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90)
EP.390 390화 – 한여름 밤의 꿈 (6)
390화 – 한여름 밤의 꿈 (6)
– 한가인
잠시 후,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두 직원이 내가 격리된 장소로 들어와 새장을 챙겼다.
“조용히 있어라.”
대답 대신 고개를 크게 끄덕이자 본격적인 탈출 작전이 시작되었다.
과연, 관리국에는 편집증이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보안 절차가 있었다.
홍채 인식 정도는 기본이고, 직원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각종 암호와 오컬트적인 의식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기기묘묘한 절차가 이중 삼중으로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일의 문제는 사람이다.
아무리 철저한 보안 절차를 만들어도 그 절차를 꿰뚫고 있는 내부 직원이 한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나 배신한 상황.
결국 다섯 겹의 보안 절차는 채 10분을 버티지 못한 채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 시점에서, 얼굴에 후드를 뒤집어쓴 ‘재림 예수’가 생각보다 위험한 존재임을 실감했다.
초자연적인 존재에 익숙하고 모종의 저항력도 갖추고 있을 관리국 직원을 다섯이나 홀렸다는 것.
진짜 예수님은 아니겠으나 심상치 않은 저력을 가진 괴인임은 틀림없다.
잠시 후, 다섯 명의 직원과 한 명의 괴인, 한 마리의 새는 한 대의 SUV가 주차된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 삑!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지!”
어둠 속에서 위협적인 장비를 갖춘 군인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실수가 있었나?
“늦은 시간인데 격리구역에서 나오시는군요.”
말은 존댓말이나, 분위기는 전혀 좋지 않다.
대놓고 손이 총에 올라가 있었다.
“허가받은 일입니다. 여기, 확인 바랍니다.”
군인들이 허가 서류를 세심히 살폈다.
“서류에는 문제가 없군요.”
“그렇다면 -”
“잠시 뒤 칸 좀 살피겠습니다.”
“어, 어?”
“열어!”
대체 뭐지?
본인들 입으로 서류엔 문제가 없다면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나?
여기서 탈출이 실패하면 나가리인데….
일이 이렇게 되자 태연하게 탈출을 주도했던 직원들이 크게 당황했다.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나에게까지 느껴지는 이 순간.
‘재림 예수’가 몸을 일으켰다.
“이곳에 이상 개체는 없다. 그대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 간단한 문장에 상황이 종결되었다.
수틀리면 총알 세례를 기꺼이 부어줄 듯했던 군인들이 거짓말처럼 돌아선 것.
곧, 신도들은 무릎이라도 꿇을 듯한 표정으로 그들의 제사장을 바라보았다.
“주님…. 당신의 위대함은 -”
“소운아, 다시 말하지만 일단 나가자꾸나.”
재림 예수는 생각보다 현실적인 성격이었다.
*
SUV가 마침내 관리국의 영역에서 벗어난 후, 다시금 미묘한 긴장감이 차 내부를 메웠다.
신도들이 새장을 흘끔거리며 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
그때,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벗겨다오. 조금 답답하구나.”
“고생하셨습니다.”
직원 둘이 이상한 장치를 조작하는가 싶더니 자칭 예수의 얼굴을 덮고 있던 후드가 벗겨졌다.
그는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내게 옮겼다.
외견상 나이는 40대 초반 정도.
어깨까지 내려온 장발.
속내를 알 수 없는 갈색 눈동자.
조각 등에서 많이 본 얼굴.
실제 예수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차치하고, 눈앞의 남자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예수의 외형을 제법 닮아있었다.
“귀여운 친구, 여기서도 크게 소리 지를 셈인가? 이젠 큰 의미 없을 텐데?”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다.
허공에서 한 권의 책이 펼쳐지는 순간, SUV가 멈췄다.
다섯 명의 직원이 일제히 몸을 돌려 자칭 예수를 바라보았다.
