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86)
EP.385 385화 – 한여름 밤의 꿈 (1)
385화 – 한여름 밤의 꿈 (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24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중앙 홀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2층에서 깨어났다.
… 깨어났나?
울렁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며 간밤의 일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신 모양이다.
2층 중앙의 대형 테이블 근처를 걷다 보니 진철 형이 보였다.
“형!”
“…”
형은 무언가 깊은 고민에 빠진 모양이다.
방해하고 싶진 않아서 1층으로 내려왔다.
“아리야?”
“…”
“은솔 누나?”
“…”
돌아다니며 동료들을 하나하나 불러보았는데,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2층의 진철 형과 비슷하게 자신만의 고민에 빠진 듯한 모습.
그보다, 나도 아까부터 정신이 몽롱하다.
처음엔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것 치고는 몸을 가누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
숙취와는 다른 현상이다.
이런 경험을 예전에도 해본 것 같은데….
그때, 귓가에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원하는 바를 행하라.」
*
– 유송이
이게 뭔 일이래?
후원자의 반응을 본 순간, 밖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라 짐작은 했어.
그런데 이 상황은 진짜 뭐야?
동료들이 사라지거나 한 건 아니야.
잠깐 사이에 가인 오빠, 진철 오빠, 엘레나 언니 등을 만났으니까.
이상한 건 동료들의 상태다.
하나같이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고, 이상한 말만 중얼거리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졌다.
흡사 무슨 정신 공격에 당한 듯한 모양새인데, 그렇게 보기엔 두 가지가 이상했다.
첫째, 저주의 방도 아니고 파티 타임인데 대체 누가 동료들을 이 꼴로 만들었지?
둘째, 정신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힘이 한둘이 아닌데 왜 모두 이 상태임?
가인 오빠의 상태창은?
엘레나 언니의 명경지수는?
다 어디 고장 난 거야?
“가인 오빠~!”
“…날아보고 싶어.”
“정신 좀 차려봐요.”
“왜 내게 날개가 없을까?”
— 탁!
“야, 한가인! 정신 차려!”
“아아…. 그렇구나. 페로를 데려와야지.”
페로를?
그 말과 함께 떠나가던 오빠를 붙잡으려던 차 – 누군가 뒤에서 날 껴안았다.
“꺄아악!”
“송이송이야아….”
아리였다.
농담 아니고 아리가 이런 행동하는 건 처음 본다.
“너까지 이 상태야?!”
“송이야, 너 고등학교 2학년 맞지?”
“그야 -”
“재밌어?”
“뭐? 아니, 이것 좀 놔!”
“난 학교 다니는 거 싫더라. 너무 여러 번 다녔어.”
“좀 놓으라니까? 얘는 왜 이렇게 힘이 세? 이런 때만 유산 쓰지 말라고!”
“오래전에….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때는 친구도 사귀고 친해지고 싶었는데.”
“사귀었어?”
“의미 없어. 일반인은 언제나 모든 것을 잊으니까.”
“뭐? 뭘 잊어?”
“너희는 날 잊지 않겠지. 그래서 다행이야.”
이 순간만큼은 크게 당황해서 아리가 날 껴안고 있는 상황조차 잊었다.
아리를 잊는다고?
예쁜 건 그렇다 치고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 안 보여?
이 자체가 이미 만화 캐릭터 수준인데?
길 가다가 우연히 한번 봐도 평생 잊지 못할 외모라고?
“… 정상적인 망각이 아니구나. 관리국에서 너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거야?”
“관리국? 아하하! 바보 같은 소리. 그게 아니라 – 크읏!”
갑자기 아리가 휘청거리며 주저앉았다.
“왜, 왜 그래?”
“… 최면 요법.”
“뭐?”
“넌 아직 요원이 아니니까. 말해주면 안 되는데….”
이 시점까지 눈치채지 못하면 바보야.
이건 관리국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비밀이다.
평소라면 절대 꺼내지 않았을 말.
이런 말을 지금 내가 억지로 듣는 게 맞을까?
어찌할 바 몰라 당황하던 순간, 아리가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갔다.
“어디가? 하던 말은 마저 끝내든지!”
1층 테라스 근처, 작은 분수 근처에 미로가 앉아있었다.
아리는 미로 옆에 기대는가 싶더니, 머리를 미로의 무릎 위에 올렸다.
흡사 어린 딸이 어머니에게 애정을 구하는 듯한 몸짓.
그리고….
이 또한 미로가 깨어난 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다.
“미로.”
“…”
“미로.”
“…”
“왜 대답하지 않아? 내가 싫어?”
다음 순간, 아리가 양손으로 미로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 돌발행동은 또 뭔데?
