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82)
EP.381 381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30)
381화 – 205호, 저주의 방 – ‘절대고수’ (30)
노인의 눈동자는 악의로 가득했다.
숨이 멎을 듯한 공포가 승엽의 마음을 잠식해갔다.
그러나 승엽에게도 마지막 수가 있었다.
다음 순간, 소년의 눈빛이 일변했다.
두려움, 긴장, 분노, 절망 – 이 모든 감정이 단숨에 사그라들며 빈 곳을 ‘태초의 인간’이 채웠다.
흡사 꿈에서 막 깬 것처럼 몽롱한 눈동자.
이변을 느낀 환마의 표정이 구겨지는 순간, 소년의 입이 벌어졌다.
“어…. 네가 그러니까, 이자성? 환마? 뭐야?”
환마의 표정이 구겨졌다.
호텔 파티에 대한 정보 덕에 태초의 인간이 발동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 새끼, 진짜 마지막까지 피곤하게 하네!”
어떻게 해야 하지?
세뇌? 고문?
그런 것은 ‘인간’에게나 통한다.
가인의 관점에서 본 태초의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사람과 거리가 멀었다.
좋게 말하면 초자아, 나쁘게 말하면 자아가 불분명한 AI에 가까운 존재.
욕망이나 감정이 없는 존재는 아니다.
다만, 그 모든 것에 앞서 ‘계시’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거울의 방이 주는 유혹은 숙련된 관리국 요원도 무너트릴 수 있다.
이런 힘조차도 태초의 인간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런 새끼를 세뇌할 수 있나?”
손가락을 분질러 봐?
손톱을 하나하나 뽑아?
역천회혼의 술로 생명만 붙들어놓은 채 피부를 –
“후우…. 아오! 이 개새끼 진짜!”
마음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가학성을 억눌렀다.
‘생존’에 대한 열망이 환마의 모든 욕망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의미 없다.
고통을 주면 비명 지르고 울부짖을 것이 분명하다.
쾌락으로 유혹하면 짐승처럼 빠져들어 탐닉하겠지.
그 과정에서 기기묘묘한 현상도 일어나리라.
그러나 최후의 순간에는 앞선 모든 과정을 무시하고 ‘계시’에 따라 행동한다.
환마가 보기에 태초의 인간은 예측불허한 존재가 아니라 너무나 예측할 수 있는 존재였고, 그게 문제였다.
빈틈이 없는 힘은 아니다.
종료 조건을 충족시켜서 태초의 인간을 끝내면 된다.
재사용 대기시간이 있으므로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아니다.
무슨 조건이지?
205호의 소멸? 선택의 시간?
아니다.
저주의 방에서 이탈하면 태초의 인간도 자동으로 끝나는데 이런 조건을 만들 필요가 없지.
아니면 환마의 죽음?
이것도 이상하다.
육체에서 초월한 존재의 특성상 환마의 죽음은 태초의 인간이 인지하기 어려우니까.
그러면 어떤 조건이 –
아닌가?
이런 깊은 고민에 빠지면 틀린 결론 아닌가?
애초에 이 꼬맹이는 대가리가 좀 나쁘잖아!
합리적으로 분석하려는 생각 자체가 실수인 것 같은데?
“아 진짜! 대가리 나쁜 새끼라 예상이 더 힘드네. 야, 계시의 내용 뭐야!”
소년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답했다.
“말하지 말래요.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죠?”
“좆같은 새끼 진짜!”
“왜 저한테 욕을 하세요?”
“으아악!”
“왜 소리 지르세요?”
영혼 깊숙한 곳까지 짜증이 스며든다.
덕분에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이 짜증 나는 꼬마를 그냥 구워버릴까 고민하던 순간.
시야가 뒤틀리며 온 사방에 타오르는 불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때, 환마가 느낀 감정은 분노가 아닌 희열이었다.
“그렇지! 네가 있었구나!”
환마로서도 다양한 관점의 감각 왜곡을 깨트리긴 쉽지 않았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 장소에 나타날 때부터 ‘또 하나의 몸’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15일 전, 묵성의 몸과 이자성의 몸을 동시에 조종해 모두를 속였던 것처럼.
“크으읏!”
황제의 화원에 또 한 명의 무인이 나타나 단박에 송이를 방호복 채 짓눌렀다.
“이봐, 아가씨! 겁먹지 말라고. 나 나쁜 남자 아닌 것 알지?”
“…”
“죽일 생각은 아니었어도 기절 정도는 시킬 셈이었는데, 방호복 진짜 튼튼하구나? 잘 됐다.”