“주님, 메시아를 자청하시려면 무언가 더 보여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재주는 뭐랄까…. 좀 심심한데?”
남자는 입을 반쯤 벌린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신경 쓸 필요 없는 말하는 앵무새라더니?”
“관리국이 평범한 앵무새가 있을 만한 장소는 아니지.”
“허허, 자네 말이 맞아. 그런데 친구, 차는 다시 출발하지? 아직 충분히 멀어지지 않았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또, 상태창 없이 화신의 힘을 장시간 유지할 자신이 없었기에 곧 통제를 풀었다.
직원들은 흡사 잠에서 깨어난 듯 당황하더니, 곧 두려움에 질린 채 떨기 시작했다.
“괴, 괴물! 대체 무슨 짓을 -”
자칭 예수는 짐짓 태연한 어조로 신도들을 진정시켰다.
“현석아, 걱정하지 말고 출발하거라. 내가 있는데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느냐? 애초에 관리국이 격리한 존재가 그냥 새일 리 없지.”
신경전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그는 나를 살폈고, 나는 그를 살폈다.
이런 종류의 싸움은 내게 유리한 면이 있었는데, 몸이 앵무새였기에 속내가 쉽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신의 힘을 드러낸 후, 자칭 예수는 더 이상 날 가벼이 대하진 않았다.
그러나 직원들처럼 날 두려워하는 기색도 아니다.
그리고….
“친구, 오늘 우리가 신비로운 인연을 맞이해 같은 배를 타게 되어 기쁘네. 그러나 서로 간에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나?”
“…”
“내 몸을 조종하려는 시도는 멈추어주게. 나야 자네의 가벼운 장난이라 웃어넘길 수 있으나, 아버지께서 불쾌해하신다네.”
그에겐 마도서의 힘이 통하지 않았다.
격이 높다는 이야기다.
“하나 물어봅시다.”
“기꺼이.”
“계속 친구, 주님 할 수는 없지 않나?”
“오호, 이제야 통성명할 생각이 들었군? 내가 자네를 무어라 부르면 되겠나.”
자칭 메시아를 만났기 때문일까?
나 또한 성경에서 본 이름이 떠올랐다.
“카인(cain).”
“익투스(ἸΧΘΥΣ)라 부르라.”
기묘한 문자열이 뇌리를 스쳤다.
최소한 영어나 한국어는 아니었다.
*
익투스와 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불편한 동거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
어느 순간, SUV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특정 지역을 빙빙 돌고 있음을 알았다.
인근에 익투스의 본거지가 있는 것 같다.
차를 운전하는 신도가 생각하기엔, 신성한 장소에 괴물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겠지.
결국 침묵이 깨졌다.
“카인. 내, 나름의 생각을 떠올렸으니 들어보게.”
“…”
“자네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이 차에서 벗어날 수 있네. 애초에 우리가 막을 리도 없고.”
“…”
“우리에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나?”
“익투스, 너도 비슷한 것 같은데. 내게 바라는 게 있나?”
익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카인, 실은 내가 모시는 분이 있네.”
“…”
“내 아버님이시지. 내 몸을 만든 분은 아니나, 내 영혼을 빚으신 분이시네. 그분은 진실로 인류를 일깨우실 영이시요, 거룩한 시선으로 만민을 바라보실 -”
“그니까 네 위에 뭔가 하나 더 있다?”
“그렇지.”
돌이켜보면 근거는 있었다.
기독교를 흉내 낸 교리로 위장하며 신이 아닌 신의 아들을 위장했다는 것.
신에 해당하는 존재가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마도서의 힘에 저항했다는 것.
저주의 방에서 여러 번 겪었지만, 이런 일은 물리적인 힘이 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의 격 자체가 범인과 비교할 수 없이 높을 때 가능한 일.
어떤 식으로든 신적인 존재와 닿아있다는 의미다.
