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77)
376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25)
– 김묵성
늦은 시각, 초소의 척후병들이 이상한 보고를 올렸다.
난데없이 조원홍이 정예 병력을 이끌고 평원을 떠나고 있다지 않은가?
“뭐라고? 정말이냐?”
“어르신, 한두 명이 본 게 아닙니다!”
황급히 은솔의 거처로 이동하며 생각했다.
하늘 탑이 파괴되었고, 조원홍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마지막 수를 쓰리라 짐작은 했다.
본인과 13 사령의 생존자 전원이 최전선에 나서는 대회전?
아베스터교와의 화해를 도모해 세력을 불려 반격을 노린다?
이것도 아니면, 황실에 휴전을 제의하며 시간을 번다?
다양한 가능성을 은솔과 토의했었지.
전부 틀렸다.
*
– 박승엽
“핫!”
— 퉁!
“아이씨! 왜 이렇게 어렵지?”
벌써 몇 번째 실패인지 모르겠다.
슬슬 마음이 꺾이는 기분이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상하다…. 사부님이 내게 딱 맞는 무공이라고 하셨는데.”
의욕을 충전할 겸, 며칠 전 사부님이 내게 해주었던 ‘특별한 자질’에 대한 언급을 떠올렸다.
*
“고, 고금 무쌍한 자질? 제게 그런 재능이 있어요?”
“…”
“무슨 재능이에요?”
“폐하께 딱 맞는 무공이 떠올랐소.”
“무, 무슨 재능인데요!”
“‘아크샤의 혼’. 바다 건너에서 온 심오한 절정의 무예지.”
“아니, 재능이 뭐냐니까요?”
이자성은 마지막까지 내 재능이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
아크샤의 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신공, 마공, 검법 이런 게 아닌데다가 ‘아크샤’는 어떻게 봐도 한자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들어보니 현실의 인도와 비슷한 지역에서 온 무공이란다.
그렇게 멀리서 온 무공을 남에게 가르칠 만큼 알고 있는 이자성의 식견도 대단했지만, 내 자질이 ‘아크샤의 혼’과 맞아떨어지는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다.
왜냐하면, 열흘이 넘도록 제대로 된 입문조차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씨!”
“혼잣말이 많으시군요.”
그때, 장년인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의 둘째, 아니 셋째였나?
하여튼 나보다 서열이 높은 사형인맹호철검 차군악이다.
물론, 사제관계의 서열은 둘째치고 ‘황제’라는 직업 덕에 차군악은 나를 제법 조심스럽게 대했다.
이런 면은 사부님도 마찬가지라 공대와 평대가 아무렇게나 뒤섞이곤 했다.
황제라는 직업이 이렇게 대단하다.
“천의맹에서의 생활은 괜찮으십니까? 사부님이 갑작스레 데려오신 것 같던데….”
“네.”
너무 쉽게 대답해서인지 차군악이 되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아무래도 무림 문파다 보니 황실의 음식과 비교할 수는 -”
“황실 숙수들 절반 이상 도망가서 별것 없어요.”
그리고 중화풍 황궁 음식은 내 입맛엔 별로였다.
솔직히 양념치킨이랑 돈까스가 더 맛있어.
“잘 적응 중이신 듯해 다행입니다. 폐하께서….”
“제가?”
“… 맹을 원망하고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이해했다.
사부님이 난데없이 들이닥쳐서 날 천의맹에 데려오긴 했으나이런 애매한 관계가 오래갈 수는 없다.
제국이 명운을 건 전쟁 중이고, 이자성이 고금 3대 고수로서 제자인 날 보호하기 위해 데려간다는 명분이 있었기에 그냥 넘어갔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상황에 불만이 없었다.
황궁에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국 황제가 배화교와의 전쟁에 나설 수 있을까?
가인 형을 깨우겠다고 천장산 가서 굴을 파는 건 더 황당하다.
그래서 밥 먹고 잠이나 자고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무공 수련은 제법 흥미진진했다.
차군악이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 주제를 돌렸다.
“듣자 하니 스승님이‘아크샤의 혼’을 전수하였다고 하더군요.”
“네.”
“연무장 바깥까지 짜증이 들리던데,잘 안되는 모양입니다.”
“그…. 입문 단계에서 기합? 기운? 그걸 불어넣는 게 계속 실패해서….”
“수련이란 본래 혼자 하기 어렵습니다. 잠시 상대해 드리지요.”
그 말과 함께 다가온 차군악이 나무 막대를 가볍게 휘둘렀다.
— 따악!
“으아앗! 스승님하고똑같아!”