“으악! 너, 너 미쳤어? 손 떼! 힘이 왜 이렇게 세냐고 진짜!”
팔찌를 써야 해?
동료인데?
그 동료가 다른 동료 죽이게 생겼는데?
팔찌가 통하긴 할까?
갑자기 아리가 손을 내려놓은 채 중얼거렸다.
“넌 누굴까?”
“…”
“내 어머니는 광인이었어. 유아적인 폭군과 같았지. 조금만 거슬리는 말을 하면 참지 못했고, 누군가 기어오르려 들면 즉시 힘으로 응징했어.”
“…”
“뭘 어떻게 생각해도 동료로선 0점. 결코 같이할 수 없는 사람. 그래서 부활 대상으론 고려조차 하지 않았어.”
“…”
“그리고 네가 깨어났지. 어린아이였지. 유치하면서도 은근히 잔꾀에 밝고, 용감하다 싶다가도 겁이 많은 여자아이. 광인이 아닌 정상인.”
미로의 고개가 느릿하게 움직이며 아리를 향한다.
“그래서…. 널 보고야 알았어. 너는 내가 아는 미로가 아니구나. 내 어머니가 아니구나.”
“…”
“넌 이렇게 부활했고, 미래를 살아갈 유일한 미로야. 관리국이 알고 있을 ‘성인 미로’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완전한 소멸은 아니지.”
성인 미로의 흔적은 여전히 시간대여기에 남아있다.
또, 그 미로는 정상적인 범주에서 성장한 미로의 미래다.
현실로 돌아가 관리국 요원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면, 언젠가 유사한 미로가 다시 나타나겠지.
그런 의미에선 중학생 미로도, 성인 미로도 소멸하지 않았다.
소멸한 미로는 단 하나다.
“무서운 사실을 깨닫고 말았어. 나는, 어머니를 되살린 게 아니라….”
평소 드러내지 않았던 아리의 생각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영원히, 절대 부활할 수 없게 소멸시킨 게 아닐까?”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넋 나간 듯 미로에게 답을 바라는 아리도, 그걸 지켜보는 나도.
그리고….
몽롱한 표정의 미로가 입을 열었다.
“나, 하고 싶은 일 생겼어!”
미로가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달려가는 광경을 보며 뒤늦게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미로 또한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었구나.
이 긴 대화는 사실상 아리의 독백이었던 셈이다.
… 참으로 호텔답다.
이 대화를 진실로 들은 것이 나 뿐임에 감사했다.
그러니 나 하나만 잊으면 –
“가인아아아~! 나 너 좋아해!”
“으아아악! 저 기집애가 진짜!”
*
난데없이 사랑 고백!
진짜 미쳤어?
“가인아앙! 나 학교에서부터 좋아했어.”
무슨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밀당 같은 것도 없이 무슨 박치기 공룡처럼 고백을 박아버리는 모습에 기절할 뻔했다.
“왜 대답 안 해? 나 싫어? 에잇!”
“갑자기 왜 때려!”
“몇 대 더 치면 날 좋아할지도?”
심지어 주먹으로 가인 오빠를 마구 때렸는데, 행동만 보면 고백이 아니라 협박 같았다.
그 순간, 멍하니 정문에서 바깥을 바라보던 가인 오빠의 입이 열렸다.
“미로야. 우리 뛰어내리자.”
“넌 또 뭔데 한가인, 이 미친 새끼가!”
미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뛰어내려? 왜?”
“사랑이란 뭘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뜨거운 감정, 비할 데 없는 열정. 그러므로 사랑은 곧 불꽃이지.”
“불꽃?”
“세상에서 제일 큰 불덩이는 하늘의 태양이야. 그러니 사랑에 빠진 사람은 태양과 가까워져야 해.”
“무슨 영화 대사야? 갑자기 왜 정문에서 뛰려는 건데!”
“나, 바깥을 보고 싶어.”
“갑자기 무슨 -”
“송이 넌 나가고 싶다는 생각 안 해봤어? 탈출 수단도 둘이나 생겼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나, 나갈래. 부모님 보고 싶어.”
“… 오빠. 나가고 싶은 건 둘째치고 탈출 수단이 왜 둘이에요? 윙 부츠는 아직 얻지 못한 -”
“난 이미 날 수 있어.”
가인 오빠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들었다.
— 삐이익!
그 손에는, 귀여운 앵무새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잡혀 있었다.
“페로야!”
“이제 비행할 줄 알거든. 일단 뛴 다음에 페로에 빙의하면 돼.”
“그, 그 계획 페로의 동의는 얻은 거죠?”
— 삐이익!
팔목에서 섬광이 연달아 번쩍였다.