슬슬 이놈의 자칭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까진 아니더라도 악마의 아들 정도는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손이 부족하심을 한탄하시네. 자네의 재주는…. 아버지께서 귀히 쓰실 것이야.”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다들 한 번씩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억대 연봉을 제시하는 상상 해보지 않나?
뉴스에서 매일같이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논하는 시대.
그런데 난 억대 연봉을 제시한 다국적 대기업 다섯 개 중 하나를 골라감.
캬~! 상상만 해도 벌써 지렸다!
…
고등학교 다니면서 이런 상상 수없이 했었는데, 대기업 대신 어디 정체 모를 사신(邪神)의 교단에서 내게 입사 제안을 할 줄은 몰랐다.
좋게 생각하자.
서울대는 물론이고 하버드, MIT 나와도 이런 제안 받기 힘들어.
“나도 바라는 게 하나 있다.”
“말해보게.”
익투스의 눈이 기묘하게 빛나며 나를 주시했다.
분명 엘레나처럼 거짓말을 알아낸다거나 하는 힘이 실려있겠지.
거짓말을 할 생각이 없으므로 상관없다.
우선, 말투부터 가다듬자.
“나는 본디 ‘위’에서 내려왔노라. 일찍이 천상의 옥좌에서 만상을 굽어보시는 분이 있으시니, ‘주’라 하셨다. 그분이 나에게 신성한 태양의 힘을 내렸나니, 나는 곧 그분의 장자요, 전령이라.”
익투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거…. 설마 동업자이신 줄은 몰랐구려.”
이거 지금 농담이라고 한 건가?
사이비 교주 새끼 주제에 나랑 동업자?
뭔가 불쾌한데?
“여러 사고가 겹쳐 새의 몸에 갇히고 말았으나, 내 본질은 본디 저 위의 하늘에 있는 것. 나는 세속의 일에 관심 없으며, 하늘로 돌아가고자 한다.”
“하늘로 돌아간다?”
“앞으로 5일에서 6일 사이, 이 나라의 하늘 어딘가에서 내 몸이 떨어지기 시작할 터.”
모래시계가 돌아간 시점에서 정확히 7일이 흐르면 하늘에 고정된 내 몸이 낙하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중간에 잠도 자고 기절도 해서 정확한 시점을 모르겠다.
“내 육신이 지면에 닿기 전에 -”
몸이 바닥에 부딪혀서 뒤지기 전에.
“그 몸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돌아갈 수 있어.
익투스는 잠시 고민한 후, 내 요청을 간단히 정리했다.
“쉽게 말해 5, 6일 후에 하늘에서 사람 몸 하나가 떨어지는데 그걸 찾아달라? 범위는 한국이고?”
“그렇지.”
“하루 동안 한반도 하늘 전체를 감시해달라는 이야기구려. 심지어 낙하 시간이 길어봐야 1분일 테니, 제한 시간도 촉박하군.”
“…”
“나에겐 불가능하고, 관리국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지.”
“…”
“하지만, 위대한 아버지께는 너무나 쉬운 일이오.”
“다행이네.”
“피차 잘된 일이지.”
“…”
“그대의 그 부탁, 아버지께 직접 하게. 아버지께선 섬기는 자에게 한없이 자비로운 분이시니 기꺼이 들어주실 터.”
“…”
“현석아, 이만 출발하거라. 성지(聖地)로 가자꾸나. 오랜만에 아버지를 뵈어야겠다.”
익투스의 의도는 너무 쉽게 보였다.
그는, 나를 자신이 모시는 신에게 데려가려 한다.
…
확신이 있는 것이다.
날 어떻게든 성지(聖地)에 데려가기만 하면, 그 ‘아버지’라는 존재가 날 단숨에 지배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그리하여 유용한 재주를 가진 앵무새를 교단이 부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겠지.
이 순간, 내 마음속을 채운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이었다.
순수하게 궁금했다.