“…”
본래는 승엽을 구슬려서 나갈 생각이었다.
선택의 시간에서 호텔 파티가 보여준 일관된 모습 때문이었는데, 그들은 순서대로 한 명씩 유산을 얻는 습성이 있었다.
이에 따르면 다음 순번은 행운아 소년 혹은 요원 노인이다.
둘 중에선 승엽을 통제하기가 훨씬 쉬워 보였기에 택했던 것.
하지만….
지금처럼 피곤한 일이 생겼다면 여고생도 대안이 될 수 있겠지.
아예 승엽까지 죽여서 ‘선택의 시간’ 자체가 열리지 않게 하면 된다.
“아가씨, 내가 기쁜 소식을 들려줄게. 넌 이제 두 번째 유산을 얻을 수 있어!”
“…”
“이것 참, 설마 죽은 체하려는 건 아니지? 숨소리가 뻔히 들리는데 -”
“이자성.”
목소리에 놀라움, 경악, 감탄 그리고 호기심이 깃들었다.
송이는 순수한 의미에서 너무 궁금했다.
“당신 목적이 대체 뭐죠?”
“아하하! 아가씨, 여태 말해줬잖아? 나는 영혼의 함에 담겨서 -”
“너 말고 이 멍청아!”
“…”
“이자성, 환마는 어떻게 속였는지 몰라도 날 속일 수는 없어요.”
한 자루의 검을 보았다.
그 검은 실체가 없었으며,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에도 없는 한 줄기 빛이 실체 없는 영혼과 영혼 사이의 간극을 쪼개며 환마의 혼을 몰아냈다.
그리고 –
이자성이 깨어났다.
“내가 깨어있는 줄 어떻게 알았나?”
“팔찌의 힘 덕택이죠. 원리는…. 에잇! 그냥 알았어요.”
“…”
노인은 말없이 돌아서서 하늘을 돌아보았다.
“대체 왜 지금까지 숨어있었죠? 아니, 그보다 환마를 어떻게 쫓아냈어요?”
“…”
“이자성? 좀 협조적으로 말해봐요! 그러면 -”
“그러면? 영혼의 함에 넣어서 살려주겠다?”
송이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의 대답은 충격적인 사실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당신…. 알았군요.”
“알았네.”
“호텔에 대해서.”
“호텔에 대해 알았네.”
“…”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환마의 심리는 이해는 갔다.
그는 생존에 미친 마귀였으니까.
하지만 이자성은?
“…”
“내가 꽤 편협한 사람이었음을 알았네.”
“편협?”
“자네들이 보기에 내가 꽤 우스웠겠어.”
“…”
“다 똑같이 호텔에서 얻은 힘인데. 이건 정도다, 저건 사도다 하는 꼴이 얼마나 바보 같았나?”
“그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본래 사람은 자신이 나고 자란 환경에 구속된다네.”
흡사 무슨 깨달음을 얻은 도인과 같은 모습.
오히려 이런 모습이 송이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대체 무슨 행동을 할지 조금도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노인이 시선을 돌려 환마가 챙겨온 또 하나의 몸을 살폈다.
“크으윽!”
“이제 정신이 드나?”
“너, 자성아! 조금 전에 대체 무슨 짓을 했지? 너 원래 이런 짓 할 수 없었 -”
“허무함을 느꼈다.”
장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분통을 터트리던 환마도, 어느새 헬멧을 벗은 송이도, 멍하니 있던 소년도.
노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광명 673년, 창천성 이가(李家) 태생, 부친은 이지혼. 모친은 유하연.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무예의 뜻을 품고 강호에 출도. 대력검존(大力劍尊) 도정명에게 사사. 이후 광명 713년, 재앙과 같던 환마를 제압해 천장산에 가두다.”
…
“어떤가? 한 노인의 삶치고는 제법 그럴듯하지?”
“그건….”
“전부 거짓이라네. 아무 의미도 없는 허상이며, 아무렇게나 끄적인 문장에 불과하지.”
노인이 느끼는 끝없는 허무함이 사방으로 번졌다.
그때, 그 감정을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던 존재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유성.”
“여태껏 살아온 삶이 다 가짜다? 무슨 상관이야? 나는 지금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하며, 곧 진짜다!”
“재밌구나. 네가 떠올린 말이 맞느냐?”
“설령 모든 것이 가짜라 해도…. 살고자 하는 내 마음만큼은 진짜다.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지?”
