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78)
377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26)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06일 차
현재 위치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지옥에서 튀어나온 악마 같은 존재를 보며 놀라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상대 또한 한 걸음 물러섰다.
장난치나 싶어 표정을 구기자 상대도 표정을 구겼다.
물러가라고 손을 뻗자 상대도 손을 뻗었다.
…
뒤늦은 깨달음이 날 충격에 빠트렸다.
이것은‘나’다.
주변에 가득한 신비로운 물질이 내 영혼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을 뿐이다.
분명 봉인에서 깨어났는데, 왜 이렇게 흉물스러운 괴물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칠흑 같은 소용돌이와 함께 한 마리의 뱀이 나타났다.
뱀은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내 몸을 휘감고 조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쿡쿡 찌르는 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너는 벌레다.
너는 영원히 날 섬길 종복이다.
너는 내 기나긴 삶 속의 먼지에 불과하다.
너는 내 몸에 깃든 망령이요, 그림자다!
온갖 저주로 가득한 매도와 비웃음이 들려온다.
너는….
“이런 느낌은 너무 식상한데?”
저 뱀은 아마도 환마인 모양인데, 그다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았는데도 그냥 알았다.
목소리만 크고 요란한 존재고 심지어 내게 겁까지 먹고 있었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겁먹은 어린애가 소리 높여 우는 것 같았다.
201호에서 만났던 수석연구원이 떠올랐다.
힘의 강약을 떠나서 저 추한 뱀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존귀한 격이 있던 사람.
그가 뭐라고 했었지?
봉인에서 깨어난 NPC와 참가자의 관계는 참가자 쪽에 주도권이 있다.
그 말의 의미를 자연스레 깨달았다.
저주가 통하지 않음을 느낀 뱀이 이번엔 내 몸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싸움이 아닌 ‘마음’의 싸움.
오래전에 진철 형의 머릿속에서 마녀와 했던 그런 종류의 싸움.
서로의 정신이 섞이고 나뉘었다.
내가 환마를 읽어냈고, 환마는 나를 읽어냈다.
반복되는 공방의 승패는 의외로 허무했다.
결코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싸움의 과정에서 환마가 충격적인 정보를 알아내고 마음이 단박에 꺾였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
‘모든 게…. 거짓이라고? 이 세상 전체가? 내가? 그, 그냥 205호라는 방 내부일 뿐이라고?’
“…”
‘아니다! 이럴 수는 없어…. 이 마귀야, 내게 환각을 보였구나! 날 속였어!’
환마에게 ‘마귀’라는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좋다.
이왕 들킨 김에 이 상황을 이용하는 게 좋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
“너 자신을 속이지 마. 이 모든 게 진실임을 알았을 텐데.”
‘아아…. 어떻게, 어떻게!’
환마는 울었다.
농담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완전히 정신이 무너져서 그 속내를 내게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내 기억을 읽는 과정에서 너무나 두려운 사실을 깨닫고 만 것이다.
탈출하면, 205호가 초기화되며 ‘지금 회차의 환마’는 사라진다.
해결하면, 205호가 소멸하며 환마 또한 영원히 사라진다.
실패하면, 호텔 전체가 초기화하며 저주의 방의 내용도 바뀔 테니 역시 ‘지금 회차의 환마’는 사라진다.
그렇다.
앞으로 우리가 무슨 결말을 얻는가와 무관하게 환마는 소멸한다.
그가 그토록 집착해온 불멸의 삶은 호텔의 NPC에겐 처음부터 가당치도 않았다.
하염없는 절망.
그저 살고 싶다는 소망.
두려움에 가득한 비명.
그저 삶에 속박된 채 하루하루의 생존에 목매다는 자.
“너는 정말이지 미천하구나.”
‘…’
“그저 생존. 오직 살고 싶다. 흙 속에서 꿈틀거리는 애벌레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너, 너는! 불멸을, 진실한 불멸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래?”
‘바깥, 바깥에 나갈 수 있으니까, 진실한 영생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리 여유로울 수 있어!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투를 바꾸었다.
“너는 죽음이다. 시한부이며,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너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는 하루살이임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아아….’
“하지만…. 너에게도 기회는 있지.”
‘뭐?’
“내, 너에게 영생을 얻을 길을 일러주마.”
