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81)
EP.380 380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29)
380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29)
– 박승엽
15일이 흘렀다.
…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언제라도 내 앞에 나타나 지옥을 만들 것 같던 환마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매일 예상할 수 없는 사건·사고가 벌어지던 저주의 방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다.
15일, 2주 하고도 하루는 호텔에선 무지하게 긴 시간이다.
이 긴 시간 환마와 배화교는 아무런 일을 벌이지 않았다.
이쯤에서 감이 왔다.
아니, 감이 아니라 확신이 섰다.
환마는 죽었다.
205호에서 호텔이 준비한 시나리오는 끝났다.
그런데 왜 방이 소멸하지 않고 있을까?
나다.
내가 이 방의 끝을 억지로 막고 있다.
눈앞의 신하들의 반응이 그 증거다.
“폐하! 폐하께서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진실로 감동적이며 백성들 또한 지성으로 감읍할 것입니다. 하나, 송양지인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
“폐하! 군주란 때로는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법이며 -”
고사성어를 써가며 날 가르치려 드는 신하들이 며칠 전부터 하는 말은 간단하다.
이미 군대가 배화교의 잔당을 포위한 상태니, 진격 명령을 내리라는 것!
“오늘 회의는 이쯤 하지.”
“하!”
긴말하지 않고 일어서서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
지난 15일, 신하들은 날 볼 때마다 뒷 목을 잡았다.
그냥 가만뒀으면 장군들이 알아서 배화교를 밀어버렸을 텐데, 그 상황에서 굳이 진격하지 말고 대치 구도만 유지하라는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어기면 9족 몰살’ 따위의 내용을 넣어서 성질 급한 장군들도 그냥 손가락만 빨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나는 암이 암에 걸려 소멸할 정도로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군주였다.
물론, 나에게도 205호의 결말을 막고 있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핫!”
“조금 더 호흡을 가다듬으시지요. 이번엔 오른발을 반보 앞으로!”
“핫!”
“호? 이번엔 괜찮습니다. 다만, 상체의 균형이 -”
무공 수련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아.
205호가 사라지고 다시 호텔 특유의 지옥 같은 일정이 시작된다?
수련할 시간도 없고, 무공을 가르쳐 줄 사부님도 없다.
내 성장은 멈출 확률이 높다.
마침, 205호는 방을 사실상 해결한 후에도 ‘종료 시점’을 내가 정할 수 있는 구조였다.
어쩌면 이 자체도 205호의 보상 중 일부가 아니었을까?
아크샤의 혼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래봐야 수십 번에 한 번 성공하던 실력에서 4, 5번에 1번 성공하는 단계긴 하지만….
성공률 1%에서 20%면 20배 강해진 게 분명해.
조금만 더 하자.
한 달만, 아니 두 달만, 아니 반년은 어떻게 안 될까!
“폐하.”
“네?”
“슬슬 신하들이 섭정을 정하자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황제인 내가 멀쩡한데요?”
“멀쩡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지요.”
“…”
사부님이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전쟁을 일부러 오래 끌고 계시지요? 이유가 있습니까?”
“…”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다른 수단을 찾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의 수련은 끝입니다.”
겨우 2주 좀 넘었는데 벌써 한계가 왔다.
여기서 더 억지로 시간 끌면 신하들이 날 무시하고 수를 쓰겠지.
‘다른 수단’이라.
사부님이 환마를 죽여서 얻어낸 상자를 슬며시 꺼내 들었다.
‘영혼의 함’.
틀림없는 205호의 유산.
사부님이 들려준 바에 따르면, 이 물건엔 정말이지 신비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소유자의 혼을 담으면 불멸을 얻는다.
종복의 혼을 담으면 그와 함께 세상의 바깥에 있는 승천의 땅에 갈 수 있다.
호텔의 진실을 모르는 이들이 듣기엔 허무맹랑한 전설처럼 들리겠지만, 내게 저 말은 이렇게 번역되어 들렸다.
첫 번째 문장은 유산 소유자의 혼을 담으면 육신이 죽은 후에도 활동할 수 있다는 것.
아마 참가자의 자격은 잃겠으나 유령 비슷한 상태로 동료를 도울 수 있겠지.
이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데, 두 번째 문장은 파격적이기까지 했다.
저주의 방 내부의 NPC 1인의 혼을 담으면 그를 데리고 저주의 방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그동안 터무니없는 괴물 NPC들을 얼마나 많이 만났는가?
104호의 아우렐리아와 201호의 베아트릭스, 202호의 리링가노르 정도가 즉시 떠올랐다.
205호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NPC가 셋이나 있었다.