송이는 신기함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 마인 혹은 광인과 같던 환마가 이 순간만큼은 삶에 대해 고찰하는 철학자처럼 느껴졌다.
노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게 자네가 찾은 길이야. 삶에 대한 의지만큼은 진실이기에 다른 모든 것은 의미가 없는가?”
“그래!”
“나는 자네와 조금 다른 깨달음을 얻었네.”
“… 듣겠다.”
“의미가 없었다. 제국, 천의맹, 제자, 가족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그런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과거란 없구나.”
“…”
환마가 생각하기에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았다.
애초에 바깥에서 온 자들도 호텔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205호는 수천 년 동안 존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고민 자체가 의미 없었다.
호텔은 정말로 1분 전에 모든 것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으므로.
“또, 하루 이틀 내로 사라질 운명이니 미래도 없다.”
모든 것이 조작되었으므로 과거가 없고, 곧 죽을 테니 미래가 없다.
환마에게 전자는 받아들일 수 있어도 후자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아니야! 미래는, 미래는 있어! 영혼의 함을 사용하면 -”
“유성아. 그 지식은 대체 어찌 신뢰하느냐?”
“뭐라고?”
다음 순간, 노인의 목소리에 은은한 열기가 실렸다.
“과거의 삶이 전부 거짓임을 알았으면서, 너와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세상 전체를 엿가락처럼 주물럭거릴 수 있는 ‘호텔’을 알았으면서!”
“닥쳐!”
이자성이 하려는 말을 알았다.
그래서 듣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정보는 가짜고, ‘저들’이 가진 정보는 진짜다? 그걸 대체 어떻게 확신하느냐?”
“닥치라고 했잖아!”
“조물주가 잔혹한 자라면, 네가 이처럼 발악하는 꼴을 보고 싶어서 영혼의 함이라는 거짓 희망을 던져주었겠지.”
환마는 결코 어리석은 이가 아니었다.
이자성이 떠올렸던 생각은 그 또한 해보았으니까.
205호는 가짜고 호텔 파티는 진짜다?
유산만큼은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이건 또 어떻게 확신한다는 말인가?
호텔 파티는 그저 ‘자신이 진짜라고 믿는’ 또 다른 가짜일 수도 있다.
밖으로 나갈 방법은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설령 나간다면? 그 밖의 세상은 진실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그러므로, 삶에 집착하는 이상 조물주의 장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고통스러운 깨달음이 환마의 정신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이 순간만이 진실이지.”
노인은 생각한다.
과거와 미래가 모두 허상이라면, 남는 것은 현실뿐.
자신의 모든 것을 한 호흡에 담았다.
아니다.
지금 담은 것이 아니다.
본래부터 이자성이라는 존재는 벼락이 내리치는 찰나의 순간에 담겨있었음을 알았다.
보여주고 싶었다.
호텔을 만들어낸 자.
만물을 관조하며 모든 이를 조롱하는 조물주.
그의 눈에 자신은 미천한 벌레와 같겠으나, 벌레도 사람을 한번 물 수는 있는 법.
한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물리적인 실체가 없었기에 곧 어디에도 없었다.
그 검에, 이자성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았다.
… 부족했다.
이자성의 모든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유성.”
“나도 담아라.”
“…”
노인은 말없이 서서히 흩어져가는 자기 몸을 돌아보았다.
“어디에도 없는 검에 담긴 이는 곧 죽네.”
“야! 그딴 거 아무 의미 없다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당장 날 담으라고!”
“…”
또 하나의 거대한 힘.
지금의 이자성에겐 미치지 못하나 그에 비견할만한 유일한 존재.
환마가 노인의 검에 담겼다.
노인은, 환마가 이 순간이 되어서야 생(生)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
별빛과도 같은 검기가 하늘을 향해 뻗었다.
이윽고 하늘의 틈이 벌어지며 조물주가 감추었던 또 하나의 진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세상 전체를 밝히고도 남을 빛이다.
한 점의 힘으로도 별을 불사를 불꽃이다.
천지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다.
그리고 –
속박당한 신이다.
아샤(Asha)가 마침내 그 형상을 드러냈다.
“아아….”
감히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자.
이자성은 망막이 녹아내리며 눈이 멀었음을 알았다.
또한, 어렴풋한 깨달음이 스며들었다.
이게 호텔 파티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죄수 엔딩’의 한 종류겠구나.
…
의미 없었다.
이곳은 205호, 죄수의 개입이 제약당한 장소였으므로.
“…”
저토록 위대한 존재조차도, 진실한 조물주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이곳은 그런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