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76)
375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24)
– 김상현
꿈틀거리는 가오리 위에 착지하자 조원홍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던 교주의 여유가 순식간에 사라졌음을 알았다.
내가, 바로 이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즐기는 자’가 발동합니다!]마침내 나는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 쿵!
교주의 분노에 호응한 가오리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날 떨어트리려 애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게 대체 어떤 능력이 생겼는지 알아채지 못했는데,괴력이나 염력과 같은 직관적인 초능력이 생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차진철의 ‘찰나’처럼 몸을 정교하게 움직이는 능력이 생긴 줄 착각했다.
가오리가 전신을 흔들어대는데도 내가 너무나 쉽게 균형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주가 분노한 표정으로 외쳤다.
“네 이놈, 난데없이 올라올 줄은 몰랐구나! 살아서 내려갈 생각은 버려라!”
하늘을 나는 생물의 등 위라는 움직임이 제약된 좁은 장소에서 교주가 양손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이 내 손에 잡힐 듯 명확히 보이는 순간, 나는 또 당황했다.
내게 정교한 시력이 생겼나?
그렇다기엔 은솔 양처럼 사람의 모공이 보인다거나 하진 않는데?
교주가 오른손을 뻗어 불꽃을 내뿜었다.
상반신을 시계 방향으로 반 바퀴 돌리며 왼손에 쥔 창을 교주의 허리 쪽으로 찔렀다.
상대는 왼손으로 창대를 후려쳐 내 공세를 방어했고, 자세를 고려할 때 다음 움직임은 오른손을 사선으로 내리긋는 것임을 알았다.
미리 그 공격을 차단하는 동시에 더 안쪽으로 달려들어 어깨로 교주의 상반신을 밀쳤다.
교주는 반 바퀴 뒤로 물러섰고, 바닥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교주의 손에서 화구(火球)가 형성되었다.
직감적으로 가오리의 움직임과 교주의 반격이 연계되어있음을 깨달았다.
날 뒤쪽으로 밀쳐내며 불덩이를 날릴 셈인데, 가오리의 움직임을 읽어냈기에 다시금 기묘할 정도로 정교한 움직임을 통해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
…
“뭐, 뭐야?”
눈 깜짝할 사이 이어진 숨 가쁜 공방.
나는 교주의 공세를 막아냈고, 다음 동작을 읽었고, 그다음 반격까지 읽어내며 사전에 차단했다.
… 다르다.
불과 10분쯤 전에 교주와 처음 손속을 나누었을 때와 너무나 다르다.
그때는 교주의 단 한 수에 바로 위기에 처하지 않았던가?
차진철이 교주의 후방에서 언월도를 휘두르지 않았다면 버티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교주와 거의 대등한 공방을 나눈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다음 동작을 읽어내기까지 했다.
교주가 순수한 감탄을 터트렸다.
“이자성의 제자, 네 자질이 대단하구나!”
“자, 자질?”
“분명 아까 전만 해도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나와 싸우는 그 잠깐 사이에 깨달음이 있었느냐?”
이 순간만큼은, 조원홍은 배화교의 지존이자 우리의 적이기 전에 재능이 뛰어난 후배를 발견한 강호의 대선배와 같았다.
… ‘즐기는 자’가 무슨 능력인지 마침내 깨닫고 말았다.
*
세간에 이런 말이 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 말에 따르면, 즐기는 자란 재능있는 자와 노력하는 자를 넘어선 무언가다.
어째서일까?
저 문장에 담긴 함의를, 나는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
과정을 즐겁게 여기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즐기는 자는 곧 노력하는 자이다.
노력했는데도 성취가 전혀 없다면 열정이 식기 마련이므로, 즐기는 자는 성취할 수 있는 자다.
그러므로 즐기는 자는 성취할 수 있는 재능 또한 갖춘 자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 수행하다 보면 스트레스받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열정적으로 즐기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최고의 동기 부여는 곧 이미 성취를 거둔 미래의 나, 성공한 나를 상상하는 것.
그러므로 성취를 거둔 미래의 나 자신을 현재에 끌어올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최고의 동기 부여다.
게임에 빗대면 이해하기 쉽다.
성실의 축복은 노력에 상응하는 스킬을 부여하는 힘인즉, 수천 수만 번 원시적으로 모닥불을 피우다 보면 [삼매진화 lv1]이, 장기간 창술을 훈련하면 [창술 lv1] 스킬이 생긴다.
즐기는 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스킬의 레벨을 일시적으로 끌어올린다.
미래의 내가 얻을 성취를 지금 당장 구현하는 것이다.
*
— 우우웅!
대기가 울부짖는 요란한 소음.
찰나 지간 상념에 빠졌던 내 정신이 다시금 현실의 전투로 돌아왔다.
교주가 몸 전체를 한 바퀴 돌자, 아까 보았던 불꽃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더니 그 권역을 서서히 확장하기 시작했다.
지상에서야 몇 걸음 뒤로 물러나는 정도로 피할 수 있었으나, 이 장소는 하늘을 나는 가오리의 등이다.