‘그, 그게 무슨 -’
“나를 네 하늘로 섬기겠느냐? 내 앞에 머리를 조아리겠느냐? 그리하여 네 하루살이 같은 운명을 벗어던지고 영생을 얻겠느냐?”
‘…’
“…”
‘… 제가.’
“제가?”
‘당신의 말씀을 듣겠나이다. 나는 장님이요, 귀머거리이니. 가르침을 주소서.’
아까 전, 환마와 정신이 뒤섞이는 과정에서 알아낸 정보.
환마 본인조차 흐릿하게 기억하는 태고의 기억.
그가 불가해한 힘을 얻던 최초의 순간.
허공으로 손을 뻗어 ‘영혼의 함’을 불러내었다.
“보아라.”
‘…’
“너는 저 상자에 네 혼을 밀어 넣은 끝에 육체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뱀의 눈이 영혼의 함에 못 박혔다.
“이젠 내 말을 이해하겠지. 저 상자가 205호의 유산이다.”
‘… 설마!’
“내가 이 방을 해결하면, 영혼의 함을 챙겨서 나가겠다. 상자에는 네 자그마한 영혼 또한 담겨있으니, 너 또한 필멸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터무니없는! 이 무슨 -’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내 기억을 뒤적였다면 ‘104호’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보았을 텐데?”
‘그, 그건!’
“저주의 방이 소멸하면 내부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하지만, 참가자를 제외한 딱 하나의 물건은 방에서 나올 수 있지.”
‘유산…!’
“나를 섬겨라. 네 나약함을 받아들여라. 그리하면 영생을 얻으리라.”
이윽고, 두려움에 떠는 어린 양이 마침내 주님의 품에 안겼다.
*
심상 세계에서 벗어나며 온전히 깨어났을 때,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시꺼멓고 돌 부스러기를 뒤집어쓴 두 형체였다.
어찌나 더러웠는지 조금까지 봤던 뱀의 형상을 한 환마보다 추해 보였다.
“더러운 마귀! 물러서라!”
“…”
“…”
아리와 미로가 입을 반쯤 벌린 채 날 바라보았다.
“깨어난 거야?”
“그 추한 몰골을 당장 -”
“에잇! 헛소리 좀 하지 마. 깬 거 맞지?”
“맞아. 일단 밖으로 -”
실시간으로 머릿속에 쏟아지던 환마의 기억을 분석하던 중, 믿을 수 없는 정보를 발견했다.
너무 놀라서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가인아?”
“나가야 해!”
“뭐?”
“당장 나가야 한다고! 이 장소에 원시적인 폭탄이 설치되어 있으니까!”
배화교는, 30년 전 봉인 지역을 만들 때부터 내 몸을 파괴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해두었다.
내 육신 자체가 환마를 봉인 일부였으니, 이는 곧 환마를 해방하는 수단이다.
환마를 가두는 동시에 해방하기 위한 폭탄도 준비했다고?
대체 뭐 하는 새끼들인데!
— 쿠르릉!
기다렸다는 듯, 공터 전체가 요동치며 지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리가 화들짝 놀라며 방호복을 입은 미로 밑으로 숨었고, 미로도 다급히 몸을 펼쳐서 아리를 감쌌 –
“야! 미로, 나는 어떻게 해!”
“어? 어?”
[조언 : 3 -> 2] [당장 오른쪽으로 세 걸음!]— 쿵!
옆으로 구르자마자 내 몸통보다 큰 바위가 떨어졌다.
그야말로 언제 죽을지 모를 절체절명의 순간!
이 상황에서 얼빠진 표정으로 아리만 감싸고 있는 미로를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 한다.
그리고 –
“당장 수를 써! 여기서 내가 죽으면 너도 뒤지니까!”
“뭐, 뭐?”
“미로 너에게 한 말 아니야!”
내가 아닌 누군가, 삶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비굴해질 수 있는 자.
환마가 내 허락하에 손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곧, 기이한 파동이 일어나며 검붉은 방어막이 모두를 감쌌다.
— 쿠르릉!
*
환마의 힘을 빌려 천장산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죄다 배화교도였는데, 농담이 아니라 인(人)의 장막으로 산 전체를 둘러칠 기세였다.
하늘에서 장년의 남성이 장포를 펄럭이며 내려왔다.
그는 조원홍이었다.
“환마, 오랜만이외다. 30년 되었나?”