환마, 배화교주 그리고 이자성.
“… 설득해보자.”
무작정 납치하듯 스승님의 혼을 담아 데리고 나갈 생각은 아니다.
충분히 설명해 드린다면, 그렇게 하면….
스승님은 나를 도와주겠다고 말할 것 같았다.
특히 요즘은 그랬다.
신기할 정도로 내 곁에 달라붙어서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내 수련을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
늦은 밤, 스승님의 거처로 향하기 위해 출발했다.
그리고 길을 잃었다.
… 뭐야 이거?
“어? 어?”
이게 말이 됨?
아무리 내가 건망증이 심해도 그렇지, 다 합치면 몇십일을 황궁에서만 보냈는데 길을 잃는다고?
“여기에 이런 벽이 왜 있어?”
벽이 있을 리 없는 장소인데 막혀 있다.
그제야 내가 길을 잃은 일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님을 알았다.
누군가 내게 환영을 보여서 길을 잃게 했다.
이쯤에서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순순히 인도하는 대로 움직였다.
잠시 후, 사방에 향기로운 복숭아나무가 가득한 호화로운 황제의 화원에 도착했다.
멀리서 다가오는 흐릿한 형체.
하얗고 둥글둥글한 이 세상에 있을 리 없는 형태의 갑옷.
방호복이다.
천장산에서 벌어진 의문의 대혈전.
배화교 측 생존자와 현장에 남은 흔적에 따르면, 가인, 아리, 미로 이 셋은 그날 죽었다
그렇다면 송이 누나는? 난전 속에서 휩쓸려 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이상하다.
살아있었다면 왜 이제야 온 걸까? 무려 2주나 지났는데?
설마 환마?
…
아니다.
아까 전 내 시야를 조작한 것은 명백히 ‘다양한 관점’의 힘이다.
환마는 은솔 누나에 빙의했을 때 피리를 부르지 못했고 선생님에 빙의했을 때 최후의 섬광을 쓰지도 못했다.
즉, 빙의해도 유산은 쓸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저 사람은 진짜 송이 누나다.
이를 깨닫자 전신의 긴장이 풀렸다.
“누나! 왜 이제 왔어요? 잘 있 -”
그때, 섬광이 번쩍하며 시야가 암전됐다.
“어? 어?”
동시에 그로테스크가 달려오는 요란한 진동이 느껴졌다!
“으, 으아악! 왜 이러세요!
「천운 발동! 우주의 기운이 당신을 가호합니다.」
천운을 활성화하며 정신없이 달렸다.
왜? 왜 송이 누나가 날 죽이려 하지?
환마라서? 그럴 리 없다.
유산을 쓰고 있으니까!
그러면 대체 왜 –
벼락같은 깨달음이 뇌리를 강타했다.
내가 누나를 환마라 의심했듯이, 누나는 나를 환마라 의심한다.
왜?
황제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전쟁을 끝내서 205호의 결말을 볼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그 순간, 페로의 울음이 멈추고 시야가 멀쩡히 돌아왔다.
누나가 공격을 멈춘 이유 또한 짐작이 갔다.
환마라기엔 너무 약하니까.
저항 없이 도망만 가는데 수상할 정도로 운이 좋아서 회피 중이니까.
그러니까….
누나에게 확신을 줘야 한다.
환마가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힘.
환마는, 할아버지에게 빙의했을 때 대화창을 볼 수 없었다.
행운의 힘도 쓸 수 없으리라.
두 개의 주사위를 가볍게 던졌다.
혼란에 빠진 송이 누나의 눈이 허공의 주사위를 향했다.
가볍게 웃으며 누나를 바라보았다.
바닥을 보며 주사위를 확인하는 우스운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당연히 66, 합쳐서 12니까!
“후….”
“승엽아.”
“이제 아셨죠?”
“바닥 봐봐.”
“하! 진짜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요? 나는 누나인 줄 바로 알았는데!”
“3 하고 5야.”
“… 네?”
지, 진짜다! 3하고 5? 합계 8이라고?
내가 던졌는데? 이럴리가 없는데!
당황해서 입을 크게 벌리는 순간 – 환영이 사라지며 진실이 드러났다.
66, 합계 12.
어처구니가 없어서 고개를 들자 정신없이 낄낄거리는 누나가 있었다.
“승엽아, 도대체 언제부터 다양한 관점을 안 쓰고 있었다고 착각한 거지?”
“…”
“아 미안, 미안! 이 대사 한번은 쳐보고 싶었어!”
*
향기로운 복숭아나무로 가득한 황제의 개인 화원.
우리는 잠깐의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어냈다.
