늘 탑을 무너트리기까진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됐다!”
“으읏! 돼, 됐군요.”
압도적인 에너지 방출의 여파인지, 상현 씨가 잠시 전신을 휘청였다.
진철이가 재빨리 상현 씨를 부축하는 그 시점.
한 자루의 예리한 검이, 상현 씨의 목을 겨누었다.
여기서 최초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전 회차에선 경험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앗? 아앗? 매, 맹주님?”
“…”
이자성은 얼마나 분노했는지,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대체 왜 -”
“닥쳐라!”
위기의 순간, 상현 씨가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스승 -”
“뭐? 스승?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구나! 네가 정녕 내 제자, 상현이가 맞긴 한 것이냐?”
“…”
“오랜 정이 있으니 한번 들어나 보자. 이건 대체 무슨 술수냐? 새롭게 얻은 무공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말은 꺼내지 말아라!”
이자성이 보기에 ‘최후의 섬광’은 절대 무공이 아니었다.
“황실이 기나긴 세월 속에서 감추어둔 -”
“내게 거짓을 말하지 말라! 황실 비장의 힘 따위가 아니다. 단언컨대 하늘 아래 이런 위력의 술법이 있다는 소문조차도 듣지 못했다!”
이자성이 보기에 ‘최후의 섬광’은 술법조차도 아니었다.
무공도 아니고 술법도 아닌 무언가.
정도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사도조차도 넘어선 힘.
다시 말해, 인간의 힘이 아니다.
“나는 이와 비견될만한 힘을 딱 한 번 보았다. 30년 전, 배화교주가 환마를 심판하기 위해 홍염철선을 썼을 때! 그 부채가 내뿜은 위압감이 이와 같았지!”
“…”
“상현아. 네가 황실과 손을 잡으며 무도(武道)에서 벗어났음은 짐작했다. 사특한 술법 또한 익혔으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천의맹주….”
“이게 대체 무엇이냐? 이건 사람의 힘이 아니라 신의 힘이다. 대체 무슨 신을 섬기기 시작했느냐?”
이자성은, 최후의 섬광을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악한 신의 힘이라 단정했다.
이 상황에서 대체 무어라 말해야 할까?
사실대로 말해봐?
사악한 신의 힘이 아니라 머나먼 미래의 인류가 만들어낸 초병기라고?
변명하기 힘들었다.
애초에 이자성이 내린 결론은 반쯤 정확했으니까.
최후의 섬광은 이자성이 언급한 홍염철선과 동급의 힘이자 호텔이 내리는 유산.
필멸자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기적 그 자체다.
모두가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한 줄기 날카로운 바람과 함께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자성 네놈은 물러서라! 내, 이 벌레들의 살점 하나하나를 뜯어내어 아샤(Asha)의 전당에 바치고 말 것이니!”
그는 조원홍이었다.
절대고수였다.
또한, 당장이라도 우리를 산채로 도륙 내고픈 적개심으로 가득한 존재이기도 했다.
이자성이 검을 거둔 채 한 발자국 물러섰다.
반드시 피하고자 했던 최악의 상황, 이자성의 도움 없이 조원홍과 싸우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
– 김상현
싸움이 시작하자마자 은솔과 조원홍이 동시에 똑같은 말을 외쳤다.
“엘레나, 너는 황궁으로 돌아가!”
“제1사도, 옛정을 보아 그대는 살려줄 테니 돌아가시오!”
상대가 배화교주라면 엘레나가 정의를 쓰기 쉽지 않다.
불길한 상상은 준비시간이 길고 피아식별이 불가능했고,이런 특성상 적아가 뒤섞인 난전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엘레나가 여기서 허망하게 죽느니, 황궁으로 돌아가 승엽이를 데리고 망명하는 탈출을 노리는 게 낫다는 은솔의 판단은 합리적이다.
배화교주로서도 이자성이 끝까지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을 테니, 가능하면 적을 줄이는 것이 좋다.
서로 이유는 전혀 다르지만, 엘레나를 돌려보내고 싶다는 목적만큼은 일치한 기묘한 상황.
덕분에 엘레나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황궁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조원홍의 양손에서 파괴적인 홍염(紅焰)이 그 빛을 발했다.
“아그니의 진노가 내게 깃드나니…. 죄인에게 천벌이 있으리!”
한 번의 호흡으로 거리를 좁혀든 교주의 쌍장이 내 상체를 향해 날아온다.
즉시 상반신을 뒤로 젖히며 –
“크읏!”
분명 교주의 손을 피해냈으나, 그의 양 팔에서 나선을 그리는 홍염이 단박에 내 가슴팍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화상을 입혔다.