그 ‘아버지’라는 작자는 호텔의 죄수와 비교해 어느 정도일까?
*
이른 아침, 관리국의 평온이 단박에 깨졌다.
“일련번호 M-0154, ‘익투스’ 탈출했습니다!”
“최소 셋 이상의 내부 직원을 정신 지배한 것으로 여겨지며 -”
“외부에서 개입한 정황도 발견했고 -”
“직원들이 받은 MP 214가 충분한 정신 저항을 제공하지 못함이 확인되었으며 -”
숨 가쁜 보고와 정신없는 대응.
그 와중,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은 더 없이 지친 표정을 지었다.
“또 이 난리인가….”
“부장님, 수정 요청 승인 바랍니다!”
남자, 관리국 한국 지부 책임자 박현민은 책상 위에 놓인 파일을 바라보았다.
「‘익투스’
일련번호 : M-0154
위험 등급 : C
인천에서 정체불명의 사교 집단을 이끌던 존재.
눈빛과 언행으로 사람을 현혹할 수 있으나 훈련받은 직원은 저항할 수 있다.
교단에서 섬기는 신적인 존재가 있는 듯 하나, 실체 없는 존재로 추정.
관리 절차 : 통제(Manipulate)
C등급 구속복, B급 AT 제어장치를 통해 능력 발현을 억제할 수 있다.
능력이 유용한 만큼 설득을 통해 끌어들일 가치가 있다 판단된다.」
“대부분 틀렸군.”
곧, 수정된 파일이 올라왔다.
「‘익투스’
일련번호 : D-0154
위험 등급 : B
인천에서 정체불명의 사교 집단을 이끌던 존재.
눈빛과 언행으로 사람을 현혹할 수 있으며 직원도 저항 불가.
교단에서 섬기는 신적인 존재가 있는 듯 하나, 실체 없는 존재로 추정.
관리 절차 : 파괴(Destroy)
통제 및 격리 불가. 제거 필요.」
박 부장의 눈이 중간쯤에서 멈췄다.
“이 부분도 틀린 것 같은데?”
“네?”
“교단에서 섬기는 신적인 존재. 아무래도 실체가 있는 것 같다.”
“포획 과정에서 인천의 사교도들을 몰살하였는데도 나타나지 않았 -”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힘이 있었다면, 애초에 잡혔겠나?”
“…”
“그땐 지금보다 약했던 거야. 갇혀있는 동안 강해졌고. 설마하니 혼자 독방에서 헬스라도 해서 강해졌을까?”
“누군가가 그놈에게 힘을 줬군요.”
다시 주변이 시끄러워질 무렵, 또 다른 직원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부, 부장님!”
“뭔가?”
“익투스와 함께 또 하나의 격리 개체도 탈출한 것 같습니다.”
책상에 또 하나의 파일이 올라왔다.
「‘잔머리 굴리는 앵무새’
일련번호 : C-0237
위험 등급 : D
지능이 높고 인간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자신이 원래 ‘한가인’이라는 K대 학생이라 주장하며 알고 있는 사람 여럿을 열거한다.
확인 결과, ‘한가인’은 물론 그 가족, 친구 등은 존재하지 않음.
‘마도서’를 써서 탈출하겠다며 협박.
실제 그런 도구가 있는지는 확인 불가.
+ 추가 사항
눈치가 빠르고 혼란 속에서 사교도를 협박할 정도의 담력도 있다.
기타 특수능력은 여전히 확인된 바 없음.
관리 절차 : 격리(Contain)
전기가 흐르는 새장에 가둬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 임시 파일이므로 불확정 정보가 많음을 명심할 것!」
“관리 절차를 수정할까요? 파괴? 통제?”
박 부장은 지친 표정으로 선언했다.
“귀찮은 일을 늘릴 필요는 없겠지. 탈출하면서도 별다른 힘을 쓰진 않은 것으로 보아 대단한 재주는 없는 모양이고.”
“사살하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