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91)
EP.391 391화 – 한여름 밤의 꿈 (7)
391화 – 한여름 밤의 꿈 (7)
– 한가인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이동한 SUV가 마침내 멈췄다.
주변에 그럴듯한 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단독주택만 여기저기 흩어진 것이 인구밀도가 낮아 보였다.
완전히 시골 마을 같은데 서울 인근에 이런 곳이 있었나?
물론, ‘이 서울’이 내가 아는 ‘그 서울’과 굉장히 다른 도시긴 하지만.
익투스와 다섯 추종자는 차에서 내려 마을로 걸어갔다.
나는 자연스레 추종자 중 한 명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올라타고 보니 얼굴이 익숙했다.
오늘 아침만 해도 메모, 메모 거리며 날 복장 터지게 했던 그 연구원이다.
“이봐!”
“왜 그러십니까?”
나와 익투스 간의 ‘협약’이 체결된 후, 추종자들은 나 또한 높여 불렀다.
“내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데 봐주는 거라고 했지?”
“…”
“아직도 허세로 들리냐?”
“… 아까는 죄송했 – 어이쿠!”
— 푸드득!
“…”
연구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 숙여 사과했는데, 내가 놈의 어깨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머리와 내 몸이 부딪혔다.
재빨리 반응해 날아올랐기에 흙바닥에 떨어지는 추태는 면할 수 있었으나 왠지 모를 회의감이 밀려왔다.
이 우스운 장면을 지켜보던 익투스가 가볍게 웃었다.
“민석이와 친한 모양이지?”
“…”
“그래도 뭐, 필요한 일은 해야겠지.”
필요한 일? 무슨 말이지?
익투스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던 차, 건너편에서 마을에 있던 추종자들이 다가왔다.
존경심 가득한 눈동자.
숨길 수 없는 기쁨.
당장이라도 엎드려 절하고 싶다는 태도.
그들의 교주가 ‘박해’를 이겨내고 돌아온 상황이니 제법 기쁜 모양이다.
그리고….
익투스가 너그러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의 추종자들이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소총을 꺼냈다.
— 탕! 탕!
순식간에 터져 나오는 총소리와 함께 여태껏 익투스를 수행했던 관리국 직원들이 연거푸 비명횡사했다.
난데없이 숙청?
갑자기 이런 일을 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뒤늦게 힘을 쓰자 방아쇠를 당기던 사람이 눈이 풀린 채 총구를 익투스 쪽으로 겨누었다.
그러자 마을의 추종자들이 매우 놀란 채 어찌할 바 몰랐다.
“흐어억! 도, 도준아! 어디에 총을 대는 것이냐!”
“너 이 녀석! 갑자기 무슨 -”
그때, 담담함을 가장하면서도 동요를 감추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일 아니니 진정하라.”
익투스의 시선이 날 향했다.
“카인,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 혹여 불만이 있다면 소상히 말해주게. 난 친구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네.”
“이 사람들은 네 추종자 아닌가? 왜 죽였지?”
“이들은 모두 관리국 직원 출신이야. 관리국은 직원들에게 다채로운 ‘보안 조치’를 해두지.”
“…”
“물론, 직원들은 마음으로 날 따르겠다 하였네. 그러나 이들의 몸에는 자신조차 모를 기기묘묘한 조치가 행해졌음이 분명하지.”
“추적 센서를 말한다면, 아까 차에서 적출 한 것 같던데.”
“그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네.”
“…”
“관리국은 세상을 흡사 거대한 기계처럼 대하지. 모든 인간은 톱니바퀴이며, 예외는 없어. 내부 직원들 또한 ‘조금 큰’ 톱니바퀴 이상도 이하도 아닐세.”
상황은 이해했다.
익투스가 모종의 마력으로 관리국 직원을 홀리긴 했으나, 관리국은 직원의 몸에 온갖 조치를 해둔다.
따라서 익투스가 보기에 이들은 믿을 수 없는 추종자다.
관리국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 혹은 버리는 패에 불과했다.
익투스의 말은 논리적이었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미 죽은 관리국 직원들을 위해 복수해줄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 푸드덕!
가볍게 날아올라 익투스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날 떨쳐내진 않았다.
“내 말을 이해해줘서 고맙네. 우리는 좋은 친분을 – 크읏!”