갑작스러운 격통으로 자세가 무너져 또다시 일장을 허용할뻔한 순간 –
“이럇!”
교주가 일성을 토하며 신형을 뒤로 연거푸 뒤집었다.
조원홍으로서도 뒤편에서 덮쳐온 차진철의 언월도를 감히 무시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서로 신형이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 차진철이 눈빛으로 괜찮냐고 물었다.
물론, 이 정도 부상은 호텔에 들어오기 전에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던 사람이 나다.
다시금 교주가 사방에 불꽃의 장력을 쏟아내며 나와 차진철을 동시에 견제했다.
나는 좌우로 스텝을 밟으며 장력의 궤도에서 벗어난 후, 창날을 허공으로 날리는 일격을 가했다.
반대편의 차진철 또한 언월도를 수평으로 크게 내지르며 한 호흡에 교주에게 들이닥쳤다.
세 명의 초인이 뒤엉키자 삽시간에 온 사방이 불타오르고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으로 반복적인 공방이 이루어진 후, 교주가 차갑게 웃었다.
“과연! 한 놈은 제국 최고의 장군이요, 다른 한 놈은 이자성의 제자라더니 이름값은 하는구나.”
“칭찬으로 듣지.”
“그래봐야 오늘이 네놈들의 제삿날인 줄 알아라!”
이번에는 교주가 몸 전체를 한 바퀴 돌며 불꽃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사방에 뿜어지는 광포한 열기 때문에 물러서야 했는데, 황급히 소용돌이 내부를 살피자 조원홍이 양손으로 복잡한 동작을 취하기 시작했다.
딱 봐도 패도적인 위력의 술법을 준비하는 상황!
내 힘으로는 제지할 길이 없으나 차진철에겐 달랐다.
— 라아아!
불길한 파동을 뿜어내는 이계의 별이 현세에 그 모습을 드러내자 차진철은 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별 조각을 왼손에 쥔 채로 조원홍이 만들어낸 불꽃 소용돌이에 손을 집어넣은 것이다!
아무리 용기의 축복이 있다고 해도 터무니없는 행동이었고, 잠깐 사이에 왼손 피부가 불타 떨어지며 내부의 근육과 뼈까지 드러났다.
당연히 차진철 본인도 참지 못하고 비명 질렀다.
“으아아악! 씨이이바아아알!”
하지만, 큰 위험에는 큰 보답이 따르는 법.
차진철의 이 선택은 조원홍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혔다.
소용돌이 내부로 들어간 이계의 별 조각이 만물을 비트는 파동을 내뿜어 조원홍이 준비했던 정교한 술법의 맥을 끊어버린 것이다.
“이 광인이!”
차진철의 도박 수가 어지간히 효과적이었는지, 조원홍은 갑작스레 술법이 파괴된 반동으로 인해 입에서 피를 줄줄 흘렸다.
게다가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잃고 전신을 휘청이기 시작했고, 당연히 그를 지키던 불꽃 소용돌이도 형체 없이 무너졌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기에 즉시 창을 쥔 채 달려들었다.
“이얍!”
지금껏 신비로운 움직임으로 나와 차진철의 공격을 피했던 조원홍이, 내 창을 피하긴커녕 제대로 막아내지도 못했다.
예리한 창날이 단숨에 그의 어깨를 꿰뚫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 공격 한 방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겠지.
이 시점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과 같은 백병전에서 조원홍은 이자성보다 한 수 아래다.
무공만 따져서 한 수 아래가 아니라, 무공과 술법을 다 합쳐도 이자성만 못했다.
둘 모두와 싸워봤기에 확실했다.
물론, 이자성만 못할 뿐 조원홍 또한 보통 사람과 100만 광년 정도 거리가 있었다.
“보후 마나흐여! 악업을 쌓는 이들에게 철권의 심판을 내리소서!”
피투성이가 된 교주가 하늘을 바라보며 살벌한 기도문을 외자, 즉각 하늘에서 새하얀 주먹이 나타나 나와 차진철에게 날아들었다!
이 시점까지도 차진철은 아까 전의 치명적인 부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자기 자신에게도 해로운 이계의 별 조각을 쥔 채, 불꽃 소용돌이에 손을 밀어 넣는 터무니없는 짓을 벌였으니 당연하다.
황급히 달려가 전신을 웅크린 차진철을 붙들고 바닥을 굴렀다.
— 콰직!
단 1초라도 늦었으면 나와 차진철이 모두 피떡이 되었을 상황.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차진철 또한 이 악물고 일어서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 쿵! 쿵!