“…”
“느릿느릿 움직이는 데 왜 이리 아파요?”
“집중! 자세를 바로잡고….”
“바로잡고?”
“막대를 의식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그, 그 말 되게 이상하지 않아요? 막대에 얻어맞으면서 막대를 의식하지 말라니!”
“아크샤의 혼은 통상의 상리에서 벗어난 무공, 상식으로 재단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무의미하게 맞고 또 맞았다.10대, 20대쯤 맞다 보니 슬슬 짜증이 났다.
그럴 리 없음을 알면서도 차군악이 날 괴롭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너무 많이 맞아서 정신이 붕 떠오른다 싶을 때, 처음으로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심장에서 출발한 피가 핏줄을 타고 전신으로 뻗어간다.
그 순간, 피와 함께 다른 무언가가 출발했다.
그것들은 마치 자그마한 벌레 무리와 같았다.
몸 여기저기가 살짝 가려우면서도 무언가 탁탁 터지는 느낌.
이 기묘한 감각에 정신이 쏠리자 자연스레 막대의 존재 자체를 잊었다.
그리고….
“어?”
처음으로 내 손이차군악의 팔목을 쳐서 막대를 막아냈다.
“뭐, 뭔가 성공했다! 성공했다!”
물론, 내가 무슨 차군악에게 치명타를 입혔다는 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애초에 그는 날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느리게 움직였을 따름이니까.
그냥 느릿하게 움직이는 막대를 한번 막아냈다는 별거 아닌 – 별거 아니긴 뭐가 별거 아니야!
“성공했다!”
와! 나 진짜 천재 아님? 벌써 성공했다고?
아니, 이 엄청난 재능을 대체 어떻게 함?
하아…. 호텔 이 녀석들이 마침내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을 해방했구나!
세상아! 기다려라,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지고한 천재가 –
“지, 진정해라!”
차군악이 당황을 감추지 못하며 반말까지 던지면서 내 어깨를 잡아 진정시켰다.
정신 차리자 나는 잠깐 사이에 미친 듯이 춤을 추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어찌나 요란했는지, 연무장 밖의 사람들이 죄다 한 번씩 기웃거렸다.
“…”
“폐하! 제발 체통을 지키셔야 합니다!”
“방금 그 말은 황궁의 신하들 같았어요.”
“제가 막대를 몇 번 휘둘렀고, 폐하는 몇 번 성공했습니까?”
“어…. 수백 번은 휘두르셨고 저는 한 번 성공했네요.”
“수십 번 해서 한번 성공한 정도로는 성취가 아니라 그냥 운이고 제대로 된 기술이 아닙니다. 10번 해서 9번은 성공해야 실전에서 쓸 수 있습니다.”
“…”
이후, 차군악은 이제 시작이니 성실한 수련이 필요하다 신신당부하며 연무장을 나갔다.
나갔네?
“으아아아아아! 나! 는! 천! 재! 다아아아! 고금 4대 고수가 -”
*
연무장을 나서자마자 뒤에서 고성이 터져 나오자 차군악은 헛웃음을 지으며 걸어갔다.
그때, 노인이 나타났다.
“군악,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황제의 고함이 어찌나 큰지 방벽의 조원홍도 놀라겠구나.”
“사제가 성취를 이뤘습니다. 가볍게 한번 봐주려 했는데, 공교롭게도 딱 제가 봐주는 동안 성공하더군요.”
“수련을 봐줬다? 넌 황제가 계략을 써 맹을 위기에 빠트리려 한다면서?”
“… 그동안 지켜봤는데, 솔직히 황제가 계략을 꾸밀 사람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
“과연, 스승님의 눈은 틀림이 없군요.”
“엎드려 절받기는 이쯤 하자.”
“참, 이걸 보시지요.”
차군악은 상의를 걷어 팔목을 이자성에게 보였다.
작은 멍 자국.
상처라 하기에도 민망했고일부러 맞아준 것에 가까웠으나….
맞은 건 그렇다 쳐도, 멍이 들었다는 것은 그의 외공이 흔들렸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이자성이 슬며시 웃었다.
“황제의 자질이 나쁘지 않구나.”
“이상한 일입니다. 솔직히 오성이든 근골이든 그리 뛰어난 것 같진 않은데.”
“사람의 자질이란 오묘한 구석이 있다. 글공부를 잘한다 해서 무공을 잘 익히는 것은 아니고, 도산검림에서 살아남은 고수가 까막눈인 경우도 흔하지.”
“그 말씀은?”