피할 장소가 없었고, 더 물러서면 추락이었다.
가오리야 불덩이를 던져대는 배화교주의 소환수답게 불꽃 회오리가 등 위에서 펼쳐져도 멀쩡했지만, 내가 저 불길에 휩싸이면 한 줌 재가 될 상황.
명백한 절체절명의 위기.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기에 웃을 수 있었다.
205호의 사람들이 일컫기를, 삼매진화.
태고의 시대, 203호의 원시적인 환경에서 끝없이 모닥불을 피우다가 생겨난 초능력.
고작해야 담뱃불이나 피우는 능력이라 여겼다.
창날에 두르는 법을 익힌 후에도 그다지 유용성을 느끼지 못했지.
나는 근본이 21세기 사람이고 미국인이다.
이런 개짓거리 할 시간에 권총 방아쇠 한번 당기는 게 훨씬 살상력이 뛰어나고 여겨 평가절하했다.
그런데….
이 능력에는 상상 이상의 잠재력이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교주가 만들어낸 불꽃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조원홍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이 새끼 미쳤나 하는 표정을 짓는 순간 –
불꽃의 소용돌이가, 조원홍의 통제를 벗어난 채 내 손짓에 따라 이끌리며 길을 열었다.
“아니! 이게 무슨 -”
“타아앗!”
번갯불처럼 날아든 창이 단박에 조원홍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아니, 꿰뚫는 것 같았다.
조원홍의 신형이 마치 유리가 깨지듯 갈라지더니, 어느새 뒤쪽으로 이동해 있었던 것.
위기에서 벗어난 교주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합장하자 나와 교주를 태운 채 비행 중이던 가오리의 형체가 갑자기 무너지며 사라졌다!
“이 자식, 미쳤냐!”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라!”
“이 와중에 지랄을 -”
추락한다.
추락한다.
이 순간만큼은 크게 당황했다.
교주 본인은 어쩔 셈이기에 난데없이 가오리를 돌려보내고 같이 떨어질 생각을 했지?
기다렸다는 듯, 교주의 장포가 펄럭이며 그의 비행이 확연히 느려졌다.
아리처럼 그에게도 ‘느리게 떨어지는’ 정도의 재주는 있었다.
낙하 속도의 차이 때문에 나보다 위에 있는 교주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라면 내 죽음은 피할 수 없고, 교주는 경상으로 끝날 상황!
“교주, 같이 갑시다!”
내 창이 허공을 갈라 교주에게 날아갔다.
조원홍은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장력을 내뿜어 창을 쳐냈다.
그리고 –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창을 조종한 것처럼.
허공에서 창이 반 바퀴 꺾어 교주의 상반신을 꿰뚫었다.
“이, 이기어창! 말도 안 되는!”
— 쿵!
… 높이가 조금만 더 낮아서 팔 하나라도 움직일 수 있었다면, 의술은 또 얼마나 강해졌는지 시험해볼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네.
그래도 뭐, 한바탕 잘 놀았다.
이게 205호에서의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 이은솔
“크허억!”
지상으로 내려온 조원홍의 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이는, 솔직히 말해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과였다.
조원홍과 차진철, 김상현의 싸움을 나 또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내 몸으로 그 싸움에 끼어들 수야 없었으나 내 눈은 능히 그 싸움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느낀 바에 따르면, 상현 씨가 단독으로 조원홍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으니까.
아니었다.
상현 씨는 추락과 동시에 머리와 척추가 동시에 으스러지며 사망했지만, 조원홍 또한 치명타를 입은 것이다.
…
생각하기에 따라선 상현 씨의 활약에 감동해야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싸움이 너무 길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늘 탑 주변에 있던 배화교의 정예가 우리 주변을 포위한 지 오래였다.
“이, 이걸 대체!”
조원홍이 치명타를 입었다지만 우리 쪽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상현 씨는 쓰러졌고, 진철이는 아직도 손 하나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방을 둘러싼 배화교의 정예가 우리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는 상황.
게다가 조원홍은, 어느새 배화교의 도움으로 응급처치까지 받고 있었다.
이런 답 없는 위기 속에서 내가 여태 살아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아까부터 날 잡아먹으려 들던 이자성 때문이었다.
배화교도들이 내 옆의 이자성을 두려워해 다가오지 않은 까닭이다.
“허어어….”
그때, 제자의 죽음을 인지한 이자성이 침통한 반응을 보였다.
“조화문주, 이제 무슨 생각이 드시오?”
“…”
이 인간은 아까부터 내게 뭘 자꾸 따지는 거야?
이자성은 슬픈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조원홍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자 교주의 출혈을 막기 위해 노력하던 교도들이 용기를 내어 이자성을 막아섰다.
“머, 멈추시오!”
“…”
“아무리 천하검이라 해도 -”
“그만.”
“교주님!”
“이자성이 이 상황에서 날 기습할 위인은 아니다.”
“…”
“자성, 할 말이라도 있는가?”
“상현이가…. 네 손에 죽었구나.”
“… 설마 날 탓할 셈인가? 서로 목숨을 노린 싸움이었다.”