이어서 두 번의 폭음.
총 세 번에 걸친 주먹질이 있고 난 뒤에야 새하얀 주먹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터무니없는 일에 당황한 차진철이 짜증을 냈다.
“아니, 기도 한번 했다고 갑자기 사람을 으깨는 주먹이 튀어나와? 믿는 신 없으면 서러워서 살겠냐!”
나와 차진철이 바닥을 구르는 동안 교주는 뭘 하고 있었지?
뒤늦게 자세를 고쳐잡고 조원홍을 바라본 그 순간,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탄식이 나왔다.
“아니, 조원홍 저 개새끼가!”
“이런 son of bitch가!”
아까 내린 조원홍에 대한 평가, 이자성보다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이 섣불렀음을 인정해야 했다.
조원홍의 입에서 불길한 주문이 완성되자 자동차보다 거대한 가오리 비슷한 생물이 나타났고, 교주는 그 괴물의 몸에 탑승한 채로 –
하늘로 날아올랐다!
*
조원홍은 어떤 의미에선 이자성보다 훨씬 끔찍한 존재였다.
최소한 이자성은 묵성 요원이 즐겨 봤다는 무협 소설의 신선들처럼 칼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도술을 부리진 못했으니까!
교주는 심지어 홍염 철선을 꺼내더니, 하늘에서 불덩이를 날려대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굴렀다.
그냥 한없이 구르고 또 굴렀다.
이건 뭐, 잘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불덩이가 하늘에서 쏟아지니 무슨 슈팅 게임을 하는 느낌으로 도망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하도 황당했는지 차진철의 짜증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야 이 새끼야! 이게 무슨 무공이냐?”
하늘에서 불덩이를 떨어트리던 조원홍은 태연히 답했다.
“물론 무공은 아니네만, 이자성도 아니고 자네들이 그런 말을 하니 우습군.장군이 소환한 돌이 무공인가? 아니면 제자 놈이 쏜 광선이 무공인가?”
이건 또 맞는 말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하염없이 피해 다니며 이자성은 뭐 하고 있나 뒤쪽을 바라보자 은솔과 무언가 대화 중인 모습이 보였다.
언뜻 들리기로는 ‘황제’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는데, 분위기는 좋지 않았으나 어찌 됐든 은솔이 눈먼 불덩이에 맞아 죽진 않을 것 같아 마음은 놓였다.
“혀, 형님! 이거 답이 없습니다.”
나도 알아.
최후의 섬광을 이미 탑 무너트리는 데 썼으니, 저놈을 저격할 수단이 없어.
당연히 하늘을 날 방법도 없다.
여태 그놈의 ‘윙 부츠’를 만들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짜증이 골수까지 치밀어올랐을 때, 마침내 불덩이 낙하가 멈추었다.
그러나, 조원홍의 여유 만만한 표정을 보니 단순히 힘을 재충전하기 위한 잠깐의 틈임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때.
차진철이 갑자기 내 몸을 들었다!
“으억! 뭐, 뭐야? 진철아, 갑자기 무슨 -”
차진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보는 순간,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알았다.
차진철은 지금 나와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찰나’를 사용한 것!
여기까지 깨닫자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아니, 아니! 진철아! 진철 군! 너무 무리수니까 다시 한번 재고를 요청 -”
차진철의 허리가 뒤로 꺾인다.
용기의 축복이 부여한 끝을 알 수 없는 괴력이 그의 전신에서 꿈틀거린다.
또한, 찰나가 만들어낸 무한한 집중력이 터무니없이 ‘정교한’ 움직임을 가능케 했다.
그랬기에 –
차진철은, 내 몸을 ‘정확히’ 비행 중인 조원홍을 향해 잡아 던질 수 있었다.
“형니임! 믿습니다아아아!”
“뭘 믿어 이 미친 새끼야!”
입으로는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나는 이 순간이 그리 싫지 않음을 깨달았다.
극도의 긴장감과 바늘처럼 예리해진 집중력 때문에, 세상이 흡사 0.5배속으로 재생 중인 영상처럼 느려졌다.
하늘을 날아가며 지상의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은솔은 뒤늦게 상황을 눈치채고 양손을 입으로 모았다.
상황을 주시하던 이자성의 눈도 동그랗게 벌어졌는데, 저 인간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조원홍, 명실상부한 우리의 대적.
그는 ‘인간 탄환’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상황을 상상조차 못 했는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 동료인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차진철의 돌발행동이 만들어낸 결과는 이리도 우스웠다.
즐거웠다.
분명, 목숨을 건 생사결이 진행 중이었음에도….
이 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