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92)
EP.392 392화 – 한여름 밤의 꿈 (8)
392화 – 한여름 밤의 꿈 (8)
– 한가인
말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약속처럼 무의미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
악인은 사리사욕을 위해 속이려 들고 선인은 대의를 위해 속이려 든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거짓말에 능하며, 인간이라는 단어를 ‘신 혹은 악마’로 바꾸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법칙엔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마주하는 모든 존재를 무작정 의심하고 적대해야 할까?
이런 짓을 하다간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릴 뿐이다.
약속이 지켜질 상황과 아닐 상황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판단기준이 바로 이해관계의 일치 여부이다.
A와 B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면, 강압이 없어도 둘 사이의 약속은 지켜질 가능성이 크다.
A와 B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면, 남은 것은 누가 먼저 배신하냐의 문제일 뿐.
내 앞에는 두 개의 약속이 놓였다.
익투스가 모시는 악마, 아폴리온은 내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몸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관리국은 악마가 내 몸을 찾아줄 때까지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관리국의 약속은 믿을 수 있다.
그들의 목적은 세상을 구할 힘을 호텔에서 얻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호텔로 돌아가서 두 요원을 도와야 목적을 이룰 확률이 높아진다.
관리국이 선한 집단이어서가 아니라 이해관계가 나와 일치하므로 약속을 지킨다.
아폴리온은 어떨까?
그의 목적은 신비로운 앵무새를 종복으로 부리는 것인데, 이 목적은 굳이 내 몸을 찾아주지 않고도 달성할 수 있다.
사악한 힘으로 앵무새의 정신을 지배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내 몸을 찾기 위해 힘을 쓰는 행위가 관리국의 이목을 끌 수 있어 위험하다 여기겠지.
…
만약 A와 B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면, 어떻게 해야 약속을 지키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해답 또한 호텔에서 배웠다.
이해관계를 일치시켜야 한다.
*
카인이 익투스의 교단에 입교한 후, 신비로운 앵무새의 마음속에 신앙심이 깃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아버지가 일으킨 또 하나의 기적이다.
익투스는 그리 여겼다.
“익투스님, 한 가지 조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하! 카인, 내 친구여. 현명한 이의 조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네. 거리낌 없이 하게.”
조언의 내용은 익투스의 예상 밖이었다.
카인은 교단의 운영 방식이 지나치게 낡고 조악하다고 강조했다.
“익투스님, 머리를 깎고 면도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친구, 내 모습은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으며 -”
“관리국에도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
“집회할 때 모이는 수가 150명 정도던데, 숫자가 너무 작지 않습니까? 장부를 보니 신도의 수를 다 합쳐도 500명 내외인 것 같습니다.”
“요전에 내가 잡히는 과정에서 희생자가 많이 나와서….”
“그보다 운영 방식이 너무 낡았기 때문이지요.”
그날 저녁, 카인은 ‘신세대 포교법’을 알려주겠다며 사회적 지위가 높은 교도 중 몇 명을 데리고 서울을 다녀왔다.
이틀 후, 서울에 다녀온 교도들은 엉뚱하게도 양복 입은 사람들 여럿과 함께 돌아와 열변을 토했다.
한참 동안 양복 입은 사람들의 말을 들은 익투스의 입이 열렸다.
“그러니까 새로운 신도들이 하는 일이 다단계라는 -”
“다단계가 아니라 네트워크 마케팅!”
“좋, 좋아. 네트워크 마케팅. 알겠는데, 왜 갑자기 교단에 이런 사람들을 데려와서 -”
신비로운 외형을 가졌으나 머릿속은 세상에서 제일 세속적인 앵무새가 말했다.
“익투스님, 신을 모시기 위해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카인의 조언은 간단했다.
익투스가 자꾸 ‘나는 신의 아들이다’따위의 소리를 하고 다니니 관리국이 군대를 보낸다.
그러니 일단 ‘네트워크 마케팅’을 통해 많은 사람과 돈을 모아라.
“아니, 다단계 -”
“네트워크 마케팅!”
“자본도 인력도 부족한데 무슨 수로 그런 사업을….”
“익투스님, 제가 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이미 영업 중인 사업체를 홀라당 먹으면 됩니다.”
“…”
귀신에 홀린 듯한 시간이 지나갔다.
익투스가 정신 차렸을 때, 교단의 신도들은 이미 ‘레그웨이’라는 ‘네트워크 마케팅’에 홀딱 넘어간 지 오래였다.