“출발하지. 오늘 네 아버지라는 존재를 봐야겠으니.”
“카, 카인, 발톱에 너무 힘이 -”
“자! 다들 출발 안 하냐?”
“… 성역으로 이동한다.”
*
익투스가 말하는 성역이라는 장소는 마을 인근의 산 깊숙한 장소에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주변 풍경이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늘부터가 시뻘겋게 물들었고, 나무들은 하나같이 괴이하게 꿈틀거렸다.
제정신 박힌 관리국 요원이 이 자리에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즉시 네이팜탄을 투하하라 보고했겠지.
— 고오오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울음.
익투스의 추종자들이 감당할 수 없다는 듯, 바닥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예수를 닮은 남자가 슬며시 미소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카인, 여기서 잠시 기다리게. 준비 없이 아버지를 갑자기 뵈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야.”
“…”
익투스는 붉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혼자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어지간한 건물보다 거대한 불가해한 악마가 일어섰다.
붉은 산양의 머리.
굽이치는 두 개의 거대한 뿔과 상대적으로 작은 두 개의 뿔.
꿈틀거리는 나무로 이루어진 흉측한 육체.
이윽고 섬뜩한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
관리국의 하루는 언제나 그렇듯, 평온했다.
…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내부적으로는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은 살얼음판과 같았는데, 3일 전에 두 혼돈체가 탈출했기 때문이다.
물론, 혼돈체의 탈출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관리국이 세계를 암중에서 주름잡는 집단이라고는 하나, 결국 인간이 중심이 된 조직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 어찌 빈틈이 없겠는가?
오히려 세계 전체를 관리하는 만큼 그 광대한 업무 처리 중 어딘가에는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말이 한국지부 총책임자, 박현민 부장에게 그리 위안이 되진 않았다.
— 탈칵!
“부장님! 인천에 파견되었던 타격대가 복귀했습니다.”
“벌써? 수색이 끝났을 리가 없는데.”
“그게….”
“또 뭔가?”
“팀장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
“어딘가 홀린 것처럼 덜덜 떠는 것이….”
“호재로군.”
“예?”
“맛이 가서 돌아왔다는 건, 파견 장소 인근에 뭔가 있다는 의미지. 이번엔 2급 특수 처리반에 요원도 하나 섞어서 -”
“부장님, 그 팀장이 부장님을 한번 꼭 뵈어야겠답니다.”
“뭐?”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답니다.”
“이상한 목소리? 악마에게 홀리기라도 했나?”
박현민은 조금 당황했다.
현장에 투입되는 타격대가 괴물이나 악마에게 홀리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런 존재가 관리국 고위층을 만나보고 싶다고 요청한다 해서 들어줄 이유가 있겠는가?
당연히 그런 시답지 않은 요청은 무시하는 게 기본이다.
눈앞의 직원도 이 정도 사실은 알고 있을 텐데.
“그런 줄 알고 2등급 정신 정화 절차를 진행하려 했는데, 난데없이 요원 이름을 꺼내서….”
“답답하니 말 좀 늘이지 말게. 요원 이름?”
“예전에 실종된 요원 두 명 이름 기억하십니까? 김아리, 김묵성 요원 말입니다.”
“…”
“팀장의 말에 따르면, 의문의 목소리는 자신이 김아리, 김묵성의 동료라고 했답니다.”
“…”
“부장님께 말 한마디만 전해달라 했습니다.”
“말해보게.”
“호텔에서 왔다.”
직원은 말을 전달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텔’이라는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 데려와.”
“예?”
*
잠시 후, 직원들이 초췌한 표정의 군인을 데리고 박 부장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팀장만 두고 나머진 나가.”
“부장님, 혼자 남으시는 건 -”
“괜찮으니까 나가게. 어서!”
결국 직원들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
“…”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부장의 입이 열렸다.
“그래, 팀장. 내게 할 말이 있다고?”
겁에 질린 듯한 군인의 입이 열렸다.
“모,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상한, 이상한 목소리였는데, 머릿속에 기이한 계시를 -”
횡설수설하는 말을 듣던 부장이 가볍게 한숨 쉬었다.
“서로 바쁜 사람인데 장난은 이쯤 하지.”
“예, 무, 무슨 말씀 -”
“계시는 무슨 계시. 근처에서 조종하는 것 같은데, 추적하지 않을 테니 말이나 똑바로 하게.”