“아크샤의 혼은 본디 열대우림의 가혹한 환경에서 만들어졌다.”
“천축에서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풀을 뜯으면 하나같이 먹을 것이 없다. 두꺼비는 피부에서 독을 내뿜고, 바닥을 기는 벌레들조차 사람 열댓 명을 죽일만한 독을 뿜어댄다. 눈만 돌리면 사람을 한입에 삼킬 맹수로 가득하지.”
“끔찍하군요.”
“누군가는 녹색 지옥이라 부른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는 전사들은 사람이라기보다 짐승에 가깝다. 어떤 자들이 살아남겠느냐?”
“사방에 위험물이 넘쳐나니 감이 좋아야겠군요.”
“식량을 얻기 위해 마굴로 뛰어드는 일은 맨정신으로 할 것이 못 된다. 그러므로 내가 죽지 않으리라는 강렬한 자신감이 필요하고, 어지간한 위험을 피해낼 탁월한 감이 필요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일단 운이 좋아야지.”
“그, 그렇군요. 그런데,그런 면모가 황제와 무슨 상관입니까?”
차군악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위험으로 가득한 녹색 지옥에서 살아남은 짐승 같은 전사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을 타고난 황제에게 무슨 공통점이 있다는 말인가?
“이 이야기는 이쯤 하자. 황제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다.”
“예?”
노인은 손을 들어 아직도 환호성이 들려오는 연무장을 가리켰다.
“저런 성격이니 무슨 재능이 있다고 말해주기가 무섭더구나.”
“… 이해합니다.”
“위험한 소식이 들려왔다.”
“네?”
이자성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천의맹의 눈은 대륙 곳곳에 뻗어있다. 조금 전에 불길한 보고가 들어왔구나.”
“불길한 보고라고 하심은?”
“조원홍, 그 친구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으려 하는구나.”
*
– 미로
“으아아악!”
“…”
“으아아악!”
“…”
“벌써 며칠째야? 열흘 넘은 것 아니야?”
아리의 새하얗고 예쁜 얼굴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나랑 같이 며칠째 진흙을 뒤집어쓴 채 굴을 파느라 까맣게 물들었기 때문이다.
근처에 무슨 목욕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제대로 씻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네.”
“‘그렇네’로 끝날 일이야!”
“그렇네.”
최소 열흘이다. 준비기간까지 합치면 더 길어.
오죽하면 처음 준비한 식량과 물이 떨어져서 송이가 여러 번 구하러 가야 했다.
그 기나긴 역경의 시간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굴 파기뿐이야.
예전 같았다면 적당히 판 시점에서 동료들을 불러 최후의 섬광이나 별의 힘으로 지반을 무너트렸겠지.
이번엔 아리가 극구 반대했다.
함부로 유산을 써서 광역 파괴를 벌이다 가인이의 몸이 파괴되면, 환마만 깨어남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바보짓 아니야?”
“…”
“생각 좀 해! 세상 어떤 멍청이가 주먹으로 산을 부수면서 지나가는데!”
“주먹이 아니라 방호복이야. 그리고 너보다 내가 훨씬 많이 부쉈잖아.”
“에잇! 지금쯤이면 하늘 탑이든 뭐든 부쉈을 거야. 그냥 선생님을 불러서 -”
“어?”
“말 멈추지 마! 레이저로 -”
“조용!”
“…”
“소리, 이거 무슨 소리야?”
흙과 돌로 가득한 좁아터진 동굴, 아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방호복 위의 헤드라이트로 비추자 아리가 본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구멍, 작은 구멍이다.
넓은 – 아주 넓은 공간으로 향하는 구멍이다.
“저거 아니야?”
“손이 안 닿아! 어떻게 해?”
구멍을 방호복으로 내리치든지 해야 하는데, 손이 닿지 않는 장소라 당황하던 그 순간.
부리로 미친 듯이 돌과 흙을 부수느라 우리 못지않게 고생해온 광부 앵무새, 페로가 틈새로 기어들어 가더니 자기 몸으로 구멍을 막았다.
“쟤 뭐해?”
“으아아악! 페, 페로! 그만둬!”
아리가 입을 쩍 벌리고 제지하려는 그 순간 –
오랜 광부 일에 지쳐버린 페로가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주먹만한 구멍에 자기 몸을 밀어 넣은 후, 그로테스크로 변신한 것이다.
— 쿠르릉!
“저거 진짜 미쳤냐!”
진득한 안개가 나타났다.
마침내 가인이의 봉인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06일 차
현재 위치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출렁!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심연 속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불가해한 이형의 존재가 내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