“아닐세. 피차 혈전이었고 자네 또한 반쯤 죽다 살았는데 누굴 원망하겠는가.”
“…”
“그 아이의 마지막은 어땠는가? 그러니까 -”
저 둘이 대화할 때마다 느끼는데, 이자성과 조원홍의 관계는 흡사 오래된 친구와 같았다.
분명, 큰 틀에서 대립 중인 세력의 수장임에도 적이라 말하기 어려웠다.
그랬기 때문일까?
조원홍은, 이자성이 간절히 바랐을 답을 들려주었다.
“천고의 기재였네. 하늘에 닿고도 남을 자질이 있었지. 그에게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면, 당년의 자네 못지않았을걸세.”
“… 마지막에는, 결국 올바른 길로 돌아왔구나.”
이자성의 고개가 하늘로 향했다.
사도에 빠졌던 제자가 최후의 순간에 무도로 돌아왔다고 여긴 것인지.
이자성의 심경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남은 사람을 데리고 떠나도 되겠는가?”
“… 떠나라.”
피차 더 싸울 수 없었다.
우리로선, 남은 전력으로 이 많은 배화교도를 뚫고 조원홍을 죽일 방법이 없었다.
조원홍으로선, 아마도 여기서 우릴 죽이려 하면 이자성이 끼어들 것 같았겠지.
오늘의 싸움은 이것으로 끝났다.
*
황궁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님과 엘레나가 경악한 표정으로 튀어나왔다.
“은솔아! 이자성 그 개새끼가 -”
“언니! 승엽이가 -”
“둘 다 조용조용. 알고 있는 이야기야.”
이미 상황을 전해 들은 진철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자성과 협상…. 했답니다.”
“예?”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설명해줄게. 이자성이 얼마나 황당한 사람이고 그가 내게 무슨 제안을 했는지.”
고백하건대, 이자성과 대화하며 내가 멍청이가 된 줄 알았다.
분명 사람의 말인데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자리에 내가 아니라 묵성 할아버님이 있었다면, 무협 소설 애독자 경력으로 이자성의 사고방식을 쉽게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이자성은 ‘내’가 황실의 사상이 타락한 원흉이라 여겼다.
그 ‘타락’이 무슨 말인지부터가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는데, 아마 무예를 단련하고 학문에 힘쓰는 대신 사악한 주술과 불경한 사교를 퍼트렸다는 말 같았다.
… 내가? 사악한 주술을 퍼트렸어? 불경한 사교를 퍼트려?
난생처음 듣는 말이긴 한데, 이자성의 확신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도 아닌 이자성 본인이 가진 통찰력 또한 믿지 않았다.
*
“아니, 눈을 마주쳐서 사람 마음속을 꿰뚫어 보신다면서요? 저도 좀 꿰뚫어 보세요!”
“이 요녀야! 네게 마물의 눈이 있음을 내 모를 줄 아느냐? 날 속이려 하지 마라!”
*
이쯤 되자 설득을 포기하고 이자성의 비판을 그냥 흘려들었다.
내가 황실의 사악한 대 주술사이자 불경한 신의 제사장인 동시에 제국과 어린 황제의 미래를 말아먹은 타락한 마귀가 되어갈 때쯤.
이자성은 상현 씨의 장렬한 최후를 보고 ‘마지막 희망’을 찾았다.
“마, 마지막 희망이요?”
“내가 상현 씨를…. 완벽히 타락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 같아. 상현 씨가 최후의 순간엔 올바른 길, 무도로 돌아왔으니까.”
“아니, 아, 알겠는데! 선생님은 어찌 됐든 죽었잖아요? 죽었는데 무슨 희망?”
당황하는 엘레나가 잊고 있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자성은, 자신에게 어린 제자가 한 명 더 남아있음을 깨달은 거야.”
“예?”
“어린 황제의 순수함을, 사악한 이은솔의 손길로부터 지켜내야겠다고 생각한 셈이지.”
“사악한 이은솔! 풋!”
“웃지 마. 엘레나 넌 배화교의 탕녀이자 반드시 어린 황제를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트릴 마귀라고 했어.”
“…”
“그다음에 내게 제안했어. 동맹을 깨트리진 않겠다, 남은 전쟁에서 천의맹은 계속 황실 편에 서겠다. 다만.”
“다, 다만?”
“승엽이는 이제 자신이 데려가겠대.”
할아버님이 이마를 ‘탁’ 쳤다.
“어이쿠! 그래서 난데없이 황궁에 들이닥쳐서 승엽이를 들고 떠난 거냐?”
나는,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뭐 어때요! 제자 한번 끔찍이 생각하는 양반이니 승엽이가 어디서 객사하게 두진 않겠죠. 어쩌면 이미 탈출 판정이 나왔을지도?”
205호의 최종 결전이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핀치에 몰린 배화교의 상황 때문이다.
제국과의 대회전에서 패배했고, 반전을 위한 하늘 탑도 파괴된 데다가 교주 또한 단기간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상황.
남아있는 ‘최후의 수단’이 있다면, 이제 튀어나올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