“…”
“…”
잠시 후, 군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거 좀 자존심 상하네. 연기력에 제법 자신 있었는데. 이렇게 쉽게 들키나?”
“난 그 연기를 간파하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이네.”
“그렇긴 한데, 내가 이 몸을 직접 조종 중인 걸 어떻게 알아챘지?”
답이 돌아오길 기대하지 않은 질문이었는데, 박 부장은 흔쾌히 답했다.
“며칠 전에 신기한 앵무새에 관해 보고받았네. 자신이 사람이라 했다는데, 익투스가 탈출할 때 같이 도주했지.”
“…”
“설마하니 진짜 사람일 줄은 몰랐네. 앵무새 군, 가둬둔 건 사과하지. 참, 자네 나이가 몇 살이라고?”
가인이 순간 말문이 막힌 사이, 박현민이 자그마한 종이를 내밀었다.
“적게.”
“뭘 말입니까?”
“호텔 이름.”
가인은 어딘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종이에 끄적였다.
「Hotel Pioneer」
“파이오니어? 이건 이번에 쓰는 이름이군.”
“… 이번에 쓰는 이름?”
부장의 예리한 눈길이 가인을 훑었다.
“아리와 묵성 요원의 동료라고?”
“그렇습니다.”
“좋아, 자네가 호텔 참가자고, 탈출한 상태임을 알겠네. 내게 바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지?”
“맞습니다.”
“말해보게.”
“요 며칠간 인천 인근에 관리국 타격대가 잔뜩 돌아다니더군요. 그 사람들 딱 3일만 물려줬으면 좋겠는데.”
부장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후 질문했다.
“익투스를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인가?”
“정확히는 익투스와 그의 ‘아버지’가 내 몸을 찾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조금 자세히 설명해주게.”
가인은 잠시 고민했다.
이 남자에게 자신의 목적을 말해도 되는 걸까?
별수 없었다.
설명해주지 않으면 관리국은 타격대를 물리지 않을 테니까.
대한민국 하늘 어딘가에 가인의 몸이 고정된 상태이며, 3, 4일 후 낙하한다는 것.
낙하하는 몸을 익투스의 ‘아버지’가 찾아주기로 했다는 것.
이를 알리자 박 부장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자네는 호텔을 탈출했으면서도 다시 돌아갈 생각이라는 말이지?”
가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장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호텔의 탈출자는 간혹 발견되지만, 별도의 목적이 있는 요원이 아니고서야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 텐데.”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뭐라고?”
“여긴 내 세계가 아닙니다. 또 하나의 저주의 방이나 다름없죠.”
부장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는 무언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리 생각한다면 할 수 없지. 타격대를 물리겠네.”
“감사합니다.”
서로의 대화가 끝났다 느낄 무렵, 갑자기 부장이 탁자 하단에 숨겨진 버튼을 두어 번 건드렸다.
「— 삑! 서울 지부를 초기화하시겠습니까?」
“그렇다.”
「박 현 민 부장님. 음성 확인되었습니다. 어디까지 초기화하겠습니까?」
“보안등급 2급 이하 직원 전체, 2시간 분량의 기억.”
그 말이 끝나자 기이한 소음과 함께 한국지부 전체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가인은, 어딘가 벙 찐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뭡니까?”
“혹시 또 올 일 있으면 가능하면 몰래 오게.”
“예?”
“호텔이라는 단어를 일반 직원들 다 듣게 함부로 꺼내지 말고. 지금처럼 꽤 피곤한 절차를 거쳐야 하니까.”
“…”
문득, 며칠 전 익투스가 했던 말이 가인의 뇌리에 스쳤다.
「관리국은 세상을 흡사 거대한 기계처럼 대하지. 모든 인간은 톱니바퀴이며, 예외는 없어. 내부 직원들 또한 ‘조금 큰’ 톱니바퀴 이상도 이하도 아닐세.」
가인이 한숨을 쉬며 팀장의 몸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
박 부장의 입이 열렸다.
“익투스와 놈이 모시는 신은 어떻게 처리할 셈인가?”
대답 대신, 팀장이 입에서 침을 흘리며 엎어졌다.
“… 참 예의 바른 친구로군.”
부장은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며 조금 전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이곳’이 자신의 현실이 아니라 했다.
이 대답이 부장을 불안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