카인의 말에 허점이 많고 요란한 짓을 벌이면 관리국이 알아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이들은 대체로 사회적 지위도 있고 세상 물정에 밝은 현명한 신도들이었다.
카인은 그들을 딱 하루 만에 설득했는데, 익투스가 보기엔 신도들의 가슴에 붙어있는 배지가 큰 역할을 한 것 같았다.
“… 박진솔 신도, 그 배지는 무엇입니까?”
“이, 익투스님! 이게 바로 다이아몬드 계급이거든요? 레그웨이에서 -”
카인이 교도들의 계급을 나눈 것이다.
지위가 높고 의심 많은 신도는 하나같이 높은 계급을 받았다.
“카인!”
“지금 무척 바쁜데 무슨 일입니까?”
“대체 무슨 생각이지? 교단을 완전히 다단계 업체로 바꿀 셈이냐? 이는 교단의 결속을 깨트리는 행위다!”
“익투스님, 원래 조직을 키우려면 계급을 나눠야 합니다.”
“대체 무슨 말이지?”
“침착하게 들어보시지요. 계획이 뭡니까? 합법적인 사업체로 위장해서 규모를 키우는 것이죠?”
“…”
“하지만 누군가는 교단에 대해 알아야겠죠? 그 누군가를 정할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카인의 말은 터무니없는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설득력 있었다.
익투스가 당황할 때, 4일 만에 다단계 사업가로 변신한 앵무새가 자그마한 배지를 내밀었다.
“… 이게 뭔가?”
“골든 트리플 다이아몬드. 단 하나뿐인 배지입니다. 참고로 전 더블 다이아몬드입니다.”
“…”
“오직 익투스님만 얻을 수 있는 계급이지요.”
황금색 배지에 박힌 세 개의 ‘진짜’ 다이아몬드를 본 익투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상하게도 카인의 계획이 믿을만하다 여겨지기 시작했다.
절대 배지 때문은 아니었다.
*
다음 날, 교도들은 단체로 앵무새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사람처럼 말하는 앵무새는 존재 자체가 이미 신비로웠기에 너무나 쉽게 좌중을 휘어잡았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위대한 아폴리온께 선택받은 신실한 양이 아닙니까?”
…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었지요? 무도한 관리국 무뢰배들의 창칼을 두려워하며 납작 엎드렸지요?”
…
“옵니다. 이제 때가 왔습니다! 영광의 순간이 왔습니다. 자, 여러분 가슴에 배지 보이시죠? 이 자리의 모든 분이 최소 플래티넘 계급인 것 아시죠?”
…
“일단 집집마다 비엠따블류! 그거 한 대는 챙깁시다. 부평구에 올라갈 사옥? 그거 여러분 모두에게 지분 나눠지는 것 아시죠?”
…
“충성! 또 충성입니다! 아폴리온님의 무궁한 영광에 충성! BMW, 벤츠, 아우디! 가즈아아아!”
“가즈아아아!”
교도들은 눈알이 반쯤 뒤집힌 채 ‘가즈아아’를 외쳤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익투스는 순수한 의미로 감탄했다.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고 세속적인 설교는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설교는 신도들이 숨겨왔던 마음속 소망을 시원하게 긁어버렸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작은 시골 마을에 박혀서 평생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심지어 ‘우리’는 진실한 신의 선택을 받은 위대한 사람들인데?
관리국의 패악질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랬기에 ‘합법적 사업체로 위장해 세력을 불리기’라는 유혹은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물론, 마지막까지 의심한 사람도 있었으며 익투스 또한 이들 중 하나였다.
합법적 사업체로 위장하면 외부에서 개입할 수 없다?
이런 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할 때나 통하는 수법이다.
관리국이 대체 언제 법이 있고 없고를 따졌던가?
좀 이상하다 싶으면 총 들고 싹 죽인 다음에 언론엔 가스 폭발로 300명의 희생자가 나왔다고 조작하는 게 그들의 방식이다.
그런데….
지난 5일간 관리국은 정말로 개입하지 않았다.
이 사실이 교단에 남은 마지막 의심을 지워버렸다.
“익투스님,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하다고?”
“본래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야 하는 법입니다. 예수가 태어나지도 않은 한반도에서 재림예수 소리를 하고 다니니까 쉽게 들킨 것이죠.”