이미 두 차례 이상 팔찌의 힘으로 가인 오빠를 제지하려 했는데 전혀 통하지 않아.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 팔찌만 바보가 된 것이 아니다.
아리의 오래된 피는 뭐 하고 있어?
미로의 불변은 고장났어?
가인 오빠 상태창은 어디 구석에 치운 거야?
정신 오염에 대항하는 우리의 모든 수단이 전부 먹통이 됐다!
“그럼 한번 날아보세요.”
또 누가 정신 나간 소리를 하나 싶어 고개를 돌리자 엘레나 언니가 있었다.
“항상 궁금했거든요. 내가 당신에게 빠져든 이유가 뭘까….”
미로보다 먼저, 엘레나 언니가 가인 오빠에게 마음을 줬지.
우리 중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매일 호텔에서 시간 보내며 저주의 방을 진행하니 모를 수가 없다.
“언젠가 혼자 고민해봤어요. 계기가 뭐였을까? 돌이켜보니 명확한 순간이 있었죠.”
엘레나가 가인 오빠를 사랑하게 된 명확한 계기.
“당신이 처음으로 강림을 썼을 때. 별빛이 깃들며 하늘의 천사로 변했을 때.”
“…”
“그걸 깨닫자 조금 무서워졌어요. 이게 사랑이 맞을까요? 아니면….”
아니면?
“강림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내 마음을 뒤튼 것이 아닐지…. 무서운 생각이죠.”
가인 오빠는 태연한 태도로 답했다.
“그런가요?”
“그래서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무엇을요?”
“뛰어보세요. 천사라면 하늘을 날 수 있을 테니까. 다시 한번 그 빛을 제게 보여주세요.”
“오~! 그거 좋네요.”
엘레나의 명경지수도 맛이 갔구나.
나는 이 시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팔찌가 먹통이 된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지만.
가인 오빠는 혼자 빙글빙글 웃더니, 페로를 꽉 붙잡은 채 호텔 1층 정문을 열었다.
“이야~!”
“왜 그래요?”
“풍경 좋네! 그럼 가봅니다?”
미로가 빙그레 웃으며 외쳤다.
“가인이 화이팅! 난 여기서 응원할게!”
엘레나도 손뼉 치며 기뻐했다.
“가인 씨 힘내세요! 꼭 날아보셔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호텔 밖으로 뛰어내리는 오빠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 감춰둔 욕망을 마침내 실현했기 때문이겠지.
마침내 호텔의 첫 번째 탈출자가 나왔다.
*
– 김묵성
“서, 선생! 상현아! 제발 진정 좀 해라! 정신 좀 차려!”
“난 그 어떤 때보다 멀쩡합니다.”
“야 인마! 그러면 입고 있는 방호복부터 벗지 못해!”
“이건 아리 양에게 받은 겁니다.”
“아리가 대체 너에게 방호복을 왜 줬지? 대체 -”
“요원님, 엘리베이터로 탈출할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상현아….”
“마침, 가인 군이 번호도 알려줬습니다. 87439124. 맞지요?”
맞다.
그래서 숨이 멎을 것 같다.
한가인, 이 미친 새끼가 무슨 생각으로 번호를 알려줬지?
아리는 또 무슨 생각으로 방호복을 줬고?
다들 알고 있잖아!
김상현의 ‘탈출에 대한 갈망’은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그는 호텔의 지옥을 직접 경험하고 온 사람이라고!
심지어 미로와도 다르다.
미로는 부활 전에 이미 ‘안식의 기도’를 통해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난 상태였으니까.
“하하, 요원님.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누가 보면 큰일이라도 생긴 줄 알겠습니다.”
“제발, 상현아….”
“어릴 때부터 제가 집안의 자랑이었거든요. 특수부대 경력, 의사에 우주비행사까지. 솔직히 요원님이 보셔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알겠다! 알겠으니 제발 방호복부터 좀 벗고 -”
“제대로 효도 한번 못했어요. 이게 평생의 한입니다. 살아계신다면 늦게나마 효도 좀 하고, 돌아가셨다면 무덤에 술이라도 한 잔 따르고 오겠습니다.”
“뭘 와? 너 어디 동네 마실 가는 줄 알아?”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203호에서 나온 후로는 가뜩이나 무력으로 당해낼 길이 없는데, 지금은 방호복까지 입은 상태가 아닌가.
“며칠만 쉬겠습니다. 호텔에도 휴가가 있는 셈이죠.”
“야 인마!”
“Bye Bye! See you later!”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엄청난 소음과 열이 방출되었다.
다시 문이 열렸을 때, 그 안에 김상현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피러브
늑대훈련소
TXT viewer control
괴담 호텔 탈출기-38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