“무공을 익히고 싶어서 방을 끝내지 않았다?”
“이기적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
“아니야. 네가 무림 고수가 될 수 있다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누나는 무슨 생각으로 황궁에 오셨어요? 제가 진짜 환마였다면….”
“이기지 못했을 테니까?”
“네.”
“그건 알았지만 별수 없었어. 환마가 정체불명의 이상한 의식을 진행 중인 줄 알았거든.”
“아.”
“지금 달려들면 승률 5%, 나중에 달려들면 승률 1%. 이러면 어떻게 해야겠어?”
“5%여도 목숨 걸고 붙어봐야겠네요.”
“그거야. 그리고….”
“그리고?”
누나가 배시시 웃으며 품에서 천 조각을 꺼냈다.
배화교의 상징물, 불꽃이 그려진 깃발이다.
“이건?”
“황제를 죽이고 이 깃발을 떨어트릴 셈이었어.”
배화교의 손에 황제가 암살당한다면, 제국은 복수를 위해 배화교의 잔당을 박살 냈을 테니 방이 해결됐겠지.
“그나저나 신기하네. 네 말대로면 이자성이 환마를 죽인 거야?”
“아마도? 은솔 누나가 죽기 전까지 피리 불렀대요. 피리가 환마의 빙의를 차단했고, 사부님이 환마가 깃든 몸을 죽인 거죠. 그래서 도망가지 못한 채 -”
그때, 송이 누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체 누가!”
“예?”
“누가 너에게 그런 이야길 했니?”
“예? 사, 사부님이 -”
“거짓말이야! 내가, 내가, 황궁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내려고 10명도 넘는 사람을 심문했다고!”
???
“언니는 피리를 입에 대지도 못했어. 그 전에 할아버지가 총으로 쏴 죽였으니까!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사부님이, 이자성이, 내게 거짓말을 했다. 대체 왜?
…
영혼의 함에 관한 해박한 지식.
과도할 정도로 친절해진 태도.
수련을 이어갈 ‘다른 수단’을 찾아보라는 언급.
망치가 머리를 후려치는 듯한 기분을 느낀 순간.
하늘에서 허름한 장포의 노인이 내려왔다.
그는, 요즘 들어 항상 그랬듯이 친절한 할아버지처럼 미소 지었다.
“폐하.”
“…”
“폐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말, 씀하세요.”
“영혼의 함, 사용법을 알려드렸지요?”
“… 어쩐지 강호의 전설치고는 설명이 너무 구체적이다 싶긴 했는데. 원래 당신의 물건이었군요.”
“폐하. 이제부터 하는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
“첫째, 마도서의 주인 되는 분께선 절 밖으로 데리고 나가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추후 그분께 확인하셔도 됩니다.”
“…”
“둘째, 단언컨대 ‘호텔’에 저보다 유용한 ‘등장인물’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베아트릭스처럼 미친 광인이 아니며, 아우렐리아처럼 광신도도 아닙니다.”
“…”
“셋째, 저는 당신의 좋은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난 2주간 입증하지 않았습니까.”
숨이 막혀온다.
이전 회차에서 경험했던 저 존재의 광기가 그 경험이 주는 공포가 내 몸을 마비시켰다.
그때, 번쩍이는 글자, 내 눈에만 보이는 환영이 나타났다.
「알았다고 해! 데리고 나가겠다고 약속해. 205호에서 나가기만 하면, 약속 따윈 무시하면 그만이야.」
이, 이거다!
역시 송이 누나는 판단이 빨라.
하, 환마 이 새끼야!
니가 대단해 봐야 뭐 얼마나 대단해?
205호가 진행 중이니까 이렇게 잘난 체 하는 것 아니야?
선택의 시간만 와도 영혼의 함에 갇혀서 우리의 자비를 구걸하는 수 밖에 없으면서!
“좋, 좋아. 약속! 같이 밖으로 나가자. 무공 훈련 잘 시켜주는 것 잊지 말 -”
한 줄기 섬광이 허공을 쪼갰다.
콘크리트 건물조차 일거에 무너트릴 힘이 단박에 누나를 집어던졌다.
누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단단한 손이 내 목을 움켜쥔다.
“에이~! 넌 진짜 연기 못한다. 그 표정에 누가 속니?”
숨이 막혔다.
“아쉽네. 평화롭게 갈 수 있었는데. 너, 나랑 같이 좀 놀아야겠다. 걱정하지 마! 나 나쁜 사람 아닌 거 알지?”
압도적인 공포가 영혼을 잠식해간다.
“딱 3일이면 충분해. 그때쯤이면, 넌 날 살아있는 생불로 여기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