“…”
“그러니 교단을 세우려면 네트워크 마케팅을 해야 -”
“내 귀엔 꼭 사기를 치려면 사기꾼이 넘쳐나는 사업을 시작하라는 말로 들리는군.”
카인의 연설 이후, 교단 내 장밋빛 분위기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다.
*
교단이 새로운 꿈을 품기 시작한 지 5일 차 저녁.
카인이 갑자기 미쳤다.
갑자기 말이 통하지 않았다.
갑자기 괴물로 변해 신도들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집회 중 기괴한 포효를 질러 신도들을 도망가게 했다.
갑자기 다단계 업체 사업가들의 세뇌가 풀리기 시작했다.
당장 다음 주면 부평구 신사옥에서 설명회를 해야 하는데!
교단의 새로운 꿈에는 날개짓 한 번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앵무새의 힘이 꼭 필요했다.
익투스 본인 만의 힘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시점이 되어서야 익투스는 깨달음을 얻었다.
더 이상 교단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모두의 마음속에 ‘부자 되세요!’라는 꿈이 불어넣어졌기 때문이다.
현실의 주차장은 경운기뿐이지만, 마음속 주차장엔 다들 BMW 한 대씩 주차한 지 오래다.
늦은 밤, 신도들이 익투스에게 카인을 회복시켜야 한다며 간절히 매달렸다.
익투스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
— 꽤에에엑!
“카인.”
— 피요오오오! 덜컹!
“내 말 듣고 있는 것 알고 있네.”
“… 헛, 익투스님?”
“후우…. 요 며칠간 미친 듯이 일을 벌인다 했더니, 이게 자네 의도였나?”
“의도라니요?”
“말 돌리지 말게. 우리가 자네에게 의존하도록 만들었지 않나.”
“…”
“바라는 게 대체 뭔가?”
카인이 부리를 살짝 벌렸다.
익투스는, 이것이 카인 나름의 웃음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처음 했던 약속을 지켜주시면 됩니다.”
“약속?”
“아마 내일 새벽부터 점심 무렵 사이에 내 몸이 하늘에서 떨어질 겁니다.”
“…”
“그것만 찾아주시면 됩니다.”
“…”
“왜 그러십니까? 처음부터 약속했던 부분 아닙니까? 마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솔직히 말하지. 몸을 되찾는다면, 자네의 힘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겠지.”
지금보다 강해진 카인을 교단이 통제할 수 있을까?
익투스는 이 말을 삼켰다.
“그 부분은 쉬운 해결책이 있군요.”
“해결책?”
“하늘에서 떨어지는 제 몸을 아폴리온님이 직접 챙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
“혹시 제가 ‘허튼 생각’을 하면 아폴리온님이 즉시 응징하시면 되겠지요.”
익투스는 차근차근 카인의 제안을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논리에 빈틈은 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카인의 몸을 아폴리온이 직접 챙겨서 보관한다면?
그때부터는 카인이 교단을 배신할 수 없다.
혹시 이상한 수를 쓴다면, 아폴리온이 그 몸을 파괴하면 그만이다.
“아버지께 다시 말씀드리지.”
“감사합니다.”
“… 대신, 오늘의 혼란을 가라앉혀주게.”
“물론이지요.”
늦은 새벽, 신비로운 앵무새가 교도들에게 ‘약간의 실수’로 인한 혼란을 사과하며 다시금 열변을 토했다.
“가즈아아아아!!!!”
“가즈아아아아!!!!”
모두의 마음속에 이번엔 강남 아파트가 한 채씩 들어섰다.
*
[사〿자 : 한가〿(지〿)〿짜 : 2〿〿일 〿
현〿 위치 : —
현〿의 조〿 : 〿]
– 한가인
마침내, 그리웠던 내 몸을 되찾았다.
…
상태창은 정상이 아니었다.
예전처럼 한 글자도 알아볼 수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글자가 여럿 깨졌고 무엇보다 흐릿했다.
축복의 근원인 후원자로부터 거리가 너무 벌어졌기 때문일까?
속이 확 풀릴 정도의 청량함을 느낄 때쯤, 붉은 악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 다시 나를 섬길 준비가 되었느냐?
“…”
너는 익투스와 함께 나의 가장 큰 충복이 될 것이며 –
상태창은 흐릿했고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상관없다.
지금부터 사용하려는 힘은 형식적으로 상태창에 포함되어있을 뿐, 후원자가 내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힘은 처음부터 어떤 존재가 호텔 밖에 나가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강림 : 1 -> 0」