“…”
“오래간만에 쐬는 바깥 공기가 어떤가? 아무래도 음침한 동굴 공기보다야 상쾌하겠지.”
이 자는 내가 환마인 줄 아는구나.
그 착각을 이용하는 게 좋겠지.
“30년 전에 잠들면서 어렴풋이 깨닫긴 했는데…. 조원홍, 날 가두는 동시에 해방하기 위한 폭약을 설치한 이유가 뭐냐?”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라네.”
주변엔 이미 거대한 구슬이 잔뜩 설치된 상태였는데, 조원홍이 가볍게 손짓하자 사방에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름답지 않나? 나는 이것을 복마신주(伏魔神珠)라고 부른다네. 한번 내게 빙의해보게.”
“…”
굳이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추태를 보이진 않았다.
조원홍이 바보도 아니고, 내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저 구슬이 ‘빙의’를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겠지.
이자성이 그러하듯 조원홍도 빙의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을 준비한 것.
여기까진 예상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온 사방에 내려앉은 얼어붙은 듯한 적막.
마침내 배화교와 조원홍의 계획을 깨달았다.
저 구슬, 복마신주는 30년 전엔 없었다.
아마도 개발 단계였겠지.
그랬기에 배화교 또한 30년 전엔 환마를 통제할 수 없어서 무작정 천장산에 가둬야 했다.
하지만, 배화교는 그 시점부터 생각했다.
언젠가 환마의 힘을 억누를 수 있는 물건을 개발한다면?
그 힘으로 마귀를 통제할 수 있다면?
환마는 배화교가 휘두를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때, 조원홍이 미소 지으며 침묵을 깨트렸다.
“역시 자네라도 무리지? 이혼마공이 꿈쩍도 하지 않는 모양인데?”
“…”
교주의 손에서 부채가 나타났다.
“이걸 어째? 여기서 홍염의 심판을 내리면 자네는 꼼짝없이 죽겠는걸?”
“…”
“이야~! 환마 자네, 무서워서 손발이 덜덜 떨리나?”
“조원홍, 네가 이리 유치한 성격인 줄은 몰랐는데.”
“허세 부리지 마라. 네놈을 한두 번 만난 게 아닌데 네 성격을 모를 줄 아나?”
“날 찍어누르며 자존감을 좀 찾았나?”
“무슨 -”
“그래봐야 네 위기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복마신주는 언제 만들었어? 10년 넘었지? 근데 왜 이제야 날 깨우러 왔을까?”
“…”
“원홍아. 위기에 빠졌구나. 위험을 감수하고 날 깨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위기에 빠졌어. 언젠가 제국을 뒤엎겠다더니, 박살 났냐?”
“너, 이 자식이!”
“발렸냐? 아니, 뭘 어쨌길래 그 대단한 배화교주가 어린애 황제 한 명을 못 이겨서 이 난리래?”
조원홍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기 시작했다.
그 꼴이 조금 웃겨서 몇 마디 추가했다.
“아~! 이거 내가 사과해야겠다. 황제가 꼬맹이인데도 이기질 못하는데, 한 3, 4년만 지나면 원홍이는 숨 한번 못 쉴 테니 지금 승부를 봐야겠구나?”
“닥쳐라!”
조원홍이 지면을 내리치는 순간, 피부를 아릴 듯한 살벌한 기세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신경전은 이쯤 하자. 할 말이 있어서 왔을 텐데.”
“… 환마. 네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마.”
조원홍은 자신과 힘을 모아 제국을 쓰러트리자고 제안했다.
그 대가로 조원홍이 황제에 오르면, 더 이상 환마를 억압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세상을 떠돌며 사람을 죽이든 말든 하란다.
동료들에게 듣기로 조원홍은 제법 황제에 걸맞은 사람이라 들었는데….
아까의 유치한 모습과 지금의 인륜을 저버린 태도까지.
전쟁의 패배가 조원홍의 품성을 일그러트리고 있다.
아무래도 좋다.
이런 ‘무의미한’ 대화를 하며 내가 실제로 관심 가진 주제는 하나뿐이었으니까.
복마신주가 진짜 날 억누를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지? 환마?’
‘…복마신주(伏魔神珠)의 범위에선 빙의할 수 없습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왕께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 내가 이겨야 너도 나갈 수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 봐.’
‘좋은 계책이 떠올랐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